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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 지역에서 24절기 가운데 1년 중 밤이 가장 긴 시기에 거행되는 풍속. 동지(冬至)는 24절기의 스물두 번째 절기로 양력 12월 22일이나 23일이고, 음력으로는 11월에 해당하므로 ‘동짓달’이라 주로 부른다. 동지는 ‘작은설’, ‘아세(亞歲)’라고도 한다. 동짓날은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로 태양의 운행의 시발점이므로 이날의 행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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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북창리 적상산에 있는 대한 불교 조계종 제17 교구 본사 금산사의 말사. 안국사(安國寺)의 창건과 관련하여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여지도서(輿地圖書)』, 『범우고(梵宇攷)』, 『가람고(伽藍考)』 등에는 ‘안국사’라는 사명(寺名)이 등장하지 않다가 이보다 후대의 기록인 『적성지(赤城誌)』에 사찰 이름이 등장한다. 1896년에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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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괴목리 안국사에 있는 조선 후기 괘불대. 괘불대(掛佛臺)는 영산재(靈山齋)나 수륙재(水陸齋) 등 불교 법회나 의식을 거행할 때 예배의 대상인 괘불을 걸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 석조물이다. 그 형태는 당간 지주(幢竿支柱)와 유사하지만 건립 목적이나 의의는 전혀 다르다. 괘불대는 당, 당간, 당간 지주가 하나의 일체로서 갖는 상징성이나 의의는 거의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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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괴목리 안국사에 있는 조선 후기 괘불대. 괘불대(掛佛臺)는 영산재(靈山齋)나 수륙재(水陸齋) 등 불교 법회나 의식을 거행할 때 예배의 대상인 괘불을 걸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 석조물이다. 그 형태는 당간 지주(幢竿支柱)와 유사하지만 건립 목적이나 의의는 전혀 다르다. 괘불대는 당, 당간, 당간 지주가 하나의 일체로서 갖는 상징성이나 의의는 거의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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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괴목리 안국사에 있는 조선 후기 불교 전각. 안국사극락전(安國寺極樂殿)은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괴목리 1602번지[산성로 1050]에 있다. 적상산(赤裳山) 분지에 있는 안국사(安國寺)는 고려 1277년(충렬왕 3)에 월인 화상이 지었다고 전한다. 본래 보경사 또는 산성사 등으로도 불렸다. 안국사극락전은 임진왜란(壬辰倭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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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괴목리 안국사에 있는 조선 후기 범종. 안국사 소장 범종(安國寺所藏梵鍾)은 1788년(정조 12)에 조성된 조선 후기의 범종으로, 현재 안국사(安國寺) 범종각 내 후면에 안치되어 있다. 2007년 5월 4일에 전라북도 문화재 자료 제188호로 지정되었다. 전체 높이는 83㎝, 너비는 78㎝이다. 천판(天板) 위에 3개의 구멍이 뚫려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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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괴목리 안국사 극락전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 후기 아미타 삼존불상. 안국사목조아미타삼존불상(安國寺木造阿彌陀三尊佛像)은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괴목리에 있는 안국사 극락전(安國寺極樂殿)에 봉안되어 있는 목조 아미타 삼존불이다. 불상의 조성기가 발견되지 않아 정확한 조성 연대는 알 수 없으나, 구부정한 자세, 굵고 짧은 목, 납작한 턱과 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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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괴목리 안국사에 있는 조선 후기 범종. 안국사 소장 범종(安國寺所藏梵鍾)은 1788년(정조 12)에 조성된 조선 후기의 범종으로, 현재 안국사(安國寺) 범종각 내 후면에 안치되어 있다. 2007년 5월 4일에 전라북도 문화재 자료 제188호로 지정되었다. 전체 높이는 83㎝, 너비는 78㎝이다. 천판(天板) 위에 3개의 구멍이 뚫려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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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괴목리 안국사에 있는 조선 후기 승려 보운당 혜정의 승탑. 승탑(僧塔)은 부도(浮屠)라고도 부르며, 고승(高僧)이 입적한 후 사리(舍利)나 유골(遺骨)을 봉안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승탑은 선종(禪宗)이 유입된 이후인 9세기 중엽부터 본격적으로 만들어졌다. 이 시기 승탑은 실상사 증각 대사 응료탑(實相寺證覺大師凝寥塔)과 같이 팔각 원당형(八角圓堂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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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괴목리 안국사에 있는 조선 후기 범종. 안국사 소장 범종(安國寺所藏梵鍾)은 1788년(정조 12)에 조성된 조선 후기의 범종으로, 현재 안국사(安國寺) 범종각 내 후면에 안치되어 있다. 2007년 5월 4일에 전라북도 문화재 자료 제188호로 지정되었다. 전체 높이는 83㎝, 너비는 78㎝이다. 천판(天板) 위에 3개의 구멍이 뚫려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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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괴목리 안국사에 있는 조선 후기 승려 월인당의 승탑. 승탑(僧塔)은 부도(浮屠)라고도 부르며, 고승(高僧)이 입적한 후 사리(舍利)나 유골(遺骨)을 봉안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승탑은 선종(禪宗)이 유입된 이후인 9세기 중엽부터 본격적으로 만들어졌다. 이 시기 승탑은 실상사 증각 대사 응료탑(實相寺證覺大師凝寥塔)과 같이 팔각 원당형(八角圓堂形)이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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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괴목리 안국사에 있는 조선 후기 승려 청운당의 승탑. 승탑(僧塔)은 부도(浮屠)라고도 부르며, 고승(高僧)이 입적한 후 사리(舍利)나 유골(遺骨)을 봉안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승탑은 선종(禪宗)이 유입된 이후인 9세기 중엽부터 본격적으로 만들어졌다. 이 시기 승탑은 실상사 증각 대사 응료탑(實相寺證覺大師凝寥塔)과 같이 팔각 원당형(八角圓堂形)이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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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괴목리 안국사에 있는 조선 후기 승려 청운당의 사리탑과 봉골탑. 승탑(僧塔)은 부도(浮屠)라고도 부르며, 고승(高僧)이 입적(入寂)한 후 사리(舍利)나 유골(遺骨)을 봉안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승탑은 선종(禪宗)이 유입된 이후인 9세기 중엽부터 본격적으로 만들어졌다. 이 시기 승탑은 실상사 증각 대사 응료탑(實相寺證覺大師凝寥塔)과 같이 팔각 원당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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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괴목리 안국사에 있는 조선 후기 승려 청운당의 승탑. 승탑(僧塔)은 부도(浮屠)라고도 부르며, 고승(高僧)이 입적한 후 사리(舍利)나 유골(遺骨)을 봉안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승탑은 선종(禪宗)이 유입된 이후인 9세기 중엽부터 본격적으로 만들어졌다. 이 시기 승탑은 실상사 증각 대사 응료탑(實相寺證覺大師凝寥塔)과 같이 팔각 원당형(八角圓堂形)이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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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금평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떼.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금평리 안기 마을 회관에서 동쪽으로 나 있는 농로를 따라 500여 m 가면 구릉이 나오는데, 구릉 남쪽 비탈에 금평리 고인돌 떼1이 위치한다. 2006년에 전북 대학교 박물관이 실시한 무주 관광 레저 기업 도시 개발 사업 부지 내 문화 유적 지표 조사 과정에서 확인된 고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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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금평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떼. 금평리 고인돌 떼2는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금평리 안기 마을에서 동남쪽으로 200m 지점에 있는 구릉에 위치한다. 안기 마을 회관에서 동남쪽 방향에 동서로 뻗은 긴 구릉이 자리하는데, 이곳에 금평리 안기 고분군(琴坪里安基古墳群)과 금평리 유물 산포지(琴坪里遺物散布地)2가 함께 자리하고 있다.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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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행을 시조로 하고, 권칭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무주군의 세거 성씨. 안동권씨는 경상북도 안동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이다. 처음 무주에 이거한 인물은 권칭(權稱)으로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철목리에 세거하였고, 무주군 안성면 덕산리로 이거한 권춘(權春)과 권귀열(權龜悅)이 있다. 안동권씨의 시조 권행(權幸)은 안동에서 대대로 세거하던 집안의 인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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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사산리에 있는 바위 절벽 위의 평탄지. 안렴대(按廉臺)는 고려 시대 거란병이 침입했을 때 삼도의 안렴사(按簾使)가 피난했던 곳이라는 데서 유래하였다. 그러나 거란의 2차 침입 시기인 1010년(현종 1)의 고려 초 행정 구역과 직제상에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3도가 형성되지 않았고, 안렴사라는 직제가 확립되어 있었는가에 대한 의문은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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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장기리에 있는 산. 안면산(安眠山)[621m]은 남쪽에 위치하는 매방제산(梅芳齊山)[776m]의 북쪽 지맥이다. 북쪽에는 봉화산(烽火山)이 위치하나 중간에 구량천(九良川)이 동서로 흐르고 있으며, 남쪽은 매방제산과 양약천이 흘러 고립된 산체의 북쪽 부분이다. 구량천이 동쪽과 북쪽, 서쪽으로 둘러싸고 있다. 경위도상으로는 북위 35°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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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장기리에 있는 천주교 공소. 안성 공소는 1985년 7월 11일 공소 첫 미사를 보면서 공식적으로 설립되었다. 그러나 이미 1983년에 이태섭[바르나바]·김태수[베드로]·김순묘[세실리아] 3세대 가족이 이태섭의 집에서 공소 예절을 하고 있었다. 당시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 일대에는 지역 여건상 안주하여 생활하는 주민보다 타 지역으로 진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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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장기리에 있는 시외버스 터미널. 무주군 안성면 주민들의 교통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1987년 개인 사업자가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장기리 1506-10번지[시장윗길 6-3]에 안성공용버스터미널을 준공하였다. 1987년 10월 14일 안성공용버스터미널 전라북도 정류장 사업 면허를 취득하였다. 준공 이후 40여 년 간 이용되어 왔으나, 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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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장기리에 있는 대한 예수교 장로회 소속 교회. 안성교회는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지역의 복음 전파를 위해 설립되었다. 안성교회는 1952년 11월 4일 안성 이목 교회에서 분립되어 92.4㎡ 규모의 목조 건물로 시작되었다. 당시 이목리가 광대한 마을이었으나 현 안성 지역이 5개 면 장이 활발하게 전개되어 안성교회가 개척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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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장기리에 있는 대한 예수교 장로회 소속 교회. 안성교회는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지역의 복음 전파를 위해 설립되었다. 안성교회는 1952년 11월 4일 안성 이목 교회에서 분립되어 92.4㎡ 규모의 목조 건물로 시작되었다. 당시 이목리가 광대한 마을이었으나 현 안성 지역이 5개 면 장이 활발하게 전개되어 안성교회가 개척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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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장기리에 있던 비상설 극장. 6·25 전쟁 이후 수많은 문화 예술인을 포함하여 영화인들이 대거 전주, 대구, 부산으로 피란하면서 전라북도는 195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 한국 영화 산업을 이끌어 가는 중추적 역할을 한다. 근대 문화유산으로 등록될 정도로 한국 영화사의 대표작인 이강천(李康天) 감독의 「피아골」[1955], 한국 최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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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장기리 단지봉에서 벌어진 무주 경찰, 학도의용대와 인민군과의 전투. 지리산과 덕유산 일대에는 6·25 전쟁을 목전에 두고 유격 활동을 해오던 남로당의 이현상(李鉉相) 빨치산 부대가 집결해 있었는데, 6·25 전쟁이 발발한 후인 7월 21일 덕유산에서 안성으로 내려와 무주군을 점령하였다. 9월 15일 인천 상륙 작전이 성공하고 유엔군과 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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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지역에 형성된 분지. 안성 분지는 사면이 높은 산지로 둘러싸여 있고, 모든 하천이 서쪽의 무주군 안성면 진도리로 모여 대고개와 노루 고개 사이의 계곡을 지나 진안군 동향면 능금리로 유출된다. 즉, 안성 분지의 모든 물은 서쪽인 무주군 안성면 장기리로 모여 진도리를 통해 서쪽으로 흐른다. 무주군 안성면의 8개 법정리 중에서 남쪽의 공진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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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장기리 안성면 주민 자치 센터 정원에 있는 고려 시대 석불. 안성면 주민 자치 센터 정원에는 안성 석불(安城石佛)과 함께 고려 시대의 석탑으로 추정되는 장기리 안성 석탑(場基里安城石塔)이 같이 보존되고 있다. 안성 석불은 입상으로 현재 머리가 없다. 대의는 양쪽 어깨를 덮은 통견식으로 착용하였으며, 손은 선정인(神定印)을 취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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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장기리에 있는 전통 시장. 1918년 8월 17일 설립 허가를 받아 현 위치에 안성 시장[5·10일]으로 개장하였다. 주로 곡류, 연초,오미자, 축산류, 직물, 수산물, 도자기, 육류, 마포(麻布), 누룩, 잡화 등을 판매하였다. 1979년 새마을 사업으로 102칸의 점포를 가진 시장으로 정비되었다. 2001년 무주군이 총 사업비 20억 원을 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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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장기리에 있는 도서관. 