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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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당산리에 있는 개항기 유경제의 효자각. 유경제(柳景堤)[1802~1856]의 자는 화중(和中), 본관은 문화(文化)로 충경공 유량(柳亮)의 후손이다. 13세 되던 해 작은 집에 양자(養子)로 가게 되었는데, 효심이 극진하여 친가와 양가의 부모를 한결같이 지성으로 섬겼다. 양아버지가 갑자기 병에 걸리자 눈물을 흘리며 밥도 먹지 않고 간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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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당산리에 있는 개항기 창녕성씨의 열녀각. 열녀 창녕성씨(昌寧成氏)는 유풍렬(柳豊烈)의 아내이다. 남편이 산에 올라갔다가 호랑이를 만나 물려 죽게 되자, 마을 장정 수십 명이 몰려갔으나, 성난 호랑이의 울음소리에 놀라 감히 달려들지 못하였다. 창녕 성씨가 큰 소리로 고함을 지르며 앞으로 달려 나가자 호랑이가 감동하여 슬그머니 남편을 놓고 달아나 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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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사천리 길왕마을에 있는 숲. 사천리 길왕마을 숲은 마을 입구에 자리 잡은 전형적인 수구막이 역할을 하는 민간 신앙 유적이다. 마을 숲은 민속적으로는 마을 사람들의 신앙의 대상이고, 풍수 지리적으로는 좋은 땅을 조성하는 구조물이며, 심미적으로는 풍치의 장소이다. 또한 바람과 홍수 등을 막아 마을을 보호하는 구조물이며, 마을의 영역을 결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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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조선 시대 전라북도 무주 지역의 교통로에 설치된 교통·통신·숙박 시설. 전통 시대에 역원(驛院)은 원활한 교통과 통신, 여행자를 위한 휴식과 숙식, 이동 수단의 교체와 수리, 정비를 위한 시설로 활용되었다. 그 가운데 역(驛)은 전령(傳令), 사신 영송(使臣迎送)과 같은 공적 업무를 위해 파견되는 관리들의 여행을 위해 관에서 운영하던 기관이었다. 역을 이용하는 관리는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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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문화(文化). 초명은 유병옥(柳炳鈺), 자는 경보(景普), 호는 유산(柳山). 정숙공(貞肅公) 유정현(柳廷顯)의 후손이다. 할아버지 유한태(柳漢泰)가 순창에서 현 무주군 적상면 삼유리로 이주하였다. 아버지는 증호조 참판 후재(后齋) 유최영(柳最榮)이다. 1848(헌종 14) 생원시에 합격한 유휴(柳烋)가 동생이다. 유도(柳燾)[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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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방이리에 있던 숙식을 제공하는 편의 시설. 원(院)은 공무 여행자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하여 교통 요지나 험한 영로(嶺路) 등에 설치되는 역의 보조 시설이었다. 대체로 역과 같은 장소에 원이 설치되었기 때문에 역원(驛院)이라고 칭하였다. 30리에 하나씩 설치되었으나, 지형에 따라서 평지에서는 멀고 산악 지대에서는 가까웠다. 이러한 원 제도는 고려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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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익녀(翼汝)이다. 아버지는 돈녕부 동지사(敦寧府 同知事)를 지낸 유도(柳燾)이고, 큰형은 유봉증(柳鳳增), 작은형은 유학증(柳鶴增)이다. 유홍증(柳鴻增)[1850~1879]은 1850년(철종 1)에 태어났으며, 어렸을 때 형들을 존경하여, 형들을 대할 때 언제나 부모를 대하듯 하였다. 그리고 모든 일을 처리하는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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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 지역에서 동일 본관의 성씨를 가진 사람들이 일정 구역에 마을을 형성하여 모여 사는 촌락. 집성촌은 성(姓)과 본(本)이 같은 부계의 혈족들이 모듬살이를 하고 있는 마을이다. 따라서 집성촌은 동일 조상에 관한 강한 결속력과 함께 제향(祭享), 대동계(大同契), 문중의 대소사를 공동으로 주관하는 경제 공동체 성격 등을 특징으로 한다. 전국적인 현상과 마찬가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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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당산리에 있는 유인성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화은 선생의 본명은 유인성(柳寅誠)으로 본관이 문화(文化), 자는 길중(吉中), 호는 화은(華隱)이다. 충경공(忠景公) 유량(柳亮)의 후손이며 유기찬(柳基燦)의 아들이다. 무주군 무주읍 당산리에서 태어나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의 문하에 들어가 수학하였다. 산골에 은거하면서 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