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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500563
한자 琴坪里遺物散布地[安城面]
영어공식명칭 Archeological Site in Geumpyeong-ri[Anseong-myeon]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유물산포지
지역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금평리 1771|금평리 산19|금평리 339|금평리 826-1|금평리 1529|금평리 778
시대 고대/삼국 시대,고대/남북국 시대,고려/고려 전기,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은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6년 - 금평리 유물산포지[안성면] 전북 대학교 박물관에서 지표 조사 실시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7년 - 금평리 유물산포지[안성면] 원광 대학교 마한·백제 문화 연구소에서 지표 조사 실시
소재지 금평리 유물산포지1 -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금평리 1771 지도보기
소재지 금평리 유물산포지2 -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금평리 산19 지도보기
소재지 금평리 유물산포지3 -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금평리 339 지도보기
소재지 금평리 유물산포지4 -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금평리 826-1 지도보기
소재지 금평리 유물산포지5 -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금평리 1529 지도보기
소재지 금평리 유물산포지6 -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금평리 778 지도보기
성격 유물산포지
면적 78,840㎡[금평리 유물산포지1]|51,090㎡[금평리 유물 산포지2]|52,130㎡[금평리 유물산포지3]|39,230㎡[금평리 유물산포지4]|24,770㎡[금평리 유물산포지5]|22,470㎡[금평리 유물산포지6]

[정의]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금평리에 있는 삼국~조선 시대 유물산포지.

[위치]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금평리도촌 마을안기 마을, 두문 마을 인근에 금평리 유물산포지[안성면](琴坪里遺物散布地[安城面]) 6개소가 자리하고 있다. 무주군 안성면 주민 자치 센터에서 안성로와 덕유산로를 타고 동쪽으로 가다 보면 금평리가 나온다. 금평리 유물산포지1은 안기 마을의 북쪽에, 금평리 유물산포지2와 금평리 유물산포지3은 안기 마을의 동남쪽에 분포한다. 금평리 유물산포지4는 두문 마을의 서쪽에 자리한 구릉 말단부에 해당되며, 금평리 유물산포지5와 금평리 유물산포지6은 금평리 유물산포지4에서 서쪽으로 300m~400m 정도 떨어진 구릉에 자리한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2006년에 전북 대학교 박물관이 실시한 무주 관광 레저 기업 도시 개발 사업 부지에 대한 문화 유적 지표 조사와, 2007년에 원광 대학교 마한·백제 문화 연구소가 실시한 『문화 유적 분포 지도-무주군』 발간을 위한 지표 조사를 통해 확인되었다. 조사 결과 삼국 시대~조선 시대의 유구가 존재할 것으로 추정되었다.

[형태]

금평리 유물산포지는 마을 주변의 경작지와 구릉 지대에 자리하며, 경작지와 구릉의 지형에 따라 형태의 차이를 보인다. 금평리 유물산포지1은 부정형을 띠며, 금평리 유물산포지2~금평리 유물산포지4는 동-서 방향으로 길고 남-북 방향의 폭이 좁은 타원형의 형태를 가진다. 금평리 유물산포지5와 금평리 유물산포지6은 방형을 띤다. 면적은 금평리 유물산포지1이 7만 8840㎡, 금평리 유물산포지2가 5만 1090㎡, 금평리 유물산포지3이 5만 2130㎡, 금평리 유물산포지4가 3만 9230㎡, 금평리 유물산포지5가 2만 4770㎡, 금평리 유물산포지6이 2만 2470㎡이다.

[출토 유물]

금평리 유물산포지에서는 회청색 경질 토기편과 뚜껑 접시[개배]편, 동체부편, 자기편, 기와편 등 삼국 시대~조선 시대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현황]

금평리 유물산포지는 대체로 구릉성 야산의 말단부에 자리하며, 현재 경작지로 개간되어 사용 중인 곳이 대부분이다. 금평리 유물산포지 내에는 도굴로 인해 고분이 노출되거나, 고분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치석된 석재가 산재되어 있어 고분군이 존재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금평리 유물산포지2와 금평리 유물산포지4 내에는 금평리 안기 고분군(琴坪里安基古墳群)금평리 고인돌 떼2, 금평리 고인돌 떼5 등이 포함되어 있으며, 유물산포지 인근에도 금평리 고인돌 떼1금평리 고인돌 떼3, 금평리 두문 고분(琴坪里斗文古墳)1, 금평리 두문 고분2 등이 자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금평리 유물산포지는 입지와 수습된 유물, 유물 산포지 내 현황 등으로 보아 삼국 시대의 고분이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유물은 수습되지 않았지만 청동기 시대 고인돌 떼도 인근에 분포하고 있다. 이외에도 자기편과 기와편 등이 수습되어 고려 시대~조선 시대 유구의 존재 가능성도 있다.

[참고문헌]
이용자 의견
고*** [출토 유물], [현황] 내용을 읽어보면 시대가 청동기시대와 초기국가시대도 포함되어야 할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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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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