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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500326
한자 大谷所
영어공식명칭 Daegok-so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 장안리
시대 고려/고려 전기,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유호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할 지역 대곡소 - 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 장안리 지도보기

[정의]

고려 시대 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 장안리에 설치한 말단 행정 구역.

[개설]

소(所)는 향(鄕)·부곡(部曲)·처(處)·장(莊)과 함께 고려 시대의 특수 행정 구역으로, 고려의 독특한 군현제의 특성을 잘 보여 준다. 소의 거주민들은 정부에 대하여 특수한 역역(力役)이나 공역(貢役)의 의무를 짊어졌다. 소는 생산물의 종류에 따라 금소(金所)·은소(銀所)·동소(銅所)·철소(鐵所)·사소(絲所)·주소(紬所)·지소(紙所)·와소(瓦所)·탄소(炭所)·염소(鹽所)·묵소(墨所)·곽소(藿所)·자기소(瓷器所)·어량소(魚梁所)·강소(薑所)·다소(茶所)·밀소(蜜所) 등으로 나뉘었다. 이름에서 보듯이 왕실과 관아에서 필요한 수공업과 광업 및 수산업 부문의 공물(貢物)을 생산하기 위하여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건국 초에 지방 조직을 새롭게 편성하면서 공물을 확보하기 위하여 정책적으로 설정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관련 기록]

대곡소(大谷所)에 관한 기록은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의 전라도 전주부 금산군조에 “소가 셋이니, 대곡(大谷)·안성(安城)·횡천(橫川)이다”라고 한 것이 가장 오래되었다. 당시에는 대곡이 현재의 충청남도 금산군에 해당하는 진례현(進禮縣)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금산군조에 대곡소의 기록이 들어간 것이다. 대곡소에 대한 1차 사료의 기록은 이외에 달리 보이지 않는다. 반면 횡천소(橫川所)안성소(安城所)에 대해서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전라도 금산군조와 『반계수록(磻溪隨錄)』의 군현제조에도 나온다.

[내용]

고려 시대 대곡소는 왕실과 관아에서 필요로 하는 공물을 생산하던 소의 하나로, 안성소·횡천소와 함께 무주 지역의 대표적인 소였다. 그러나 대곡소에서 무엇을 생산하였는지에 대해서는 전하는 기록이 없다.

[변천]

대곡소는 고려 시대에 횡천소·안성소와 함께 부리현(富利縣)에 속해 있었다. 부리현은 현재의 충청남도 금산군에 해당하는 진례현에 속해 있었다. 진례현은 뒤에 금주군(錦州郡)을 거쳐 금산군(錦山郡)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고려 말부터 조선 초기에 걸쳐 소의 해체 현상이 전국적으로 나타나면서 대곡소 역시 비슷한 길을 걸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 뒤 1414년(태종 14)의 행정 구역 개편 때 대곡소가 속해 있던 부리현은 부동면·부서면·부북면·부남면 4개 면으로 분할되었다. 대곡소부남면에 있었다. 1914년에 이르러 부남면은 충청남도 금산군에서 전라북도 무주군으로 편입되었다. 대곡소가 있던 곳은 지금의 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 장안리 일대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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