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4005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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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文忠植孝子門 |
영어공식명칭 | Memorial Monument House for the Filial Piety of Mun Chungsik |
이칭/별칭 | 문충식 효자 정려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충청남도 당진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학로 |
건립 시기/일시 | 1905년 - 문충식 효자문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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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문충식 효자문 -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성동리 |
원소재지 | 문충식 효자문 -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성동리 |
성격 | 효자 정려 |
양식 | 맞배지붕 |
정면 칸수 | 2간 |
측면 칸수 | 1간 |
[정의]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성동리에 있는 근대 개항기 문충식의 효자 정려.
[개설]
문충식(文忠植)은 남평 문씨 후손으로 당진시 합덕읍 성동리에서 태어났다. 직업이 한의사였던 문충식은 어머니가 병이 들어 자리에 눕자 지극 정성으로 간호하였다. 하지만 어머니 병환이 별다른 차도가 없이 악화되어 사경을 헤매자 손가락을 잘라 어머니 입에 피를 흘려 넣었으며, 수저에 피를 받아 입에 넣어 드리기도 하여 구개월을 더 살게 하였다. 문충식은 효를 행함에 있어서 부모의 뜻을 헤아려 실천하는 모범을 보였으며, 항상 공손한 말과 온화한 안색으로 부모를 보살폈다. 또한 한겨울에 거지가 찾아와도 마다하지 않고 살림이 넉넉하지 않으면서도 며칠씩 극진히 대접하여 보냈다고 한다.
[위치]
문충식 효자문은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성동리 성재산 북쪽의 매물 마을에 있다.
[변천]
문충식의 효행과 덕행은 널리 알려져 조정에서 1905년 7월에 정려를 내렸다.
[형태]
문충식 효자문은 정면 2간, 측면 1간의 맞배지붕 초익공(初翼工)[촛가지 하나로 꾸민 공포] 양식이다. 처마는 겹처마이고 양 옆에는 방풍판을 달았다. 정면은 기단에서 30㎝까지만 흙으로 막고 그 위는 창살로 처리하였다. 양쪽 벽 역시 기단에서 50㎝까지만 흙으로 벽을 바르고 그 위는 창살인 반면에 뒷벽은 전면 흙벽이다.
[현황]
정려각에는 뒷벽 왼쪽으로 문형지의 아내 경주 김씨에 대한 현판이 있고, 오른쪽에는 문충식의 현판이 있다. 왼쪽 벽에는 문응규의 현판이 있다. 오른쪽에는 문충식의 효성에 대한 비석이 있고 천정에는 정려기가 붙어 있다. 이렇게 여러 현판이 있는 것으로 보아 후손들이 문충식과 선대의 정려를 함께 모신 것으로 보인다.
[의의와 평가]
문충식 효자문은 번성한 자손들이 선대의 업적을 기리고 드러내기 위해 세운 것으로, 향촌 사회 주요 가문으로 성장하였음을 뜻하는 것으로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