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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500711
한자 李時發
영어공식명칭 I Sibal
이칭/별칭 간설(艮雪)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지성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송만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65년연표보기 - 이시발 출생
몰년 시기/일시 1934년연표보기 - 이시발 사망
출생지 무주군 -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지성리 지도보기
성격 애국지사|교육자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무주 출신의 애국지사이자 교육자.

[활동 사항]

이시발(李時發)[1865~1934]의 본관은 흥양(興陽), 호는 간설(艮雪)이다.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지성리에서 태어났다. 1896년(고종 3) 2월 백범(白凡) 김구(金九)가 무주에 들렀을 때 항일 의사(抗日義士) 유완무(柳完茂)와 함께 위험을 감수하고 김구를 보호하였다. 당시는 김구가 일본군 장교를 살해한 죄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가 형 집행 전 고종(高宗)의 특명(特命)으로 풀려난 후 삼남 지방을 돌아다니던 때였다. 김구안중근(安重根)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암살 사건에 연루되어 감옥에 갇혔을 때도 유완무와 함께 김구를 탈출시키기 위해 김구가 수감되어 있는 감옥을 부수고 들어가기도 하였다. 다만 그때는 김구가 이미 탈출한 후로서 이시발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였지만, 김구를 지키고자 하는 이시발의 마음은 그만큼 대단하였다.

이시발은 이후로도 김구와의 인연을 계속 이어 가고자 노력하였다. 김구가 중국에 머물고 있을 때, 이시발은 유완무와 함께 만주로 들어가 학교를 세운 후 조국 독립에 필요한 인재를 키우겠다는 계획을 세우기도 하였으나 유완무가 두만강을 건너는 과정에서 살해되며 성사되지 못하였다. 학교 설립의 일이 실패로 돌아간 후 이시발은 곧바로 고향 무주로 내려와 머물렀다. 이때 조정에서 이시발을 안주 목사(安州牧使)로 임명하였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그 대신 경상도 상주(尙州)의 옥산 서원(玉山書院)과 충청도 금산(錦山)의 학암 서원(鶴岩書院)의 서원장(書院長)을 지내기도 하고 또 선비들과 대덕산방(大德山房)이라는 유계(儒禊)를 조직하는 등 구학문을 수호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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