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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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삼공리에서 구천동과 박문수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구천동과 박문수」는 어사 박문수(朴文秀)가 지방을 암행하던 길에 무주 구천동에 들러 천석두의 악행으로 인해 어려움에 빠진 구재서 집안의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는 인물담이자, 박문수로 인해 이곳을 ‘구천동’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지명 유래담이다. 1992년 김경석이 편찬하고 무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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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2년에 제작된 군현 지도에 수록 되어 있는 무주부 지도. 『1872년 군현 지도』 「무주부」 는 흥선 대원군 이하응(李昰應)의 명령으로 그린 지도로, 당시로서 가장 자세한 지리 정보를 수집하여 모은 지도였다.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전라도의 무주를 포함하여 전국 8도를 부(府), 목(牧), 군(郡),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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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9년까지의 무주부와 관련된 지리 정보들을 모은 읍지. 『무주부 읍지(茂朱府邑誌)』[1759]는 1759년(영조 35)의 호구 조사를 바탕으로 방리편에서 면별로 인구수를 수록한 것으로 미루어 그 이후에 편찬된 지리지로 볼 수 있다. 무주부에서 편찬한 읍지로, 이후에 완성된 『호남 읍지』[무주부]와 『적성지(赤城誌)』의 중요한 자료로 이용되었을 것으로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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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 문화원에서 조선시대 무주 지역에 재임하였거나 임명되었던 관리들의 이름과 그들의 행적을 모아 2008년에 발행한 책. 『조선시대 무주군 선생안(朝鮮時代茂朱郡先生案)』은 조선시대 무주군에 부임하여 봉직한 수령들의 명단과 각 수령의 재임 당시 정치·행정·사회상 무주와 관련되어 일어난 일들, 그 외의 공식적 또는 비공식적으로 무주 지역을 찾아왔던 인물들의 묵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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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로 이거한 문신 이유태의 시문집. 이유태(李惟泰)[1607~1684]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태지(泰之), 호는 초려(草廬)이다. 할아버지는 선공감 봉사(繕工監奉事) 이대방(李大邦)이고, 아버지는 증참판(贈參判) 이서(李曙)이다.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에게 나아가 학문을 닦았으며,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을 따라 『상례 비요(喪禮備要)』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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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구천동 일대에 전승되는 이야기. ‘덕유산(德裕山)’이라는 이름 그대로 덕이 넉넉히 깃든 덕유산은 사계절 모두 헌걸찬 기상을 보여 주는 산이다. 해발 1,614m로 한국에서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 등에 이어 네 번째로 높은 산이며, 12명산 중의 하나로 꼽힌다. 전라북도와 경상남도의 4개 군, 8개 면을 아우르고 있는 덕유산은 깊은 골에서 흘러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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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장덕리 덕유산에 있는 계곡. 갈천(葛川) 임훈(林薰)의 기행문 중 「덕유산 향적봉기(德裕山香積峰記)」에서 ‘구천동(九千洞)’이라는 명칭이 사료에 처음 언급되었는데, 여기서는 ‘구천동’의 동(洞)을 둔(屯)으로 표현하였다. 여기서 동(洞)은 뜻 그대로 시(市)나 구(區), 읍(邑) 아래의 말단 행정 구역을 가르키는 말이고, 둔(屯)은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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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에서 이루어지는 문화 예술 활동 및 관련 단체. 일제 강점기를 거치고 8·15 광복과 6·25 전쟁 등 격동의 혼란 속에서 상처 입은 민족의 자존심 회복과 산산이 부서진 전통문화를 재건하고자 하는 문화 의식이 피어나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후반부터이다. 이때부터 전국 각 지역에서 복지관·문예관·공보원·문화원 등 다양한 명칭으로 자생된 사설 문화 시설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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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화가 최북의 그림과 일화. 최북(崔北)[1713?