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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400476
한자 崔沖影幀
영어공식명칭 Choe Chung Portrait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물/서화류
지역 충청남도 당진시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김학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축|증축 시기/일시 1923년 - 해동 영당 중수
개축|증축 시기/일시 1967년 - 해동 영당 재건
문화재 지정 일시 1993년 5월 21일연표보기 - 최충 영정 당진시 향토 유적 제3호로 지정
현 소재지 해동 영당 - 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무수리 산10 지도보기
성격 초상화
관리자 최근영
문화재 지정 번호 당진시 향토 유적 제3호

[정의]

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에 있는 고려 후기 문신이자 학자인 최충의 영정.

[개설]

최충(崔沖)[984~1068]은 고려 문종 때의 문신이자 유학자이다. 최충의 영정은 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무수리에 있는 해동 영당(海東影堂)에 봉안되어 있다.

[최충]

최충은 1005년(목종 8)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관직에 진출한 뒤 문하시중 등 요직을 두루 거치고 70세에 사직하였다. 1053년 정계 은퇴 후에는 구재학당(九齋學堂)을 설립하여 후진 양성에 힘써 등과한 문인을 많이 배출하였는데, 이들을 ‘최문헌공도(崔文憲公徒)’라 하였다. 구재학당의 영향으로 사학 12공도(私學十二公徒)가 생겨 유학이 크게 진작되는 계기가 되었다. 최충은 사망한 뒤 1086년(선종 3) 정종 묘정에 배향되었다가 뒤에 선종 묘정에 배향되었다. 최충은 일명 '해동 공자'로도 불리는데, 이는 중국의 공자처럼 많은 후학을 양성하였기 때문이다. 시호는 문헌(文憲)이며 해주 문헌 서원(文憲書院)에 향사되었다.

[위치]

최충 영정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무수리에 있는 해동 영당 안에 있다.

[변천]

해동 영당이 최초 건립된 것은 조선 선조 때라고 전하지만 분명하지는 않다. 1923년에 중수하였으나 그 후 퇴락하여 1967년에 다시 재건하였다. 이름도 원래는 면천 영당이었던 것을 해동 영당이라고 개칭하였다.

[형태]

최충의 초상화는 건물 뒷벽에 기대 세워진 검은색 상자에 보존되어 있으며 최충의 젊은 시절의 모습을 담고 있다,

[현황]

최충 영정은 1993년 당진시 향토유적 제3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으며 매년 음력 3월 초정일에 제사를 지낸다.

[의의와 평가]

최충의 영정을 모신 해동 영당의 존재는 당진 지역이 유가(儒家)의 전통에 가까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는 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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