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400413 |
---|---|
한자 | 大村里古墳 |
영어공식명칭 | Daechon-ri Old Burial Mound |
이칭/별칭 | 막무데미 밭,막무덤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고분 |
지역 | 충청남도 당진시 |
시대 | 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김학로 |
조성 시기/일시 | 663년 - 대촌리 고분 당나라 장수 유인궤가 백강구 전투에서 전사한 일본군 시체를 모아 묻어 줌 |
---|---|
소재지 | 대촌리 고분 - 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 대촌리 |
성격 | 고분 |
크기(높이,지름) | [높이 2m]|[둘레 450㎡] |
[정의]
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 대촌리에 있는 옛 무덤.
[개설]
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 대촌리 석문 방향 도로에서 100여m 거리에 있는 옛 무덤으로, 이곳 주민들은 '막무데미 밭' 또는 '막무덤'이라 부르고 있다. 충청남도 도지 기록은 막무덤을 개인의 무덤이 아닌 전쟁으로 인한 무명 용사의 집단 묘로 추측했다. 백제가 나당 연합군에게 항복한 이후인 663년 백제 부흥군을 구원하기 위해 왜군 3만 명이 파견되는데, 오늘날 석문 장고항 앞바다인 백강구에서 나당 연합군과 해전을 벌였다. 백강구 전투는 2일간 4차례에 걸쳐 치열하게 해전이 벌어졌는데, 왜 병선 400여 척이 나당 연합군에 의해 무참히 불타 버리고 3만 장병도 대부분 전사하였다. 백강구 해전에서 전사한 왜군 시체는 조류에 휩쓸려 해변에 널려 있었는데 이를 승장인 당나라 유인궤가 거두어 묻어 주고 조제를 지냈다고 『구당서』에 기록되어 있다. 예산 향토 사학자 박성흥은 막무덤을 백제 부흥 전쟁 때 백제군을 지원하러 왔다가 백강구 전투에서 나당 연합군에 패하여 몰살한 왜군의 시체를 모아서 묻은 무덤으로 추정하였다. 이렇듯 막무덤은 백강구 전투를 통해 죽은 왜군의 시체를 거두어 아무렇게나 묻었다고 해서 막무덤으로 불리게 되었고, 1,300년이 지난 지금에도 '막무데미 밭' 또는 '막무덤' 으로 불리고 있다는 것이다.
[위치]
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 대촌리 석문 방향 도로에서 약 100m 거리의 대로변에 있다.
[형태]
대촌리 고분은 높이 2m, 둘레 450㎡ 정도의 봉분이다.
[현황]
조선 총독부 문헌에 따르면 대촌리 고분은 1910년대에는 높이 6자, 둘레 80간이었다 하나 현재는 밤나무 숲을 이루고 있으며 개인 소유 토지로 농사에 이용되고 있다. 길가에 막무덤을 표시하는 팻말이 있으나 문화재로 지정되거나 관리되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는 실정이다.
[의의와 평가]
대촌리 고분의 존재는 백제 부흥 전쟁 당시 벌어진 백강구 전투지 위치 비정 연구에서 백강구의 위치가 당진 장고항 일대였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중요한 유적이라는 데 역사적 의미가 크다. 오랜 세월 구전으로 전해져 온 막무덤의 존재는 기록물이 남아 있지 않은 백제 부흥 전쟁 연구에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