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4005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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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郭翀龍 |
영어공식명칭 | Gwak Chungryong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남도 당진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김남석 |
[정의]
고려 후기 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혜성군[현 면천군] 지군사로 부임한 공민왕 때의 문신.
[개설]
곽충룡(郭翀龍)은 고려 말 공민왕 때 혜성군(槥城郡)[현 면천군] 지군사(知郡事)로 부임하여 면천의 여러 고적을 조성한 인물이다. 그중 군자지(君子池)만 현재까지 남아 있다.
[활동 사항]
곽충룡은 고려 공민왕 때의 문신이다. 혜성군 지군사로 부임하여 여러 치적을 남겼다. 먼저 면천 객관(客館) 앞에 연못을 조성하였는데, 연못 안에 연꽃을 심고 ‘군자지’라 명명하였다. 그것은 염계(濂溪)[중국 북송 시대의 유학자 주돈이의 호]의 ‘애연설(愛蓮說)’을 취하여 이름 지은 것이라 하며, 고려 말 대학자인 이제현(李齊賢)[1287~1367)이 이를 크게 찬양하였다.
또한 곽충룡은 면천군의 남쪽 1리 지점에 ‘구준대(衢樽臺)’를 건립하였으며, 동쪽으로 1리 지점에 ‘강구정(康衢亭)’과 서쪽으로 1리 지점에 ‘치의당(緇衣堂)’도 세웠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면천군 고적(古跡) 편에 따르면, 옛 사람이 치의당을 보고 "읍(邑)은 비록 10실(室)에 불과한데, 신(信)과 충(忠)을 좋아하는 어진 사람의 감화로 어진 사람을 낳게 한다."라고 하였다.
현재 면천에 구준대, 강구정, 치의당 등의 건물은 흔적도 남아 있지 않다. 다만 조선 후기까지 군자지의 연못 흔적만 남아 있었는데, 유한재(兪漢宰)가 면천 군수로 부임한 이후인 1803년(순조 3)에 연못을 준설하였다. 그리고 연못 안에 작은 섬을 만들고 정자를 짓기 시작하여 이삼의[혹은 이의삼]에 의하여 완성되었다. 정자 이름도 ‘군자정’이라 하여 다시 빛을 보게 된 것이다. 군자정은 몇 차례 허물어지고 세우기를 반복한 끝에 2011년 완전히 수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