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7005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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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沈彦光 |
영어공식명칭 | Sim Eongwang |
이칭/별칭 | 어촌,문공공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강원도 삼척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홍성익 |
[정의]
조선 전기의 삼척을 본관으로 하는 문신.
[가계]
심언광(沈彦光)[1487~1540]은 고려공민왕 때의 문신 심한(沈漢)의 후손으로, 1487년(성종18) 3월 3일 강릉 대창용지촌(大昌龍池村)에서 예조좌랑 심준(沈濬)과 강릉김씨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형은 찬성을 지낸 심언경(沈彦慶)[1479~1556]이다.
[활동 사항]
심언광은 1502년(연산군 8) 15세에 감사(監士) 남궁찬(南宮燦)[?~1503]이 강릉을 순찰하면서 치른 향시삼장(鄕試三場)에서 장원을 하였으며, 1503년(연산군 9) 16세에 강릉진사 박승서(朴承緖)의 딸과 결혼하였다. 1507년(중종 2) 진사시에 옥문관(玉門關) 시가 이하(二下)의 성적으로 증제되었다. 1513년(중종 8) 무년무과 명경과에 을과제오(乙科第五)로 급제하였다. 예문환 한림, 봉교(奉敎)를 역임하였다. 1519년(중종 14)에는 을묘사화(乙卯士禍)에 연루되어 경성교수(鏡城敎授)로 쫓겨났다. 1521년(중종 16)에 예조, 병조좌랑, 홍문관수찬, 이조좌랑, 사간원정언 등 관직과 충청도도사를 지냈다. 1525년(중종 20)에는 경성판관으로 폄출되었다. 1526년(중종 21)에 사헌부정령과 홍문관교리를 역임하였으며, 1529년(중종 24) 교리·홍문관전륜·직제학에 제수되고 사헌부집의와 예문관응교에 올랐다.
1530년(중종 25) 이조참의, 강원도관찰사, 성균관대사성 등의 벼슬을 지냈다. 1530년(중종 25) 강원도관찰사로 재직할 때 해운정[보물 제183호]을 건립하였다. 1531년(중종 26)에 홍문관부제학, 사간원대사간, 승정원승지가 되었다. 사헌부대사헌에 오른 후 이조 참판을 역임하고, 병조·예조·공조 참판에 배수되었다. 1535년(중종 30)에는 공조판서 겸 예문관제학을 역임하였다. 1536년(중종 31)에 이조 판서, 1537년(중종 32)에 함경도관찰사·공조판서·의정부좌참찬에 제수되었다. 그러나 1538년(중종 33)에 삭탈 관직되어 고향으로 돌아가 1540년(중종 35)에 54세로 사망하였다. 1684년(숙종 10) 그의 5세손 심징(沈澄)에 의하여 복직되었으며, 1761년(영조 37)에 8세손 심상현(沈尙顯)의 공으로 문공공(文恭公)의 시호를 받았다.
[학문과 저술]
심언광의 문집으로 강원도관찰사 홍춘년(洪春秊)이 가세초고를 수습하여 1572년(선조 5)에 활자로 문집을 간행하였고, 이 초간본을 바탕으로 후손 심승택 등이 1889년(고종 26)에 간행한 목활자본 『어촌집(漁村集)』이 있다.
[묘소]
심언광의 묘소는 강원도 강릉시 운정동시루봉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