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700611 |
---|---|
한자 | 崔應達 |
영어공식명칭 | Choi Eungdal |
이칭/별칭 | 병달,사집,석봉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강원도 삼척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전제훈 |
[정의]
개항기 삼척 지역 효자.
[가계]
최응달(崔應達)의 본관은 강릉(江陵)이고, 개명하여 병달(炳達)이라 하였다. 자는 사집(士執)이며, 호는 석봉(石峯)이다. 최두참(崔斗參)의 아들이다.
[활동 사항]
최응달의 부모는 병환이 매우 깊어서 백방으로 약을 써도 효과가 없었다. 최응달은 손가락을 잘라 피를 드렸더니 수 년 동안을 더 연명하였다고 한다. 최응달이 부모상을 당하여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였으며, 매달 초하룻날에는 저녁에 꿇어앉아 잔을 올리면서 하염없이 울었다. 최응달이 부모를 기리며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눈물이 흩어져서 주변의 산나무도 말라죽었다고 한다.
[상훈과 추모]
최응달의 효행은 1901년(고종 38)에 동부승지 한인호(韓麟鎬)의 장계로 정려문(旌閭門)이 내려졌으며, 최응달은 예조참의(禮曹參議) 벼슬을 받았다. 주사(主事) 김태진(金泰振)이 글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