안성작은도서관은 2012년 무주군이 추진한 문화적으로 소외된 주민과 아이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조성되어 2013년 1월 21일 개관하였다. 면적은 49.5㎡이고, 열람실 3실을 갖추고 있다. 안성작은도서관은 관장 1명, 운영 위원 12명, 운영자 1명, 자원 봉사자 7명 등 총 2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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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사전리에 있는 공립 중·고등학교. 교육 목표는 '바른 국가관과 민주 시민 의식의 함양으로 애국 애족하는 태도를 기른다[도덕인], 자율과 창의성을 바탕으로 자신의 진로를 스스로 개척하는 능력을 기른다[자주인], 기초·기본 학력을 튼튼히 하여 미래 사회에 대처해 나갈 수 있는 역량을 기른다[창의인], 이웃 사랑과 바른 예절 체험으로 사회에 봉사하는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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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사전리에 있는 공립 중·고등학교. 교육 목표는 '바른 국가관과 민주 시민 의식의 함양으로 애국 애족하는 태도를 기른다[도덕인], 자율과 창의성을 바탕으로 자신의 진로를 스스로 개척하는 능력을 기른다[자주인], 기초·기본 학력을 튼튼히 하여 미래 사회에 대처해 나갈 수 있는 역량을 기른다[창의인], 이웃 사랑과 바른 예절 체험으로 사회에 봉사하는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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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장기리에 있는 청소년 수련 시설. 안성청소년문화의집은 무주 지역 청소년들을 위한 문화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무주군에서 건립하였다. 건축가 정기용(鄭寄鎔)이 공공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해를 좇는 새'를 주제로 디자인하여 2004년 10월 1일 개관하였다. 2014년부터 매년 무주 교육 지원청에서 지원하는 ‘무주 안성 방과후 마을 학교 공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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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장기리에 있는 생활 체육공원. 안성체육공원(安城體育公園)은 2008년 4월 기공식을 갖고 2009년 9월 준공하였다. 축구장과 테니스장, 게이트볼장 1면, 다목적 구장을 준공하였다. 2013년에 게이트볼장 1면을 추가 설치하고, 2015년에 안성 문화 체육관을 준공하였다. 안성체육공원은 대지 면적 2만 2046㎡이다. 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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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장기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교육 목표는 '깊게 생각하고 스스로 공부하는 창의적인 어린이, 기본 생활 습관이 바로 된 착한 어린이, 몸과 마음이 건강한 어린이, 소질을 계발하고 특기를 가진 똑똑한 어린이'이다. 교훈은 '더불어 새 꿈을 가꾸는 슬기롭고 튼튼한 어린이가 되자'이다. 1919년 5월 26일 안성 보통학교로 설립 인가를 받아 같은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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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장기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교육 목표는 '깊게 생각하고 스스로 공부하는 창의적인 어린이, 기본 생활 습관이 바로 된 착한 어린이, 몸과 마음이 건강한 어린이, 소질을 계발하고 특기를 가진 똑똑한 어린이'이다. 교훈은 '더불어 새 꿈을 가꾸는 슬기롭고 튼튼한 어린이가 되자'이다. 1919년 5월 26일 안성 보통학교로 설립 인가를 받아 같은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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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장기리에 있는 시외버스 터미널. 무주군 안성면 주민들의 교통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1987년 개인 사업자가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장기리 1506-10번지[시장윗길 6-3]에 안성공용버스터미널을 준공하였다. 1987년 10월 14일 안성공용버스터미널 전라북도 정류장 사업 면허를 취득하였다. 준공 이후 40여 년 간 이용되어 왔으나, 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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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죽천리 죽천 삼거리와 무주읍 당산리 당산 삼거리를 남북으로 연결하는 지방도. 일반 지방도는 지방 자치 단체마다 주요 번호가 있는데, 전라북도는 700번대를 사용해 ‘제727호선’으로 명명되었다. 무주군 안성면과 무주읍을 연결하여 안성~무주선이라고도 불린다. 총연장 25.6㎞로 전 구간이 2차로이며, 무주군 내부만을 연결한다. 포장도 17.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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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에 있는 법정면. 무주군의 남부에 위치한 면으로 동쪽은 두문산[1,051m], 덕유산[1,614m] 등을 경계로 설천면·경상남도 거창군, 서쪽으로 진안군 동향면, 남쪽은 장수군 계북면, 북쪽은 조두치[590m] 등을 경계로 적상면과 인접한다. 조선 시대에는 금산군 지역으로 안성소(安城所)가 있어 ‘안성(安城)’이라고 하였다는 설과, 덕유산의 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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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에 있는 수령 약 300~500년의 느티나무 3그루. 무주군 안성면에서 보호수로 지정된 느티나무는 느릅나무과 느티나무속에 속하는 낙엽 활엽 교목으로 학명은 Zelkova serrata Makino이다. 일본, 중국, 대만에 분포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에서 평안남도까지 각지에 자라지만, 북쪽으로 갈수록 수가 줄어든다. 성장이 빠르고 높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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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장기리에 있는 안성면 관할 행정 기관. 안성면 주민자치센터는 전라북도 무주군을 구성하고 있는 6개 읍·면[무주읍, 무풍면, 설천면, 적상면, 안성면, 부남면] 중 안성면의 주민 생활과 관련한 행정 사무를 담당하는 기관이며, 주민들의 문화, 복지, 여가 활동 등을 위해 별도로 주민 자치 기구도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다. 안성면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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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장기리 안성면 주민 자치 센터 정원에 있는 고려 시대 석불. 안성면 주민 자치 센터 정원에는 안성 석불(安城石佛)과 함께 고려 시대의 석탑으로 추정되는 장기리 안성 석탑(場基里安城石塔)이 같이 보존되고 있다. 안성 석불은 입상으로 현재 머리가 없다. 대의는 양쪽 어깨를 덮은 통견식으로 착용하였으며, 손은 선정인(神定印)을 취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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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죽천리에 있는 수령 약 450년의 소나무. 안성면 소나무는 소나무과 소나무속에 속하는 상록 침엽 교목으로 학명은 Pinus densiflora Sieb. et Zucc.이다. 소나무는 북부 고원 지대와 고산의 정상 부근을 제외하고, 우리나라 전역의 산지에 자라는 대표적인 침엽 수종이다. 육송(陸松), 적송(赤松)으로도 부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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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장기리에 있는 안성면 관할 행정 기관. 안성면 주민자치센터는 전라북도 무주군을 구성하고 있는 6개 읍·면[무주읍, 무풍면, 설천면, 적상면, 안성면, 부남면] 중 안성면의 주민 생활과 관련한 행정 사무를 담당하는 기관이며, 주민들의 문화, 복지, 여가 활동 등을 위해 별도로 주민 자치 기구도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다. 안성면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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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에 설치한 말단 행정 구역. 소(所)는 향(鄕)·부곡(部曲)·처(處)·장(莊)과 함께 고려 시대의 특수 행정 구역으로, 고려의 독특한 군현제의 특성을 잘 보여 준다. 소의 거주민들은 정부에 대하여 특수한 역역(力役)이나 공역(貢役)의 의무를 짊어졌다. 소는 생산물의 종류에 따라 금소(金所)·은소(銀所)·동소(銅所)·철소(鐵所)·사소(絲所)·주소(紬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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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장기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교육 목표는 '깊게 생각하고 스스로 공부하는 창의적인 어린이, 기본 생활 습관이 바로 된 착한 어린이, 몸과 마음이 건강한 어린이, 소질을 계발하고 특기를 가진 똑똑한 어린이'이다. 교훈은 '더불어 새 꿈을 가꾸는 슬기롭고 튼튼한 어린이가 되자'이다. 1919년 5월 26일 안성 보통학교로 설립 인가를 받아 같은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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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 지역에 사당이 있는 고려수절신.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안지(安之), 호는 송우(松愚). 아버지는 고려수절신(高麗守節臣) 경원군(慶原君) 이반계(李攀桂)이다. 이반계는 고려 말 예부 상서(禮部尙書)를 지냈는데 조선 건국 후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1933년 세운 이반계의 신도비가 강원도 횡성군 횡성읍 정암리에 있다. 손자는 이천익(李天翊)이다. 자는 거원(擧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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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 장안리에서 발원하여 고창리와 대소리를 흐르는 하천. 안창천(安昌川)이라는 이름은 하천이 흐르는 법정리인 장안리(長安里)와 고창리(高昌里)에서 각각 한 글자씩 따와 붙인 것으로 여겨진다. 장안리는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생긴 지명이므로 ‘안창천’이라는 이름도 그 이후에 붙여진 것으로 짐작된다. 무주군 부남면 장안리 국사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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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당산리에 있는 농업 관개용 저수지. 압수저수지(貯水貯水池)는 무주군 무주읍 당산리 농업용수의 주수원이 되는 저수지이다. 당산리 일원에 농업용수를 원활하게 공급하며 농업 생산력을 증대하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1956년 11월 10일 착공하여 1959년 10월 1일 준공하였다. 당시 소요된 사업비는 586만 2000원이었다. 유역 면적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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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오산리에 있는 고개. 오리 머리 같이 생긴 모습에서 ‘압재’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 압치 또는 학산재라고도 부른다. 압재[310m]는 무주군 무주읍 오산리와 충청북도 영동군 학산면 봉소리를 연결하는 고갯길로, 동쪽의 백하산[634m]과 서쪽의 칠봉산[521m]을 동서로 연결하는 산줄기의 낮은 부분이다. 동서로 놓여 있기 때문에 남쪽의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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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오산리에 있는 고개. 오리 머리 같이 생긴 모습에서 ‘압재’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 압치 또는 학산재라고도 부른다. 압재[310m]는 무주군 무주읍 오산리와 충청북도 영동군 학산면 봉소리를 연결하는 고갯길로, 동쪽의 백하산[634m]과 서쪽의 칠봉산[521m]을 동서로 연결하는 산줄기의 낮은 부분이다. 동서로 놓여 있기 때문에 남쪽의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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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과 충청북도 영동군 학산면의 접경에 있는 터널. 무주~영동 간 도로 확장 및 포장 공사 시에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과 충청북도 영동군 영동읍의 접근성 향상을 위해 2007년 12월 31일에 국도 제19호선 무주로, 영동로 접경에 압치터널을 개통하였다. 길이는 영동 방면 상행 480m, 무주 방면 하행 500m이다. 상하행 터널 모두 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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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내도리에 있는 대한 예수교 장로회 소속 교회. 앞섬교회가 위치한 곳은 금강 줄기가 휘돌아 만들어진 육지섬으로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이곳에 다리가 놓이기 전에는 배 등을 이용하여 강을 건너야만 읍내로 통행이 가능하였다. 1928년 10월 어느 날 증경 총회장을 역임한 김윤식 목사가 이 앞섬[전도]에 살고 있는 누이를 찾아왔다가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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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내도리에 있는 대한 예수교 장로회 소속 교회. 앞섬교회가 위치한 곳은 금강 줄기가 휘돌아 만들어진 육지섬으로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이곳에 다리가 놓이기 전에는 배 등을 이용하여 강을 건너야만 읍내로 통행이 가능하였다. 1928년 10월 어느 날 증경 총회장을 역임한 김윤식 목사가 이 앞섬[전도]에 살고 있는 누이를 찾아왔다가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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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내도리에 있는 농촌 체험 마을. 앞섬마을의 법정리인 내도리(內島里)는 모양이 섬처럼 보인다고 해서 육지 속의 섬이라는 뜻으로 지어진 이름인데, 앞섬마을은 내도리의 앞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전도(前島) 마을이라고도 한다. 마을 앞으로 흐르는 강 건너에는 뒷섬, 즉 후도 마을이 있다. 앞섬마을은 본래 금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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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 죽계 서원에 배향된 조선 전기 무신. 본관은 구례(求禮). 자는 무부(武夫), 호는 백야(栢冶). 할아버지는 군수 장사종(張嗣宗)이며, 아버지는 장근(張謹)이다. 어머니는 심씨(沈氏)로 1510년(중종 5) 태어났다. 충청북도 영동군 출신으로 아들은 장의현(張義賢), 장지현(張知賢)이다. 장의현이 무주 지역에 들어와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장지현은 임진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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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사전리와 적상면 삼가리 경계에 있는 산. 어둔산(魚屯山)[679m]은 서북쪽의 봉화산(烽火山)[884m]과 동북쪽의 탕건 바위, 노고봉으로 연결되며, 안성치를 넘어 동쪽의 두문산(斗文山)[1,051m]으로 연결된다. 어둔산의 서쪽에는 무주군 적상면 삼가리과 안성면 사전리를 연결하는 어각치가 있고, 동쪽에는 적상면 삼가리와 안성면 사전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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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에 서식하는 잉어과의 민물고기. 몸길이 약 30㎝로, 원통형에 가깝지만 꼬리지느러미 쪽으로 갈수록 가늘어진다. 몸은 등지느러미 앞부분이 가장 높고 꼬리자루 부분은 가늘다. 주둥이는 길고 위턱은 아래턱보다 조금 길며, 입의 가장자리에는 비교적 긴 수염이 한 쌍 있다. 