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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500520
한자 烽燧
영어공식명칭 The Becon Signal Fire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북도 무주군
시대 고대/삼국 시대,고대/남북국 시대,고려/고려 전기,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조명일

[정의]

전라북도 무주군에 있는, 불과 연기를 이용해 소식을 전하던 삼국 시대~조선 시대의 통신 수단.

[개설]

봉수(烽燧)란 횃불과 연기를 이용하여 변방의 긴급한 군사 정보를 중앙에 알리던 통신 수단으로 18세기 말 전신 전화가 보급되기 전까지 사용되었다. 우리나라의 봉수는 삼국 시대부터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문헌에 구체적인 자료가 등장하는 것은 고려 시대 이후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대략 600여 개소의 봉수가 확인되고 있는데, 개략적인 수량 및 현황만이 파악되었을 뿐 체계적인 조사와 연구는 미미한 실정이다.

지금까지 조사된 자료에 의하면 전라북도 무주군에서는 10여 개소의 봉수가 확인되고 있는데, 이와 관련된 기록은 전혀 전하지 않으며, 봉수 제도가 확립된 조선 시대 5봉수로의 직봉(直烽)과 간봉(間烽)도 통과하지 않는다. 다만 최근에 무주군의 남쪽에 접한 전라북도 장수군에 분포된 봉수들에 대한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는데, 봉수의 조성 시기가 삼국 시대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드러나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무주군에 분포되어 있는 봉수들은 모두 두 인근 지역인 장수군, 진안군, 충청남도 금산군에 분포된 봉수들과 직접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삼국 시대에 운영되었을 가능성이 고려된다.

[무주군 봉수의 분포 현황]

봉수는 변방의 급보를 중앙에 신속히 알리기 위한 수단이므로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교통로를 조망하기에 유리한 곳에 위치한다. 무주군의 봉수들도 금강의 본류 및 지류를 따라 형성된 교통로와 백두 대간을 넘는 주요 고갯길을 감시하기 좋은 곳에 분포되어 있다. 먼저 금강의 지류인 안장천과 적상천을 따라 형성된 교통로를 따라 남북 방향으로 한 갈래의 봉수가 형성되어 있는데, 충청남도 금산군과 전라북도 무주군의 경계를 이루는 지삼치(芝三峙)의 서쪽에 있는 가당리 수로봉 봉수(柯堂里水路峰烽燧)를 시작으로 용포리 노고산 봉수(龍浦里老姑山烽燧)~굴암리 조항산 봉수(屈岩里鳥項山烽燧)~방이리 구리골산 봉수~진도리 봉화산 봉수(眞道里烽火山烽燧)~죽천리 매방제산 봉수(竹川里梅芳齊山烽燧)가 대략 4㎞~6㎞의 간격을 두고 연결되어 있다. 특히 안장천과 적상천, 남대천 등이 하나로 합류하는 수륙 교통로의 요지인 무주군 무주읍 용포리 일원에는 3개소의 봉수와 1개소의 산성이 밀집되어 있어 그 중요성이 매우 컸음을 알 수 있다.

두번째로 무주군의 동쪽을 에워싸고 있는 백두 대간의 산줄기를 따라 향적봉(香積峯)~만봉(萬峯)~시루봉~삿갓봉으로 이어지는 봉수가 형성되어 있다. 이 봉수들은 백두 대간을 넘는 주요 고갯길인 검령(劍嶺), 동엽령, 월성치는 물론, 동쪽으로 경상북도 김천시, 경상남도 거창군 일원이 한눈에 조망되는 곳에 입지하여, 백두 대간을 통해 무주 지역으로 진입하는 적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무주군 봉수의 특징과 의의]

아직까지 무주군에 분포되어 있는 봉수들에 대한 체계적인 학술 조사가 단 한 차례도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봉수의 정확한 운영 시기 및 구조 등은 전혀 알 수 없는 실정이다. 다만, 일반적으로 알려진 조선 시대 봉수와 비교해 볼 때, 그 면적이 매우 협소하며 정연한 형태의 연대 또는 연조 등의 시설물 등이 확인되지 않는다. 또한 봉수에서 삼국 시대 이후의 유물이 전혀 발견되지 않으며, 고려 시대 이후 문헌 자료에서도 봉수와 관련된 기록이 전혀 확인되지 않는다. 또한 최근에 무주 봉수로의 종착지로 알려진 전라북도 장수군에 분포된 3개소의 봉수를 대상으로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는데, 모두 삼국 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러한 점을 모두 고려해 볼 때, 무주군에 분포되어 있는 봉수들은 삼국 시대에 운영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무주군을 비롯한 전라북도 동부 지역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삼국 시대 봉수의 존재가 확인되고 있는 곳으로 그 역사적 중요성이 매우 큰 곳이다. 그러나 봉수에 대한 관심이 타 유적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다 보니 제대로 된 조사와 관리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방치되어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곳이 대다수이다. 다만 가당리 수로봉 봉수진도리 봉화산 봉수 등은 비교적 잔존 상태가 양호하기 때문에, 향후 체계적인 조사가 이루어진다면 무주군 봉수의 양상을 보다 면밀히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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