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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700227
한자 新石器時代
영어공식명칭 Neolithic Age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강원도 삼척시
시대 선사/석기
집필자 이상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9년 - 삼척 지역에서 처음으로 신석기문화의 존재 가능성 제시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13년 - 유적 발굴 조사
신석기 유적 - 강원도 삼척시 증산동 지도보기

[정의]

강원도 삼척 지역에서 구석기시대를 이어 나타나는 간석기와 토기를 만들어 사용한 시대.

[개설]

신석기시대는 후빙기(後氷期)의 새로운 자연 환경 속에서 인류가 처음으로 원시 농경과 목축에 의한 식량 생산을 하게 됨으로써 이를 배경으로 인류 문화가 비약 발전하게 된 시기를 말한다. 즉 지금으로부터 약 1만 년 전쯤 기후가 지구 전반에 걸쳐 온난다습하게 되어 양극 지방의 두꺼운 얼음이 녹으면서 해수면이 상승하고, 동식물상의 변화가 일어난다. 이렇듯 변화한 자연 환경 속에서 인류는 구석기시대의 수렵 및 채집 경제를 벗고 정착 생활을 하면서 원시 농경과 목축에 의한 식량 생산을 하고, 덧무늬토기[융기문토기(隆起文土器)] 및 빗살무늬토기[즐문토기(櫛文土器)] 등 흙을 빚어 구운 토기로 요리와 저장 수단을 개발하여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또 돌을 갈아 만든 다양한 간석기[마제석기(磨製石器)]를 사용하고 직조(織造) 기술을 개발하는 등 인류 문화 발달사에서 일대 전환기를 이룰 혁명을 이룩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인류 문화가 비약 발전하게 된 이 시기를 신석기시대라고 한다.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주로 식량 자원이 풍부한 큰 강가 또는 하천변의 대지나 해안가 모래언덕에서 움집[수혈주거(竪穴住居)]을 짓고 살았으며, 인공동굴이나 바위그늘을 주거 시설로 이용하기도 하였다. 움집의 보편 형태는 원형이었으며, 집의 바닥에는 진흙을 펴서 다진 다음 풀이나 짐승 가죽을 깔고 생활하였다. 여기에 화덕[노지(爐址)]을 설치하고 지붕은 주위에 서까래를 걸친 다음 다른 한쪽 끝이 중앙에 모이게 하여 뼈대를 형성한 후 나뭇가지나 갈대 등 풀을 덮어 만들었다. 움집은 대개 원추형 꼴을 띠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밖에도 계단이나 경사면을 만들어서 출입구 시설로 이용하기도 하고, 밑이 잘린 토기를 거꾸로 묻어 만든 저장 시설을 갖추기도 하였다. 주요한 생계 수단은 사냥, 고기잡이, 야생 식물 채집이었다. 그러나 신석기시대 후기로 접어들면서 원시 농업이 시작되어 조, 피, 수수, 기장 같은 곡물 일부가 재배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신석기시대 빗살무늬토기 조사와 연구는 일제강점기부터 일본인 학자에 의해 시작되면서 한반도 빗살무늬토기 유적에 관한 윤곽이 알려지게 되었다. 광복 후 우리나라 학자에 의해 유적 발굴 조사가 개시되면서 남한과 북한에서는 각자 대규모 신석기유적 발굴 조사가 실시되었다. 서해안 지역에서는 궁산리·지탑리·암사동, 남해안 지역에서는 동삼동·수가리, 동해안 지역에서는 굴포리서포항 및 양양 오산리 등이 발굴 조사 대상이었다. 특히 암사동·동삼동·서포항·오산리 유적 발굴에서는 빗살무늬토기 자체의 상호간 선후 관계를 보여 주는 층위(層位)가 증거로 제시되어 신석기시대의 문화 변천과 양상 규명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와 함께 남한 지역 발굴 조사에서는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이 응용되어 신석기시대에 관련된 것만 해도 50개의 측정연대가 나왔다. 이와 같이 광복 후의 신석기시대 연구에서는 층서(層序) 관계와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에 의해 빗살무늬토기 문화의 편년 수립에 진전을 보게 되었다. 더욱이 1990년대 이후부터 남한 전역에서 다수의 신석기 유적이 발굴 조사됨에 따라 축적된 다양한 기본 자료에 대한 심층 연구와 더불어 인접 과학 분야의 분석을 통해 우리나라 신석기문화의 기원과 전개 양상에 대한 내용이 좀 더 폭넓고 깊게 밝혀지게 되었다.

