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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500605
한자 大柳里密陽朴氏古文書
영어공식명칭 Documents of the Milyang Bak Clan in Daeyu-ri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문헌/문서
지역 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 대유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철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작성 시기/일시 1828년연표보기 - 대유리 밀양박씨 고문서 작성
발급 시기/일시 1828년 - 대유리 밀양박씨 고문서 발급
소장처 밀양박씨 박영근 가 - 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 대유리 지도보기
성격 고문서
관련 인물 박악지|박한룡|박동철
용도 호구 단자

[정의]

조선 후기에 작성된 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 대유리 밀양박씨 문중 소장 고문서.

[개설]

호구 단자(戶口單子)는 개인이 관에 제출하는 호적 단자를 말한다. 호구의 성적(成籍)은 조선 시대에 3년마다 돌아오는 식년(式年)에, 즉 간지가 자·묘·오·유(子卯午酉)로 끝나는 해에 호주가 집안의 호구를 적어서 관에 제출한다. 호적은 상당히 오래 전부터 존속한 것으로 보인다. 신라 시대의 장적은 촌적(村籍)의 성격을 가지나 호구 대장에 준하는 것이었으며,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에도 3년에 한 차례씩 호적 대장을 개수(改修)하여 관에 보관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식년에 제출된 호구 단자를 가지고 호적을 작성하고, 이 호적을 다시 개인의 요청에 의해서 개인에게 발급한 것을 준호구(準戶口)라고 한다. 즉 준호구 발급의 필요는 오늘날 호적 등본, 주민 등록 등본을 필요로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작성된 준호구 등은 소송할 때, 성적할 때, 과거에 응시할 때, 직역(職役)을 결정할 때 등에 참고 자료가 되었으며, 도망 노비의 추쇄 때에도 이용하였다. 준호구는 호주(戶主)의 신청에 의해서 관에서 발급하였는데, 이때 수수료를 지불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제작 발급 경위]

대유리 밀양박씨 고문서(大柳里密陽朴氏古文書)는 어영청(御營廳)의 군보(軍保)였던 박악지(朴岳只)와 아들 박한룡(朴汗龍), 손자 박동철(朴東喆) 등 3대에 걸친 호구 단자이다. 가장 이른 시기의 호구 단자는 1828년에 작성한 것으로 무주군 부남면 대치리 어영보(御營保) 박악지의 43세 때 호적을 시작으로 47세, 73세, 76세 때 호구 단자이고, 박악지의 아들 박한룡의 39세, 41세, 45세, 48세 때 호구 단자, 박악지의 손자 박동철의 18세, 21세, 28세, 33세 때 호구 단자이다. 무주군 부남면 대유리 밀양박씨 박영근 가(家)에 소장되어 있다.

[형태]

대유리 밀양박씨 문중의 호구 단자 12매이다. 1828년 박악지 호구 단자 50×48㎝, 1831년 박악지 호구 단자 60×48㎝, 1852년 박악지 호구 단자 62×51㎝, 1858년 박한룡 호구 단자 58×65㎝, 1861년 박한룡 호구 단자 54×50㎝, 1870년 박동철 호구 단자 49×77㎝, 1873년 박동철 호구 단자 47×70㎝ 등 시기별로 크기가 다르다.

[구성/내용]

호구 단자는 개인이 관에 제출하는 것으로, 호주(戶主)로부터 4조의 성명과 본관, 나이, 부인과 부인의 4조, 그리고 같은 호에 있는 형제와 자식, 그리고 소유하고 있는 노비들을 순서대로 기록하여 호적을 고치는 데 활용한다. 준호구는 관에서 개인에게 발급해 주는 증명서로, 직전 식년에 제출받은 개인의 호구 단자를 기초로 호적을 한지의 오른쪽부터 왼쪽으로 행을 띄지 않고 이어서 작성하는 것이 특징이다. 1828년 박악지가 43세 때 제출한 호구 단자에는 우선 수령자가 금산 군수이고, 아버지는 박간세(朴干世), 할아버지는 박귀광(朴貴光), 증조할아버지는 박필승(朴弼承)이며 직역은 모두 유학(幼學)이었고, 외조부는 김해 김씨 김선립(金先立)이었다. 부인은 천안 전씨(天安全氏)로 당시 43세였고, 아버지는 통정대부(通政大夫), 할아버지는 어모장군(禦侮將軍) 행용양위 부호군(行龍驤衛副護軍)을 지냈으며, 할아버지는 통정대부를 지냈다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의의와 평가]

무주 지역 내 고문서가 많이 밝혀지지 않은 시점에서 한 집안 내 3대에 걸친 호구 단자 12매가 보존되어 있다는 것은, 그 자체의 가치보다 향후 고문서 조사 및 그를 통한 사회사 연구의 시발점이 되는 계기로서 더 중요하다 할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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