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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강원도 삼척 지역의 역사. 태조 이성계는 1393년(태조 2)에 삼척이 목조이안사의 외향(外鄕)이라 하여 삼척군에서 삼척부로 승격시켰다. 그러나 1413년(태종 13)에 삼척도호부로 읍격이 강등되었다. 삼척도호부 산하에는 당초 5개의 리가 있었지만 1630년(인조 8)경에 4개를 신설하여 9개의 리가 되었다. 그 후 숙종 연간에 리를 면으로 개칭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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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 삼척 지역에 설치한 지방 행정 구역 단위. 조선 태조 이성계는 1393년에 삼척이 목조이안사의 외향이라 하여 그때까지의 삼척군을 삼척부로 읍격을 승격시켰다. 삼척시는 조선태조이성계의 가문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지역이다. 우선 삼척시는 이성계의 고조인 목조(穆祖)이안사(李安社)[?~1274]와 그의 부친 이양무(李陽茂)[?~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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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삼척도호부 산하 행정 구역. 처음 삼척도호부 산하에는 부내·노곡·장생·미로·북평 등 5개 리가 있었다. 그러나 1630년경 매곡·덕번·소달·박곡 등 4개 리를 신설하여 총 9개 리가 되었다. 그 후 숙종 연간에 리를 면으로 개칭하는 한편 장생을 상장과 하장, 덕번을 근덕과 원덕, 북평을 도상과 도하로 각각 분리·신설하여 총 12개 면이 되었다. 면리제는 조선시대 국가가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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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삼척 지역에 설치한 지방 행정 구역 단위. 삼척 지역은 1413년에 삼척부에서 삼척도호부로 읍격이 강등되었다. 이에 따라 지방관도 종3품 도호부사가 임명되었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1393년(태조 2)에 삼척이 자기의 고조인 목조(穆祖)이안사(李安社)[?~1274]의 외향(外鄕)이라 하여 삼척군(三陟郡)에서 삼척부(三陟府)로 승격시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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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삼척도호부 수장. 1413년(태종 13)에 삼척 지역의 읍격이 삼척부에서 삼척도호부로 강등되면서 도호부사가 지방관으로 임명되었다. 『척주선생안』에 따르면 15세기 삼척도호부사(三陟都護府使)의 출신 성분은 다양하였다. 문관, 무관, 음관뿐만 아니라 성중관(成衆官) 출신도 다수 임명되었다. 이 가운데 문과(文窠) 출신은 약 7%에 불과하였다. 이에 따라서 15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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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삼척 지역에 있던, 동해안 일대 중요한 수군 기지의 하나. 조선시대 삼척부의 동쪽 8리에 위치하며, 수군첨절제사 겸 포사가 근무하였다. 부근의 4개 포, 즉 월송포·울진포·대포·고성포를 지휘·감독하는 진관이다. 조선시대 해군의 경우 경기도, 충청도, 경상좌우도, 전라좌우도의 6명은 별도의 수군절도사가 전임 통할하였지만 강원도는 강원관찰사가 수군절도사를 예겸하였다. 삼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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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수군진인 삼척포에 배치한 수군 지휘관. 삼척포진 수군첨절제사는 조선시대 삼척포에 배치한 수군 지휘관이다. 삼척포가 수군첨절제사진으로 편성되면서 안인포(강릉시), 고성포, 울진포, 월송포 등 4개의 만호영이 삼척포진에 소속되었다. 이 가운데 삼척포에는 배 4척과 수군 245명이 배속되었다. 고려 말 조선 초의 수군은 왜구 침입에 대비하여 재정비되었다. 고려 말에 삼척포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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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삼척에 파견되어 속오군 조련을 담당한 무신 당상관. 조선 후기에 지방군의 운영을 효율화하기 위하여 시행된 영장(營將) 제도는 1627년(인조 5) ‘영장절목(營將節目)’ 반포와 함께 무신 당상관을 전임(專任) 영장으로 파견하여 속오군(束伍軍) 조련(操鍊)을 담당하게 하였다. 1637년(인조 15) 전임 영장제가 혁파된 뒤에는 수령이 영장을 겸임하는 겸영장(兼營將) 제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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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삼척 지역에서 변경 지대 군사 동향을 연기와 불꽃으로 중앙에 보고하기 위하여 만든 시설. 