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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현이 무주 도호부로 승격되면서 발급한 문서. 조선은 임진왜란의 와중에서 유일하게 보존되었던 전주 사고본을 토대로 1606년(선조 39)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4본을 새로 만들어, 서울 춘추관을 비롯해 강화도 마니산, 평안북도 영변군 묘향산, 강원도 평창군 오대산, 경상북도 봉화군 태백산에 분장하였다. 조선 전기 4대 사고(史庫)가 모두 평지에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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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무주에서 활동한 학자 이용우의 시문집. 이용우(李用雨)[1875~1963]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몽필(夢弼), 호는 경산(耕山)이다. 활계(活溪) 이대유(李大㽕)의 후손이다.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간재(良齋) 전우(田愚)와 담재(澹齋) 김진명(金振明) 등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평소 글 읽기를 무척 좋아했으며, 만사(晩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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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무주에 거주한 무신 장필무의 사적을 기록한 문집. 장필무(張弼武)[1510~1574]의 본관은 구례(求禮)이며, 자는 무부(武夫), 호는 백야(栢冶)이다. 할아버지는 군수 장사종(張嗣宗)이고 아버지는 충순위(忠順衛) 장근(張謹)이다. 1543년(중종 38) 무과에 급제하고, 종사관으로 연경(燕京)에 다녀왔으며, 온성 판관(穩城判官)을 지내면서 변방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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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에 거주한 이유태가 사서에 관한 문답을 적은 책. 이유태(李惟泰)[1607~1684]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태지(泰之), 호는 초려(草廬)이다. 할아버지는 선공감 봉사(繕工監奉事) 이대방(李大邦)이고, 아버지는 증참판(贈參判) 이서(李曙)이다.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에게 나아가 학문을 닦았으며,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을 따라 『상례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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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무주에서 활동한 학자 강지형의 시문집. 강지형(姜芝馨)[1844~1909]의 본관은 진주(晋州)이며, 자는 덕찬(德燦), 호는 우당(愚堂)이다. 통계(通溪) 강회중(姜准仲)의 후손이다. 단성(丹城)에서 출생하였으나 무주군 안성면에서 살았다.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학행(學行)이 높았고, 관선계(觀善契)를 조직하여 매년 봄과 가을에 많은 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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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년에 전라북도 무주군에서 발간한 읍지. 『적성지(赤城誌)』는 1896년 당시 무주 군수 조병유(趙秉瑜)의 발의로 여러 향로(鄕老)들이 편찬을 시작하였고, 후임 군수인 민술호(閔述鎬)의 감독 아래 1898년 명륜당에서 간행되었다. 목활자본 5권 2책으로 크기는 342㎜×222㎜이다. 『적성지』의 저술 작업은 1896년(고종 33)에 시작하여 1898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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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과 1967년에 재간된 전라북도 무주군의 읍지. 1896년 당시 무주 군수 조병유(趙秉瑜)의 발의로 편찬을 시작하여, 후임 군수인 민술호(閔述鎬)의 감독 아래 1898년 무주 읍지인 『적성지(赤城誌)』를 간행하였다. 이후 세월이 흘러 자료가 거의 다 사라지고 얼마 남지 않게 되자 무주군의 유일한 사료인 『적성지』를 보전하기 위하여 1957년 지방의 유림들이 『적성지』를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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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에서 활동한 학자 박문건의 시문집. 박문건(朴文健)[1770~1809]의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자는 이환(而煥), 호는 관일당(貫一堂)·정관재(靜觀齋)이다. 기우재(寄寓齋) 박세항(朴世項)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박중엽(朴重燁)이다. 진주에서 출생하여 말년에 무주로 이거하였고, 학행으로 이름이 높았다. 지극한 효성으로 어버이를 섬겼으며 죽을 때까지 영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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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로 이거한 문신 이유태의 시문집. 이유태(李惟泰)[1607~1684]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태지(泰之), 호는 초려(草廬)이다. 