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7005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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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九鼎 |
영어공식명칭 | Kim Gujeong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강원도 삼척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전제훈 |
추모 시기/일시 | 1681년(숙종 7) - 김구정 효자비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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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 시기/일시 | 1738년(영조 14) - 김구정 효자비 재건립 |
사당|배향지 | 김구정 효자비 -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하맹방리 |
성격 | 효자 |
성별 | 남 |
본관 | 삼척 |
[정의]
조선 후기 삼척 지역 효자.
[가계]
김구정(金九鼎)의 본관은 삼척(三陟)이다. 1738년(영조 14)에 후손인 김효윤(金孝胤)이 효자비각 내의 퇴락한 비석에 대신하여 새로 세운 비석이 있다.
[활동 사항]
김구정은 1674년(현종 15)에 현종 국상을 당하자 3년 동안 상복을 한결같이 입었다고 한다. 또 모친의 병세가 위독하자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피를 입에 흘려 넣었는데 모친이 이튿날 소생하였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그후 모친은 12년 동안 편안하게 생활하였다고 한다.
[상훈과 추모]
김구정의 효행을 부사 이성기와 순상 강백년이 임금에게 알렸고, 임금이 특별히 정려를 명하여 통정대부(通政大夫)를 중직하였다고 한다. 현재 충효문(忠孝門) 옆에는 1681년(숙종 7)에 세운 비석이 있다. 비각 내에는 1738년(영조 14)에 후손인 김효윤이 퇴락한 비석에 대신하여 새로 세운 비석이 있다. 두 비석의 비문은 같다. 비석은 뚜껑돌[개석(蓋石)] 없이 비신과 비좌만으로 만들었다. 비의 윗부분은 둥글게 처리한 원수형(圓首形)이다. 자연석을 이용하여 비신 받침을 만들어서 비를 세웠다. 이 비각에는 만재(晩齋)홍낙섭(洪樂燮)[1874~1918]이 ‘충효문(忠孝門)’이라고 쓴 편액을 정면에 걸어 두었다. 비각 내에는 비석과 함께 신유년(辛酉年) 2월 중순에 외후손 이화춘(李和春)이 쓴 충효각기(忠孝閣記)가 걸려 있어 그 유래를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