옆줄은 몸의 앞부분에서 배 쪽을 향해 약간 굽어 있다. 몸의 옆면에는 검은색 반점이 7~8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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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에 서식하는 잉어과의 민물고기. 몸길이 약 30㎝로, 원통형에 가깝지만 꼬리지느러미 쪽으로 갈수록 가늘어진다. 몸은 등지느러미 앞부분이 가장 높고 꼬리자루 부분은 가늘다. 주둥이는 길고 위턱은 아래턱보다 조금 길며, 입의 가장자리에는 비교적 긴 수염이 한 쌍 있다. 옆줄은 몸의 앞부분에서 배 쪽을 향해 약간 굽어 있다. 몸의 옆면에는 검은색 반점이 7~8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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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에 서식하는 잉어과의 민물고기. 몸길이 약 30㎝로, 원통형에 가깝지만 꼬리지느러미 쪽으로 갈수록 가늘어진다. 몸은 등지느러미 앞부분이 가장 높고 꼬리자루 부분은 가늘다. 주둥이는 길고 위턱은 아래턱보다 조금 길며, 입의 가장자리에는 비교적 긴 수염이 한 쌍 있다. 옆줄은 몸의 앞부분에서 배 쪽을 향해 약간 굽어 있다. 몸의 옆면에는 검은색 반점이 7~8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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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에 서식하는 잉어과의 민물고기. 몸길이 약 30㎝로, 원통형에 가깝지만 꼬리지느러미 쪽으로 갈수록 가늘어진다. 몸은 등지느러미 앞부분이 가장 높고 꼬리자루 부분은 가늘다. 주둥이는 길고 위턱은 아래턱보다 조금 길며, 입의 가장자리에는 비교적 긴 수염이 한 쌍 있다. 옆줄은 몸의 앞부분에서 배 쪽을 향해 약간 굽어 있다. 몸의 옆면에는 검은색 반점이 7~8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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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의 하천에서 잡은 자가사리 등의 민물고기를 푹 고아, 쌀과 야채를 넣어 끓인 죽. 무주군의 대표적인 향토 음식인 어죽은 설천면·적상면·안성면·부남면 등의 강이나 냇가에서 솥단지를 걸어 놓고 바로 잡은 민물고기를 끓여서 놀다 지친 허기를 채우며 즐기는 음식이다. 어죽은 민물고기이므로 비린내 없이 끓이는 특수한 비방이 있어서 무주의 전통 음식으로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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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신문, 방송, 잡지 등의 출판 및 언론 매체를 총칭. 언론(言論)은 매스 커뮤니케이션(mass communication)의 한 유형으로 신문사·시사 잡지사·방송국·통신사 등의 언론 기관들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건이나 현상들에 관한 보도·논평·해설 등을 목적으로, 관련 뉴스와 정보 등을 취재하고 때로는 의견을 첨가하여, 기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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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 지역에서 사용되는 언어 체계. 언어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여러 모습으로 분화하는데 기본 문법은 동일하지만 음운, 문법, 어휘 등에서 차이를 보이는 분화체를 방언이라고 한다. 방언은 지리적 경계에 따라 특정 지역에서만 나타나는 지역 방언[regional dialect]과 사회 계층, 연령, 성, 종교, 인종 등 사회적 변화 요인에 의해 형성된 사회 방언[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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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여삼(汝三), 호는 운촌(雲村). 형은 성균 진사(成均進士) 박권(朴權)이다. 박삼(朴森)[1761~1832]은 1761년(영조 37)에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소천리에서 태어났으며, 형 박권과 함께 무주를 대표하는 효자였다. 어려서부터 형제간의 우애와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부모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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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삼가리에 있는 대한 예수교 장로회 통합 소속 교회. 여올교회는 전라북도 무주 지역의 복음화와 민족정신의 함양을 위해 설립되었다. 여올교회는 호남 지역에 온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의 영향을 받은 현지인을 통해 1903년에 교회가 설립 되었다. 정확한 설립 시기, 명칭, 설립자는 알 수 없지만 적상면 괴목리에 개척된 한 교회가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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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삼가리에 있는 대한 예수교 장로회 통합 소속 교회. 여올교회는 전라북도 무주 지역의 복음화와 민족정신의 함양을 위해 설립되었다. 여올교회는 호남 지역에 온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의 영향을 받은 현지인을 통해 1903년에 교회가 설립 되었다. 정확한 설립 시기, 명칭, 설립자는 알 수 없지만 적상면 괴목리에 개척된 한 교회가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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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에 서식하는 잉어과의 민물고기. 몸길이 약 13㎝로, 약간 길다. 몸 앞쪽은 굵고 꼬리자루 쪽으로 갈수록 가늘어진다. 머리는 약간 뾰족한 모양으로 납작하다. 머리는 아래쪽이 편평하고 입은 주둥이 아래쪽에 위치한다. 입 주변에는 네 쌍의 수염이 있으며 한 쌍은 입 가장자리, 세 쌍은 아래턱 밑에 위치한다. 양쪽 가슴지느러미 주변의 배 쪽에는 비늘이 없다.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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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에 서식하는 잉어과의 민물고기. 쉬리는 몸길이 약 13㎝로, 가늘고 길며 꼬리자루는 납작하다. 머리는 길고 주둥이 끝은 뾰족하며 입은 작다. 주둥이는 이래쪽을 향해 열리며 입 주변에는 수염이 없다. 옆줄은 직선으로 이어진다. 머리 옆면의 검은 띠는 주둥이 끝에서 눈을 통과하여 아가미 뚜껑까지 이어진다. 몸의 중앙부에는 너비가 넓은 노란색의 줄무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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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삼가리 여원 마을에 있는 다리. 여원교(汝元橋)는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삼가리 여원 마을에 위치한 다리로 지명을 따라 이름을 붙였다. 여원은 본래 '늘갓'이라 부르다 ‘여올(汝兀)’로 바뀌었는데, 일제 강점기 때 한자음으로 바뀌면서 ‘여원(汝元)’이 되었다. 2002년 기준, 길이는 12m이며 총 폭은 10m이다. 유효 폭은 9m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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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삼가리에 있는 조선 후기 백자 가마터.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소재지에서 국도 제30호선을 따라 진안군 안천면 소재지 방면으로 4㎞쯤 가면 여원교가 나온다. 여원교에서 북쪽으로 갈라진 농로를 따라 1㎞가량 올라가면 여원리 가마터1이 자리하고 있다. 무주군 적상면 소재지 서쪽에 우뚝 솟은 구리골산[657.0m]의 남쪽 골짜기로, 달리 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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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삼가리에 있는 조선 후기 백자 가마터. 구리산골 남쪽에 위치한 사기점골은 여원리 가마터 부근에서 두 갈래의 골짜기로 나뉘는데, 여원리 가마터1이 동쪽 골짜기에, 여원리 가마터2가 서쪽 골짜기에 자리하고 있다. 2개소의 가마터는 서로 인접되어 있으며, 가마의 운영 시기도 큰 차이가 없을 것으로 추정된다. 2007년에 전북 문화재 연구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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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삼가리에 있는 백자 가마터.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소재지에서 국도 제30호선을 따라 진안군 안천면 소재지 방면으로 2.8㎞쯤 가면 삼가교가 나온다. 삼가교는 무주군 적상면 서쪽 버드산[510m]의 동쪽 기슭에서 발원해 줄곧 동쪽으로 흐르는 삼가천을 국도 제30호선이 통과하는 곳으로 그 서쪽에 여원리 가마터3이 자리하고 있다.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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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삼가리에 있는 조선 후기 백자 가마터.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소재지에서 국도 제30호선을 따라 진안군 안천면 소재지 방면으로 4㎞쯤 가면 여원교가 나온다. 여원교에서 북쪽으로 갈라진 농로를 따라 1㎞가량 올라가면 여원리 가마터1이 자리하고 있다. 무주군 적상면 소재지 서쪽에 우뚝 솟은 구리골산[657.0m]의 남쪽 골짜기로, 달리 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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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삼가리에 있는 조선 후기 백자 가마터. 구리산골 남쪽에 위치한 사기점골은 여원리 가마터 부근에서 두 갈래의 골짜기로 나뉘는데, 여원리 가마터1이 동쪽 골짜기에, 여원리 가마터2가 서쪽 골짜기에 자리하고 있다. 2개소의 가마터는 서로 인접되어 있으며, 가마의 운영 시기도 큰 차이가 없을 것으로 추정된다. 2007년에 전북 문화재 연구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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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삼가리에 있는 백자 가마터.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소재지에서 국도 제30호선을 따라 진안군 안천면 소재지 방면으로 2.8㎞쯤 가면 삼가교가 나온다. 삼가교는 무주군 적상면 서쪽 버드산[510m]의 동쪽 기슭에서 발원해 줄곧 동쪽으로 흐르는 삼가천을 국도 제30호선이 통과하는 곳으로 그 서쪽에 여원리 가마터3이 자리하고 있다.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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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의 선사 시대부터 현대까지 역사. 무주군은 비록 산간 지대이지만 선사 시대부터 사람들이 거주하면서 삶을 영위하였음이 나타난다. 구석기 유적은 발견된 바 없지만, 남대천(南大川) 수해 복구 현장에서 신석기 시대 토기가 발견된 바 있고, 설천면 기곡리 일대에서 간 돌도끼[마제 석부], 간 돌살촉[마제 석촉]이 수습되었으며, 적상면 사천리 일대에 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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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조선 시대 전라북도 무주 지역의 교통로에 설치된 교통·통신·숙박 시설. 전통 시대에 역원(驛院)은 원활한 교통과 통신, 여행자를 위한 휴식과 숙식, 이동 수단의 교체와 수리, 정비를 위한 시설로 활용되었다. 그 가운데 역(驛)은 전령(傳令), 사신 영송(使臣迎送)과 같은 공적 업무를 위해 파견되는 관리들의 여행을 위해 관에서 운영하던 기관이었다. 역을 이용하는 관리는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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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을 상징하는 군화(郡花). 철쭉은 진달래과에 속하는 낙엽 활엽 관목으로 학명은 Rhododendron schilippenbachii Maximowicz이다. 종명에 쓰인 ‘슈리펜바키’는 우리나라 동해안에서 이 꽃을 처음 발견하여 서방에 소개한 러시아 해군 장교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철쭉’이란 이름은 한자 척촉(躑躅)에서 유래되었으며, 꽃봉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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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무주 백산 서원 타진사에 배향된 문신. 하연(河演)[1376~1453]은 세종(世宗)이 즉위하자 지신사(知申事)가 되어 상왕(上王)이던 태종(太宗)과 세종 사이를 오가며 중개자 역할을 하여 그 능력을 인정받았고, 이후 외직과 내직을 번갈아 지내면서 영상(領相)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비교적 순탄하게 관직 생활을 하였다. 때로는 대간의 탄핵을 받아 관직에서 물러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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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무주 백산 서원 타진사에 배향된 문신. 하연(河演)[1376~1453]은 세종(世宗)이 즉위하자 지신사(知申事)가 되어 상왕(上王)이던 태종(太宗)과 세종 사이를 오가며 중개자 역할을 하여 그 능력을 인정받았고, 이후 외직과 내직을 번갈아 지내면서 영상(領相)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비교적 순탄하게 관직 생활을 하였다. 때로는 대간의 탄핵을 받아 관직에서 물러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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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무주 지역에서 활동한 유학자. 본관은 광산(光山). 호는 연심당(淵心堂). 충목공(忠穆公) 김여석(金礪石)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김계현(金啓鉉)이다. 동생은 연서 김영구(金永龜)이다. 김영규(金永圭)는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향리에 은거하면서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고종(高宗) 대에 동몽교관(童蒙敎官)으로 후진을 양성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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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작성된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장기리 연안이씨 문중 소장 고문서. 연안이씨 이유길 가전 고문서(延安李氏李有吉家傳古文書)는 조선 후기의 의사(義士) 이유길(李有吉)을 비롯한 그의 가문 5대에 걸쳐 내린 3종 25점의 고문서로, 교지(敎旨) 등 관문서와 조선 후기 개인들이 일상적인 사회 경제 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문서를 주고받기 위해 작성하였다. 1989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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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무주 지역에서 은거하다 순국한 유학자. 송병선(宋秉璿)[1836~1905]은 회덕(懷德) 출신으로 여러 차례 관직에 기용되었으나 모두 거절하고 나아가지 않았다. 여러 차례 정부에 시무책을 건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1885년(고종 22) 무주로 낙향하여 서벽정(棲碧亭)을 짓고 은둔하면서 영남·호남의 선비들과 시국을 논하고 후진을 양성하면서 도학을 강론하는 데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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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시대 전라북도 무주 지역에서 목숨으로 정조를 지켰거나 남편을 위하여 지극한 정성을 다한 부녀자. 무주의 열녀는 『무주 군지(茂朱郡誌)』 ‘무주의 열녀’ 항목에 모두 53명이 나온다. 무주 지역 열녀들을 살펴보면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남편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바친 헌신적인 여성들을 만나볼 수 있다. 먼저 병든 남편을 위하여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남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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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시대 전라북도 무주 지역에서 목숨으로 정조를 지켰거나 남편을 위하여 지극한 정성을 다한 부녀자. 무주의 열녀는 『무주 군지(茂朱郡誌)』 ‘무주의 열녀’ 항목에 모두 53명이 나온다. 무주 지역 열녀들을 살펴보면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남편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바친 헌신적인 여성들을 만나볼 수 있다. 