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7005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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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世弼 |
영어공식명칭 | Choi Sepil |
이칭/별칭 | 세량,군보,용암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강원도 삼척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청희 |
[정의]
조선 후기 삼척 지역 문관이자 교육자.
[가계]
최세필(崔世弼)의 본관은 강릉(江陵)이다. 초명은 세량(世亮), 자는 군보(君輔), 호는 용암(龍岩)이다. 최진유(崔鎭維)의 아들이며, 동지중추부사 최진남(崔鎭南)[1626~?]의 조카이다.
[활동 사항]
최세필은 조선숙종 때 천거되어 창릉참봉(昌陵參奉)이 되었지만 취임하지 않고 있다가 나중에 지평(持平)에 증직되었다. 1703년(숙종 29) 이세필(李世弼)[1642~1718]이 최세필의 강도소(講道所)에 들러서 학규 21조를 손수 지어 지방 유생들로 하여금 매일 글을 읽게 하고 유학을 장려한 것을 계기로 2년 뒤인 1705년(숙종 31) 북평의 쇄운리에 용산사(龍山祠)를 세우고 이세필과 함께 많은 인재를 가르쳐 배출하였다. 1719년(숙종 45) 용산사는 용산서당(龍山書堂)으로 고쳐졌다. 용산서당은 여러 번의 확충을 통해 유수한 지방 교육 기관으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에 의하여 폐지되었다. 이후 용산서당은 1956년 지방 유림들에 의하여 중흥되었다. 1966년부터는 이이(李珥)[1536~1584], 송시열(宋時烈)[1607~1689], 이세필 등 삼현(三賢)을 배향하다가 1984년에 이이와 송시열의 위패는 훼철하고 이세필만 단독 배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