[삼척의 신석기 문화]

강원도 영동 지역에서는 1915년 일본인 학자들에 의하여 강릉 토성지(土城址)에서 빗살무늬토기조각이 채집되어 신석기문화의 존재성이 처음으로 알려졌다. 그 후 1960년대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많은 수의 신석기 유적이 발견되고 조사되었다. 지금까지 영동 지역에서 발굴된 대표 신석기 유적은 고성 철통리 유적, 고성 문암리 유적, 양양 용호리 유적, 양양 오산리 유적, 양양 가평리 유적, 양양 송전리 유적, 양양 지경리 유적, 강릉 초당동 유적, 강릉 안현동 유적, 강릉 지변동 유적, 강릉 방동리 유적, 강릉 하시동리 유적, 동해 망상동 유적 등이다. 특히 2006년과 2007년 발굴된 양양 오산리 유적 C지구에서는 한반도 신석기문화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오산리 최하층보다 더 이른 시기인 신석기 전기보다 앞서는 조기의 신석기 문화단계가 존재하고 있었음이 처음으로 확인되었다. 오산리 C지구의 조기문화는 오산리 전기의 사구층보다 아래에 퇴적된 해발 4~5m 높이의 황갈색 점토층[갱신세층(更新世層)] 위에 형성된 것으로, 평저의 민무늬토기[무문토기(無文土器)]와 압날점열문토기[봉계리식토기(鳳鷄里式土器)]·돌도끼[석부(石斧)]·이음낚시·돌살촉[석촉(石鏃)]·그물추[어망추(漁網錘)]·몸돌[석핵(石核)]·격지[박편(剝片)]·좀돌날[세석인(細石刃)]·좀돌날몸돌[세석인핵(細石刃核)] 등 유물이 함께 출토되어 오산리 전기문화와 구별되는 조기문화의 특징을 보여 주고 있다. 또 2008년 동해 망상동 유적 발굴 조사에서도 출토된 유물들이 오산리 조기문화층에서 나오는 토기 및 석기의 특징과 유사한 것으로 밝혀져 동해안 지역의 신석기 조기문화 존재 가능성을 더욱 높여 주었다. 이와 같은 조사 성과에 힘입어 영동 지역의 신석기문화는 조기, 전기, 중기, 후기에 이르는 문화 전개 양상이 점차 밝혀지고 있는 추세에 있다. 또 동북 지방, 동남 지방, 중서부 지방의 문화 요소가 혼합되어 있음을 특징으로 하고 있어 한반도 신석기문화의 전파 및 교류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지금까지 영동 지역에서 발견된 많은 수의 신석기시대 유적은 대부분 동해 바다와 가까운 호숫가나 하천가의 낮은 사구지대(砂丘地帶)에 집중되어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러나 고성 철통리 유적과 몇몇 구릉의 유물산포지 존재를 통해서 보면 주거지는 신석기시대 후기나 말기 단계에 이르러 사구지대에서 하천가의 나지막한 구릉지대로 옮겨 입지한 것으로도 추정된다.

삼척 지역에서는 신석기시대와 관련된 유적·유물이 2000년 이전까지만 해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2009년 증산동참재공원 부지 유적 발굴 조사를 통해 신석기시대의 이음낚시와 돌도끼 등 단편의 유물이 수습되어 삼척 지역에서 처음으로 신석기문화의 존재 가능성을 제시해 주었다. 이 유적에서 출토된 이음낚시는 동해 망상동 유적을 비롯해 고성 문암리 유적 및 양양 오산리 유적 등 우리나라 동해안 지역의 신석기 유적에서 많이 출토되는, 신석기인들의 어로 행위와 직접 관련된 유물이다. 또한 2013년 증산-추암 간 도시계획도로 부지 유적 발굴 조사가 이루어져 주거지 3기, 야외 노지 33기, 수혈유구 1기 등이 확인되었다. 이들 유적은 삼척 지역에서 최초로 발굴 조사된 신석기 유적에 해당된다. 주거지는 평면 형태가 원형과 방형(方形)으로 구분되며, 원형 주거지는 내부에 노지 성격의 대형 수혈이 조성된 상태이다. 야외 노지는 완만한 ‘U’자형 수혈의 굴착 면에 석재가 배치된 형태와 석재 없이 축조된 형태가 있다. 출토된 유물로는 신석기시대 중기~후기에 해당하는 단사집선문(短斜集線文)·능형집선문(菱形集線文)·삼각집선문(三角集線文) 등 남해안식 태선침선기법(太線沈線技法)의 영향을 받은 토기류와 단선문 계열의 토기류가 있다. 수렵·어로용 석기인 돌살촉과 그물추, 채집·가공류 석기인 돌도끼·돌칼[석도(石刀)]·갈판[마곡석(磨穀石)]·갈돌[석봉(石棒)], 긁개와 격지 등 뗀석기[타제석기(打製石器)]류가 있다. 이와 같이 삼척 지역의 신석기 유적은 조사 사례가 매우 적어서 신석기문화의 기원 및 전개 양상 등의 자세한 모습은 살필 수 없지만 영동 지역에서 지금까지 발견·조사된 많은 수의 신석기유적이 대부분 하천이나 호수가 동해 바다와 만나는 사구지대에 집중해서 입지하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앞으로 삼척 지역의 오십천, 마읍천, 추천천, 용하천, 호산천, 가곡천 등 대소 하천의 하류역에 형성된 사구지대나 주변의 나지막한 구릉지에서 신석기시대와 관련된 생활 유적이 집중 발견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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