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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시대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500313
한자 靑銅器時代
영어공식명칭 Bronze Age
이칭/별칭 무문 토기 시대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북도 무주군
시대 선사/청동기
집필자 이종철

[정의]

전라북도 무주 지역에서 청동기로 도구를 만들고 민무늬 토기를 사용하던 시대.

[개설]

우리나라의 청동기시대는 민무늬 토기[무문 토기(無文土器)] 문화와 청동기 문화로 대표되는 시대로서 토기와 청동기에 대한 문화적·시대적 비중이 매우 높다. 청동기시대는 조기, 전기, 중기, 후기로 구분하는 것이 일반화되고 있는데 여기에는 민무늬 토기에 대한 연구 성과가 반영되어 있다. 이와 같은 시기 구분에 청동기는 전기와 중기에 요령식 동검 문화(遼寜式銅劍文化)가, 후기에 한국식 동검 문화(韓國式銅劍文化)가 각각 위치하고 있다. 요령식 동검 문화는 비파(琵琶) 형태의 동검을 표지로 하는 문화권으로서 요령 지역과 만주 지역, 한반도를 공간적 배경으로 한다.

한국식 동검 문화는 좁은 놋단검[세형 동검(細形銅劍)]으로도 불리는 동검을 표지로 하며 한반도를 공간적 배경으로 한다. 한국식 동검 문화가 유행하던 기원전 3세기~기원전 2세기 대에는 한반도에 철기 문화가 출현하면서 철기 시대로 돌입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청동기시대는 미사리 유형이 등장하는 기원전 15세기 대부터 철기 문화가 도래하기 직전인 기원전 4세기 대까지를 시간적 배경으로 한다.

무주 지역에서 청동기시대의 존재는 가장 먼저 고인돌에서 찾을 수 있다. 무주 지역에서 확인된 25곳의 청동기시대 유적 중 20곳이 고인돌 유적이다. 나머지 5곳은 민무늬 토기편이나 간 석기[마제 석기(磨製石器)] 등이 출토된 유물 산포지이다. 20곳의 유적에서 확인된 고인돌은 37기 이상이었을 것으로 집계되는데, 경작이나 시설물 설치로 파괴되어 없어진 것까지 포함한다면 대략 50여 기 내외였을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고인돌이 발견된 인근 지역에서 마을 유적으로 추정될 만한 유물 산포지는 확인되지 않아 당시 마을 경관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따라서 무주 지역의 청동기시대는 고인돌에 근거하여 설명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무주 지역의 고인돌]

무주 지역의 청동기시대는 고인돌 문화로 대변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인돌 외에는 아직까지 밝혀진 바가 없기 때문이다. 고인돌을 통해 알 수 있는 시기적 특징은 사천리 고인돌 떼1에서 확인할 수 있다. 1982년에 이루어진 무주 지역 최초의 고인돌 조사로서 긴급하게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관점에서 고인돌의 시기와 성격을 어느 정도 밝힐 수 있는 사례가 되었다. 2기의 고인돌 중 1기가 조사되었는데, 지석이 있는 기반식으로서 매장 주체부인 무덤방은 돌널[석관(石棺)]형으로 축조되었다. 무덤방에서는 손잡이가 있는 일단 병식 돌검[석검(石劍)]과 길이가 긴 일단 경식 돌살촉[석촉(石鏃)]이 출토되었기 때문에 청동기시대 중기에 해당하는 고인돌임을 알 수 있다. 역으로, 고인돌에서는 점토 띠 토기[점토대 토기(粘土帶土器)]나 한국식 동검 문화 요소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이전 시기에 축조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사천리 고인돌 떼1은 기반식으로 축조되었기 때문에 인근의 진안 용담댐 수몰 지구에서 조사된 고인돌 유적들과의 직접적인 관련성을 언급하기에는 무리 이다. 묘역식 고인돌로 대표되는 진안 지역의 고인돌과 형식적으로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이 첫 번째 이유가 된다. 물론 함께 발견되는 뚜껑돌[개석(蓋石)]식 고인돌의 향후 발굴 조사 결과를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국리형(松菊里型) 문화 단계에 무주 지역과 진안 지역을 포함하는 섬진강(蟾津江) 유역권에서 비묘역식(非墓域式)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거의 동일한 시기에 계통이나 형식을 달리하는 고인돌 집단이 전라북도의 동부 내륙 지역에 존재하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청동기시대 중기]

청동기시대 중기는 우리나라 전역에 송국리 유형이 보편화되는 시기로 송국리형 문화 단계에 해당한다. 연구자마다 시각차가 존재하지만 청동기시대 중기는 기원전 9세기 대~기원전 6세기에 해당되며, 송국리형 문화는 기원전 9세기 대~기원 전후까지 지속되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청동기시대 중기를 대표할 수 있는 것으로는 고인돌과 송국리형 집터, 청동기, 간 석기, 민무늬 토기 등이 있다.

청동기시대 중기의 고인돌 집단은 대부분 송국리형 마을이라는 인문 경관을 이루었다. 집은 원형이나 방형 형태의 움집으로 바닥 중앙에는 일반적으로 돼지 코 형태의 구덩이 시설과 기둥을 설치하였다. 이러한 집은 적게는 2기~3기, 많게는 수십 기가 모여 하나의 마을을 이루었는데 주로 하천 변의 충적 대지나 구릉상에 위치한다. 따라서 무주 지역의 고인돌 떼가 대부분 하천 변, 구릉이나 경사면에 입지하고 있기 때문에 향후 정밀 조사가 이루어진다면 무덤 구역과 주거 지역이 하나로 통합된 명실상부한 마을을 설정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무주 지역에서는 아직까지 청동기가 출토된 바 없으며, 대부분 간 석기와 민무늬 토기에 집중되어 있다. 간 돌검[마제 석검(磨製石劍)]과 간 돌 화살촉[마제 석촉(磨製石鏃)]이 일괄로 출토된 곳은 앞에서 설명한 사천리 고인돌 떼1이며, 간 돌 화살촉은 청량리 유물 산포지(淸凉里遺物散布地)9와 기곡리 유물 산포지(基谷里遺物散布地)2의 출토품과 국립 중앙 박물관 소장 청량리 출토품이 있다. 돌살촉 중에는 15㎝ 이상의 세장형 돌살촉도 발견되었다. 돌도끼[석부(石斧)]와 갈판[연마석(硏磨石)]은 기곡리 유물 산포지7에서 확인되었다. 민무늬 토기는 사천리 고인돌 떼3이 있는 무주군 적상면 사천리 길왕리 마을과 소천리 유물 산포지(所川里遺物散布地)1에서 출토되었다. 무주군 적상면 사천리 길왕리 마을에서 출토된 민무늬 토기편은 저부편만 있어 전체적인 형태는 알 수 없다. 다만 사천리 고인돌 떼와 거의 동일 시기로 가정한다면 구연부가 외반하고 동체부가 배부르며 저부 쪽으로 갈수록 좁아 드는 송국리식 토기일 가능성이 높겠다. 이러한 토기는 일단 병식 돌검과 함께 청동기시대 중기를 대표하는 기종으로, 앞으로 출토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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