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5006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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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林覃 |
영어공식명칭 | Im Dam |
이칭/별칭 | 재숙(載叔),청구(淸臞),충익(忠翼)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북도 무주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동희 |
[정의]
조선 후기 무주 지역에 별장을 짓고 시가를 즐겼던 문신.
[가계]
본관은 나주(羅州)[회진(會律)]. 자는 재숙(載叔), 호는 청구(淸滾). 아버지는 관찰사를 역임한 임서(林㥠)이다.
[활동 사항]
임담(林覃)[1596~1652]은 1635년(인조 13)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에 올랐다. 병자호란 때 사헌부 지평으로 남한산성에 들어가 총융사의 종사관이 되어 남격대(南格臺)를 수비하였고, 화의가 성립된 뒤 진휼 어사(賑恤御史)로 호남 지방에 내려갔다. 1639년(인조 17) 좌승지로 사은부사(謝恩副使)가 되어 청나라에 다녀왔고, 1644년 경상도 관찰사가 되어 서원이 사당화되는 폐습을 상소하였다. 1646년 충청도 관찰사로 유탁(柳濯)의 모반 사건을 처결, 그 공으로 품계가 오르고 토지를 하사받았다. 그 뒤 형조 참판·예조 참판·병조 참판과 대사간·도승지를 거쳐 이조 판서가 되고, 1650년(효종 1) 다시 사은부사로 청나라에 다녀와서 지경연사(知經筵事)를 겸하였다. 1652년 청나라 사신의 반송사(伴送使)로 다녀오다가 가산에서 죽었다. 지위도 높고 이름도 널리 알려진 인물이지만 산수를 좋아하여 아무리 직무가 많아도 시가(詩歌)를 읊는 것을 그치지 않았다. 무주 주계(朱溪)의 서호(西湖)로 들어와 다산(茶山) 마을에 별장을 짓고 ‘분의당(分宜堂)’이라 편액하였다.
[학문과 저술]
『적성지(赤城誌)』 정대(亭臺) 편에 임담의 시 「분의정(分宜亭)」이 실려 있다.
[상훈과 추모]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충익(忠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