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7005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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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漣 |
영어공식명칭 | Choi Ryeon |
이칭/별칭 | 경호,유정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강원도 삼척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전제훈 |
[정의]
조선 전기 삼척 지역 효자.
[가계]
최련(崔漣)의 본관은 강릉(江陵)이다. 자는 경호(景浩)이며, 호는 유정(楡亭)이다. 강릉군(江陵君) 고려 후기 무신 최입지(崔立之)의 후손이다. 부친은 홍문관 수찬(修撰)을 지낸 최한보(崔漢輔)이다. 모친은 영양남씨로, 생원 남신석(南紳錫)의 딸이다.
[활동 사항]
최련은 9살에 아버지가 사망한 후 홀어머니를 지극 정성으로 봉양했지만 어머니가 나이 일흔에 이르러 병에 걸려 온갖 약에도 차도가 없었다. 최련은 왼손가락을 잘라 불에 태워 그 재를 약에 타서 병석에 누워 있는 어머니에게 드려 병을 낫게 하였다고 한다. 몇 년 후 어머니가 사망하자 예를 다하여 여묘살이를 하였다고 전해진다.
[상훈과 추모]
최련(崔漣)은 1549년(명종 4)에 정려(旌閭)되었다. 1571년(선조 4)에 최련의 효행을 기리는 비석을 삼척 근덕면맹방 송제(松堤)에 세웠다. 송제는 소나무로 둘러친 제방을 말한다. 1658년(효종 9)에 증손 최동흘(崔東屹)이 비석을 개수(改竪)하였다. 1936년 여름에 정려각이 퇴락하고 침수 위험이 있어 삼척시 근덕면 심방리로 이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1822년(순조 22) 사(社)에 배향(配享)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