할아버지는 선공감 봉사(繕工監奉事) 이대방(李大邦)이고, 아버지는 증참판(贈參判) 이서(李曙)이다.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에게 나아가 학문을 닦았으며,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을 따라 『상례 비요(喪禮備要)』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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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무주 출신 유학자 유인성의 시문집. 유인성(柳寅誠)[1867~1938]의 본관은 문화(文化)이며, 호는 화은(華隱), 자는 길중(吉中)이다. 충경공(忠景公) 유양(柳亮)의 후손이다. 어렸을 때부터 책 읽기를 좋아하여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의 문하에 들어가 수학하였으며, 학행으로 이름이 높았다. 산골에 은거하며 후진들을 가르치면서 어버이에게 효도하며 일생을 보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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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 가당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길문기의 덕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길문기(吉文基)에 대해서는 비문이 훼손되어 있고 기록이 없어서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으나, 마을 사람들을 위하여 많은 덕을 베풀어 가당리 길문기 선덕비(柯堂里吉文基善德碑)를 세운 것으로 보인다. 무주군 부남면 가정 삼거리에서 부남로 부남 방면으로 좌회전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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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가옥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전주원씨의 정려. 절부 전주원씨는 효자 박이항(朴以恒)의 처로 성품이 정결하고 사리가 분명하였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丁酉再亂) 때, 남편이 가족들을 데리고 장수 백운산으로 피신하면서 “만약 우리가 한 곳에 가서 있다가 변을 당하면 한꺼번에 변을 당할 우려가 있으니, 각기 다른 곳으로 피하자”라고 하여, 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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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무주 지역에서 활동했던 유학자.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덕찬(德燦), 호는 우당(愚堂). 통계(通溪) 강회중(姜淮仲)의 후손이다. 강지형(姜芝馨)은 단성(丹城)[경상남도 산청군] 출신으로, 덕유산(德裕山)으로 거처를 옮긴 뒤 지금의 무주군 안성면에 머물면서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을 사사하고 학문을 연마하였다. 동학(東學)이 일어나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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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918부터 서기 1392년까지 존속하였던 고려시대 무주 지역의 역사와 문화. 고려시대 무주 지역은 아직 하나의 행정 구역으로 존재하지 않았으며, 대체로 무풍현(茂豊縣)과 주계현(朱溪縣) 두 고을에 해당하는 지역이었다. 오늘날의 무주군 안성면 지역 등 일부 지역은 현재 충청남도 금산군에 해당하는 부리현(富利縣)과 진례현(進禮縣)의 일부였다. 부리현은 현재의 충청남도 제원군 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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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광을 시조로 하고, 김경조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무주군의 세거 성씨. 광산김씨의 시조 김흥광(金興光)은 신라 신무왕(神武王)의 셋째 아들로, 신라의 멸망을 예견하고 무진주(武珍州)에 은거하였는데,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 태조가 광산 부원군(光山府院君)에 봉하였다고 한다. 이에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삼고 광산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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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악을 시조로 하고, 장의현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무주군의 세거 성씨. 시조 장악(張岳)은 인동 장씨 시조 장정필(張貞弼)의 후손으로, 고려 인종 때 문하시중을 지내며 왕의 총애를 받았다. 나이 70세에 이르러 입조(入朝)할 때마다 고향인 봉성(鳳城)[현 전라남도 구례군]을 생각하고 근심이 가득하였다. 이를 알게 된 왕이 봉성을 식읍(食邑)으로 하사(下賜)하고 봉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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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 굴암리에 있는 조선 후기 송계원의 효자각. 송계원(宋桂元)[1731~1792]의 본관은 은진(恩津)이다. 어려서부터 부모에 대한 효심이 극진하였고, 아버지가 병에 걸리자 온갖 정성을 다해서 병간호를 하였다. 