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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국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700599
한자 洪鎭國
영어공식명칭 Hong Jinguk
이칭/별칭 의숙,백원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강원도 삼척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전제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거주|이주지 홍진국 거주지 -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맹방리 지도보기
성격 효자
성별
본관 남양

[정의]

조선 후기 삼척 지역 효자.

[가계]

홍진국(洪鎭國)의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자는 의숙(儀叔)이며, 호는 백원(栢園)이다. 도은(陶隱)홍구목(洪九睦)의 아들이다.

[활동 사항]

홍진국은 젊어서 정인후(鄭仁逅), 황종길(黃鍾吉)에게 학문을 배웠다. 홍진국은 어버이를 섬김에 효성이 지극하였다. 아버지가 설사병으로 여러 달 고생하니 복분자를 구하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미 복분자를 구하기에는 때가 늦어서 찾기가 어려웠다. 홍진국은 산골짜기에 들어가 나흘 동안 울며 다니다가 우연히 복분자를 구하였고, 어렵게 구한 복분자를 달여서 아버지에게 먹였더니 병이 완쾌되었다고 한다. 홍진국은 아버지 상을 당하였을 때 너무 슬퍼하여 몸이 여위어서 뼈만 남게 되었다. 장례를 치를 때에는 오랜 장마가 멈추어서 무사히 장례를 치를 수 있는 기적이 일어났다고 한다. 홍진국은 낮에는 시묘살이를 하고 밤에는 상막을 지켰다고 한다. 홍진국의 어머니가 병으로 사망했을 때는 5년 동안 호곡을 하면서 거상을 입었다고 한다. 그때 홍진국이 흘린 눈물로 인하여 배석 자리가 썩었다고 전해진다. 홍진국은 향교를 보수하고, 사당을 세우고, 창고를 지었다. 또 계를 모으고, 서당을 설치하여 학문을 장려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선행을 베풀었다. 홍진국은 『중용도설(中庸圖說)』과 『사례촬요(四禮撮要)』 등을 편찬하였다.

[상훈과 추모]

홍진국의 선행에 대해 참판(參判) 박종휴(朴宗休)[1788~?]가 비문을 지었다. 번화한 거리에 홍진국의 효자각을 세우고 그의 효행을 기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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