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500352
한자 茂朱4·1萬歲運動
영어공식명칭 Muju April First Independence Movement
이칭/별칭 무주 3·1 운동,무주 3·1 만세 운동,무주 시장 만세 운동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윤상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19년 4월 1일연표보기 - 무주 4·1만세운동 발발
성격 독립 만세 운동
관련 인물/단체 전일봉|여올 교회

[정의]

1919년 4월 1일 무주 지역에서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

[역사적 배경]

1919년 3월 1일 서울 탑골 공원에서 시작된 전민족적·전민중적 봉기인 3·1 만세 운동은 곧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경과]

무주군에 독립 선언서가 전달된 것은 1919년 3월 7일경이었다. 무주 지역의 만세 운동을 주도한 인물은 전일봉(全日奉)[1896~1950]으로 서울에서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나자 만세 운동을 벌이기로 결심하고, 동생 전기봉, 한태선, 서재순 등과 만나 4월 1일 무주읍 장날을 이용해 만세 시위를 일으킬 것을 계획하였다. 4월 1일 무주 장날이 되자 전봉일은 동지들과 더불어 여올 교회에 숨겨 놓았던 태극기를 무주읍까지 운반하고 오후가 되기를 기다렸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오후 2시경 40~50명이 태극기를 들고 시장 한복판에 모였고, 전일봉이 앞에 나서 독립운동에의 궐기를 호소하며 주위의 청년들과 함께 만세를 불렀다. 시위는 무주 헌병 분견대에 의해 해산되었다. 그날 밤 시위대는 읍내 주위의 산성에 올라가 횃불을 올리고 만세를 불렀다. 야간 횃불 시위는 봉화와 함께 이 산에서 저 산으로 번져 산발적인 시위가 계속되었다.

[결과]

무주 4·1만세운동을 주도한 전일봉과 무주 보통 학교 학생 3명이 헌병에게 체포되었다. 학생들은 얼마 후 훈방되었으나 전일봉은 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어 8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 무주 4·1만세운동 이후 무주 지역에서는 신흥 종교인 증산교[흠치교]와 공도회 등을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시위가 전개되었다. 이후 5월까지 7회에 걸쳐 3,500여 명이 참여하였다.

[의의와 평가]

무주 4·1만세운동 이후 무주 지역민들의 사회 의식, 민족 의식이 크게 높아지면서 여러 방면으로 독립운동이 지속되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