추운 겨울, 잉어를 먹고 싶어 하는 아버지를 위해 추위를 잊은 채 강가에 나가 헤맸는데, 얼음이 깨지며 잉어가 튀어나와 공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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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와 개항기 무주 지역에서 활동한 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호는 오포(午圃). 문정공(文正公) 권부(權溥)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권사도(權思道)이다. 권철로(權喆魯)는 백남(柏南) 하현(河鉉), 석치(石痴) 이해교(李海敎), 운파(雲坡) 하재만(河在晩), 권철규(權喆奎), 권대형(權大衝) 등과 함께 교유하면서 학문을 닦았다. 후인들이 계(契)를 만들어 그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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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금평리에 있는 성산 이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성산 이씨(星山李氏)는 금녕 김씨 김치묵(金致默)의 처로 시부모 봉양과 제사를 받드는 데 정성을 다하였고, 남편을 받드는 데에도 어김없이 법도와 예절을 지켰다. 남편이 위독하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흘려 넣어 3일을 더 살게 하였으나 끝내 운명하였다. 이에 성산 이씨는 초종(初終)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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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기곡리에 있는 개항기 밀양박씨 가문의 효열 오정려. 기곡리 밀양박씨 효열 오정려(基谷里密陽朴氏孝烈五旌閭)는 밀양박씨 문중의 효열 다섯 명의 정려(旌閭)를 기리기 위하여 세운 정려각이다. 효자 박이겸(朴以謙)[1555~1613]과 박이항(朴以恒), 효열부(孝烈婦) 전주 원씨(全州元氏), 양주 조씨(楊州趙氏), 흥양 이씨(興陽李氏)를 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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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 가당리에 있던 숙식을 제공하는 편의 시설. 원(院)은 공무 여행자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하여 교통 요지나 험한 영로(嶺路) 등에 설치되는 역의 보조 시설이었다. 대체로 역과 같은 장소에 원이 설치되었기 때문에 역원(驛院)이라고 칭하였다. 30리에 하나씩 설치되었으나, 지형에 따라서 평지에서는 멀고 산악 지대에서는 가까웠다. 이러한 원 제도는 고려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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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전라북도 무주군 출신의 효자. 본관은 금녕(金寧). 자는 영재(永載), 호는 은천(隱川). 부인은 밀양 박씨(密陽朴氏)이다. 김달규(金達圭)[1841~1936]는 1841년(헌종 7)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내도리 굴천 마을에서 태어났다. 천성이 온순하고 맑아 친척들이나 이웃을 대할 때 항상 온화한 표정을 지었다. 특히 부모를 섬기는 데 있어서는 조금의 흐트러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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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무주 출신의 무신. 본관은 진례(進禮)[금산(錦山)]. 장인은 낭장을 지낸 왕연(王涓)이다. 김신(金侁)은 진례현(進禮縣)[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에서 출생하였다. 원(元)에서 요양행성 참정(遼陽行省參政)을 지냈다. 1305년(충렬왕 31) 원나라에서 벼슬을 하여 고려에 공을 세웠다고 하여 출신지인 진례현을 금주(錦州)로 승격시켰다. 일찍이 어머니가 왜적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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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사전리에 있는 개항기 김여석의 신도비. 김여석(金礪石)[1445~1493]은 조선 전기 문신으로 본관이 광산(光山), 자(字)는 은경(殷卿), 호는 심재(心齋)이다. 아버지는 강화 부사를 지낸 증판서(贈判書) 김수(金洙)이며, 어머니는 증정부인(贈貞夫人) 안동 권씨(安東權氏)로 집의 권항(權恒)의 딸이다. 점필재(償畢齋) 김종직(金宗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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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무주 지역에서 활동한 유학자. 본관은 광산(光山). 호는 연심당(淵心堂). 충목공(忠穆公) 김여석(金礪石)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김계현(金啓鉉)이다. 동생은 연서 김영구(金永龜)이다. 김영규(金永圭)는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향리에 은거하면서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고종(高宗) 대에 동몽교관(童蒙敎官)으로 후진을 양성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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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무주 지역에서 활동한 유학자. 본관은 광산(光山). 호는 사재(思齋). 충목공(忠穆公) 김여석(金礪石)의 후손이다. 