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7011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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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月川三里天祭壇-祭 |
영어공식명칭 | Wolcheon3ri Cheonjedan and Seonangje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제 |
지역 |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월천3리 |
집필자 | 김도현 |
의례 장소 |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월천3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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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제의 |
[정의]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월천리에 있는 마을 제단과 제의.
[개설]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월천리 천제당(天祭堂)에 대하여 1916년 편찬된 심의승의 『삼척군지(三陟郡誌)』에 ‘… 갈령(葛嶺)은 안일옥산(安逸王山)이라 칭하며, 그 동쪽에 봉수산(烽燧山)의 연대구지(烟臺舊址)에 지금은 성황사(城隍祠)를 설(設)하였으며, …’라고 한 것으로 보아 이미 1910년대에 봉수대 옛터가 마을신앙의 대상물로 치제(致祭)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원래는 ‘성황사(城隍祠)’였으나 모시는 신위(神位)가 천신(天神)이었는지는 알 수 없고, 이후 마을에서 ’천제당(天祭堂)‘이라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천제당은 마을 제사를 지낼 때 가장 격이 높은 대상으로서 치제되는 것과 개인적으로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풍어를 기원하는 대상물로 치제되며, 부수적으로 간수 단지를 통해 풍흉을 점치는 3가지 기능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먼저 마을 공동체 신앙의 대상으로서 천제당에 대한 것은 다음과 같다.
월천3리의 마을 제당 중에서 그 격을 가장 높이 생각하고, 엄숙하게 여기는 제당이 천제당이다. 또한 진설하는 제수(祭需)가 가장 많아서 옛날에는 제관 이외에 3명이 지게로 제물을 날랐다고 한다.
제일(祭日) 3일전에 청소하는데, 간수 항아리의 염수가 비어 있으면, 제당 주변 청소 과정에 바닷물을 제관들이 채워 놓는다. 그리고 6월 고사를 지낼 때 간수가 말라 있으면 흉년·흉어로 여겨서 풍년·풍어를 기원하며 다시 채워 놓는다. 이 때 간수가 남아 있으면 풍년·풍어가 들 것이라 여겼다고 한다. 그러나 봉수대 돌탑 앞 돌 사이에 끼워 놓았던 것을 약 10여년 전에 항아리를 누군가가 가져가서 현재 이에 대한 풍속은 사라졌다.
천제당에서 고사를 올리기 전에 돌탑 앞의 꼭지돌에 실과 폐백 종이를 올린다.
축문은 천제당에서만 읽었는데, 축문을 읽는 사람이 부정 탄 경우 독축을 하지 못하므로 생기복덕이 맞는 축관을 구하기 어려워 지금은 고하기만 한다고 한다. 주로 풍어를 기원하고 부분적으로 해상에서의 안전과 건강 등을 기원하였다고 한다. 제를 올리는 형식은 거의 유교식인데, 천제당에서 제를 올린 후 소지를 올리는데 집집마다 소지를 올려 준다고 하였다.
제수 준비에서 천제당 제물에 가장 많은 정성을 기울이는데, 생선, 과일 등에서 할아버지당과 할머니당을 비교하여 가장 좋은 것을 올린다고 하였다.
개인적으로 천제당에서 치성을 드리는 사례에 대한 것은 다음과 같다.
마을에서 큰사업[어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중에는 1년에 한 번 제물을 준비하여 ‘천제당 → 할아버지당 → 할머니당’순으로 치성을 드린 후 자신의 배에서 성주를 메고 치성을 드리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이 때 선주는 무당[또는 복재]을 데려가서 치성을 드리고, 소지를 올리는데, 부인은 데려가지 않았다고 한다.
천제당에서 개인 치성을 올리는 것은 본격적인 어로 활동을 하기 전에 올리는 경우와 고기가 잘 안 잡힐 때 올리는 두 가지 경우가 있다. 본격적인 어로 활동을 하기 전에 치성을 드릴 때는 무당으로부터 좋은 날을 받아서 봄사업[멸치 후리 등] 또는 가을 사업 전에 가서 개인적으로 제를 올리는 것을 말한다. 고기가 잘 안 잡힐 때 제수를 잘 준비하여 치성을 드리는 예도 많았다고 하는데, 이 때도 무당으로부터 좋은 날을 받아서 정성을 다하여 치성을 드렸다고 한다. 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고기가 안 잡힐 때 봉화산에 올라 치성을 드리는 경우가 더 많았다고 한다.