봉수는 변경 지대의 긴급한 상황을 중앙이나 변경의 진영(鎭營)에 알리는 통신 체제로, 주로 군사 목적에서 설치하여 운영하였다. 특히 봉수는 변경 지대의 긴급한 상황을 중앙 정부에 신속히 알림으로써 대책을 마련하도록 하는 기능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방에서는 군사 주둔지인 진영에 신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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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서울에서 양평-원주-강릉-삼척-울진을 거쳐 평해에 이르는 도로. 조선시대 서울 도성에서 망우리를 거쳐 양평[당시는 양근, 지평]-원주-안흥[횡성 강림면]-방림[평창]-진부[평창]-횡계[평창]-대관령-강릉-삼척-울진-월송진[울진]-평해까지 이르는 도로이다. 『증보문헌비고』에 따르면 9개 대로 가운데 하나였다. 총 거리는 서울에서 885리였다. 조선 전기는 주로 농업을 위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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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삼척 지역에서 ‘돌아갈 곳 없는 귀신’ 여(厲)를 제사 지내던 제단. 여단이란 ‘돌아갈 곳 없는 귀신’ 여를 제사 지내던 제단을 말한다. 조선시대 때 중앙과 각 지방에 설치되어 관청에서 관리하며 제사를 지냈다. 여단은 의약 시설이 잘 갖추어 있지 않던 시절에 흉년이 들어 굶어 죽거나 병이 들어 객사한 뒤 상주도 없이 외로이 구천을 헤매는 무주고혼(無主孤魂)을 위무(慰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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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강원도 삼척 지역에 축조한 산성. 옥원성은 옥원산에 쌓은 성으로, 옥원역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옥원동 뒷산에 위치한다. 옥원성은 현재의 작진항을 굽어볼 수 있는, 조망권이 좋은 산성이다. 삼척부 원덕면 옥원리에 옥원역이 설치되고 옥원창과 이를 관할하는 관청이 들어선 후 동해안 세수미의 집결 장소가 되었기 때문에 옥원성을 쌓은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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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삼척 영장이 주관하여 국가 제사를 지내던 제단. 둑제(纛祭)는 조선시대 군대를 출동시킬 때 군령권(軍令權)을 상징하는 둑(纛)에 지내는 국가 제사로, 경칩[음력 2월]과 상강[음력 9월]에 병조판서가 주관하여 제사를 지낸다. 둑제는 국가의 군사권을 상징하는 제사로, 이에 관한 기록은 고려시대 때부터 나온다. 조선성종대에 편찬된 『국조오례의』에는 소사(小祀)로 규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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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삼척 지역 중심으로 울릉도의 거주를 금하고 울릉도에 관리를 파견해서 주기로 순찰을 돌며 관리한 정책. 수토란 수색을 해서 무엇을 알아내거나 찾기 위하여 조사 또는 엿본다는 의미이다. 즉 울릉도 수토란 조선 후기 때 울릉도 거주를 금하고 울릉도에 관리를 파견해서 주기로 순찰하며 관리하던 것을 말한다. 울릉도 수토는 안용복(安龍福) 도일 사건을 계기로 실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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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삼척 지역에서 실시된 향촌 자치 규약. 향약은 향촌규약(鄕村規約)의 준말이다. 넓은 의미로는 향촌규약·향규(鄕規)·일향약속(一鄕約束)·향약계(鄕約契)·향안(鄕案)·동약(洞約)·동계(洞契)·동안(洞安)·족계(族契)·약속조목(約束條目) 등을 나타낸다. 향약은 조선시대 양반들의 향촌 자치와 이를 통하여 하층민을 통제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숭유배불정책에 의하여 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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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강원도 삼척 지역에서 토지신 또는 향선생을 대상으로 행해지던 제사. 이사제는 마을에서 지내는 서낭제로, 마을에서 공동으로 모시는 토지신을 제사 지내는 것이다. 삼척 지역은 미수허목이 부사로 왔을 때 시행하였다고 한다. 이사(里社)란 옛날 동리마다 토지신을 모시던 사당이다. 