김영조(金永祚)의 정확한 생몰 연대는 알 수 없지만 19세기 중엽부터 20세기 초까지 활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일찍부터 학문에 뜻을 두고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1836~1905]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심석(心石) 송병순(宋秉珣), 우당(愚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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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무주 지역에서 활동한 유학자. 본관은 광산(光山). 호는 유당(裕堂). 충목공(忠穆公) 김여석(金礪石)의 후손이다. 아들 김영교(金永敎)는 법학을 공부하여 학부(學部)에서 교관을 지내다 세상이 날로 어지러워지자 물러나 거문고를 타며 글 읽는 것을 낙으로 삼았으며, 고을 사람들을 교화하는 데 진력하였다. 김직현(金直鉉)은 심성(心性)과 이기(理氣)에 대한 책을 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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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로왕을 시조로 하고, 김동경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무주군의 세거 성씨. 김해김씨는 가락국(駕洛國)의 시조(始祖) 김수로왕(金首露王)의 12세손 김유신(金庾信)을 중시조로 하여 98파로 나뉜다. 김유신의 직계 종파는 고려의 김목경(金牧卿)을 중시조로 하는 경파(京派)와 아우 김익경(金益卿)을 중시조로 하는 사군파(四君派), 김관(金管)을 중시조로 하는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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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현내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김해 김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김해 김씨(金海金氏)[1856~1922]는 장수 황씨 황호주(黃鎬周)에게 출가하여 부덕(婦德)을 쌓아 정숙하면서도 효성이 극진하였다. 남편이 중병으로 고생하였는데, 온갖 정성으로 약을 구하고 시탕(侍湯)을 하며 병구완을 하였으나 효과가 없어 죽음에 이르렀다. 이에 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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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을 시조로 하고, 서효재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무주군의 세거 성씨. 달성서씨(達城徐氏)의 시조 서진(徐晉)은 고려 때 봉익대부(奉翊大夫)·판도판서(判圖判書) 등을 역임하였고, 나라에 큰 공을 세워 달성군(達城君)에 봉해지고 달성[현 대구광역시 달성군]을 식읍(食邑)으로 하사받아 대대로 살게 되었다. 시조 서진의 아들 서기준(徐奇俊)과 손자 서영(徐穎)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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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을 에워싸고 서쪽으로 뻗어 내린 남산의 서쪽 끝에 당미산(堂尾山)으로 부르는 당뫼[堂山]에서 당산리(堂山里)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고 한다. 예전에는 화산(華山)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당미산은 마을의 수호신을 모시는 사당이 있는 산이라는 의미로 당뫼[당산], 당묘(堂廟)라고 부르다가 후에 발음이 변하여 ‘당미산’이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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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당산리에 있는 개항기 유경제의 효자각. 유경제(柳景堤)[1802~1856]의 자는 화중(和中), 본관은 문화(文化)로 충경공 유량(柳亮)의 후손이다. 13세 되던 해 작은 집에 양자(養子)로 가게 되었는데, 효심이 극진하여 친가와 양가의 부모를 한결같이 지성으로 섬겼다. 양아버지가 갑자기 병에 걸리자 눈물을 흘리며 밥도 먹지 않고 간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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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당산리에 있는 개항기 창녕성씨의 열녀각. 열녀 창녕성씨(昌寧成氏)는 유풍렬(柳豊烈)의 아내이다. 남편이 산에 올라갔다가 호랑이를 만나 물려 죽게 되자, 마을 장정 수십 명이 몰려갔으나, 성난 호랑이의 울음소리에 놀라 감히 달려들지 못하였다. 창녕 성씨가 큰 소리로 고함을 지르며 앞으로 달려 나가자 호랑이가 감동하여 슬그머니 남편을 놓고 달아나 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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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8년 정권에서 소외되었던 소론과 남인의 급진 세력이 경종의 죽음에 영조와 노론이 관련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일으킨 사건. 1724년 경종이 갑작스럽게 사망하고 영조가 노론(老論)의 지지를 받으면서 즉위하였다. 노론의 집권으로 정권에서 소외되었던 소론(少論)과 남인(南人)의 급진 세력은 영조와 노론을 제거할 계획을 세웠다. 이들은 세제(世弟) 책봉의 부당성, 경종의 사인(死因)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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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현내리에 있던 숙식을 제공하는 편의 시설. 