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7000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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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政治 |
영어공식명칭 | Politics |
분야 |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강원도 삼척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성희 |
[정의]
강원도 삼척 지역에서 공권력을 획득, 배분, 운용하는 총체 활동.
[개설]
현대 의미의 정치는 대의민주주의가 제도화된 광복 이후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삼척시의 정치는 대의민주주의가 채택된 이래 외부 차원과 내부 차원으로 구분해서 살펴볼 수 있다. 외부 차원은 중앙정치와 같이 삼척시 외부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는 차원을 의미하며, 내부 차원은 삼척시 내부에서 외부 영향에 대응하거나 자체 설정하는 정치 차원을 말한다. 삼척시 정치 상황은 외부 차원에서 우리나라의 정당정치 활동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으며, 내부 차원에서는 지방자치제도 아래에서 지방선거의 영향을 받고 있다.
[제1공화국: 1948년~1960년]
제1공화국 시기에는 3번의 대통령 선거와 4번의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다. 이는 초대 대통령 선거가 국회에서 간접선거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1952년 8월 5일 시행된 제2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자유당의 이승만(李承晩)[1875~1965] 후보가 당선되었다. 전국 투표율은 88.1%, 삼척군의 투표율은 92.7%였다, 이승만 후보 지지율은 전국 평균 74.6%, 삼척군 93.4%였다. 제3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무소속의 조봉암(曺奉岩)[1898~1959]과 자유당의 이승만이 경쟁하여 이승만 후보가 전국 지지율 70.0%로 당선되었다. 삼척군의 이승만 후보 지지율은 94.7%로 전국 지지율보다 현저하게 높았다. 제3대 대통령 선거의 삼척군 투표율은 99.5%를 기록하였으며, 전국 투표율은 94.4%였다. 1960년 3월 15일 실시된 제4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경쟁자인 민주당의 조병옥(趙炳玉)[1894~1960] 후보가 선거 운동 도중에 사망함으로써 이승만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삼척군의 투표율은 98.6%, 전국 투표율은 97.0%였다. 이 선거는 대한민국 선거 사상 최악의 부정 선거로 기록되었다. 이 때문에 부정 선거를 규탄하는 시민과 학생들의 봉기로 4·19혁명이 일어났고, 결국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하였다.
초대 제헌 국회의원 선거는 1948년 5월에 실시되었다. 삼척군에서는 3명의 후보자가 출마하여 32.2%의 지지를 얻은 대한독립촉성국민회의김진구(金振九)[1906~1987] 후보가 당선되었다.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8명의 후보자가 경쟁하여 27%의 지지를 얻은 대한청년단의 임용순(任容淳)[1903~1987]이 당선되었다.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자유당의 공천을 받아 출마한 김진만(金振晩)[1918~2006] 후보가 31.1%의 지지로 당선되었다. 김진만은 1958년 5월에 실시한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자유당의 공천을 받아 출마하여 63.7%의 지지를 받아 재선되었다.
[제2공화국: 1960년~1961년]
제2공화국은 내각책임제를 채택하였다. 이에 따라 대통령 선거는 간접 선거였고, 국회의원 선거인 민의원 선거는 직접 선거였다. 자유당 계열 인사들이 대거 무소속으로 출마하고, 민주당 내 신·구파 간 갈등과 경쟁 속에서 실시된 제5대 국회의원[민의원]선거가 실시되었다. 삼척군에서는 무소속 4명과 민주당의 최경식(崔慶植)[1917~2002] 후보가 출마한 가운데 최경식후보가 33.2%의 지지를 받아 당선되었다.
[제3공화국: 1963년~1972년]
5·16 군사정변으로 출범한 제3공화국은 1962년 12월 26일 헌법을 개정하고 대통령 중심제를 택하였다. 제3공화국에서는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가 각각 세 번 있었다. 1963년 10월 15일 실시된 제5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모두 7명의 후보가 출마하였지만 민주공화당의 박정희(朴正熙)[1917~1979] 후보와 민정당의 윤보선(尹潽善)[1897~1990] 후보 간 대결 구도로 전개되었다. 선거 결과 박정희 후보가 총 유효 투표수의 46.6%를 얻어 당선되었고, 윤보선 후보는 45.1%의 지지를 얻었다. 이때 전국 평균 투표율은 85.0%였으며, 삼척군은 82.2%였다. 삼척군에서의 박정희 후보 지지율은 40.3%로 윤보선 후보의 49.8%보다 낮았다. 제6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7명의 후보자가 출마하였지만 제5대 대통령 선거 때와 마찬가지로 민주공화당의 박정희 후보와 신민당의 윤보선 후보 간 양자 대결로 전개되었다. 제6대 대통령 선거의 전국 평균 투표율은 83.6%였으며 삼척군은 84.4%였다. 선거 결과 박정희 후보가 51.4%를 획득해 당선되었으며, 차점자인 윤보선 후보는 40.9%의 지지를 얻었다. 삼척군에서 박정희 후보와 윤보선 후보는 각각 54.7%, 37.6%의 지지를 획득하였다. 1971년 4월 27일 실시된 제7대 대통령 선거에서 전국 투표율은 79.8%였으며, 삼척군 투표율은 82.5%였다. 민주공화당의 박정희 후보가 53.2%를 획득하여 45.3%를 획득한 신민당의 김대중(金大中)[1924~2009]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삼척군에서 박정희 후보는 66.6%, 김대중 후보는 32.1%의 지지를 각각 얻었다.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삼척군에서는 총 7명의 후보자가 출마하였으며, 그 가운데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나와 당선된 민주공화당의 김진만 후보가 36.6% 지지율로 당선되었다. 차점자는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나와 당선된 민정당의 최경식 후보로, 23.6%를 득표하였다.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는 총 9명의 후보자가 출마한 가운데 48.8% 지지를 얻은 민주공화당의 김진만 후보가 다시 당선되었다. 1971년 5월 25일 실시된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민주공화당의 김진만 후보는 54.8%의 득표를 하여 연속 3선을 하였다.