먼저 병든 남편을 위하여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남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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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 지역에서 음력 2월에 영등신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풍속. 영등(靈登)은 바람을 관장하는 신이다. 무주 지역에서는 2월 초하룻날이 되면 영등이 내려왔다가 보름날·스무날·그믐날에 올라간다고 한다. 영등을 ‘이월할매’, ‘영동할매’라고도 부른다. 무주군에서는 영등이 음력 2월 초하루에 내려와서 스무날에 하늘로 다시 올라간다고 하여, 이 시기에 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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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 지역에서 음력 2월에 영등신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풍속. 영등(靈登)은 바람을 관장하는 신이다. 무주 지역에서는 2월 초하룻날이 되면 영등이 내려왔다가 보름날·스무날·그믐날에 올라간다고 한다. 영등을 ‘이월할매’, ‘영동할매’라고도 부른다. 무주군에서는 영등이 음력 2월 초하루에 내려와서 스무날에 하늘로 다시 올라간다고 하여, 이 시기에 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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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삼유리에 있는 사유정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조선 시대 비. 사유정(四柳亭)은 유산(柳山) 유도(柳燾)[1807~1894]가 시를 읊던 정자로, 영의정을 지낸 조두순(趙斗淳)이 기문(記文)을 짓고, 이조 판서를 지낸 위사(韋史) 신석희(申錫禧)가 서문(序文)을 지었다. 지금은 훼철되고 터에 기념비만 남았다. 영모대(永慕臺)는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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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전라북도 무주군 출신의 효자. 본관은 금녕(金寧). 자는 영재(永載), 호는 은천(隱川). 부인은 밀양 박씨(密陽朴氏)이다. 김달규(金達圭)[1841~1936]는 1841년(헌종 7)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내도리 굴천 마을에서 태어났다. 천성이 온순하고 맑아 친척들이나 이웃을 대할 때 항상 온화한 표정을 지었다. 특히 부모를 섬기는 데 있어서는 조금의 흐트러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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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의 영화 관련 정책 및 무주군을 배경으로 촬영된 영화. 일제 강점기와 해방을 거치면서, 전라북도에는 ‘신파(新派)’라고 불리는 연극 단체와 극장이 생기기 시작하였고, 유랑 극단과 영화가 등장하면서 순회공연을 위한 지방 극장이 들어서게 되었다. 이러한 상설 공연장의 등장은 향토 문화 예술 발전에 주요한 역할을 담당하며, 지역의 핵심 문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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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 대소리에서 무주읍 대차리로 이어지는 트레킹 코스. 2010년 무주군과 전라북도는 지역민의 트레킹 코스 활용과 더불어 관광객 및 탐방객을 유치하고 이를 통해 지역 경제 활성화 및 지역 이미지 제고를 위해 예향천리 금강변 마실길을 조성하였다. 예향천리 금강변 마실길은 무주군 부남면 대소리 도소 마을을 시작으로 대문 바위, 부남면 소재지, 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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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삼가리와 안성면 사전리의 접경 어둔산에 있는 터널. 대전광역시 이남 지역의 접근성 향상을 위해 개설된 고속 도로 제35호선 통영 대전 고속 도로의 무주 나들목~함양 구간에서 소백산맥 일대의 안정적 통행을 위해 2001년 11월 29일에 오두재터널을 개통하였다. 상하행 터널 모두 편도 2차선이며 총 폭 12m, 유효 폭 11.2m, 높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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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삼가리와 안성면 사전리의 접경 어둔산에 있는 터널. 대전광역시 이남 지역의 접근성 향상을 위해 개설된 고속 도로 제35호선 통영 대전 고속 도로의 무주 나들목~함양 구간에서 소백산맥 일대의 안정적 통행을 위해 2001년 11월 29일에 오두재터널을 개통하였다. 상하행 터널 모두 편도 2차선이며 총 폭 12m, 유효 폭 11.2m, 높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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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무주 출신의 무신. 본관은 구례(求禮). 자는 의숙(宜叔), 호는 오류정(五柳亭), 이명은 장응현(張應賢). 아버지는 경상좌도 병마절도사 장필무(張弼武)이고, 동생은 장지현(張智賢)으로 임진왜란 때 창의하여 순절하였다. 장의현(張義賢)은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당산리에서 출생하였다. 1573년(선조 6) 비변사(備邊司)에서 무장으로 천거하여 관직에 나왔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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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오산리에 있는 대한 예수교 장로회 소속 교회. 오산교회는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오산리 지역의 복음 전파를 위해 설립되었다. 1958년 1월 3일 전북 대학교 기독 학생 4명에 의해 창립되었으며, 같은 해 3월 초대 교역자로 김제만 전도사가 부임하였다. 1960년 2월 무주읍 교회의 협조로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오산리에 목조 3칸의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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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오산리에 있는 대한 예수교 장로회 소속 교회. 오산교회는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오산리 지역의 복음 전파를 위해 설립되었다. 1958년 1월 3일 전북 대학교 기독 학생 4명에 의해 창립되었으며, 같은 해 3월 초대 교역자로 김제만 전도사가 부임하였다. 1960년 2월 무주읍 교회의 협조로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오산리에 목조 3칸의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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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에 속하는 법정리. 본래는 신풍면 지역의 오산(鰲山)인데 1914년부터 오산(吾山)이라고 하였다. 마을을 끼고 흐르는 남대천에 자라가 많아서 오산(鰲山), 다섯 개의 산봉우리가 무리를 이루고 있다고 오산(五山), 학문을 좋아하는 선비들이 많아 글 읽는 소리가 끊이지 않아 오산(吾山)이라고 했다는 설이 있다. 1914년 신풍면의 오산 마을과 왕정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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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에 속하는 법정리. 본래는 신풍면 지역의 오산(鰲山)인데 1914년부터 오산(吾山)이라고 하였다. 마을을 끼고 흐르는 남대천에 자라가 많아서 오산(鰲山), 다섯 개의 산봉우리가 무리를 이루고 있다고 오산(五山), 학문을 좋아하는 선비들이 많아 글 읽는 소리가 끊이지 않아 오산(吾山)이라고 했다는 설이 있다. 1914년 신풍면의 오산 마을과 왕정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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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오산리 오산 마을에서 산신에게 지내는 마을 제사. 오산리 오산 산신제는 음력 1월 2일 밤 12시 무렵에 산제당에서 산신에게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오산리 오산 산신제는 용두산(龍頭山) 정상에 있는 산제당에서 모신다. 예전에는 마을 회관 앞 둥구나무에서 거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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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오산리 왕정마을에 있는 숲. 오산리 왕정마을 숲은 마을 입구에 자리잡은 전형적인 수구막이 역할을 하는 민간 신앙 유적이다. 수구막이란 마을에 나쁜 기운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거나 또는 마을의 기운이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는 것을 말한다. 마을 숲은 민속적으로는 마을 사람들의 신앙의 대상이고, 풍수 지리적으로는 좋은 땅을 조성하는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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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오산리 왕정마을에 있는 마을 수호 목적의 돌장승. 오산리 왕정마을 장승은 돌에 사람의 얼굴을 새겨 마을 입구에 세운 민간 신앙 유적이다. 장승은 마을이나 사찰 입구에 나무나 돌로 세워 놓은 것인데, 상부에는 사람 얼굴이나 귀면(鬼面)의 형상을 그리거나 조각하고, 하부에는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 상원주장군(上元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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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오산리 왕정 마을에서 산신에게 지내는 마을 제사. 오산리 왕정 산신제는 음력 정월 초이튿날 밤 자시(子時)[밤 11시부터 오전 1시까지]부터 새벽닭이 울 무렵까지 산제당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무주군 무주읍 오산리 왕정 마을에 있는 뒷동산 중턱의 커다란 참나무, 소나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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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오산리에 있는 삼국~조선 시대 유물산포지.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에서 단천로를 따라 동쪽으로 가다 보면 오산 삼거리가 나오는데, 오산 삼거리에서 성주군·무주군 설천면 방향의 무설로를 따라 약 1㎞ 정도 가다 보면 우측으로 구 전주 제사 공업 무주 공장이 있다. 공장의 남서쪽 일대에 오산리 유물산포지(吾山里遺物散布地)5가 위치하고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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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오산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초계 군수 권표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초계군수 권공 서식비(草溪郡守權公棲息碑)는 초계군수를 지낸 아버지 권표(權杓)의 덕을 기리기 위해서 아들인 권용빈(權容斌)이 1920년(경신년) 8월에 건립하였다. 무주읍 오산 삼거리에서 무설로 성주 방면으로 우회전한 후 1.4㎞ 이동하면 오산 마을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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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삼공리에 있는 천연 동굴. 오수좌굴(吳首座窟)은 오수자(吳竪子) 혹은 오수좌(吳首座)라는 사람이 살았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오수좌는 힘이 세고 성질이 사나워 때때로 백련암에 가서 행패를 부려 걱정거리였다고 한다. 안성의 한 선비가 절에서 공부하는 것을 얕보고 오수좌가 싸움을 걸었는데, 선비는 미리 큰방에 불을 잔뜩 지펴 놓고 싸움을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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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삼공리에 있는 천연 동굴. 오수좌굴(吳首座窟)은 오수자(吳竪子) 혹은 오수좌(吳首座)라는 사람이 살았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오수좌는 힘이 세고 성질이 사나워 때때로 백련암에 가서 행패를 부려 걱정거리였다고 한다. 안성의 한 선비가 절에서 공부하는 것을 얕보고 오수좌가 싸움을 걸었는데, 선비는 미리 큰방에 불을 잔뜩 지펴 놓고 싸움을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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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와 개항기 무주 지역에서 활동한 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호는 오포(午圃). 문정공(文正公) 권부(權溥)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권사도(權思道)이다. 권철로(權喆魯)는 백남(柏南) 하현(河鉉), 석치(石痴) 이해교(李海敎), 운파(雲坡) 하재만(河在晩), 권철규(權喆奎), 권대형(權大衝) 등과 함께 교유하면서 학문을 닦았다. 후인들이 계(契)를 만들어 그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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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오희문이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무주 일대 상황을 적은 일기. 오희문(吳希文)[1539~1613]의 본관은 해주(海州)이며, 호는 비연(斐然)이다. 장성 현감을 지낸 오경민(吳景閔)과 남인(南寅)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 연안 이씨(延安李氏)와의 사이에 인조 때 영의정을 역임한 오윤겸(吳允謙)이 있다. 『쇄미록』에 의하면 아버지 오경민이 처가살이를 하면서 어린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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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 대소리에 있는 산. 옥녀봉(玉女峰)은 옥녀산발형(玉女散髮形)의 명당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옥녀봉[710m]은 조항산(鳥項山)과 구왕산(九王山)의 산줄기 중 서쪽으로 뻗은 지맥에 해당한다. 동서로 뻗어 있는 지맥이기 때문에 북쪽의 무주군 부남면 대소리와 남쪽의 부남면 고창리의 분수계를 이룬다. 경위도상으로는 북위 35°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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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에 서식하는 올빼미과에 속하는 텃새. 몸길이는 35~38㎝이다. 둥근 머리에 귀깃이 없다. 몸은 회색이며 배와 등의 세로줄 무늬에 가로줄이 섞여 있다. 눈은 검은색이며 부리는 푸른빛을 띤 회색이다. 머리와 등은 회갈색으로 흰색 점무늬가 많고, 가슴과 배는 잿빛을 띠는 흰색으로 갈색의 점무늬가 많다. 발톱은 어두운 잿빛이며 기부는 엷은 잿빛이다. 수컷 겨울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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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을 시조로 하고, 이총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무주군의 세거 성씨. 전주이씨(全州李氏)는 전주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성씨의 하나로, 시조는 신라 문성왕(文聖王) 때 사공(司空)을 역임한 이한(李翰)이며, 이한의 21세손이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李成桂)[1335~1408]이다. 전주를 본관으로 하게 된 것은 이성계의 고조할아버지인 이안사(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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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을 시조로 하고, 이봉상은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무주군의 세거 성씨. 전주 이씨는 완산 이씨(完山李氏)라고도 하는데, 이는 완산이 전주의 백제 시대 지명이기 때문이다. 파별(派別) 또는 개인의 기호에 따라 ‘전주 이씨’ 또는 ‘완산이씨’를 선택하며, 두음 법칙(頭音法則)을 따르지 않고 본음에 따라 ‘리씨’라 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체로 전주를 본관으로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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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에 서식하는 잉어과의 민물고기. 몸길이는 약 15㎝로 길고 좌우로 납작하다. 