그리고 해사업에 종사하지 않은 사람이 천제당에 가서 개인적인 치성을 드리는 경우는 거의 없었는데, 해사업 이외의 일로 치성을 드려야 할 경우 주로 할아버지당에 가서 치성을 드렸다고 한다.
[신당/신체의 형태]
월천리의 마을 제당은 옛 가곡산 봉수대 터에 있는 천제당, 마을 옆 봉화산 옆의 작은 동산 중턱에 있는 할아버지당, 그리고 바닷가에 있는 할머니당이 있다. 할아버지당과 할머니당은 팽나무를 신목으로 주변에 나지막한 담장을 두른 형태의 제당(祭堂)이다.
[절차]
마을제사는 예전에 1년에 2회, 정월 보름과 6월 보름에 실시하였으나, 지금은 정월 보름에 한 번 하는 것으로 축소되었다. 그리고 약 40여년 전까지 3년에 한 번씩 굿을 하였으나 지금은 실시하지 않고 있다.
마을제사는 천제당서 가장 성대하게 먼저 지내며, 그 다음으로 할아버지당과 할머니당에서 제(祭)를 올린다. 제관(祭官)은 2명을 선정하며, 도가와 함께 제를 주관하는데, 생기복덕을 보아 선정한다. 제를 올릴 때 천제당에 올라가는 짐꾼은 천제당 입구까지만 제물을 지고 올라가고, 여자는 참여할 수 없었다. 음식 준비하는 도가집의 여자도 생기를 보아 선정하였다고 한다.
제를 지내기 3일전에 제당을 청소하는데, 이 때 제당과 진입로를 정비하고, 금줄을 치며, 황토를 뿌려 부정을 방지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옛날에 축문이 없었으나, 지금은 홍성희님이 보관하는 고정 축문이 있는데, 현재 이장인 김경식님에 따르면 고축하는 사람에 대하여도 생기를 봐야하므로 최근에는 축문을 없애고, 일상적인 고축(告祝)만 한다고 하였다.
제수(祭需)는 각 제당별로 따로 차리는데, 천제당이 가장 크고 중심이 되므로 가장 많은 제수를 올린다고 하였다. 제주(祭酒)는 이전에 술을 직접 만들어 올렸으나 현재는 막걸리를 올린다. 통닭 형태의 닭 외에 육고기는 올리지 않는다. 주로 문어·가자미·대구·임연수와 같은 해물을 많이 사용하고, 이외에 과일, 포, 삼색 나물 등을 올린다.
제비(祭費)는 마을 공동 기금을 사용하는데, 제관[도가집 포함]에게 수고비도 드린다고 하였다.
그리고 지금은 없어졌지만 약 40여년전까지 하였던 굿은 월천3리 바닷가에서 3년마다 가을[주로 10월]에 3일간 하였다고 한다. 굿을 하는 과정에 천제당에서 신을 모셔 오며, 할아버지당과 할머니당에서도 같이 모셔왔다고 한다.
[현황]
월천리에서의 천제당도 마을에서 평소 접근을 금하고, 제수 준비에 가장 많은 정성을 들이는 등의 사실을 종합해 보면 다른 지역의 천제당과 같이 상당(上堂)으로서의 격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인근의 양야산 봉수가 봉할머니당으로서 치제되면서도 형식적인 면에서 마을신앙의 범주에 1차적으로 인식되지 못한 것에 비해 월천리의 가곡산 봉수는 천제당으로서 마을신앙의 범주에 들면서 상당으로서의 격을 확실하게 지녔다는 것은 덕산리의 봉할머니당과 비교되는 점이다.
그런데, 다른 지역 천제당을 살펴보면 천제당의 신체가 돌탑 형태인 예가 거의 없는데, 이곳은 비록 봉수대터를 천제당이라 하였지만 외형상 돌탑 형태를 띤 천제당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현지 사례에 대한 종합적인 분석을 한 예는 없지만 천제당에서 풍어와 해사업에서의 안전을 기원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치제한 예 또한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특히 해안 마을로서 풍어와 안전을 기원하는 할머니당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의 역할을 천제당에서 수행한다는 것은 특이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인근 지역에 있는 초곡에도 천제당이 있는데, 이 마을 또한 상당으로서의 천제당으로 인식하고 있을 뿐이지 풍어나 안전 등을 염원하기 위해 직접적으로 치제하는 예는 찾아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