중국주(周)나라 때 100가(家) 이상이면 사(社)를 세웠고, 진(秦)·한(漢)시대 이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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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삼척 지역에서의 소금 생산. 조선시대 삼척 지역에서는 해수직자법으로 소금을 생산하였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삼척 지역에 염분이 40개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1662년(현종 3)에 편찬된 『척주지』에는 삼척에 군수용 염분 5개와 구황용 염분이 있다고 하였다. 이를 보면 생산된 소금은 군수 마련을 위한 비용에 충당하고, 기근이 들었을 때 진휼이나 구황에 사용된 것으로 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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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 지역과 관련하여 건치연혁, 풍속, 성씨, 토산 등의 내용이 영역별로 간략하게 실려 있는 관찬 지리지. 역대 관찬 지리지 가운데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 『관동지』, 『관동읍지』, 『강원도지』에서의 삼척군(三陟郡) 서술에 대한 편찬 체제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454년(단종 2)에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는 『세종장헌대왕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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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 지역에서 역대로 편찬된 사찬지리지. 강원도 삼척 지역은 1662년(현종 3)에 삼척부사 허목의 『척주지』가 상·하권으로 건치연혁부터 그가 이임하는 1662년까지 수록하여 편찬되었다. 이후에 편찬되는 삼척 지역 사찬지리지는 이를 모본으로 삼아 이 지리지의 미비점을 보완하면서 여러 차례 발간되었다. 1848년에 김종언(金宗彦)이 기존의 『척주지』를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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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군 서쪽에 있던 마을. 노동은 지금의 강원도 삼척시 서쪽에 있던 마을로, 노지동이라고도 한다. 이곳에는 목조의 능인 준경묘[사적 제524호]가 있다. 준경묘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이성계의 5대조이며, 목조이안사의 아버지 이양무 장군의 묘이다. 이양무(李陽茂)[?~1231]는 본래 전라도 전주 지역 호족이었다. 당시 향촌 사회를 붕괴시키고 있는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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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부 서쪽에 있던 면. 1738년(영조 14) 삼척도호부가 12개 면으로 구성되었을 때 현재의 삼척시 내륙 동부 지역이다. 12개 면은 말곡, 부내, 노곡, 근덕, 원덕, 미로, 소달, 상장성, 하장성, 견박곡, 도상, 도하 등이다. 삼척시 마평동은 말곡면이라는 명칭의 근원지이다. 옛날 이곳은 수목이 무성하였다. 오십천변의 홍수를 방지하기 위하여 관에서 수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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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부 서쪽에 있던 면 단위 행정 구역. 1738년(영조 14) 삼척도호부가 12개 면으로 구성되었을 때 현재의 삼척시 중심부를 중심으로 하여 서쪽으로 말곡면을 지나 있는 면이 여기에 속한다. 12개 면은 미로, 부내, 말곡, 노곡, 근덕, 원덕, 소달, 상장성, 하장성, 견박곡, 도상, 도하 등이다. 미로리면은 1662년 삼척부사 허목(許穆)[1595~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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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도호부 행정 구역 가운데 읍성 기준으로 동남쪽 방향 해안 및 일부 내륙 지역의 행정 명칭. 1738년(영조 14) 삼척도호부가 12개 면으로 구성되었을 때 현재의 삼척시 해안 동(洞) 지역이다. 12개 면은 부내, 말곡, 노곡, 근덕, 원덕, 미로, 소달, 상장성, 하장성, 견박곡, 도상, 도하 등이다. 부내면은 현재의 교동, 정라동, 남양동 일대를 아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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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서남부에 있던 행정 구역 명칭. 1651년(효종 2) 소달리면(所達里面)이라 칭하였다가 나중에 소달면으로 개칭하였다. 