원(院)은 공무 여행자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하여 교통 요지나 험한 영로(嶺路) 등에 설치되는 역의 보조 시설이었다. 대체로 역과 같은 장소에 원이 설치되었기 때문에 역원(驛院)이라고 칭하였다. 30리에 하나씩 설치되었으나, 지형에 따라서 평지에서는 멀고 산악 지대에서는 가까웠다. 이러한 원 제도는 고려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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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북창리에 있는 백제 시대 산성. 무주 적상산성(茂朱赤裳山城)의 중요성은 임진왜란으로 인해 방어 시설인 산성의 중요성이 대두됨에 따라 부각되었다. 전라도 동부 내륙 지역의 주요 방어 시설로서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이다. 광해군(光海君) 당시 후금(後金)이 강성해짐에 따라 국방 시설의 점검과 정비, 그리고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의 보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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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을 시조로 하고, 무주를 본관으로 하는 전라북도 무주군의 세거 성씨. 무주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는 김씨와 함께 최씨가 있다. 무주 최씨 중 대표적인 인물로는 조선 후기의 기인(奇人) 화가로 유명했던 호생관(毫生館) 최북(崔北)과 영조 때 청백리(淸白吏)로 삶을 마친 최수명(崔壽溟)이 있다. 이외 과거 급제자로 11명[무과 4명, 역관 7명]이 『조선조 방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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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무주군에 설치한 지방 행정 구역. 임진왜란(壬辰倭亂) 이후 적상산(赤裳山)에 사고(史庫)가 건립되면서 적상산 사고(赤裳山史庫)의 실록과 선원보 등 왕실 기록을 관리하기 위해 무주현(茂朱縣)을 무주도호부(茂朱都護府)로 승격하였다. 『태종실록(太宗實錄)』 권28, 태종 14년 12월 25일에 “전라도 무풍현·주계현 두 현을 아울러서 무주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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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읍내리 무주향교 내에 모여 있는 비석군. 관찰사 김흥근(金興根)[1796~1870]은 조선 후기 문신으로 본관은 안동, 자는 기경(起卿), 호는 유관(游觀)이다. 순조 때 급제하여 검열·대교(待敎) 겸 보덕(兼輔德)·이조 참의 등을 거쳐 전라도 관찰사에 제수되었다. 헌종 때 안동 김씨의 권세를 믿고 방자하게 행동하였다 하여 대간(臺諫)의 탄핵을 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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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와 후기 전라북도 무주군에 설치한 지방 행정 구역. 조선 건국 이후 행정 구역이 통폐합되는 과정에서 1414년(태종 14)에 무풍현(茂豊縣)과 주계현(朱溪縣)을 통합하여 무주현(茂朱縣)을 설치하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권34 잡지 제3 지리 1편에 “무풍현은 본래 무산현이었다. 경덕왕 때에 명칭을 고쳐 지금에 이른다[茂豊縣 本茂山縣 景德王改名 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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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삼공리에 있는 의병장 문태서의 순국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호남 의병장 문태서(文泰瑞)는 경상남도 안의현 서상면 장구지에서 성장하였으며, 개항기에 영남·호남·호서 일대에서 크게 활약하였다. 1906년 함양군 안의에서 의병을 일으키고 덕유산을 중심으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뛰어난 지략으로 호남 의병단을 조직하여 일본군을 사살하는 군사 훈련에 전력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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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차달을 시조로 하고, 유약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무주군의 세거 성씨. 유차달(柳車達)은 고려 개국 2등 공신 12명 중 한 명으로 태조에게서 사명(賜名)을 받아 문화유씨(文化柳氏)의 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유차달은 고려 태조 때 군량 수송에 공을 세워 대승(大丞)에 제수되었고, 삼한공신(三韓功臣)의 호를 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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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언침을 시조로 하고, 박인정을 입향조로 하는 무주군 세거 성씨. 우리나라 모든 박씨는 신라의 건국자 박혁거세의 후예이며, 그중에서 밀양박씨는 신라 경명왕(景明王)[재위 917~924]의 장남인 밀성 대군(密城大君) 박언침(朴彦忱)을 시조로 한다. 본관을 밀성(密城)이라고도 하는데, 밀성은 밀양의 옛 지명이다. 