~1786?]은 조선 숙종(肅宗), 영조(英祖) 때의 화가이다. 초명은 최식(崔埴), 자는 성기(聖器)·유용(有用), 호는 칠칠(七七)·월성(月城)·성재(星齋)·기암(箕庵)·거기재(居基齋)·삼기재(三奇齋)·호생관(毫生館)이다. 호의 하나인 ‘칠칠(七七)’은 자신의 이름인 북(北) 자를 반으로 쪼개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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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화가 최북의 그림과 일화. 최북(崔北)[1713?~1786?]은 조선 숙종(肅宗), 영조(英祖) 때의 화가이다. 초명은 최식(崔埴), 자는 성기(聖器)·유용(有用), 호는 칠칠(七七)·월성(月城)·성재(星齋)·기암(箕庵)·거기재(居基齋)·삼기재(三奇齋)·호생관(毫生館)이다. 호의 하나인 ‘칠칠(七七)’은 자신의 이름인 북(北) 자를 반으로 쪼개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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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지역에서 활동한 화원승. 신민(信敏)은 숙종 때 활동한 화원승(畫員僧)이다. 젊어서는 무뢰배(無賴輩)로 일반 대중과 어울리지 못하였다. 하루는 절 안의 승려들이 그림 공부하는 것을 보고, 자기도 배우고 싶어 배우기를 청하였으나 화승이 업신여기고 거절하였다. 그러자 혼자 방 안에 들어앉아 밤낮으로 1년 동안 쉬지 않고 여러 불상을 그리는 방법을 연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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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죽천리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 절터. 1698년(숙종 24)에 건립된 원통사 중창비(圓通寺重創碑)에 따르면, 원통사(圓通寺)가 신라 때 창건된 사찰로 기록되어 있으나 정확한 창건 시기와 사역, 가람 배치 등은 알 수 없다. 비문에는 조선 숙종(肅宗) 때 승려 탄언과 도영, 혜옥, 일학 등이 법당과 종각을 중창하고 동종을 주조하는 등의 대불사가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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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지역에 낙향한 문신이자 유학자.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태지(泰之), 호는 초려(草廬). 아버지는 유학(幼學) 이서(李曙)이고, 어머니는 청풍 김씨(淸風金氏)이다. 이유태(李惟泰)[1607~1684]는 충청남도 금산군에서 다섯 아들 가운데 셋째로 태어났다. 금산은 본래 전라도 지역에 속하였으나 1963년 충청남도에 편입되었다. 김집(金集)의 천거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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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장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정자 터. 초려(草廬) 이유태(李惟泰)는 처음에는 지금의 상산(上山)인 산미촌(山味村)에서 살았는데, 이 터에 서재(書齋)를 짓고 자신의 호를 따서 ‘초려정(草廬亭)’이라 하였다. 초려정에서 매일 학자들과 학문을 연구하며 수련하였다고 한다. 이유태는 스승 김집(金集)의 천거로 1634년(인조 12)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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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당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화가 최북의 미술관. 조선 후기 화가로 이름을 날린 호생관(毫生館) 최북(崔北)[1712~1786?]은 정확하게 전하는 생몰년의 기록이 없으나, 숙종 때 태어나 영조 때까지 그림을 그리다가 생을 마친 무주 출신 화가이자 여항 시인(閭巷詩人)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최북미술관(崔北美術館)은 중국 산수의 형세를 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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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무주 백산 서원 타진사에 배향된 문신. 하연(河演)[1376~1453]은 세종(世宗)이 즉위하자 지신사(知申事)가 되어 상왕(上王)이던 태종(太宗)과 세종 사이를 오가며 중개자 역할을 하여 그 능력을 인정받았고, 이후 외직과 내직을 번갈아 지내면서 영상(領相)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비교적 순탄하게 관직 생활을 하였다. 때로는 대간의 탄핵을 받아 관직에서 물러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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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무주 백산 서원 타진사에 배향된 문신. 하연(河演)[1376~1453]은 세종(世宗)이 즉위하자 지신사(知申事)가 되어 상왕(上王)이던 태종(太宗)과 세종 사이를 오가며 중개자 역할을 하여 그 능력을 인정받았고, 이후 외직과 내직을 번갈아 지내면서 영상(領相)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비교적 순탄하게 관직 생활을 하였다. 때로는 대간의 탄핵을 받아 관직에서 물러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