석탄 산업이 활성화되면서 1963년 1월 1일 도계리를 중심으로 한 도계읍이 신설되면서 소달면 행정 구역 명칭은 폐지되었다. 1630년(인조 8)에 삼척부사 이준(李埈)이 소달산의 이름을 따서 소달리면(疎達里面)이라 하였는데 당시 소달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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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도호부 최남단에 있던 면 단위 행정 구역. 1980년 12월 1일 삼척군 원덕읍으로 승격되기 전까지의 삼척군 행정 구역의 한 명칭이다. 원덕면은 1630년(인조 8) 부사 이준(李埈)이 근덕면과 합쳐 덕번(德蕃)이라 하였고, 1677년(현종 3) 부사 허목(許穆)[1595~1682]이 궁촌(宮村) 남쪽을 덕번하(德蕃下) 또는 원덕번(遠德蕃)이라 하였으며,...
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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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삼척 지역에 설치된 관용 교통 수단과 여행객을 위한 편의 시설. 조선시대 때 공무 출장, 공문 전달, 공물 운송 등을 위하여 설치한 역과 여행객을 위한 편의 시설인 원을 말한다. 역원(驛院)은 역(驛)과 원(院)을 말한다. 역은 일종의 관용 교통 수단으로, 서울에서 각 지방에 이르는 도로에 30리마다 설치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말·역리(驛吏)·역졸(驛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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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삼척 지역에 소재한 역. 교가역(交可驛)은 조선 초기 3개 역로 가운데 평릉도에 속한 역의 하나이자 삼척도호부에 속한 5개 역 가운데 하나였다. 18세기 교가역은 찰방이 주재하는 평릉도 본역이었다. 조선 초기 강원도의 역은 보안도(保安道), 대창도(大昌道), 평릉도(平陵道) 등 3개 역로에다 속역이 57개였다. 그러다가 고려 말 조선 초에 여러 곳의 역을 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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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삼척 지역에 소재한 역. 평릉역은 조선 초기 3개 역로의 평릉도에 속한 역 가운데 하나이자 삼척도호부에 속한 5개 역 가운데 하나였다. 옛 명칭은 평진이다. 『경국대전』에서는 평릉도에 속한 15개 역 가운데 하나였으며, 조선 후기에는 삼척에 속한 6개 역 가운데 하나였다. 조선 초기 강원도의 역은 보안도(保安道), 대창도(大昌道), 평릉도(平陵道) 등 3개 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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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삼척 지역에 소재한 역. 신흥역은 조선 전기에는 설치되지 않았다가 조선 후기에 와서 삼척 지역에 속한 6개 역 가운데 하나로 설치되었다. 조선 초기 강원도의 역은 보안도(保安道), 대창도(大昌道), 평릉도(平陵道) 등 3개 역로에다 속역이 57개였다. 그러다가 고려 말 조선 초에 여러 곳의 역을 통합 또는 이설하거나 명칭 개칭 등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 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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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삼척 지역에 소재한 역. 사직역은 조선 초기 3개 역로에서 평릉도에 속한 역 가운데 하나이자 삼척도호부에 속한 5개 역 가운데 하나였다. 조선 후기에는 삼척에 속한 6개 역 가운데 하나였다. 조선 초기 강원도의 역은 보안도(保安道), 대창도(大昌道), 평릉도(平陵道) 등 3개 역로에다 속역이 57개였다. 그러다가 고려 말 조선 초에 여러 곳의 역을 통합 또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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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삼척 지역에 소재한 역. 용화역은 조선 초기 3개 역로에서 평릉도에 속한 역 가운데 하나이자 삼척도호부에 속한 5개 역 가운데 하나였다. 조선 후기에는 삼척 지역에 속한 6개 역 가운데 하나였다. 조선 초기 강원도의 역은 보안도(保安道), 대창도(大昌道), 평릉도(平陵道) 등 3개 역로에다 속역이 57개였다. 그러다가 고려 말 조선 초에 여러 곳의 역을 통합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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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삼척 지역에 소재한 역. 옥원역은 조선 초기 3개 역로에서 평릉도에 속한 역 가운데 하나이자 삼척도호부에 속한 5개 역 가운데 하나였다. 옥원역에는 왜구의 요충지라 하여 일찍이 성을 쌓고 천호를 배치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삼척에 속한 6개 역 가운데 하나였다. 조선 초기 강원도의 역은 보안도(保安道), 대창도(大昌道), 평릉도(平陵道) 등 3개 역로에다 속역이...
