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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400657
한자 原州元氏
영어공식명칭 Wonju Wonsi|Wonju Won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삼봉 4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남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1690년 - 원주원씨 당진 입향조 원몽선 출생
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1763년 - 원주원씨 당진 입향조 원몽선 사망
본관 원주(原州) - 강원도 원주시
입향지 원주원씨 당진 입향지 - 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삼봉 4리 지도보기
세거|집성지 원주원씨 당진 세거지 - 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삼봉 4리
묘소|세장지 원주원씨 당진 세장지 - 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삼봉 4리
성씨 시조 원경(元鏡)
입향 시조 원몽선(元夢善)

[정의]

원경이 시조이고 원몽선이 입향조인 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세거 성씨.

[개설]

원주원씨(原州元氏)의 시조는 원경(元鏡)이고, 당진시 석문면의 입향조는 18세 원몽선(元夢善)[1690~1763]이다. 원주원씨 시중공파(侍中公派)다. 석문면원주원씨는 약 300여 년을 계승하며 집성촌을 형성하고 있다. 당진시 순성면에도 원주원씨 집성촌이 형성되었는데, 국회 의원과 농림부 장관을 지낸 원용석(元容奭)[1906~1989]을 배출하였다. 원주원씨는 당진 지역에서 유력한 성씨 중의 하나이다.

[연원]

원주원씨의 시조 원경은 당나라 태종 때 고구려에 파견된 8학사 중의 한사람으로, 고구려에 들어와 우리나라 원씨의 시조가 되었다. 하지만 기원이 너무 오래되어 고증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후대에 내려와서 4파가 형성되고 각자 시조 또는 중시조를 모시고 있다. 4파는 운곡파(耘谷派), 원성백파(原城伯派), 시중공파, 충숙공파(忠肅公派) 등이다.

운곡파는 원래 시조인 원경을 시조로 하였고, 원성백파(原城伯派)는 왕건을 도와 고려 개국의 공을 세우고 원성백(原城伯)에 봉해진 원극유(元克猷)를 시조로 한다. 원씨의 관향이 원주인 것은 원극유가 봉해진 고을 이름, 즉 원성[현 강원도 원주시]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편, 시중공파의 중시조는 원익겸(元益謙)이다. 원익겸은 고려 신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시중에 올랐기 때문에 후손들을 시중공파라 부른다.

원주원씨는 고려와 조선 시대를 내려오면서 많은 인물을 배출했다. 그중에서 문중의 정신적 지주로 인정되는 대표적 인물은 원천석(元天錫)[1330~?]이다. 고려 말의 대문장가로 이방원의 스승이다. 하지만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자 관향인 원주로 낙향하였고, 치악산 아래 숨어서 농부로 살았다. 그 후 태종이 된 이방원원천석을 찾아 치악산에 이르렀으나 끝내 만나 주지 않았다고 한다. 고려에 대한 충절을 읊은 「회고가」가 유명하다.

[입향 경위]

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삼봉리의 입향조 원몽선은 진사와 통정대부를 지냈는데, 입향 경위는 전하지 않는다.

[현황]

당진시 석문면 통정리 ‘차돌백이’에서 삼봉리로 넘어가는 곳에 ‘숙구지(宿狗地)’라는 마을이 있다. ‘개가 잠들어 있는 땅’이라는 의미인데, 이곳에 원주 원씨가 세거지를 이루며 오랜 기간 거주하고 있다. 현재 석문면 삼봉리 1구이다.

삼봉리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원주원씨는 원몽선이 낙향한 이후 300여 년을 계승해 오고 있다. 족보에 따르면 19세 원명업(元命業)은 무과에 급제했고, 20세 원경익(元景翊)은 가선대부를 지냈다. 근대 인물로는 참봉과 당진 향교 전교를 역임한 26세 원용식(元容植)이 대표적이다.

삼봉리 원주원씨들과 가까운 집안으로 당진시 순성면 성북리에 세거지를 이룬 원씨들도 있다. 이들은 해방 후, 석문면 통정리인태식 장관과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원용석 장관을 배출했다. 원용석면천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해방 후 외자 총국 이사관을 거쳐 자유당 정권의 4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그리고 제3 공화국의 농림부 장관에 올랐다.

[관련 유적]

당진 지역의 원주원씨 선산은 당진시 석문면 삼봉 4리 ‘금배’ 마을에 있고, 시향일은 음력 10월 18일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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