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7003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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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新興寺靑蓮庵觀音菩薩坐像-腹臟遺物 |
영어공식명칭 | Seated Avalokitesvara Bodhisattva of Boguangsa of Cheongryeonam Hermitage and Accompanying Relics at Sinheungsa Temple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유물/불상 |
지역 |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동막리 1332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도현 |
성격 | 불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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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자 | 신흥사 |
[정의]
강원도 삼척시 신흥사에 속한 암자인 청련암에 있는 관음보살좌상과 복장유물.
[개설]
신흥사에 관한 기록은 조선시대에 들어와 확인되기 시작한다. 즉 신흥사와 관련하여 현재까지 발견된 공식 기록은 1745~1760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비변사인 방안지도(備邊司印 方眼地圖)」에 ‘신흥사(新興寺)’ 이전의 사명(寺名)인 ‘운흥사(雲興寺)’가 처음 등장한다. 이후 『여지도서』를 비롯한 각종 관찬·사찬 지리지와 사찰 관련 자료집 등에서 빠짐없이 볼 수 있다. 이들 자료를 통하여 사명이 ‘지흥사(地興寺)[또는 池興寺, 智興寺]→광운사(廣雲寺)→운흥사→신흥사’로 변화됨을 알 수 있다.
신흥사는 신라 하대에 범일 국사가 처음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사명 변화 과정을 검토한 바와 같이 동해시 지흥동에서 창건하여 사명을 ‘지흥사’라 한 이후 ‘광운사→운흥사→신흥사’로 바뀌면서 현재의 근덕면 동막리에서 불사를 일으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신라 때인 838년(민애왕 원년) 범일 국사가 창건한 이후 조선시대인 1674년(현종 15) 심검당(尋劒堂)과 대웅전(大雄殿)을 중건(重建)하고 이어서 불상(佛像)과 탱화[부처, 보살, 성현들을 그려서 벽에 거는 그림] 등을 조성하였으며, 설선당(說禪堂)과 미타전 종루(彌陀殿 鍾樓) 등을 중건(重建)하였다. 1724년(경종 4)에는 청운 보한 화상(靑雲 普閒 和尙)이 화주(化主)가 되어 삼존불(三尊佛)에 금칠을 다시 하였고, 여러 탱화를 만들었다.
1770년(영조 46)에 화재가 발생하여 많은 건물이 소실되었지만 1773년(영조 49)에 미타전과 응향각이 수선되었다. 1830년(순조 30) 운흥사의 법당과 여러 요사가 화재로 소실되었지만 영담 화상이 불사를 일으키고, 응하 선사가 이 일을 추진하였다. 이때 삼척부사 이규헌이 운흥사에 화재가 나자 돈 200냥과 쌀 30석을 주어 중건하게 하고는 사명을 신흥사로 고쳤다.
1977년에는 우재석·박영진·이정기·오덕수·장두환·장의환·정대형 등 재가보살외(在家菩薩外) 보현회원(普賢會員) 내지 여러 단원들의 대발원으로 개금불사, 단청불사, 청연암, 심검당, 설선당, 성영각, 누각 등 각 법당 요사를 손질하여 고친 후 이를 기념하는 신흥사 사적 및 중수비를 건립하였다. 1983년에는 학소루를 고쳐서 다시 지었다.
[형태]
신흥사 청련암 관음보살좌상은 복장유물로 발견된 기문(記文)을 통하여 1711년에 조성된 불상임을 알 수 있다. 전체 높이 53㎝이며, 돌로 제작되었다. 1865년에 개금하였음은 복장 유물로 발견된 삼성암관음존상개금원문(三聖庵觀音尊像改金願文)을 통해 알 수 있다.
복장 유물은 후령통과 함께 삼성암관음존상개금원문(三聖庵觀音尊像改金願文), 기문(記文)이 발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