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7003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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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群山開港史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단행본 |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병남 |
[정의]
1925년 군산에서 거주하던 일본인 야수다카 세이키[保高正記] 등이 군산의 현황을 각 항목별로 분류해 편찬한 책.
[개설]
『군산 개항사』는 군산이 근대적인 항구 도시로서 개항한 이후의 역사를 교육회, 거류민회 등의 일본인 조직이나 철도, 항만 등의 근대 시설의 설치 등을 중심으로 하여 군산의 과거와 현재까지의 발전 과정에 대해 일본인의 시각으로 서술한 책이다.
[형태]
『군산 개항사』는 22㎝, 338쪽으로 구성되어 있다.
[구성/내용]
군산의 시작점인 금강 주변의 역사적 가치에서 시작하여, 전근대 조선의 공미(貢米) 제도와 화폐 제도, 개항 이후 각국 거류지회와 일본 거류민단, 군산 이사청의 연혁, 러일 전쟁 전후 군산의 농업 경영과 군산 상업 회의소 활동, 군산항 매축(埋築) 문제와 호남 철도, 군산의 미곡상 조합과 군산 미계(米界), 수산업과 해운 현황 등을 주로 다루었다.
군산은 평안남도 진남포와 전라남도 목포가 개항된 이듬해인 1899년 5월에 경상남도 마산, 함경북도 성진과 함께 개항되었다. 개항한 군산은 금강 하구에 위치하여 전라북도 관할에 속하였다. 그러나 그 상업권이 전라남도와 충청남도 일부에까지 미쳐 조선 제일의 미곡(米穀) 집산지로서 ‘쌀의 군산’이라 불렸다.
경제 관련 내용을 보면, 1905년 8월에 경부 철도가 개통되면서 충청남도 강경을 중심으로 한 재래 상권은 큰 타격을 받는다. 철도 개통 이전에 군산항으로 수입되던 일상 용품의 80%가 강경 시장을 거쳐 판매되었는데, 철도 개통 이후에 충청남도 공주 동쪽 연기 이남 지역이 모두 철도의 세력권에 흡수되는 바람에 강경은 금강 하류 대부분의 고객을 잃게 되었다.
한편, 군산의 수출품 중 90%는 쌀로서 1923년의 곡물 수출입 물량은 103만 7,752석으로써 당시 가격으로 환산하면 3,516만 3,053원에 달했다. 『군산 개항사』가 집필되던 1925년 3월 현재 군산항의 인구는 일본인 7,198명, 한국인 14,636명으로 전체 인구 중에서 일본인이 30%를 차지할 정도로 다른 도시와 비교할 때 월등히 많은 일본인들이 거주하였다. 따라서 도시의 명칭 또한 일본과 같이 1조통(條通)에서 9조통으로 되어 있었다.
도시의 각종 산업 시설 역시 쌀과 관련된 농사 조합, 미곡상 조합, 곡물 시장, 미곡 신탁 주식회사, 정미업, 상업 회의소, 세관 등으로 채워졌는데, 이들 시설은 오쿠라 농장[大倉農場]을 비롯해 군산 인근의 일본인 대지주들이 경영하는 각종 농장들과 연계되어 있었고, 그 대표적인 것이 옥구의 후지 농장[不二農場]이었다.
[의의와 평가]
『군산 개항사』는 1899년 군산의 개항 이후부터 개항 25주년이 되는 1920년대 중반까지의 군산의 역사와 현황을 기록해 놓은 자료집이다. 조그마한 촌에서 거대한 항구 도시로 바뀌는 과정이 기록되어 있으며, 개항 이후 일본인의 증가와 그들에 의한 도시의 형성 발전 및 제반 시설 등의 연혁이 함께 나와 있어 지방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며, 아울러 일제의 한국에 대한 수탈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