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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부 읍지』[1759] 이전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500233
한자 茂朱府邑誌
영어공식명칭 Mujubueupj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문헌/전적
지역 전라북도 무주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최진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편찬 시기/일시 1759년 이후 - 『무주부 읍지』 편찬
간행 시기/일시 1759년 이후 - 『무주부 읍지』 간행
소장처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신림동 산56-1]
성격 지리지
권책 1책
규격 21.4×30.2㎝

[정의]

1759년까지의 무주부와 관련된 지리 정보들을 모은 읍지.

[편찬/간행 경위]

『무주부 읍지(茂朱府邑誌)』[1759]는 1759년(영조 35)의 호구 조사를 바탕으로 방리편에서 면별로 인구수를 수록한 것으로 미루어 그 이후에 편찬된 지리지로 볼 수 있다. 무주부에서 편찬한 읍지로, 이후에 완성된 『호남 읍지』[무주부]『적성지(赤城誌)』의 중요한 자료로 이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형태/서지]

1책 6장의 필사본으로, 크기는 21.4×30.2㎝이다.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무주부 읍지』의 구성은 고지도, 무주부 남원 진관(鎭管), 강계(疆界), 방리(坊里), 호구(戶口), 도로(道路), 건치 연혁(建置沿革), 군명(郡名), 형승(形勝), 관직(官職), 산천(山川), 성씨(姓氏), 풍속(風俗), 단묘(壇廟), 공해(公廨), 제언(堤堰), 창고(倉庫), 교량(橋梁), 역원(驛院), 누정(樓亭), 사찰(寺刹), 고적(古蹟), 진보(鎭堡), 인물(人物), 한전(旱田), 수전(水田), 진공(進貢), 조적(糶糴), 전세(田稅), 대동(大同), 선무(選武), 봉름(俸廩), 군병(軍兵) 등으로 되어 있다. 고지도에는 무주 읍치와 무주 적산산성을 중심으로 행정 경관인 관아를 중심으로 그려져 있으며, 소속 면들과 산천 및 도로 등이 간단하게나마 나타나 있다. 또한 무주부 남원 진관 조에는 방리와 도로가, 인물 조에는 고려와 조선의 충신과 효자 및 열녀가 자세하게 수록되어 있다. 남원 진관 항목은 무주부가 남원 진관 소속이기는 하지만 수성장(守城將)이 토포사(討捕使)를 겸하고 있어서 실제로는 독진(獨鎭)이라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무주부 읍지』가 조선 전기에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비해 두드러진 내용으로는 방리 조에 무주부의 인구수를 기록한 것이다. 무주부 관내 10개 소속 면들의 호구 수와 남녀별 인구수까지 기술하고 있는데, 당시 무주부의 호구 수는 5,405호로 남자는 7,309명, 여자는 5,886명이라고 되어 있다. 또 성씨 조에서는 본관까지 수록되어 있으며, 제언과 창고 등이 추가되어 있다. 이외에도 수취 제도와 관련된 내용들[전답, 진공, 조적, 전세, 대동]이 많이 보완된 것으로 미루어 숙종 대에 완성된 대동법과 관련하여 영조 연간에 국가 재정의 확충을 위한 조세 제도가 국가의 중요한 정책으로 강조된 결과로 여겨진다.

[의의와 평가]

조선 전기의 관찬 지리지인 『세종실록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이 대표적인 지리지라면, 조선 후기에는 『택리지(擇里志)』로 대표되는 사찬 지리지들이 많이 편찬되었다. 『무주부 읍지』는 조선 후기의 사찬 지리지의 하나로 편찬되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으며, 영조 대의 수취 제도와 관련된 대동법 및 균역법과 관련된 세금 부과와 조세 징수의 합리성이 전라도 무주에서 시행되고 있던 과정을 잘 보여주는 책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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