머리는 비교적 큰 편이며, 눈도 크고 눈 위에 초승달 모양의 붉은 반점이 없어 유사종인 갈겨니[Zacco temminckii]와 차이가 난다. 주둥이는 짧고 다소 뭉툭하다. 입 주변에 수염은 없으며, 옆줄은 몸의 중앙부에서 아래쪽으로 오목하게 이어진다. 배 쪽은 노란색을 띠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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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에 서식하는 잉어과의 민물고기. 몸길이는 약 15㎝로 길고 좌우로 납작하다. 머리는 비교적 큰 편이며, 눈도 크고 눈 위에 초승달 모양의 붉은 반점이 없어 유사종인 갈겨니[Zacco temminckii]와 차이가 난다. 주둥이는 짧고 다소 뭉툭하다. 입 주변에 수염은 없으며, 옆줄은 몸의 중앙부에서 아래쪽으로 오목하게 이어진다. 배 쪽은 노란색을 띠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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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무주 지방에 침입한 일본인 해적 집단과 그들의 침략 행위. 고려 시대 왜구는 고종(高宗) 때부터 고려 멸망까지 빈번하게 침략해 왔는데, 왜구가 집중적으로 출현했던 시기는 충정왕(忠定王) 이후 공양왕(恭讓王) 4년까지 약 40년간이며, 그중에서도 우왕(禑王) 재위 14년간에 가장 극심하였다. 기록상으로 볼 때, 고려 시대 전국적으로 529회 정도 왜구의 침입이 있었고,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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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오산리와 무주읍 장백리를 연결하는 고개. 용의 목부분에 해당한다는 데서 ‘용고개’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 용고개[230m]는 북쪽의 백하산[634m] 줄기가 남쪽으로 뻗어 내리다가 무주군 무주읍 오산리의 남대천(南大川)에서 멈춘 지점이다. 남북의 산줄기를 이루며, 동쪽은 210m, 서쪽은 200m로 상대적 비고는 많이 차이 나지 않는 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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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공정리에 있는 폭포. 옛날 노랑이 부자가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아침 도사가 그 부잣집을 지나가다가 시장기가 들어 밥 한술을 청하였다. 아침에 밥을 주면 재수가 없다고 도사를 개천에 밀어 빠트리니 화가 난 도사가 도술담에서 도술을 부려 노랑이 부잣집을 물에 떠내려가게 했다. 그곳에 폭포가 생겼고 폭포의 물이 떨어지는 구멍으로 소(沼)가 생겼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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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용포리에 있던 전통 공예 체험 및 작품 전시, 판매 시설. 무주 용포공예원(茂朱龍浦工藝院)은 옛 용포 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하고 일부를 신축하여, 2008년 건립하여 그해 4월 개관하였다. 무주 용포공예원은 넓은 대지의 폐교를 활용하여 주차장뿐만 아니라 야영장까지 확보하였고, 교실 공간을 작업장 및 판매장 등으로 재배치하여 이용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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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에 속하는 법정리. 용포리(龍浦里)는 무주군 부남을 거쳐 내려오는 금강이 용처럼 꿈틀거리며 흐르는 곳에 금산으로 건너가는 나루가 있는 곳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1914년 서면의 용포 마을, 공정 마을, 추동[가래골] 마을, 잠두 마을과 부남면 하굴암 마을, 금산군 부동면의 요대 마을을 합하여 무주군 무주면 용포리로 개설하였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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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에 속하는 법정리. 용포리(龍浦里)는 무주군 부남을 거쳐 내려오는 금강이 용처럼 꿈틀거리며 흐르는 곳에 금산으로 건너가는 나루가 있는 곳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1914년 서면의 용포 마을, 공정 마을, 추동[가래골] 마을, 잠두 마을과 부남면 하굴암 마을, 금산군 부동면의 요대 마을을 합하여 무주군 무주면 용포리로 개설하였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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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용포리에 있는 삼국 시대 봉수. 용포리 노고산 봉수(龍浦里老姑山烽燧)는 노고산(老姑山)[550.7m]의 정상부에 위치한다.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용포리는 금강의 지류인 남대천(南大川)과 적상천(赤裳川), 삼류천 등이 합류하는 곳으로, 예로부터 수륙 교통의 요지로서 곳곳에 봉수와 산성이 분포되어 있다. 전라북도 장수군을 시작으로 무주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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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용포리에 있는 석기 시대·삼국 시대 유물산포지.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에서 국도 제37호선을 따라 금산군 방향으로 가다 보면 용포교를 건너서 용포리 내요대 마을이 나온다. 내요대 마을에서 좀 더 가면 잠두 1교를 건너 잠두 마을이 보인다. 용포리 유물산포지(龍浦里遺物散布地)1은 내요대 마을 북쪽 210m~252.1m의 산등성이에 위치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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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용포리 잠두 마을에서 산신에게 지내는 마을 제사. 용포리 잠두 산신제는 음력 1월 14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 사이에 산제당에서 마을의 수호신에게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공동의 제사이다. 본래 정월 열 나흗날과 시월 열 나흗날 등 1년에 두 번을 모셨으나 지금은 정월에 한 번만 모신다. 산신제를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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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무주 지역에서 활동했던 유학자.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덕찬(德燦), 호는 우당(愚堂). 통계(通溪) 강회중(姜淮仲)의 후손이다. 강지형(姜芝馨)은 단성(丹城)[경상남도 산청군] 출신으로, 덕유산(德裕山)으로 거처를 옮긴 뒤 지금의 무주군 안성면에 머물면서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을 사사하고 학문을 연마하였다. 동학(東學)이 일어나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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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효자. 박권(朴權)[1747~1822]은 본관은 밀양(密陽), 호는 운곡(雲谷)으로, 1747년(영조 23)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소천리에서 태어났다. 40세 때인 1786년(정조 10)에 소과(小科)에 합격한 후, 성균관에 입학하여 대과 급제를 위한 공부에 전념하였다. 박권은 성품이 매우 온화하고 효심이 깊은 인물이었다. 어려서부터 형제간의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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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여삼(汝三), 호는 운촌(雲村). 형은 성균 진사(成均進士) 박권(朴權)이다. 박삼(朴森)[1761~1832]은 1761년(영조 37)에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소천리에서 태어났으며, 형 박권과 함께 무주를 대표하는 효자였다. 어려서부터 형제간의 우애와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부모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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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무주 출신의 유학자이자 자선가. 본관은 진주. 자는 자범(子範), 호는 운파(雲波). 조선 초에 영의정을 지낸 문효공 하연(河演)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하진규(河鎭圭)이다. 하재만(河在萬)[1832~1909]은 1832년(순조 32)에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현내리에서 태어났다. 기상이 높고 엄숙하였으며, 강직하고 씩씩하면서도 재능과 도량이 있었다. 부모에게 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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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과 무주읍을 거쳐 충청남도 금산군 일대로 유입되는 강. 금강은 남한에서 한강과 낙동강 다음으로 큰 강이다. 금강 본류는 전라북도 장수군 장수읍의 수분리 원수분천[강태등골]에서 시작하여 진안 고원과 덕유산 지역에서 흘러오는 구리향천(九里香川)·정자천(程子川) 등 여러 지류들과 만나 북쪽으로 흐른다. 전라북도의 북동부 경계 지역에 이르러 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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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삼거리에서 발원하여 설천면 소천리를 흘러 남대천으로 유입하는 하천. 고지도에는 원당천(元塘川)이 분명하게 표현되어 있지 않으며, ‘원당천’이란 이름의 기원도 문헌에서 확인할 수 없다. 『조선 지형도(朝鮮地形圖)』에 ‘원당천’으로 표시되어 있는데, 이로 보아 적어도 구한말부터 지금의 명칭이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설천, 소천이라고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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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가옥리와 적상면 사천리의 경계에 있는 산. 산의 모양이 시루와 닮았다는 점에서 시루봉이라 불리었으며, 무월봉, 멀봉, 원봉이라고도 부른다. 시루봉[499m]은 북서쪽의 마향산(馬香山), 남서쪽의 구리골산 및 봉화산(烽火山)과 연결된다. 시루봉은 남북의 분수계가 되지만 모든 물은 동쪽의 적상천(赤裳川)으로 흐른다. 경위도상으로는 북위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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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읍내리에 있는 원불교 교당. 원불교 무주교당은 원불교 교리를 통해 전라북도 무주 지역의 가정을 낙원 가정으로 만들기 위해 설립되었다. 원불교 무주교당은 1968년 4월 21일에 설립되었다. 1968년 무주 출신인 진안 지부장 김진구 및 부인 이창운 주무가 이웃 교당 불리기 운동을 적극 전개했고, 마침 무주로 이사 온 순창 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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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읍내리에 있는 원불교 교당. 원불교 무주교당은 원불교 교리를 통해 전라북도 무주 지역의 가정을 낙원 가정으로 만들기 위해 설립되었다. 원불교 무주교당은 1968년 4월 21일에 설립되었다. 1968년 무주 출신인 진안 지부장 김진구 및 부인 이창운 주무가 이웃 교당 불리기 운동을 적극 전개했고, 마침 무주로 이사 온 순창 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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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읍내리에 있는 원불교 교당. 원불교 무주교당은 원불교 교리를 통해 전라북도 무주 지역의 가정을 낙원 가정으로 만들기 위해 설립되었다. 원불교 무주교당은 1968년 4월 21일에 설립되었다. 1968년 무주 출신인 진안 지부장 김진구 및 부인 이창운 주무가 이웃 교당 불리기 운동을 적극 전개했고, 마침 무주로 이사 온 순창 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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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을 상징하는 군조. 몸길이 43~51㎝, 몸무게 440~550g이다. 수컷은 몸 빛깔이 아름답다. 여러 가지 색깔의 늘어진 댕기와 흰색 눈 둘레, 턱에서 목 옆면에 이르는 오렌지색 깃털[수염 깃], 붉은 갈색의 윗가슴, 노란 옆구리와 선명한 오렌지색의 부채꼴 날개 깃털[은행잎 깃] 등을 가지고 있다. 암컷은 갈색 바탕에 회색 얼룩이 있으며 복부는 흰색을 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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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 지역에서 매년 음력 정월 초하룻날에 거행하는 풍속. 설은 음력 1월 1일을 말하는데, 한 해가 시작되는 날, 새해의 첫날이라 하여 ‘설날’, ‘원일(元日)’이라고도 부른다. 원래 설이란 삼간다는 말로, 설이 돌아오면 몸과 마음을 정결히 하고 조심스럽게 행동하면서 각 가정 단위로 조용히 보낸다. 이러한 설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명절 가운데 하나이다. 새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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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계(李攀桂)[? - 1392]를 분적 시조로 하고, 이여공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무주군의 세거 성씨. 원주이씨(原州李氏)의 시조 이신우(李申佑)는 고려 문종 대에 병부 상서를 지냈으며, 공을 세워 경흥군(慶興君)에 봉해졌다. 그로 인하여 후손들은 이신우를 시조로 받들고 경주 이씨에서 분적하여 본관을 원주로 삼게 되었다. 후대로 내려오면서 판도공파(版圖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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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죽천리 남덕유산 기슭에 있는 대한 불교 조계종 제17 교구 본사 금산사의 말사. 원통사(圓通寺)의 창건과 관련하여 1698년(숙종 24)에 세워진 원통사 중창비(圓通寺重創碑)에는 신라 시대에 창건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창건 이후 고려 시대까지 원통사의 역사를 전해 주는 사료는 없다. 다만 1530년(중종 25)에 편찬된 『신증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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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죽천리 원통사에 있는 조선 후기 승려 남봉당의 승탑. 승탑(僧塔)은 부도(浮屠)라고도 부르며, 고승(高僧)이 입적한 후 사리(舍利)나 유골(遺骨)을 봉안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승탑은 선종(禪宗)이 유입된 이후인 9세기 중엽부터 본격적으로 만들어졌다. 이 시기 승탑은 실상사 증각 대사 응료탑(實相寺證覺大師凝寥塔)과 같이 팔각 원당형(八角圓堂形)이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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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죽천리 원통사에 있는 조선 후기 승려 사당 선혜의 승탑. 승탑(僧塔)은 부도(浮屠)라고도 부르며, 고승(高僧)이 입적한 후 사리(舍利)나 유골(遺骨)을 봉안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승탑은 선종(禪宗)이 유입된 이후인 9세기 중엽부터 본격적으로 만들어졌다. 이 시기 승탑은 실상사 증각 대사 응료탑(實相寺證覺大師凝寥塔)과 같이 팔각 원당형(八角圓堂形)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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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죽천리 원통사 원통보전에 봉안되어 있는 시대 미상의 불상. 원통사는 신라 시대에 건립된 고찰(古刹)로, 충청남도 금산군에 속해 있었다가 조선 시대에 무주가 도호부로 승격되면서 지금의 횡천면과 함께 무주군에 편제되었다. 1698년(숙종 24)에 퇴락하던 사찰이 중창되었고, 1907년에는 법당의 후불 탱화를 비롯하여 신중 탱화, 칠성 탱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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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죽천리에 있는 조선 후기 원통사 중창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 원통사 중창비(圓通寺重創碑) 비문에 의하면, 신라 창건 당시의 규모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나, 법당 외에 종각·누각 등의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한 탄언(坦彦)·도영(道英)·혜옥(惠玉)·일학(一學) 등에 의해 당(堂)과 종각을 중창하고 불상을 중수하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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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죽천리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 절터. 1698년(숙종 24)에 건립된 원통사 중창비(圓通寺重創碑)에 따르면, 원통사(圓通寺)가 신라 때 창건된 사찰로 기록되어 있으나 정확한 창건 시기와 사역, 가람 배치 등은 알 수 없다. 