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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구 침입 이전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500329
한자 倭寇侵入
영어공식명칭 Japanese Invasion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전라북도 무주군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하태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384년 7월 - 주계, 무풍 등지에 왜구 침입
전개 시기/일시 1384년 8월 - 안성소, 소천역 등지에 왜구 침입
성격 일본인 침략 사건

[정의]

고려 후기 무주 지방에 침입한 일본인 해적 집단과 그들의 침략 행위.

[개설]

고려 시대 왜구는 고종(高宗) 때부터 고려 멸망까지 빈번하게 침략해 왔는데, 왜구가 집중적으로 출현했던 시기는 충정왕(忠定王) 이후 공양왕(恭讓王) 4년까지 약 40년간이며, 그중에서도 우왕(禑王) 재위 14년간에 가장 극심하였다. 기록상으로 볼 때, 고려 시대 전국적으로 529회 정도 왜구의 침입이 있었고, 이 중 전라도 지역에 78회 정도의 침입이 있었다.

[역사적 배경]

왜구 침입은 처음에는 주로 경상도 남해안 지역에 한정되어 있었으므로, 당시 고려에 큰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였다. 그러나 시간이 경과하면서 경상도는 물론 전라도와 충청도를 비롯하여 경기, 황해, 강원, 함경도 등 전국에 걸치고, 연근해뿐만 아니라 내륙 깊숙이까지 미쳤으며, 심지어는 개경 근처의 승천부(昇天府)와 강화, 교동, 예성강까지 자주 출몰하여 개경에 계엄령이 내려지기도 하였다. 이에 따라 고려는 계속되는 왜구의 침탈로 인해 많은 피해를 입고 큰 고통을 겪게 되었으며, 우왕 대에 이르러 가장 극심한 피해를 보게 되었다.

[경과]

무주 지방은 한반도의 남부 내륙 산간 지대로서 바다와는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는 곳으로, 고려 말 다른 지역보다는 상대적으로 왜구의 침입이 적었다. 하지만 우왕 대 이후 왜구가 내륙에 출몰하면서 무주 지방도 피해를 입었다. 특히, 1380년(우왕 6) 500여 척의 왜구가 진포에 쳐들어와 노략질하다가 심덕부(沈德符)·나세(羅世)·최무선(崔茂宣) 등의 진포 대첩으로 쫓긴 왜구가 내륙으로 들어가 경상도 지역에 상륙한 왜구와 합세하여 함양, 운봉 등지까지 침입하였다가 이성계(李成桂)의 황산 대첩에 의하여 격퇴당하였는데, 이때 무주 지역에 왜구가 들어왔는지는 알 수 없다. 1384년(우왕 10) 7월 주계(朱溪)[지금의 무주읍]와 무풍 등지에 침입하여 노략질하고, 이어서 8월에는 안성소(安城所)[지금의 안성면]와 소천역(所川驛)[지금의 설천면] 등에 침입하였다. 이때의 피해가 어느 정도인지는 나타나지 않는다.

[결과]

황산 대첩 이후 왜구의 기세가 꺾이고, 고려 왕조의 적극적인 왜구 토벌과 외교 교섭 등으로 왜구의 침입이 줄어들었으며, 조선 초기에 들어서 점차 소멸되었다.

[의의와 평가]

왜구는 고려 말 조선 초의 정치·사회·경제 등 여러 방면에서 영향을 미쳤다. 왜구의 침입에 따라 정치가 불안해지고 국가의 운명이 위기에 직면하고, 국토는 황폐화되고 국가 재정과 민생이 파탄의 경지에 이르는 경제적 위기에 봉착하였다. 왜구를 토벌하고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최영(崔瑩), 이성계 등이 국민적 영웅 무장으로 등장하여 정치 세력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무주 지역도 무풍, 주계, 안성소, 소천역 등지에 왜구의 침입이 있었기 때문에 상당한 피해를 입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그 실상이 자세히 나타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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