[제4공화국: 1972년~1981년]
1972년 유신헌법 제정으로 출범한 제4공화국에서 대통령은 통일주체국민회의에 의한 간접 선거로 선출되었다. 통일주체국민회의는 제8대와 제9대 대통령으로 박정희를 선출하였고, 1979년의 10·26사건 이후 최규하(崔圭夏)[1919~2006]를 제10대 대통령으로 선출하였다. 그리고 최규하 하야 이후에는 민주정의당의 전두환(全斗煥)을 제11대 대통령으로 선출하였다.
1973년 2월 27일 실시된 제9대 국회의원 선거는 중선거구제였다. 삼척군은 강릉시 및 명주군과 함께 강원 제3선거구로 획정되어 민주공화당의 김효영(金孝榮)[1923~2006], 신민당의 김명윤(金命潤)[1924~2016] 등 2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하였다. 김효영 후보는 45.3%, 김명윤 후보는 24.1%를 각각 득표하였다. 제10대 국회의원 선거도 2명의 국회의원을 뽑는 중선거구제였다. 삼척군에서는 모두 7명의 후보가 출마하여 33.5%를 득표한 민주공화당의 김효영 후보와 19.1%의 지지를 받은 무소속의 5선 의원 김진만 후보가 당선되었다.
[제5공화국: 1981년~1988년]
제5공화국에서는 대통령선거인단에 의한 간접 선거와 대통령 직선제 개헌에 의한 직접 선거를 합쳐 모두 두 번의 대통령 선거, 중선거구제에 의한 두 번의 국회의원 선거가 실시되었다. 1981년 2월 제12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대통령선거인단에 의한 간접 선거로 실시되었으며, 선거 결과 민주정의당의 전두환 후보가 당선되었다. 1987년 6월 항쟁의 결과 대통령 임기 5년에 직선제를 골자로 한 개헌이 이루어지고, 1987년 10월 29일 공포된다. 이에 따라 1987년 12월 16년 만에 직접 선거로 실시된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삼척시는 88.6%, 삼척군은 88.8%의 투표율을 보여 전국 투표율 89.2%보다 약간 낮았다. 그러나 당선자인 민주정의당노태우 후보의 삼척시와 삼척군 투표율이 각각 63.8%, 65.54%로 전국 득표율 36.6%보다 높았다.
1981년 3월 실시된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삼척군은 동해시와 더불어 강원 제3지역구로 획정되어 2명의 국회의원을 뽑았다. 총 4명이 출마한 가운데 민주한국당의 이관형(李官炯) 후보와 민주정의당의 김정남(金正南) 후보가 각각 35.1%, 43.3%의 표를 얻어 당선되었다. 1985년 2월 실시된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삼척군은 동해시, 태백시와 함께 하나의 선거구를 형성하게 된다. 총 6명이 출마한 가운데 45.7%를 득표한 민주정의당의 김정남 후보와 21.1%를 획득한 무소속의 김효영 후보가 당선되었다.
[제6공화국: 1988년~1993년]
1988년 4월 실시된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삼척시·삼척군에서는 모두 3명의 후보가 나선 가운데 51.3%의 득표를 한 통일민주당의 김일동(金日東) 후보가 당선되었다. 1992년 3월 실시된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모두 6명이 경쟁하여 무소속의 김정남 후보가 38.0% 득표로 당선되었다.
1992년 12월 18일 실시된 제14대 대통령 선거는 모두 7명의 후보가 나선 가운데 실시되었다. 선거 결과 민주자유당의 김영삼 후보가 42.0%를 획득하여 막강한 경쟁자인 민주당의 김대중 후보[33.8% 득표]를 물리치고 당선되었다. 이때 투표율은 삼척시와 삼척군이 각각 82.4%, 81.7%로 전국 투표율 81.9%와 유사하게 나타났다. 당선자인 김영삼 후보 지지는 삼척시에서 42,8%, 삼척군에서 52.8%로 각각 나타나 전국 득표율보다 높았다.
