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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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전주 대학교 박물관에서 간행한 무주 지역의 문화재 지표 조사 보고서. 국가의 값진 땀과 슬기가 응집되어 있는 귀중한 문화유산이 무관심과 무지, 또는 화란(禍亂)으로 훼손되고 유실되는 사례가 생긴다. 따라서 우리의 문화유산을 재평가하고, 새로운 문화재를 발굴함으로써 조상의 발자취를 바로 알고, 문화재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필요성이 있다. 이에 1988년 12월 20일 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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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전라북도 무주군에서 교육과 제향을 목적으로 건립한 사설 교육 기관. 서원(書院)은 조선 중기 이후 설립된 사설 교육 기관이면서 향촌 자치 기구이다. 서원은 교육 시설과 제향 시설로 구성되며, 전면에 교육 시설이, 후면에 제향 시설이 위치하고 있다. 서원은 사우(祠宇)와 혼용되어 사용되기도 하나 목적과 기능에 있어 차이가 있다. 서원은 인재의 양성과 교육에 목적이 있는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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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행을 시조로 하고, 권칭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무주군의 세거 성씨. 안동권씨는 경상북도 안동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이다. 처음 무주에 이거한 인물은 권칭(權稱)으로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철목리에 세거하였고, 무주군 안성면 덕산리로 이거한 권춘(權春)과 권귀열(權龜悅)이 있다. 안동권씨의 시조 권행(權幸)은 안동에서 대대로 세거하던 집안의 인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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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에서 이루어지는 공자의 사상과 관련된 학문과 의례 및 활동 일반. 유교(儒敎)는 공자(孔子)와 맹자(孟子), 주희(朱熹) 등 유학 선구자들의 정치사상과 학문 수양, 생활 의례 등의 가르침을 실천하려는 현세적 사상이다. 우리나라에 유교가 전래된 것은 한자(漢字)의 도입 시기와 일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교는 「임신서기석(壬申誓記石)」이 말해 주는 것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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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아를 시조로 하고, 최영보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무주군의 세거 성씨. 전주최씨(全州崔氏)는 크게 네 개의 파로 나뉘는데, 완산부 개국백(完山府開國伯)에 봉해진 최순작(崔純爵)을 시조로 하는 문열공파(文烈公派), 완산군(完山君)에 추봉된 최균(崔均)을 시조로 하는 사도공파(司徒公派), 완산 부원군(完山府院君)에 봉해진 최군옥(崔群玉)을 시조로 하는 문충공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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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에서 이루어지는 제반 신앙 행위의 총칭. 전라북도 무주 지역 종교의 발전을 역사 문화적으로 크게 나눠 본다면, 첫째는 고대 시대에 중국이나 인도 등으로부터 전래된 불교(佛敎)·유교(儒敎) 등의 종교의 흐름, 둘째는 조선 후기 천주교의 전래와 개신교의 확산, 셋째는 서학(西學)의 전래에 대응하여 한국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동학(東學)·원불교(圓佛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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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철목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사당. 조선 태종(太宗) 때 무풍현의 마지막 현감(縣監)을 지낸 최영보(崔永甫)의 가족이 머물러 살게 되면서 무주군 무풍면 철목 마을이 번창하게 되었다. 최영보의 후손인 죽헌(竹軒) 최활(崔活)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 죽림사(竹林祠)이다. 최활은 조선 후기의 유학자로 형제들을 잃고 세상이 명리(名利)만을 따르는 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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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철목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사당. 조선 태종(太宗) 때 무풍현의 마지막 현감(縣監)을 지낸 최영보(崔永甫)의 가족이 머물러 살게 되면서 무주군 무풍면 철목 마을이 번창하게 되었다. 최영보의 후손인 죽헌(竹軒) 최활(崔活)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 죽림사(竹林祠)이다. 최활은 조선 후기의 유학자로 형제들을 잃고 세상이 명리(名利)만을 따르는 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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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철목리에 있는 개항기 이만경의 효자각. 이만경(李晩景)[1691~1776]의 자는 군진(君珍), 호는 두촌(斗村), 본관은 흥양(興陽)이다. 어렸을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는데, 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져 여러 해를 지나자 병이 더욱 깊어져 옆으로 돌아누울 때도 다른 사람의 부축을 받아야 하고, 말마저 어눌하게 되어 말끝을 맺지 못하게 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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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전주(全州). 아명은 승대(承垈), 호는 송포(松圃). 아버지는 효행과 학문으로 이름이 높고, 무주 죽림사(竹林祠)에 위패가 봉안된 최활(崔活)이다. 최익붕(崔翼鵬)[1810~1872]은 1810년(순조 10)에 태어났다. 풍채도 좋고 재주도 뛰어난 인물이었으며, 무엇보다도 효심이 깊었다. 최익붕은 아버지가 병환으로 누워 있자, 병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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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죽림사에 제향된 유학자.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청원(淸源), 호는 죽헌(竹軒). 아버지는 현감을 지낸 최영보(崔永甫)이다. 최활(崔活)[?~?]은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부모의 상(喪)을 당하여 여묘살이를 하였다. 성품이 청렴하고 검소하였다. 평생 정주학(程朱學)을 연마하는 데 전념하였는데, 특히 『소학(小學)』의 실천을 역설하면서 많은 후학을 양성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