사건·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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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삼척부사 홍인걸(洪仁傑)[1541~1603] 등이 왜군을 체포하여 죽였다고 허위 보고한 사건. 1595년 7월 삼척부사 홍인걸 등은 바닷가에 정박한 왜선 한 척을 나포하여 왜군들을 죽였다고 강원감사에게 보고하였다. 그러나 이후 홍인걸 등이 정말 왜군을 죽였느냐, 아니면 포로로 잡혀가다가 도망쳐 돌아온 조선인을 죽였느냐 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졌다. 임진왜란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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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안무사 김인우(金麟雨)를 울릉도에 파견한 일. 김인우는 본관이 삼척으로 삼척 사람이다. 그는 처음 고려 말에 삼척군 지군사(知郡事) 남은(南誾)[1354~1398] 휘하의 군사였다가 군공을 세워 안인포(安仁浦) 만호와 판장기현사(判長鬐縣事)가 되었다. 그 후 조선태종·세종대에 안무사로서 울릉도에 갔다 왔다. 허목(許穆)[1595~1682]은 『척주지』에서 김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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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영장 홍우보(洪雨輔)가 울릉도에 몰래 사람을 보내 인삼을 채취한 사건. 1769년 삼척부사 서노수(徐魯修)는 삼척영장 홍우보가 몰래 사람을 울릉도에 보내 인삼을 캔 사실을 밝혀 냈다. 그러나 장령 원계영이 울릉도 인삼 잠채는 홍우보의 단독 소행이 아니라 강원감사 홍명한(洪名漢)[1724~1774]의 주도 아래 조직 차원에서 이루어진 계획 범행이었다는 사실을 폭로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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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부터 1598년까지 일본이 조선을 침입하여 강원도 삼척 지역을 포함한 한반도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임진왜란 때 왜군은 1592년 7월 상순 말 무렵 삼척 지역으로 들어왔다가 8월 초 백복령을 넘어 정선으로 철수하였다. 이에 따라서 왜군이 삼척 지역에 머무른 기간은 길어도 20일 정도였다. 그동안 삼척부사 기령이 군대를 지휘하였다. 그러나 왜군과의 직접 전투가 있었는지는...
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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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강원도 삼척시 우지동일대 평야 지역에 있던 저수지. 전통시대의 수리시설은 제언, 보, 유거, 언전 등이었다. 제언은 저수지의 일종으로, 농업수리의 중심을 차지하게 되었다. 조선시대 후기에 와서 산곡형과 평지형으로 나뉘게 되었다. 동대제언은 평야 지대에 입지한다. 동대제언은 평지형 제언으로, 논에 물을 대어 재배하는 벼농사에서 논농사의 성패를 가름하는 필수 요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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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강원도 삼척 지역의 중산간 지역에 있던 저수지. 전통시대 논농사에 필요한 물을 공급받기 위하여 평지에 큰 구덩이를 파고 그 주위에 둑을 만들어서 지하의 용수와 천수를 모아 이용하는 방법이다. 논에 물을 대어 재배하는 벼농사에서 물의 적절한 공급과 관리는 논농사의 성패를 가름하는 필수 요건이다. 전통사회에서 국방과 더불어 식량 공급을 최우선 정치 과제로 삼아 그 근본을 농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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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강원도 삼척시 우지동 중산간 지역에 있던 저수지. 전통시대의 수리 시설은 제언, 보, 유거, 언전 등이었다. 제언은 저수지의 일종으로, 농업 수리의 중심을 차지하게 되었다. 조선시대 후기에 와서 산곡형과 평지형으로 나뉘게 되었다. 강원도 삼척시 우지동일대에 과거 큰 저수지가 있었다고 하며, 산곡형으로 보인다. 지저제언은 삼척 지역의 산곡을 가로막아 계곡물을 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