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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려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500410
한자 旌閭
영어공식명칭 Jeongnyeo
분야 종교/유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북도 무주군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최범호

[정의]

전라북도 무주군에 있는 충신, 효자, 열녀 등에게 국가에서 정문을 세워 표창한 것.

[개설]

정려(旌閭)는 국가에서 효자·충신·열녀로 모범이 되는 사람의 집 문앞 또는 마을 입구에 붉은 문을 세워 주는 행위나 그 문을 뜻하는 말이다. 정(旌)은 깃발의 의미로 ‘드러낸다’는 뜻이고, 려(閭)는 마을 또는 마을 어귀에 세운 문이라는 뜻으로 왕이 효자·충신·열녀에게 정려를 내려줌으로써 해당 인물이나 후손에게 포상을 시행하는 의미와 함께 그들의 행실을 널리 드러내어 보임으로써 풍속 교화의 방편으로 한 것이다.

국가가 정려나 정문(旌門)을 세운 것은 삼국 시대부터이며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에는 전국적으로 많은 수가 세워졌다. 특히 성리학적 유교 질서를 기본으로 하는 조선에서는 유교적 풍속의 장려와 교화를 위하여 효·충·열의 행적이 있는 사람에게 사회 경제적 신분 고하, 남녀를 불문하고 표창할 만한 대상이면 적극적으로 정려를 내렸다.

조선의 정려 정책은 고려 시대를 계승하면서도 더욱 확대 강화되었다. 각 지역의 충신이나 효자·열녀 등에 대한 보고를 하여 그 대상자에게 정려를 내렸으며 요역(徭役)을 면제하였고, 행적에 따라 상으로 관직이나 물품을 내리기도 하였다.

이로써 정려가 양반에게는 가문의 커다란 명예이었고 공사천(公私賤)에게는 면천하여 신분 상승 기회가 되었다. 국가에서는 선행자들을 정려·정문·복호(復戶) 등으로 포상함으로써 민심을 격려하고자 하였기 때문에 꾸준히 교화의 일익을 담당하였고, 그 결과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양란 중에는 효자·충신·열녀의 수가 평시보다 몇 배나 더 많았다. 광해군 시기에는 임진왜란 이후 정려한 내용을 모아 『동국 신속 삼강행실도(東國新續三綱行實圖)』라는 책을 펴냈다. 국가에서 이들을 정려·정문·복호 등으로 포상하자, 수상을 목적으로 하는 사람도 있어 정표자의 진위 문제가 자주 논의되기도 하였다.

무주 지역의 정려·정문의 유적은 충신각 4곳, 효자각 3곳, 효부 열녀각 3곳과 통합 효열각 3곳 등이 있다.

[충신각]

충신각은 공이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무주군에는 무풍면 철목리 마을 이만번 충신각(李晩蕃忠臣閣), 안성면 금평리 두문 마을 반남 박씨 삼세 충의비(潘南朴氏三世忠義碑), 장기리 이목 마을 이유길 충신문(李有吉忠臣門), 적상면 괴목리 원괴목 마을 장지현 충신각(張智賢忠臣閣)이 있다.

[효자각]

효자각은 효행을 기리기 위해 건립하였다. 무주군에는 무주읍 당산리 유경제 효자각(堂山里柳景堤孝子閣), 무풍면 철목리 이만경 효자각(哲木里李晩景孝子閣), 부남면 굴암리 송계원 효자각(屈岩里宋桂元孝子閣)이 있다.

[효부 열녀각]

효부 열녀각은 조선 시대 여성의 정절과 효행을 기리기 위해 건립하였다. 무주군에는 무주읍 당산리 창녕 성씨 열녀각(堂山里昌寧成氏烈女閣), 무주읍 가옥리 절부 전주 원씨 정려(佳玉里節婦全州元氏旌閭), 무풍면 철목리 옥산 장씨 열녀각(哲木里玉山張氏烈女閣)이 있다.

[통합 효열각]

집안의 효자와 효부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통합 효열각으로는 효자 박이겸, 효자 박이항, 효열부 전주 원씨, 양주 조씨, 흥양 이씨 등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한 설천면 기곡리 밀양 박씨 효열 오정려(基谷里密陽朴氏孝烈五旌閭), 효자 박권·박삼 형제, 박경호 처 김해 김씨의 효열을 기념하기 위한 설천면 소천리 밀양 박씨 효열각(所川里密陽朴氏孝烈閣), 유한태의 처 효부 현풍 곽씨, 효자 유봉증·유홍증 형제, 유최영 처 효부 풍천 임씨의 효열을 기념하는 적상면 삼유리 문화 유씨 효열 사정각(三柳里文化柳氏孝烈四旌閣)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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