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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답문』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501320
한자 四書答問
영어공식명칭 Saseodapmun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문헌/전적
지역 전라북도 무주군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박순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간행 시기/일시 1906년연표보기 - 『사서답문』 간행
성격 문답서
저자 이유태
편자 이철영
간행자 이철영
권책 5권 4책

[정의]

조선 후기 무주에 거주한 이유태가 사서에 관한 문답을 적은 책.

[저자]

이유태(李惟泰)[1607~1684]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태지(泰之), 호는 초려(草廬)이다. 할아버지는 선공감 봉사(繕工監奉事) 이대방(李大邦)이고, 아버지는 증참판(贈參判) 이서(李曙)이다.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에게 나아가 학문을 닦았으며,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을 따라 『상례비요(喪禮備要)』를 교정하기도 하였다. 유일(遺逸)로서 천거를 받아 인조 때 세자 사부(世子師傅)를 지내고, 효종 즉위 후 송시열(宋時烈)·송준길(宋浚吉) 등과 함께 북벌(北伐) 계획에 참여하였다. 1675년(숙종 1)에 복상 문제(服喪問題)로 제2차 예송(禮訟)이 일어나자 대사헌인 윤휴(尹鑴) 등 남인(南人)의 배척을 받아 영변(寧邊)에 유배되었다. 사면되어 돌아온 후는 동학사(東鶴寺)와 서대산(西臺山) 등지에서 동지들과 모여 향약을 만들었고, 후학(後學)을 양성하는 데 힘썼다. 사후에 이조 판서에 추증되고, 금산 서원(錦山書院)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편찬/간행 경위]

『사서답문(四書答問)』이유태의 9세손 이철영(李喆榮)이 1906년에 편집·간행하였는데, 권두에 저자의 원서가 있고, 권말에 이철영의 발문이 있다.

[형태/서지]

5권 4책의 인쇄본이다.

[구성/내용]

유교 경전인 사서(四書)에 관한 문답이다. 권1은 『대학(大學)』, 권2, 3은 『논어(論語)』, 권4는 『맹자(孟子)』, 권5는 『중용(中庸)』의 문답으로 구성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사서답문』은 무주군 덕유산 아래 산미촌에서 은거하며 학문과 교육에 전념했던 이유태의 이학(理學)[성리학]에 대한 입장을 살펴볼 수 있는 유용한 자료일 뿐만 아니라, 조선 후기 학자들의 사서에 대한 연구의 향방을 제시해 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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