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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500325
한자 茂山城
영어공식명칭 Musanseong Fortress
이칭/별칭 무풍 고성(茂豊古城)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현내리
시대 고대/삼국 시대/신라
집필자 최범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할 지역 무산성 -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현내리 지도보기

[정의]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에 있던 신라 시대의 산성.

[제정 경위 및 목적]

무산성(茂山城)은 삼국 시대 신라 무산현(茂山縣)의 읍성(邑城)으로 축조되었다. 신라의 서쪽 변방으로 백제의 적천현[현 무주군 무주읍 지역]과 인접하며 국경을 이루는 군사적 요충지였다.

[관련 기록]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본기(新羅本紀)에는 “진덕왕 1년(647) 겨울 10월에 백제의 군사가 무산(茂山)·감물(甘勿)·동잠(桐岑)의 세 성을 에워쌌으므로, 왕이 유신(庾信)에게 보병과 기병 1만 명을 거느리고 가서 막게 하였다. 고전하여 기운이 다 빠졌는데, 유신의 부하 비령자(丕寧子)와 그의 아들 거진(擧眞)이 적진에 들어가 급히 공격하다가 죽었는데, 무리들이 모두 분발하여 쳐서 3,000여 명의 목을 베었다[眞德王 一年 冬十月 百濟兵圍茂山·甘勿·桐岑三城 王遣庾信 率步騎一萬以拒之 苦戰氣竭 庾信麾下丕寧子及其子擧真入敵陣 急格死之 衆皆奮撃 斬首三千餘級]”라는 기록이 있다. 또한 『삼국사기』 백제본기(百濟本紀)에는 “의자왕 7년(647) 겨울 10월 장군 의직(義直)이 보병과 기병 3,000명을 거느리고 신라의 무산성(茂山城) 아래에 주둔하고, 군사를 나누어 감물과 동잠 두 성을 공격하였다. 신라 장군 유신이 직접 군사들을 격려하며 결사적으로 싸워서 아군을 크게 격파하니 의직이 단신으로 돌아왔다[義子王 七年 冬十月 將軍義直帥歩騎三千 進屯新羅茂山城下 分兵攻甘勿·桐岑二城 羅將軍庾信 親勵士卒 决死而戰 大破之 義直匹馬而還]”라는 기록이 있다.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과 『문헌비고(文獻備考)』 등의 옛 문헌에도 무산성[무풍 고성]에 대한 기록이 있다.

[내용]

무산성은 현재의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현내리 거문들 마을 일대이고, 감물성(甘勿城)은 현재의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에 비정되며, 동잠성(桐岑城)은 현재의 경상북도 구미시 인의동 일대로 추정된다. 『삼국사기』 권28 백제본기 의자왕 7년(647) 10월조에, 이때 백제 장군 의직이 보기(步騎) 3,000을 거느리고 신라 무산성 아래에 나아가 주둔하면서 병사를 나누어 감물·동잠의 두 성을 공격하였다고 한다.

647년(의자왕 7) 겨울 10월 백제 군사가 와서 무산성·감물성·동잠성 세 성을 에워싸자 왕이 [김]유신을 보내 보병과 기병 1만을 거느리고 그들을 막게 하였다. 고전하다가 기운이 빠지니 [김]유신비령자에게 “오늘의 상황이 급박하구나. 자네가 아니면 누가 능히 여러 사람들의 마음을 분발시키겠는가?”라고 말하였다. 비령자가 절을 하며 “감히 명령을 따르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하고는 마침내 적진을 향해 나아갔다. 아들 거진(擧眞)과 종[가노(家奴)] 합절(合節)비령자를 따랐고 검과 창을 부딪치며 힘껏 싸우다가 죽었다. 군사들이 그것을 보고 감격하여 나아가 싸워 적병을 크게 물리쳤으며, 3,000명을 참수(斬首)하였다.

[변천]

무산성이 속한 지역은 삼국 통일 이후에 무풍현으로 개칭되었다. 고려 때 무풍현은 강남도(江南道)에 편제되어 주계현과 같은 행정 구역에 속하게 되는데, 이는 그 동안 신라의 영남권에서 백제의 호남권으로 바뀌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또한 고려 명종(明宗) 때에 무풍현의 감무(監務)가 주계 현감을 겸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1414년(태종 14) 무풍과 주계를 병합하여 무주현을 두고 치소(治所)를 주계 지역에 둠에 따라 성의 존재 가치가 약해지면서 점차 퇴락될 뿐 아니라 덩달아 민가(民家)가 들어서면서 파괴되었다. 이에 따라 축성(築城)에 사용된 돌은 대부분 민가의 담장으로 사용되거나 흩어져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게 되었고, 지금은 성곽의 위치마저 알 수 없게 되었다.

[의의와 평가]

무산성은 백제와 신라의 접경 지역에 위치한 군사 요충지이다. 양국이 군사적 우위를 차지하기 치열하게 싸운 곳으로 지정학적 위상이 높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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