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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501238
한자 玉女公主-弓垈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금평리
집필자 이정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2년 - 「옥녀 공주와 궁대」, 『내 고장 전설집』에 수록
관련 지명 궁대 -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금평리 궁대 마을 지도보기
성격 설화|지명 유래 전설
주요 등장 인물 백제왕|옥녀 공주|궁지기
모티프 유형 남녀 결연|마을 지명 유래|해원

[정의]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금평리 궁대 마을에서 옥녀 공주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옥녀 공주와 궁대」는 백제의 옥녀 공주가 살았던 마을의 지형이 활과 같은 모습이어서 궁대 마을이라고 이름 붙였다는 지명 유래 전설이다.

[채록/수집 상황]

「옥녀 공주와 궁대」는 1992년 김경석이 편찬하고 무주군에서 간행한 『내 고장 전설집』의 194쪽에 수록되어 있다. 채록 시기와 채록 장소는 명확하지 않다. 2013년 박대길이 집필하고 무주군에서 간행한 『무주의 마을 유래와 땅 이름』에도 금평 마을이 거문고와 같은 형세로 사람들이 거주하기 편안한 곳이라는 뜻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내용]

무주군 안성면에 있는 금평 마을은 옥녀 공주가 정착하여 거문고를 연주하는 소리가 들판에 은은하게 울렸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옥녀 공주는 원래 백제의 공주였다. 공주는 신분이 낮은 궁지기와 사랑에 빠져 궁궐에서 쫓겨나고, 궁지기는 죽음을 당하였다. 궁궐 밖으로 쫓겨난 공주의 꿈에 궁지기가 나타나 화살을 주며 이 화살을 활시위에 걸어 줘야만 자신이 저승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말하였다. 공주가 꿈에서 깨어났을 때 손에 화살이 쥐어져 있었다. 이후 옥녀 공주는 활을 들고 다시 머물 곳을 찾아 떠났다. 그러던 중, 숲에 둘러싸인 마을에 이르렀을 때, 그곳의 지형이 ‘활시위’와 같다는 것을 알고 꿈의 의미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이후 이 마을의 이름은 공주가 머물던 곳[宮垈]이나, 마을의 지형이 활과 같다[弓垈]는 의미를 지닌 ‘궁대 마을’이 되었다. 마을이 산과 숲으로 둘러싸여 있고 잘 드러나지 않아 피난처로 이용되기도 했다.

[모티프 분석]

「옥녀 공주와 궁대」의 주요 모티프는 ‘남녀 결연’, ‘마을 지명 유래’, ‘해원(解冤)’ 등이다. 「옥녀 공주와 궁대」는 신분 차이가 나는 백제의 공주와 천한 궁지기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인데, 억울하게 죽은 원혼의 한을 풀어 주는 해원 모티프가 결합되어 있다. 무주군 안성면 금평리 궁대 마을은 옥녀 공주와 궁지기의 사랑을 연결해 주는 곳이자 피난처가 될 만큼의 안정적이고 편안한 곳이다. 실제 금평 마을은 밑에서 보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위로 올라가면 넓은 평지가 펼쳐지는 복지(卜地)다. 이런 지형적 편안함으로 「옥녀 공주와 궁대」의 사랑 이야기가 전승되는 것이다. 또 공주의 거문고 소리가 들판에 울려 퍼졌다는 전설은 무주의 산간 지역에서 볼 수 없는 정적인 공간을 형성한다. 이런 점에서 「옥녀 공주와 궁대」는 자연환경 극복 의지가 드러나는 여타의 이야기들에 비해 낭만적이며 서정적인 어조를 지니고 있는 설화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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