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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도병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700555
한자 學徒兵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북도 군산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조종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발 시기/일시 1950년 6월 25일 - 6·25 전쟁 발발
투입 시기/일시 1950년 7월 13일 - 군산지역 6개교 중학생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전선으로 투입
현 소재지 충혼탑(忠魂塔) - 군산 중학교[전라북도 군산시 군중길 18[송풍동 925-8]]지도보기
현 소재지 충혼불멸(忠魂不滅) - 월명공원 내[전라북도 군산시 금동 37-7]지도보기
성격 학생 운동

[정의]

전라북도 군산 지역에서 학생의 신분으로 6·25 전쟁에 참가한 병사.

[개설]

1950년 여름, 라디오와 입소문을 통해 6·25 전쟁이 터졌다는 소식이 퍼져 나갔다. 하지만 군산 지역은 국군과 미군이 북한군을 몰아낼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한강 인도교 폭파와 인민군 탱크의 위력, 그리고 이승만 대통령의 피난 등 전세가 어렵다는 소식만 들려왔다.

이때 위기에 빠진 조국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청년 학생들이 학도병[학도 의용군]으로 나서게 되었다. 학교 별로 학도 호국단 간부 회의가 소집됐고, ‘우리도 나아가 싸우자’는 결의가 고조되었다. 학도병 대부분은 거의가 20세 미만으로 신체 검사에 합격해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전쟁을 피할 수 있었음에도 스스로 입대를 결정했다.

[6·25 전쟁과 군산 지역의 학도병]

1950년 7월 13일, 태극 머리띠를 동여매고 군산 중앙 초등학교에 자발적으로 모여든 군산 지역 6개교 중학생[6년제] 1,000여 명은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총만 든 채 전선으로 투입되었다. 계급도 군번도 없는 학도병들은 제 7사단에 소속되어 낙동강 전선과 포항 전투, 하동 전투 등에서 죽어갔다.

전라북도에서 참전한 학도병 중에서는 325개교, 530명의 희생자가 나왔고, 이중 군산 지역 출신은 7개교 211명으로 40%를 차지하였다. 학교 별로는 군산 중학교 97명, 군산 동 중학교 1명, 군산 상업학교 45명, 군산 사범학교 29명, 군산 영명학교 25명, 군산 북 중학교 3명, 옥구 중학교 11명이었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군산 중학교 정원에는 충혼탑(忠魂塔)이, 군산시 금동 월명 공원에는 ‘충혼불멸’(忠魂不滅)의 비가 세워져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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