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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지도』 「전라도 무주부」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500239
한자 海東地圖全羅道茂朱府
영어공식명칭 Haedongjido Jeollado Mujubu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유물/서화류
지역 전라북도 무주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최진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현 소장처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신림동 산56-1]
성격 고지도
문화재 지정 번호 보물

[정의]

조선 후기에 제작된 『해동지도』에 수록되어 있는 전라도 무주부 지도.

[개설]

『해동지도(海東地圖)』는 1750년대 초에 그린 지도책으로, 후대에 제작된 지도들의 모범이 될 정도로 지리 정보들이 회화식으로 채색되어 있다. 영조 대에 작성된 도별 읍지인 『여지도서(輿地圖書)』의 제작 연대와 비슷한 시기로 추정되며, 도별 읍지를 보완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지도책으로 여겨진다. 『해동지도』는 2008년 12월 22일 보물 제1591호로 지정되었으며,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형태 및 구성]

『해동지도』는 전국 8책으로 구성된 채색 필사본 지도책으로, 제1책 경기도, 제2책 해서 전도·관서 전도, 제3책 관동 전도·북관 전도, 제4책 서북 피아 양계 전도, 제5책 영남 전도, 제6책 호서 전도, 제7책 호남 전도, 제8책 팔도 총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무주부는 제7책 호남 전도에 포함되어 있다.

『해동지도』 「전라도 무주부」 는 조선 후기의 무주군에 속한 무주 읍치와 무주 적상산성을 중심으로 부내면(府內面), 상곡면(裳谷面), 서면(西面), 신동면(新東面), 유가면(柳加面), 이안면(二安面), 일안면(一安面), 풍남면(豊南面), 풍동면(豊東面), 풍서면(豊西面), 횡천면(橫川面) 등을 비롯하여 각 면에 속한 마을[里]이 기록되어 있다. 이로 미루어 후대에 그려진 『1872년 군현 지도』「전라도 무주부」와는 똑같은 행정 구역을 관할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함께 무주 읍치는 동헌을 포함한 아사(衙舍), 객사(客舍) 등의 행정 경관과 함께 제사 경관은 향교만 표시되어 있다. 무주 적상산성은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을 보관하고 있던 사고를 중심으로 객사와 선원각만 그려져 있으며, 산성의 출입을 위한 통로는 북창만 표현되어 있다. 또한 도로와 마을 등의 인문 경관과 함께 주요 산과 고개 및 하천과 호수 등의 자연 경관도 그려져 있다. 지도 하단에 위치한 부기(附記)에는 ‘대천(大川)’과 ‘남천(南川)’이 수록되어 있으나 지도에는 누락되어 있다. 인문 경관으로는 누정(樓亭)인 한풍루(寒風樓)환수정(喚睡亭)이, 사찰로는 청량 사원, 원통사 및 구천동사가 그려져 있으나 부기에 기록된 안국사(安國寺)는 생략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1872년 군현 지도』「전라도 무주부」에 비해 약 100년 이상 앞선 시대에 그려진 지도라서 그런지 지리 정보들이 적게 그려져 있으나, 역원 제도와 관련된 소천역(所川驛)[풍서면 소재]과 유등원(柳等院)[용담계 부근]이 표기되어 있다는 점에서 당시까지 역원 제도가 잘 유지된 것을 알 수 있다.

[특징]

무주 읍치는 『여지도서』「전라도 무주」 산천(山川) 조에 '고을의 으뜸이 되는 산줄기'로 표현된 향로봉(香爐峯)[향로산이라고도 함] 아래 자리잡고 있다. 조선 시대에는 풍수적 명당 논리에 의해 읍치의 터를 잡았기에 가장 중요한 권위의 공간인 아사[동헌을 포함]가 객사 옆에 위치하고 있다. 이 아사를 중심으로 『주례 고공기(周禮考工記)』의 공간 배치 원리, 즉 '좌종묘(左宗廟) 우사직(右社稷)'의 원칙이 적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아사의 좌측에 무주 향교만 있고 그 우측에 위치하였던 사직단은 그려져 있지 않다. 모든 읍치에 공통적으로 있던 객사(客舍), 향교(鄕校), 사직단(社稷壇), 여단(厲壇) 등의 제사처가 무주 읍치에도 분포되어 있었는데, 『해동지도』「전라도 무주부」에는 객사를 제외하고는 모두 누락되어 있다. 이로 미루어 당시의 지도 제작자들에게 이러한 제사 경관들은 후대에 비해 중요성이 적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지만 무주부의 지형, 지세와 관련된 지리 정보들은 모두 수록하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험애(險隘)’라고 표현된 고개들인 가마치 험애, 괴목치 험애, 예치 험애, 월성령 험애, 전구령 험애, 주치 험애, 치마치 험애 등을 비롯하여 수많은 고개들이 수록되어 있다. 이로 미루어 『1872년 군현 지도』와 비교할 때 지도를 그리는 관점과 대상이 많이 달랐음을 알 수 있다.

[의의와 평가]

『해동지도』 「전라도 무주부」 는 약 100년 후에 그려진 『1872년 군현 지도』「무주부」와 비교해서 관할 구역은 같지만, 향교, 사직단, 여단 등 제사 경관들은 누락되어 있지만 자연 경관인 고개들은 상대적으로 많이 수록되어 있다. 이로 미루어 전자와 후자는 시대에 따라 주요 관심사가 달랐음을 알 수 있는 자료로서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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