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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통사지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500406
한자 圓通寺址
영어공식명칭 Temple Site Wontongsa
이칭/별칭 죽천리 원통사지,죽천리 원통사 터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터
지역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원통사로 676[죽천리 1-1]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집필자 조명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83년 8월 24일연표보기 - 원통사지 전라북도 기념물 제67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원통사지 전라북도 기념물 재지정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7년 - 원통사지 원광 대학교 마한·백제 문화 연구소에서 지표 조사 실시
소재지 원통사지 -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원통사로 676[죽천리 1-1]지도보기
성격 절터
지정 면적 8,643㎡
소유자 대한 불교 조계종 원통사
관리자 대한 불교 조계종 원통사
문화재 지정 번호 전라북도 기념물

[정의]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죽천리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 절터.

[변천]

1698년(숙종 24)에 건립된 원통사 중창비(圓通寺重創碑)에 따르면, 원통사(圓通寺)가 신라 때 창건된 사찰로 기록되어 있으나 정확한 창건 시기와 사역, 가람 배치 등은 알 수 없다. 비문에는 조선 숙종(肅宗) 때 승려 탄언과 도영, 혜옥, 일학 등이 법당과 종각을 중창하고 동종을 주조하는 등의 대불사가 있었던 것으로 전한다. 이보다 앞선 1530년(중종 25)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덕유산원통사가 있다"는 기록이 있어 16세기 초반에 사찰이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원통사는 1905년(고종 42) 을사조약(乙巳條約) 체결 이후 의병장인 김동신(金東臣)문태서(文泰瑞), 신명선(申明善), 박춘실(朴春實) 등의 독립 투쟁 근거지로 활용되었다. 1949년에 여수·순천 사건의 여파로 전소되었으며, 곧바로 일어난 6·25 전쟁으로 인해 복구되지 못하였다. 1957년에 주지였던 황범인이 명천 마을에 임시로 법당을 마련하고 사찰의 재건을 추진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후 1982년에 황범인의 둘째 아들 황경석의 시주로 중창 불사가 이루어져 초연교, 선초당 등을 세웠다. 1985년에 원통보전(圓通寶殿), 1996년에 명부전, 1997년에 산신각 등이 건립되면서 현 사찰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위치]

원통사지(圓通寺址)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죽천리에 위치한다. 대전~통영 간 고속 도로 덕유산 나들목으로 진입하는 죽천 교차로에서 무주군 안성면 소재지로 이어진 안성로를 따라 북쪽으로 1.1㎞가량 가면, 우측에 원통사가 인접해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원통사지에 대해서는 2004년에 발간된 『무주 군지』 중권에 소개되어 있으며, 2007년에 『문화 유적 분포 지도-무주군』 제작의 일환으로 원광 대학교 마한·백제 문화 연구소가 지표 조사를 실시하였다.

[현황]

1983년 8월 24일에 전라북도 기념물 제67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전라북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현재 원통사지에는 창건 당시의 건물은 남아 있지 않으며, 1985년 중창 불사 이후 건립된 사찰이 운영되고 있다. ‘원통사’라는 옛 명칭을 간직한 채 대한 불교 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의 말사로 등록되어 있다. 창건 당시 가람의 배치나 건물의 흔적은 찾을 수 없지만, 곳곳에 통일 신라 말기~조선 시대 기와편이 산재되어 있어 원통사 중창비에서 전하는 절의 운영 시기와 부합된다. 면적은 8,643㎡이다.

[의의와 평가]

본래 사찰의 모습은 알 수 없지만, 조선 시대에 건립된 원통사 중창비에 창건 및 중창 내용 등이 기록되어 있어 무주군의 불교문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 좋은 자료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창건 당시의 절터에 사찰 건물이 들어서 있기는 하지만, 지형의 변화가 크지 않기 때문에 향후 발굴 조사가 이루어진다면 사찰의 원형을 고증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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