비문에는 조선 숙종(肅宗) 때 승려 탄언과 도영, 혜옥, 일학 등이 법당과 종각을 중창하고 동종을 주조하는 등의 대불사가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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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무주 출신의 의병장. 김동신(金東臣)[1871~1933]의 자는 원표(元表), 호는 청암(淸庵)이다. 지금의 대전광역시에서 출생하였다. 고종(高宗) 때 무과에 급제한 후 통정대부(通政大夫) 비서승(祕書丞)을 지냈다. 1905년(고종 42) 을사늑약(乙巳勒約)이 체결되자 문태서(文泰瑞), 신명선(申明善), 박춘실(朴春實) 등과 함께 구국 항쟁의 대열에 나서기로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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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삼공리에 있는 고개. 달암재[월암령]는 동쪽의 대봉과 서쪽의 지봉[1,302m]을 연결하는 해발 고도 1,090m의 고갯길이다. 산줄기가 동서로 위치해 있어서 북쪽의 무주군 설천면 삼공리 무주 구천동과 남쪽의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소정리[소정천] 및 병곡리[분계천]의 분수계를 이룬다. 즉, 북쪽의 물은 금강으로 흐르고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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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삼공리에 있는 고개. 달암재[월암령]는 동쪽의 대봉과 서쪽의 지봉[1,302m]을 연결하는 해발 고도 1,090m의 고갯길이다. 산줄기가 동서로 위치해 있어서 북쪽의 무주군 설천면 삼공리 무주 구천동과 남쪽의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소정리[소정천] 및 병곡리[분계천]의 분수계를 이룬다. 즉, 북쪽의 물은 금강으로 흐르고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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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북도 무주군에 설치한 행정 구역. 조선 초기 지방의 행정 구역을 재편하는 과정에서 백제와 신라의 접경 지역을 통합하여 무주현(茂朱縣)을 설치하고 면리제(面里制)를 정비하여 국가 통치를 강화하고자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1898년(고종 35)에 편찬된 『적성지(赤城誌)』에는 유가면에 길왕(吉旺)·내사(內斜)·외사(外斜)·상가(上加)·중가(中加)·하가(下加)·이동(梨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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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화중(和中)이다. 유경제(柳景堤)[1802~1856]는 열세 살이 되던 해에 친부모의 품을 떠나 작은아버지의 양자(養子)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양가(養家)의 부모를 모시는 데 있어서나 친가(親家)의 부모를 모시는 데 있어서나 언제나 지극정성을 다하였다. 특히 양아버지가 노환(老患)으로 위급한 지경에 이르자, 유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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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에서 이루어지는 공자의 사상과 관련된 학문과 의례 및 활동 일반. 유교(儒敎)는 공자(孔子)와 맹자(孟子), 주희(朱熹) 등 유학 선구자들의 정치사상과 학문 수양, 생활 의례 등의 가르침을 실천하려는 현세적 사상이다. 우리나라에 유교가 전래된 것은 한자(漢字)의 도입 시기와 일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교는 「임신서기석(壬申誓記石)」이 말해 주는 것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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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무주 지역에서 활동한 유학자. 본관은 광산(光山). 호는 유당(裕堂). 충목공(忠穆公) 김여석(金礪石)의 후손이다. 아들 김영교(金永敎)는 법학을 공부하여 학부(學部)에서 교관을 지내다 세상이 날로 어지러워지자 물러나 거문고를 타며 글 읽는 것을 낙으로 삼았으며, 고을 사람들을 교화하는 데 진력하였다. 김직현(金直鉉)은 심성(心性)과 이기(理氣)에 대한 책을 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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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문화(文化). 초명은 유병옥(柳炳鈺), 자는 경보(景普), 호는 유산(柳山). 정숙공(貞肅公) 유정현(柳廷顯)의 후손이다. 할아버지 유한태(柳漢泰)가 순창에서 현 무주군 적상면 삼유리로 이주하였다. 아버지는 증호조 참판 후재(后齋) 유최영(柳最榮)이다. 1848(헌종 14) 생원시에 합격한 유휴(柳烋)가 동생이다. 유도(柳燾)[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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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읍내리에 있는 성균관 유도회 산하 무주 지역 지부 . 성균관 유도회 총본부는 1945년 한국의 유림 대표들이 성균관에 모여 결성한 유림 단체이다. 성균관 유도회에서는 성균관 대학교 설립, 성균관 직제 개편, 지방 조직 강화 등을 결의하였고, 성균관 대학교의 설립 유지, 지방 향교의 육성 발전, 경전 번역 및 학술 연구 발표, 정치·경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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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방이리에 있던 숙식을 제공하는 편의 시설. 원(院)은 공무 여행자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하여 교통 요지나 험한 영로(嶺路) 등에 설치되는 역의 보조 시설이었다. 대체로 역과 같은 장소에 원이 설치되었기 때문에 역원(驛院)이라고 칭하였다. 30리에 하나씩 설치되었으나, 지형에 따라서 평지에서는 멀고 산악 지대에서는 가까웠다. 이러한 원 제도는 고려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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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에서 확인되는 선사 시대~역사 시대 인류의 문화 흔적들로,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과 관련된 유물들이 일정 범위에 산포하여 확인되는 장소. 유물산포지(遺物散布地)는 무덤이나 가마터, 집터와 같은 특정한 유구의 흔적이 명확히 확인되지는 않았으나, 지표상에서 확인되는 유물의 분포 양상를 통해 어떠한 유구 또는 유적의 존재 가능성이 크다고 인정되는 장소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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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명국(鳴國)이다. 아버지는 돈녕부 동지사(敦寧府同知事)를 지낸 유도(柳燾)이다. 유봉증(柳鳳增)[1830~1856]은 1830년(순조 30)에 태어나, 1848년(현종 14)에 소과(小科)에 합격하였다. 그리고 1856년(철종 7)에 향년(享年) 27세로 사망하였다. 유봉증은 그의 동생인 유홍증(柳鴻增)과 함께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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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명국(鳴國)이다. 아버지는 돈녕부 동지사(敦寧府同知事)를 지낸 유도(柳燾)이다. 유봉증(柳鳳增)[1830~1856]은 1830년(순조 30)에 태어나, 1848년(현종 14)에 소과(小科)에 합격하였다. 그리고 1856년(철종 7)에 향년(享年) 27세로 사망하였다. 유봉증은 그의 동생인 유홍증(柳鴻增)과 함께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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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삼유리와 삼가리 경계에 있는 산. 서쪽에 있는 삼유리(三柳里)라는 마을 이름에서 '버드나무[柳] 산'이라는 의미의 버드산이 유래하였다고 전한다. 유산(柳山)이라고도 부른다. 버드산[512m]은 남동쪽의 봉화산(烽火山)[884m]과 북쪽의 구리골산[658m]의 중간에 위치하며, 봉화산의 북서쪽 지맥에 해당한다. 전라북도 진안군 안천면과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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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문화(文化). 초명은 유병옥(柳炳鈺), 자는 경보(景普), 호는 유산(柳山). 정숙공(貞肅公) 유정현(柳廷顯)의 후손이다. 할아버지 유한태(柳漢泰)가 순창에서 현 무주군 적상면 삼유리로 이주하였다. 아버지는 증호조 참판 후재(后齋) 유최영(柳最榮)이다. 1848(헌종 14) 생원시에 합격한 유휴(柳烋)가 동생이다. 유도(柳燾)[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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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화가. 가계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이가환(李家煥)[1742~1801]은 본관을 경주라고 하였다. 한편, 조병유(趙秉瑜)의 『적성지』, 장지연(張志淵)[1864~1921]의 『진휘속고(震彙續考)』·『일사유사(逸士遺事)』, 오세창(吳世昌)[1864~1953]의 『근역서화징』 등에는 무주 최씨로 나온다. 그런데 무주 최씨는 주계 최씨로도 불렸으며,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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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무주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길중(吉中), 호는 화은(華隱). 뒤에 유형(柳瀅)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유인성(柳寅誠)[?~?]은 어려서부터 효행이 지극하여 감영(監營)에 천거되기도 하였다.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스승의 사후에는 산장에 은거하면서 학문 연마에 전념하였으며 때때로 향교인 명륜당(明倫堂) 양사재에서 후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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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 지역에서 관련한 고문서가 전해 내려오는 조선 후기 무신. 이유길(李有吉)[?~1619]은 전라남도 해남 사람이었지만 뒤에 경기도 파주로 이사하였으며, 그가 전사한 뒤 가족이 파주에서 초혼장(招魂葬)으로 장례를 치렀다. 이유길의 종손이 무주군 일안면, 곧 현재의 안성면(安城面)에 살았기 때문에 무주와 인연을 갖게 되었다. 1989년 1월 연안 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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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지역의 산업 분야 중 재화나 서비스의 유통과 관련된 산업. 유통은 생산자와 소비자를 상품으로 연결하는 허리와 같다. 유통은 옛날에 행상이나 노점상, 전통 시장 등을 중심으로 시작되었고, 사회 경제의 변화에 따라 서서히 변화하였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유통 시장의 전면 개방과 함께 글로벌 유통 업체가 들어오게 되면서 우리나라 유통업도 급속하게 성장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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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에서 유형의 문화적 소산으로 역사적·학술적·예술적 가치가 큰 문화유산과 이에 준하는 고고 자료. 문화유산[Cultureal Heritage]이란 조상들이 남긴 산물로서 당시인들의 삶의 지혜가 담겨 있으며, 한 나라와 민족의 구체적 표상으로 정체성을 대변해 주기도 한다. 근래에는 제3차 산업의 꽃이라는 관광 산업과 연계되어 점차 중요한 자원으로 인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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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무주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길중(吉中), 호는 화은(華隱). 뒤에 유형(柳瀅)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유인성(柳寅誠)[?~?]은 어려서부터 효행이 지극하여 감영(監營)에 천거되기도 하였다.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스승의 사후에는 산장에 은거하면서 학문 연마에 전념하였으며 때때로 향교인 명륜당(明倫堂) 양사재에서 후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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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익녀(翼汝)이다. 아버지는 돈녕부 동지사(敦寧府 同知事)를 지낸 유도(柳燾)이고, 큰형은 유봉증(柳鳳增), 작은형은 유학증(柳鶴增)이다. 유홍증(柳鴻增)[1850~1879]은 1850년(철종 1)에 태어났으며, 어렸을 때 형들을 존경하여, 형들을 대할 때 언제나 부모를 대하듯 하였다. 그리고 모든 일을 처리하는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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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 지역에서 민중들이 놀이를 하면서 부르던 노래. 유희요(遊戱謠)는 놀이를 할 때 부르던 노래로, 흔히 ‘놀이요’라고도 한다. 노래에는 흥을 돋우는 기능이 있기 때문에, 노래는 놀이판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된다. 따라서 유희요는 놀이판에서 가창된 노래라 할 수 있다. 즉, 노동요가 고된 노동 현장에서 부르는 노래라면, 유희요는 노동에서 벗어난 놀이판의 노래인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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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현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재각. 육영재(育英齋)는 무풍면 사무소에서 무주 방향으로 가다 원평 삼거리에서 우회전해서 첫 번째 작은 골목길로 좌회전 한 후 50m 가량 가다 보면 우측에 있다. 원촌 마을과 문평 마을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육영재는 1849년(헌종 15)에 흥양 이씨(興陽李氏) 문중에서 자제들의 교육과 인재를 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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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 장안리에 있는 고개. 주변에 밤나무가 많아서 밤고개라고 불리우며, 율현(栗峴), 밤골재라고도 부른다. 밤고개[400m]는 북쪽의 쌍교봉[629m]과 남쪽의 형제봉[579m]을 연결하는 낮은 고개이다. 남북으로 뻗은 산줄기로, 동쪽의 안창천(安昌川)과 안천천(顔川川)의 분수계 역할을 한다. 경위도상으로는 북위 35° 54', 동경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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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 도산 서원에 배향된 조선 전기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은경(殷卿), 호는 심재(心齋). 증조할아버지는 형조도관 좌랑(刑曹都官佐郞)을 지낸 김열(金閱)이며, 할아버지는 가선대부 병조 참판(嘉善大夫兵曹參判)에 증직(贈職)된 김달손(金達孫)이다. 아버지는 강화 도호부사(江華 都護府使)를 지낸 김수(金洙)이고, 외할아버지는 권항(權恒)이다. 부인은 성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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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에 속하는 법정리. 은고 마을의 ‘은’ 자와 오산 마을의 ‘산’ 자를 합하여 은산리(銀山里)라고 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풍남면 지역인 한치 마을, 속동 마을, 오산 마을, 은고 마을을 합하여 무주군 무풍면 은산리로 개설하였다. 속동[속골] 마을, 은고 마을, 한치 마을, 오산[오무실] 마을, 방곡 마을 등 5개의 자연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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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은산리에 있는 삼국~조선 시대 유물산포지. 