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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500154
한자 大柳里
영어공식명칭 Daeyu-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 대유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명광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 대유리 개설
성격 법정리
면적 12.25㎢
가구수 99가구
인구[남/여] 184명[남 90명/여 94명]

[정의]

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대유리(大柳里)는 같은 행정 구역으로 구획된 대티[大峙] 마을의 ‘대(大)’ 자와 유동 마을의 ‘유(柳)’ 자를 따서 만든 이름이다.

[형성 및 변천]

대유리는 본래 금산군에 속한 곳으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무주군 부남면 대유리로 개설하였다. 그 후 행정리를 나눌 때 대티 마을을 대유 1리로 하고 유동 마을과 봉길 마을을 대유 2리로 하였다가 1972년 군 조례 개정 때 옜 이름인 대티리와 유동리로 각각 개칭하였다. 대티 마을, 유동 마을, 봉길 마을 등 3개의 자연 마을이 있다.

[자연환경]

대유리부남면의 북쪽에 위치한다. 서쪽에는 구봉(鉤峰)이 있고, 대소리를 거쳐 흘러 내려온 금강이 유동 마을 앞에서 크게 곡류하며 동남쪽으로 흐르다 다시 북쪽으로 돌아가면서 섬처럼 마을을 이루는데, 지형이 마치 봉의 부리와 같이 생겼다고 하여 ‘봉황혈(鳳凰穴)’이라고 한다. 이러한 풍수 지리설에 사람들은 길한 땅으로 여기고 정착하면서 ‘봉길(鳳吉)[봉소]’이라는 지명이 붙었다고 한다. 공수말 동북쪽에 있는 마을로 골짜기가 많은 돼기[두억(斗億)], 공수말 서남쪽에 있는 마을로 큰 나무가 많은 목소골[木沙·木所谷]이 있다.

[현황]

대유리금강을 사이에 두고 동쪽은 무주군 부남면 굴암리, 남쪽은 무주군 부남면 대소리와 인접하고, 서쪽은 구봉을 기점으로 남쪽은 전라북도 진안군과 군계를 이루고, 북쪽은 목사리재 능선을 따라가면서 충청남도 금산군과 도계를 이룬다. 한편 북쪽은 한티재[大峙] 너머로 무주군 부남면 가당리와 접한다. 2017년 1월 현재 면적은 12.25㎢이며, 대티리와 유동리의 2개 행정리에 99가구, 184명[남 90명/여 94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대티 마을에는 먼 옛날 마을에 살던 처녀, 총각이 사랑을 하다가 가문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끝내 강물에 몸을 던져 죽은 후 한 쌍의 하얀 기러기[白鷗]가 되어 지금도 살고 있다는 상사 바위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또한 김해 김씨(金海金氏)의 열녀비가 동구 밖 언덕 위에 서 있고, 6·25 전쟁 전 반공의 대열에 섰다가 좌익 세력에게 희생당한 청년들을 기리는 반공 청년 추모비(反共靑年追慕碑)가 마을 어귀 ‘숲거리’에 조성되어 있다. 유동 마을에는 옛날 천상(天上)에서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하고 올라가려다 천의(天衣)를 잃고 인간 세상에 남아 결혼하여 아들 셋을 낳았는데, 후에 천의를 찾아 입고 하늘로 올라가려다가 벼락을 맞고 떨어져 바위가 되어 버렸다는 ‘각씨소’의 전설이 내려온다. 1948년 부남 국민학교[현 부남 초·중학교] 대유 분교장이 건립되었으나 폐교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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