[문민정부: 1993년~1998년]
1996년 4월 소선거구제로 실시된 제15대 국회의원 선거는 전국 투표율 63.9%였고 삼척의 투표율은 78.4%로 전국 투표율보다 높았다. 총 6명이 출마한 가운데 통합민주당의 장을병(張乙炳)[1933~2009] 후보가 31.8%의 지지율로 당선되었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 체제라는 초유의 경제 위기 속에서 치러진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새정치국민회의의 김대중 후보가 40.3%의 지지를 획득, 38.7%에 그친 한나라당의 이회창(李會昌) 후보를 제치고 당선되었다. 삼척시의 투표율은 전국의 80.7%보다 약간 낮은 79.1% 투표율을 기록하였다. 삼척시에서의 득표율은 이회창 후보가 48.7%, 이인제(李仁濟) 후보가 31.5%, 김대중 후보가 17.6%로 각각 나타났다.
[국민의 정부: 1998년~2003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는 전국 평균 57.2%라는 저조한 투표율을 기록하였지만 삼척시의 투표율은 66.1%로 전국 투표율보다 높았다. 동해시와 함께 하나의 선거구로 획정되어 치러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모두 3명이 출마하였으며, 그 가운데 한나라당의 최연희(崔鉛熙) 후보가 58.6% 득표로 당선되었다. 최연희 후보의 득표율은 동해시에서는 76.2%였지만 삼척시에서는 38.1%로 차이가 컸다.
2002년 12월에 실시된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와 민주당의 노무현(盧武鉉)[1946~2009] 후보를 포함한 7명의 후보가 출마한 가운데 노무현 후보가 48.9%를 득표하여 46.6%의 표를 얻은 이회창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삼척시에서는 이회창 후보가 61.5%, 노무현 후보가 33.3%를 각각 득표하였다.
[참여정부: 2003년~2008년]
2004년 4월 실시된 제17대 국회의원 선거는 전국 평균 60.6%의 투표율을 기록하였으며, 동해시와 함께 선거구를 형성한 삼척시의 투표율은 60.6%였다. 모두 4명의 후보가 나선 선거에서 한나라당의 최연희 후보가 55.6%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최연희 후보의 득표율은 동해시에서 59.4%, 삼척시에서 50.8%를 각각 차지함으로써 16대 선거에 비해 지역 간 고른 지지를 받았다.
제17대 대통령 선거는 2007년 12월 10명의 후보가 경합한 가운데 실시되었다. 전국 투표율은 63.0%, 삼척시 투표율은 64.4%로 각각 나타났다. 개표 결과 한나라당의 이명박(李明博) 후보가 48.7%를 득표하여 26.1%를 득표한 대통합민주신당의 정동영(鄭東泳)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삼척시에서 이명박 후보의 득표율은 51.5%, 정동영 후보의 득표율은 16.6%였다.
[이명박 정부: 2008년~2012년]
2008년 4월 9일 실시된 제18대 국회의원 선거는 전국 평균 46.1%라는 낮은 투표율을 기록하였지만 삼척시의 투표율은 56.7%였다. 동해시와 삼척시에서는 모두 4명의 후보가 출마하여 무소속의 최연희 후보가 47.0%라는 득표율로 한나라당의 정인억(鄭寅億)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2012년 4월에 이루어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새누리당의 이이재(李利在) 후보가 44.8% 득표로 당선되었다. 차점자인 무소속의 최연희 후보는 28.0% 득표에 그쳤다.
2012년 12월에 이루어진 제18대 대통령 선거에는 총 6명의 후보자가 출마하였으며, 새누리당의 박근혜(朴槿惠) 후보가 51.6% 득표로 48%의 지지를 얻은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文在寅) 후보를 이겼다. 전국 투표율은 75.8%였으며, 삼척시의 투표율은 73.2%로 다소 낮았다. 삼척시에서 박근혜 후보는 65.4% 득표로 33.7%를 표를 얻은 문재인 후보에 비해 21.7% 높았다.
[박근혜 정부: 2013년~2017년]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동해-삼척 선거구에서는 총 3명의 후보가 출마한 가운데 무소속의 이철규(李喆圭) 후보가 48.5%로 당선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비선 실세에 의존한 비정상의 국정 운영으로 탄핵을 받아 임기 도중 파면되었다. 그 결과 2017년 5월 9일 제19대 대통령 선거가 시행되었으며, 총 13명의 후보가 난립한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 후보가 41.1% 득표로 당선되었다. 삼척시에서는 자유한국당 홍준표(洪準杓) 후보의 득표율이 가장 높은 36.5%였고, 문재인 후보는 30.8%를 차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