은산리 유물산포지(銀山里遺物散布地)는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은산리 일대를 흐르는 남대천(南大川) 주변의 충적 대지 및 산줄기 하단부에 위치한다. 은산리 유물 산포지1은 무주군 무풍면 은산리에 자리한 속동 마을에 동남쪽으로 인접한 경작지와 계곡부에 위치하는데, 지형 훼손이 부분적으로 이루어졌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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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대원을 시조로 하고, 송봉수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무주군의 세거 성씨. 우리나라 모든 송(宋)씨의 도시조(都始祖)는 당나라의 호부 상서(戶部尙書)였던 송주은(宋柱殷)으로 알려져 있다. 은진 송씨는 송천익(宋天翊)을 시조로 하였으나 송천익 이후 세계(世系)가 실전되는 바람에 고려 때 판원사(判院事)를 지내고 공을 세워 은진군(恩津君)에 봉해진 송대원(宋大原)을 시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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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전라북도 무주군 출신의 효자. 본관은 금녕(金寧). 자는 영재(永載), 호는 은천(隱川). 부인은 밀양 박씨(密陽朴氏)이다. 김달규(金達圭)[1841~1936]는 1841년(헌종 7)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내도리 굴천 마을에서 태어났다. 천성이 온순하고 맑아 친척들이나 이웃을 대할 때 항상 온화한 표정을 지었다. 특히 부모를 섬기는 데 있어서는 조금의 흐트러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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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에 있는 음식 조리 및 판매점. 전라북도 무주군은 84%가 산악 지대로 형성되어 있으며 평균 해발 고도는 약 300m이다. 지대가 높은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연평균 기온이 11.6℃로 서늘하며 일교차가 커 다양한 고랭지 농작물의 재배 조건에 적합하다. 2016년 문화 체육 관광부 올해의 관광 도시로 선정된 무주군은 구천동 33경과 덕유산(德裕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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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시대 부내면의 읍내로 기능하며 ‘읍내(邑內)’라는 명칭이 생겨났다. 1914년 부내면을 무주면으로 바꾸면서 읍내리라고 불렀다. 읍내리는 무주 군청의 소재지로 대차리와 경계를 이루는 성안은 본래 백제 때부터 관아(官衙)가 설치되었던 곳으로 오랜 세월 행정 중심지 역할을 해 왔다. 읍성은 주계성이라 불렀는데, 조선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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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시대 부내면의 읍내로 기능하며 ‘읍내(邑內)’라는 명칭이 생겨났다. 1914년 부내면을 무주면으로 바꾸면서 읍내리라고 불렀다. 읍내리는 무주 군청의 소재지로 대차리와 경계를 이루는 성안은 본래 백제 때부터 관아(官衙)가 설치되었던 곳으로 오랜 세월 행정 중심지 역할을 해 왔다. 읍성은 주계성이라 불렀는데, 조선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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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개항기에 작성된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읍내리 김해김씨 문중 소장 고문서. 1711~1882년에 발급된 읍내리 김해 김씨 문중 고문서(邑內里金海金氏門中古文書)는 입안(立案) 2점, 교지(敎旨) 2점, 첩(帖) 10점, 전령(傳令) 33점, 완문(完文) 1점, 준호구(準戶口) 21점 등 6종 69건이다. 모두 낱장으로 각 고문서의 특성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1711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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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사정리에 있는 수령 약 500년의 버드나무. 버드나무는 버드나무과 버드나무속에 속하는 낙엽 활엽 교목으로 학명은 Salix koreensis Andersson이다. 우리나라 각처의 하천 유역과 들판 및 산골짜기의 습지에 자라고, 버들 또는 뚝버들이라고도 한다. 만주와 일본에도 분포한다. 높이 20m, 지름 80㎝까지 자란다. 나무껍질은 암갈색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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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읍내리에 있는 삼국 시대·고려 시대 유물산포지.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에서 죽항로를 따라 북쪽 방향으로 가다 보면 오산리~당산리 간을 연결하는 도로가 나오는데, 이 도로에서 동쪽으로 수리재 아래 개간지 일대에 읍내리 유물산포지(邑內里遺物散布地)1이 위치한다. 무주 초등학교 북쪽의 뒷들 일대에는 읍내리 유물산포지2가 자리하고 있다.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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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읍내리에 있는 봉수. 향로봉(香爐峰)[420m]은 전라북도 무주군의 진산으로 봉수대가 있었다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산의 정상부에는 기우단(祈雨壇)이 있었다고 전한다. 지명을 제외하고는 봉수와 관련된 문헌 기록이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다만 구전에 따르면, "조선 시대 순천 돌산도에서 서울 남산을 이어 주던 봉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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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 지역에서 의례를 치를 때 특별히 준비하는 음식. 한 사람이 한평생 사는 동안 겪게 되는 통과 의례(通過儀禮)로는 해산(解産), 삼칠일(三七日), 백일(百日), 돌, 관례(冠禮), 혼례(婚禮), 회갑(回甲), 회혼례(回婚禮), 상례(喪禮), 제례(祭禮) 등이 있다. 이러한 통과 의례 가운데 길한 일은 출생·돌·관례·혼례·회갑례·회혼례 등이며 궂은일은 상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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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에서 1910년 사이 전라북도 무주 지역에서 일제의 침략에 맞서 전개된 의병 항쟁. 무주 지역은 영남과 호남을 양쪽에 두고 덕유산(德裕山)이 위치하여 영호남의 의병 활동이 용이하였던 곳으로 강무경(姜武景)·문태서(文泰瑞)·김동신(金東臣)·박춘실(朴春實)·신명선(申明善) 등 많은 의병 부대가 활동하였다. 무주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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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 지역 주민들이 입어 왔던 의복 및 이와 관련한 생활 풍속. 한국 민족의 의생활 역사는 고대 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고조선에서부터 삼국, 고려, 조선을 거쳐 개화기를 지나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의생활은 매우 복잡하고 역동적으로 변해 왔다. 신분 사회였던 조선 시대까지 의복은 왕족, 양반, 서민 등에 따라 분명하게 구별되었다. 의복은 고유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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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지역에 은거한 유학자. 본관은 완산(完山). 자는 의소(儀韶), 호는 설천(雪川). 할아버지는 영의정을 지낸 충문공(忠文公) 소재(疏齋) 이이명(李蓬命)이고, 아버지는 일암(一庵) 이기지(李器之)이다. 이봉상(李鳳祥)은 1722년(경종 2) 신임사화(辛任士禍)로 할아버지 이이명이 사사(陽死)되자 무주 설천(雪川)으로 몰래 들어와 은거하였다. 총명함이 남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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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무주 출신의 무신. 본관은 구례(求禮). 자는 의숙(宜叔), 호는 오류정(五柳亭), 이명은 장응현(張應賢). 아버지는 경상좌도 병마절도사 장필무(張弼武)이고, 동생은 장지현(張智賢)으로 임진왜란 때 창의하여 순절하였다. 장의현(張義賢)은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당산리에서 출생하였다. 1573년(선조 6) 비변사(備邊司)에서 무장으로 천거하여 관직에 나왔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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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 지역에서 세시 풍속에 따른 의식이나 관혼상제 등의 의례 때 불리는 노래. 민요는 일상의 삶에서 생성되고 전승되는 민간의 노래이다. 따라서 민요는 악곡이나 박자가 복잡하지 않아서 누구나 참여하고 향유할 수 있다. 민요는 특정 작곡자나 작사가가 드러나지 않고, 본인의 욕구에 의해서 곡조나 가사를 즉흥적으로 변개해 부를 수 있다. 민요에는 특정 민족이나 공동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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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군 설천면 기곡리에 정려각이 세워진 유학자이자 효자. 박이겸(朴以謙)[1553~1613]은 선조(宣祖) 대의 학자로 중봉(重峯) 조헌(趙憲)의 문인이다. 지극한 효성으로 어버이를 섬겼으며, 임진왜란의 와중에 상을 당하자 여묘를 살면서도 나랏일을 걱정하였다. 뒤에 유일(遺逸)로 정릉 참봉(貞陵參奉)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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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에 서식하는 미주도롱뇽과에 속하는 양서류. 이끼도롱뇽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북아메리카와 유럽 일부 지역에 분포하는데, 아시아 대륙에서는 유일하게 우리나라에만 사는 양서류이다. 북아메리카나 유럽 일부 지역에서만 사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2005년 대전의 장태산에서 발견된 이후 아시아에서 서식하는 것이 밝혀졌다. 이끼도롱뇽은 다른 속에 속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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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효자이자 충신. 본관은 흥양(興陽). 자는 군진(君珍), 호(號)는 두촌(斗村). 형은 이만번(李晩蕃)이다. 이만경(李晩景)[1691~1776]은 1691년(숙종 17)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철목리에서 태어났다. 이만경은 성품이 올바르고 학문도 뛰어나 수많은 제자들이 그를 따랐다. 뿐만 아니라 청렴하여 사사로운 물욕이 없었다. 그래서 집안은 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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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 무인. 이만번(李晩蕃)[1680~?]의 본관은 흥양(興陽), 호는 두천(斗川)이다.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철목리에서 출생하였다. 무술 실력이 뛰어나 정희량(鄭希亮)이 살고 있는 경상남도 안의까지 그 소문이 들릴 정도였다고 한다. 정희량이 가끔 이만번에게 금품과 사람을 보내 가까이 지내려고 하였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가 난을 일으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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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철목리에 있는 개항기 이만번의 충신각. 이만번(李晩蕃)[1680~1762]의 본관은 흥양(興陽), 자는 군욱(君郁), 호는 두천(斗川)으로 찬성(贊成) 이서원(李舒原)의 후손이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에 동조하여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에서 일어나 서울로 진격하려던 정희량(鄭希亮)을 치기 위해 동생 이만경(李晩景)[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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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무주 출신의 의병. 이장춘(李壯春)[1888~1910]은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철목리에서 출생하였다. 이병렬(李秉烈)이라고도 불렸다. 1905년(고종 42) 을사늑약(乙巳勒約)이 체결되고 1907년 고종이 강제로 퇴위되며 군대까지 해산되자 전국 각지에서 의병 항쟁이 일어났다. 이장춘은 1906년 10월쯤 덕유산(德裕山)을 근거지로 하여 의병을 일으켰다. 200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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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지역에 은거한 유학자. 본관은 완산(完山). 자는 의소(儀韶), 호는 설천(雪川). 할아버지는 영의정을 지낸 충문공(忠文公) 소재(疏齋) 이이명(李蓬命)이고, 아버지는 일암(一庵) 이기지(李器之)이다. 이봉상(李鳳祥)은 1722년(경종 2) 신임사화(辛任士禍)로 할아버지 이이명이 사사(陽死)되자 무주 설천(雪川)으로 몰래 들어와 은거하였다. 총명함이 남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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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무신. 이손(李蓀)은 본관은 경주(慶州), 정순공(靖順公) 이성중(李誠中)의 후손으로,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대차리 서면 마을에서 출생하였다.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훈련원 봉사(訓練院奉事)를 역임하였다.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의주에서 적과 싸우다가 순절(殉節)하였는데, 그가 타던 말이 혼자 집으로 돌아와 슬피 울며 주인의 정충(精忠)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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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무주 출신의 애국지사이자 교육자. 이시발(李時發)[1865~1934]의 본관은 흥양(興陽), 호는 간설(艮雪)이다.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지성리에서 태어났다. 1896년(고종 3) 2월 백범(白凡) 김구(金九)가 무주에 들렀을 때 항일 의사(抗日義士) 유완무(柳完茂)와 함께 위험을 감수하고 김구를 보호하였다. 당시는 김구가 일본군 장교를 살해한 죄로 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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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무주 주계 지역을 봉지로 받은 종친이자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백연(伯淵), 호는 성광(醒狂)·묵재(默齋)·태평진일(太平眞逸). 증조할아버지는 효령 대군(孝寧大君) 이보(李補)이고, 아버지는 평성군(枰城君) 이위(李偉)이다. 어머니는 부사 채신보(蔡申保)의 딸 인천 채씨(仁川蔡氏)이다. 이심원(李深源)[1454~1504]은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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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무주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몽필(夢弼), 호는 경산(耕山). 동림(東林) 이이순(李以恂)의 후손이다. 할아버지 향사(香沙) 이규탁(李圭鐸)은 학행(學行)이 있었으며, 아버지 운촌(雲村) 이종익(李鍾翊)은 효행(孝行)으로 이름이 났다. 어머니는 정극순(丁克舜)의 딸 창원 정씨(昌原丁氏)이고, 부인은 박희양(朴熙陽)의 딸 반남 박씨(潘南朴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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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무주 출신의 의병. 이용이(李用伊)[1868~?]는 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에서 출생하였다. 문태서(文泰西) 의병 부대에서 활동하며, 화약을 제조하여 공급하였다. 문태서는 대한 제국 군대의 하사 출신으로 1905년(고종 42) 을사늑약(乙巳勒約)에 반대하기 위해 상경하였다가 최익현(崔益鉉)을 만나 함께 의병을 일으키기로 하고 지리산에서 창의(倡義)하였다. 19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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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 지역에서 음력 2월에 영등신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풍속. 