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7005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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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應壽 |
영어공식명칭 | Choi Eungsu |
이칭/별칭 | 수지,취금정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강원도 삼척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청희 |
[정의]
조선 전기 삼척 지역에 은거한 무관.
[가계]
최응수(崔應壽)의 본관은 강릉(江陵)이다. 자는 수지(壽之), 호는 취금정(翠錦亭)이다. 삼한통합익찬개국공신 대경공(大卿公)최흔봉(崔欣奉)의 21세손이며, 계원파 파조 평장사(平章事) 최입지(崔立之)의 후손이다.
[활동 사항]
최응수는 1533년(중종 28) 진사시에 합격하고, 1535년(중종 30) 별시무과에 급제한 뒤 좌부장(左部將)을 지냈다. 1545년(인종 원년)의 을사사화를 당하여 벼슬을 그만두고 쇄운촌에 퇴거하여 무릉계와 취병산을 오가는 등 청유 생활을 즐겼다. 동추(同樞)로 증직되었다.
[묘소]
최응수의 묘는 강원도 동해시 북삼동 쇄운리대구산(大丘山) 자좌(子坐)에 위치하고 있다. 묘표는 승지 김영한(金寗漢)[1878~1950]이 썼다. 묘갈은 최동수(崔東秀)가 짓고 최상하(崔相夏)가 썼으며 홍낙섭(洪樂燮)[1874~1918]이 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