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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700605
한자 金復運
영어공식명칭 Kim Bokun
이칭/별칭 보헌,유헌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강원도 삼척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전제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추모 시기/일시 1885년(고종 22) - 김복운 정려
성격 효자
성별
본관 삼척

[정의]

개항기 삼척 지역 효자.

[가계]

김복운(金復運)의 본관은 삼척(三陟)이다. 개명하여 보헌(寶憲)이라 하였으며, 호는 유헌(楡軒)이다.

[활동 사항]

김복운은 모친상을 당하여 먼 거리에 있는 묘에 찾아가 3년 동안 슬피 울었다. 1875년(고종 12)에 발생한 홍수 때 묘에 구덩이가 파인 괴상한 꿈을 꾸고 난 뒤 어머니 묘를 살펴보니 산사태로 묘가 허물어져 있었다고 한다. 김복운은 묘를 옮기면서 장사를 다시 지내고 난 뒤 초하루와 보름에 묘를 돌보았다고 한다. 아버지가 다리 종기로 고생이 심하여서 입으로 고름을 빨아내어 고쳤다고 한다. 큰비가 내려 집이 침수하자 아버지를 업고 문을 나섰지만 이미 마당에까지 물이 차서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김복운은 어찌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자 기둥을 껴안고 서럽게 울었다. 그러자 얼마 후 물이 줄어서 목숨을 건졌다고 한다. 아버지가 좋아하는 술이 있느냐고 물으면 비록 없지만 반드시 “술이 있습니다.”라고 대답하고 사다 드렸다고 한다. 김복운은 아버지의 병환에는 하늘에 빌고 손가락을 잘라서 피를 넣어 드렸다고도 한다. 아버지상을 당했을 때도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였으며, 매년 섣달 그믐날 밤에는 묘에 찾아가 밤을 새웠다고 한다.

[상훈과 추모]

김복운의 효행은 1885년(고종 22)에 승지 윤상익(尹相翊)이 소문을 듣고 효자로 상신하여 정려문(旌閭門)이 세워지고, 김복운은 숭록대부(崇祿大夫) 예조참의(禮曹參議) 벼슬을 받았다. 공훈(公訓) 조병식(趙秉式)[1823~1907]이 글을 지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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