영등(靈登)은 바람을 관장하는 신이다. 무주 지역에서는 2월 초하룻날이 되면 영등이 내려왔다가 보름날·스무날·그믐날에 올라간다고 한다. 영등을 ‘이월할매’, ‘영동할매’라고도 부른다. 무주군에서는 영등이 음력 2월 초하루에 내려와서 스무날에 하늘로 다시 올라간다고 하여, 이 시기에 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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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 지역에서 관련한 고문서가 전해 내려오는 조선 후기 무신. 이유길(李有吉)[?~1619]은 전라남도 해남 사람이었지만 뒤에 경기도 파주로 이사하였으며, 그가 전사한 뒤 가족이 파주에서 초혼장(招魂葬)으로 장례를 치렀다. 이유길의 종손이 무주군 일안면, 곧 현재의 안성면(安城面)에 살았기 때문에 무주와 인연을 갖게 되었다. 1989년 1월 연안 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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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장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이유길의 충신문. 이유길(李有吉)은 본관이 연안(延安)이며 자는 유지(有之)로 문정공(文靖公) 청련(靑蓮) 이후백(李後白)의 손자이다. 아버지 이선경(李善慶)이 왜구(倭寇)에게 살해되어 원수를 갚고자 하였다. 이유길은 정유재란(丁酉再亂)이 일어나자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을 따라 명량(鳴梁) 해전에 출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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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지역에 낙향한 문신이자 유학자.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태지(泰之), 호는 초려(草廬). 아버지는 유학(幼學) 이서(李曙)이고, 어머니는 청풍 김씨(淸風金氏)이다. 이유태(李惟泰)[1607~1684]는 충청남도 금산군에서 다섯 아들 가운데 셋째로 태어났다. 금산은 본래 전라도 지역에 속하였으나 1963년 충청남도에 편입되었다. 김집(金集)의 천거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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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 지역에 사당이 있는 고려수절신.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안지(安之), 호는 송우(松愚). 아버지는 고려수절신(高麗守節臣) 경원군(慶原君) 이반계(李攀桂)이다. 이반계는 고려 말 예부 상서(禮部尙書)를 지냈는데 조선 건국 후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1933년 세운 이반계의 신도비가 강원도 횡성군 횡성읍 정암리에 있다. 손자는 이천익(李天翊)이다. 자는 거원(擧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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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무주 출신의 열녀. 이이옥(李以沃)의 처 의성 정씨[1863~?]는 1863년(고종 1) 정재남(丁在南)의 딸로 태어났다. 천성(天性)이 단정(端正)했을 뿐만 아니라 모든 행동거지에 있어 법도에 어긋나는 일이 전혀 없었다. 이이옥과 혼인한 후에는 아녀자로서의 도리를 반드시 지켰다. 그런데 의성정씨가 이이옥과 혼인했을 때 시부모들이 이미 세상을 떠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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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8년 정권에서 소외되었던 소론과 남인의 급진 세력이 경종의 죽음에 영조와 노론이 관련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일으킨 사건. 1724년 경종이 갑작스럽게 사망하고 영조가 노론(老論)의 지지를 받으면서 즉위하였다. 노론의 집권으로 정권에서 소외되었던 소론(少論)과 남인(南人)의 급진 세력은 영조와 노론을 제거할 계획을 세웠다. 이들은 세제(世弟) 책봉의 부당성, 경종의 사인(死因)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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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무주 출신의 의병. 이장춘(李壯春)[1888~1910]은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철목리에서 출생하였다. 이병렬(李秉烈)이라고도 불렸다. 1905년(고종 42) 을사늑약(乙巳勒約)이 체결되고 1907년 고종이 강제로 퇴위되며 군대까지 해산되자 전국 각지에서 의병 항쟁이 일어났다. 이장춘은 1906년 10월쯤 덕유산(德裕山)을 근거지로 하여 의병을 일으켰다. 200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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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무주 출신의 의병. 본관은 흥양(興陽), 호(號)는 척산(尺山). 아버지는 이시발(李時發)이다. 이시발은 1894년(고종 31) 교우하던 유완무(柳完茂)가 나라를 걱정하며 가정을 돌보지 못하고 활동할 때 그와 뜻을 같이하면서 그의 처자식을 친히 돌보았다. 김구(金九)가 무주를 방문하자 상봉하여 구국의 방책 등에 대하여 장시간 토론하였다. 한편, 어버이를 잃고 의탁할 곳이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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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무주 출신의 의병. 이종성(李鍾誠)[1871~1910]의 본관은 흥양(興陽)이다.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에서 출생하였다. 1908년(순종 2) 문태서(文泰西)[1880~1913] 의병 부대에서 활약하였다. 문태서는 1907년 제3차 한일 협약(第三次韓日協約)이 체결된 후 무주에서 의거하며 덕유산(德裕山)을 주요 무대로 영남·호남·호서 일대에서 활약한 의병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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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효부. 이철구(李喆龜)의 처 옥산 장씨는 이철구와 결혼한 후 홀로 된 시할아버지와 역시 홀로 된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는데, 여기에 또 남편마저 병에 걸려 몸이 편치 못하였다. 게다가 남편의 병은 해가 갈수록 깊어만 갔다. 그렇지만 시할아버지가 남편의 병에 대해 묻거든 언제나 "차도가 있다. 곧 나을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시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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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무주 출신의 의병. 이팔문(李八文)[1885~?]은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금평리 마곡 마을에서 출생하였다. 1907년(순종 1) 10월 무렵 전라북도 무주군 동면 소숙방산(少宿方山)에서 이장춘(李長春)이 인솔하는 의병 부대에 가담하였다. 이장춘은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철목리 출신으로 덕유산(德裕山)을 근거지로 무주, 남원, 장수, 함양 안의, 영동, 옥천 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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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지역으로 이거한 학자.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이환(而煥), 호는 관일당(貫一堂)·정관재(靜觀齋). 송은(松隱) 박익(朴翊)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지사(知事) 박중엽(朴重燁)이다. 어머니는 강위경(姜渭擎)의 딸인 진주 강씨(晋州姜氏)이다. 박문건(朴文健)[1770~1805]은 경상남도 진주(晉州)에서 출생하였다. 1805년(순조 5) 지금의 전라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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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익녀(翼汝)이다. 아버지는 돈녕부 동지사(敦寧府 同知事)를 지낸 유도(柳燾)이고, 큰형은 유봉증(柳鳳增), 작은형은 유학증(柳鶴增)이다. 유홍증(柳鴻增)[1850~1879]은 1850년(철종 1)에 태어났으며, 어렸을 때 형들을 존경하여, 형들을 대할 때 언제나 부모를 대하듯 하였다. 그리고 모든 일을 처리하는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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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의 인구 추이와 인구 구성의 구조적 특징. 1960년대 이후 한국의 농촌 인구는 지속적으로 감소하였다. 이것은 산업화, 도시화 과정에서 농업 부문이 해체되면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다. 한국 사회 전체로 보면 1960년 농촌 인구는 총인구의 72%를 차지하였지만 40년이 지난 2000년에 이르면 20.3%로 감소하였다. 농산촌 지역인 무주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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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 지역의 역사, 인구, 교통, 산업, 관광 등의 인문 환경. 무주군은 신라와 백제 때는 서부의 무주읍과 동부의 무풍면이 국경 지역이었다가 삼국 통일 후 2개의 현으로 존재하였으며, 조선 시대 때 무주군으로 통합되었다. 인구는 7만 6061명[1966년]까지 증가하였으나 2017년 6월 현재는 2만 4875명이다. 교통은 고속 국도 제35호선[대전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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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안성면·부남면 일대 산악 지대에서 재배되는 약용의 다년생 초본 식물. 인삼은 오갈피나무과에 속하는 다년초로 열매는 붉은색 여러 개의 산형 화서(繖形花序)로 익으며, 우리나라와 중국이 원산지이다. 인삼의 종류는 건삼과 수삼으로 구분된다. 건삼은 재배 연수에 따라 백삼·태극삼·홍삼으로 분류되고, 백삼은 모양에 따라 직삼·반곡삼·곡삼·생건삼·세미 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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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삼공리 덕유산 칠봉 기슭에 있는 태고종 사찰. 인월암(印月庵)은 무주 구천동 33경 중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인월담(印月潭)에서 칠봉 약수터로 오르는 중간, 솔숲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신라 때 인월 화상(印月和尙)이 절을 짓고 수도하던 곳이라 하여 ‘인월담’으로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 옛터이다. 월곡 이창섭이 196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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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삼공리 인월암에 있는 석탑. 인월암(印月庵)은 덕유산(德裕山) 칠봉 기슭에 위치한 태고종 사찰이다. 무주 구천동 33경 중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인월담(印月潭)에서 칠봉 약수터로 오르는 중간, 송림(松林)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신라 때 인월 화상(印月和尙)이 절을 짓고 수도하던 곳이라고 하여 ‘인월담’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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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오희문이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무주 일대 상황을 적은 일기. 오희문(吳希文)[1539~1613]의 본관은 해주(海州)이며, 호는 비연(斐然)이다. 장성 현감을 지낸 오경민(吳景閔)과 남인(南寅)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 연안 이씨(延安李氏)와의 사이에 인조 때 영의정을 역임한 오윤겸(吳允謙)이 있다. 『쇄미록』에 의하면 아버지 오경민이 처가살이를 하면서 어린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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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8월부터 1945년 8월까지 전라북도 무주 지역의 역사. 일제강점기 무주 지역의 인구는 1911년 조선인 3만 5912명, 일본인 63명, 1921년 조선인 4만 6228명, 일본인 198명, 1930년 조선인 5만 737명, 일본인 249명, 1940년 조선인 4만 7717명, 일본인 256명, 1943년 조선인 5만 1184명, 일본인 268명이었다. 조선인은 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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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지역에 별장을 짓고 시가를 즐겼던 문신. 본관은 나주(羅州)[회진(會律)]. 자는 재숙(載叔), 호는 청구(淸滾). 아버지는 관찰사를 역임한 임서(林㥠)이다. 임담(林覃)[1596~1652]은 1635년(인조 13)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에 올랐다. 병자호란 때 사헌부 지평으로 남한산성에 들어가 총융사의 종사관이 되어 남격대(南格臺)를 수비하였고, 화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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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지역의 산업 분야 중 산림을 유지·조성하여 경제적으로 이용하는 산업. 전라북도 무주군은 산림 임야의 비중이 높아 임산물의 생산 및 이용에 보다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무주군 지역의 산림은 과거에는 단순히 연료를 채취하는 장소였으나, 현재는 무주군이 ‘산림은 무주의 경쟁력이다’라는 인식을 갖고 산림 소득 증대 지원, 산림 작물 생산 기반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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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무주 출신의 의병. 임익상(林翊相)[1887?~1910]은 지금의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죽천리에서 출생하였다. 1909년 7월 박화윤(朴化允) 외 5명과 함께 전라북도 장수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같은 해 10월 박화윤, 이사필(李士必), 이달서(李達西), 이문재(李文在), 서학서(徐學三) 등과 함께 지금의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일대에서 일본인 벌목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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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부터 1598년까지 2차에 걸쳐 조선을 침략한 일본에 의해 무주 지역을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1592년(선조 25) 4월 13일 일본은 경상도 동래부의 부산진 공격을 시작으로 조선에 대한 침략 전쟁을 일으켰다. 그 후 7년 동안 조선은 일본과 전쟁을 하였으며, 명나라가 참전하면서 동아시아 삼국이 참전하는 전쟁으로 이어졌는데, 이 전쟁을 우리나라에서는 대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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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부터 1598년까지 2차에 걸쳐 조선을 침략한 일본에 의해 무주 지역을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1592년(선조 25) 4월 13일 일본은 경상도 동래부의 부산진 공격을 시작으로 조선에 대한 침략 전쟁을 일으켰다. 그 후 7년 동안 조선은 일본과 전쟁을 하였으며, 명나라가 참전하면서 동아시아 삼국이 참전하는 전쟁으로 이어졌는데, 이 전쟁을 우리나라에서는 대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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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무주 도산 서원에 배향된 문신.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천경(天經), 호는 임회당(臨淮堂). 고려수절신(高麗守節臣)[여말 선초 성리학의 대의명분을 지켜 조선조에서 벼슬을 하지 않고 절개를 지킨 고려 말의 학자들] 박힐(朴詰)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초산 군수를 지낸 박인(朴麟)이다. 박힐이 충청남도 금산에 들어와 은거하면서 후손들이 대대로 금산군 남일면에서 세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