밀양박씨는 우리나라에서 김해 김씨 다음으로 자손이 번성한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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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군 설천면 기곡리에 정려각이 세워진 유학자이자 효자. 박이겸(朴以謙)[1553~1613]은 선조(宣祖) 대의 학자로 중봉(重峯) 조헌(趙憲)의 문인이다. 지극한 효성으로 어버이를 섬겼으며, 임진왜란의 와중에 상을 당하자 여묘를 살면서도 나랏일을 걱정하였다. 뒤에 유일(遺逸)로 정릉 참봉(貞陵參奉)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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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근보(近甫), 호는 설계(雪溪). 임진왜란 때 선조(先祖) 가운데 한 사람이 난을 피하여 삼도봉(三道峰)에 들어왔다가 지금의 무주군 설천면에 자리를 잡았다. 할아버지는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증직된 박태만(朴泰萬)이며, 아버지는 박세건(朴世建)이다. 어머니는 남원 양씨(南原梁氏)이며, 부인은 김육(金堉)의 딸인 광산 김씨(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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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사전리에 있는 개항기 박태양 처 대구갈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박태양(朴泰陽) 처 대구 갈씨(大邱葛氏)는 갈득성(葛得成)의 딸로 태어났으며, 가난한 집안에 서모(庶母)와 함께 사는 반남 박씨(潘南朴氏) 집안으로 출가하였다. 남의 집 삯품팔이로 살림을 꾸려가면서도 병환에 시달리는 남편 병구완에 정성을 다하고, 시부모에게 효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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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무주 도산 서원에 배향된 문신.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천경(天經), 호는 임회당(臨淮堂). 고려수절신(高麗守節臣)[여말 선초 성리학의 대의명분을 지켜 조선조에서 벼슬을 하지 않고 절개를 지킨 고려 말의 학자들] 박힐(朴詰)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초산 군수를 지낸 박인(朴麟)이다. 박힐이 충청남도 금산에 들어와 은거하면서 후손들이 대대로 금산군 남일면에서 세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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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응주를 시조로 하고, 박수증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무주군의 세거 성씨. 반남박씨(潘南朴氏)는 도시조 박혁거세(朴赫居世)의 후손인 박응주(朴應珠)를 시조로 한다. 박응주는 고려 고종 때 반남현[현 전라남도 나주시 반남면]의 호장(戶長)을 지냈다. 박응주의 6세손 박은(朴訔)[1370~1422]은 조선 태종 때 반남군(潘南君), 반성군(潘城君)과 좌의정을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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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금평리에 있는 반남박씨 가문 삼세의 충의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삼세 충의 비각에는 여말 선초(麗末鮮初)에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을 지킨 도소재(逃召齋) 박힐(朴詰), 단종 복위를 도모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의율재(擬栗齋) 박인(朴麟)과 그의 아들 박희권(朴希權) 등에 대하여 기록한 비가 있다. 박힐은 반남박씨(潘南朴氏) 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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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심곡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보성오씨의 효열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권영유(權永裕) 처(妻) 보성오씨(寶城吳氏)는 홀로 계신 시어머니를 모시면서 몸과 마음을 길렀고, 남편을 섬길 때는 반드시 공경하고 마음과 몸을 깨끗이 하였다. 1877년(고종 14) 봄에 온 집안이 모두 돌림병에 걸려 불행히도 남편이 죽고 말았으나, 집안이 가난하여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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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에 있는 법정면. 부남면(富南面)은 전라북도 무주군의 북서부에 위치한다. 금강의 상류인 산간 지대에 자리하여 동쪽은 조정산(鳥頂山)[799m] 등의 산지를 경계로 무주읍·적상면과 접하고, 서쪽은 지장산(智藏山)[723m] 등을 경계로 진안군과 충청남도 금산군, 남쪽은 진안군 동향면, 북쪽은 금산군과 접한다. 『무주군지』에 따르면 부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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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에 있는 비. 비(碑)는 여러 사실이나 업적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나무나 돌 또는 쇠붙이 등에 내용을 새긴 것을 말한다. 이를 비갈(碑碣)이라고 하였다. 비는 주로 네모난 형태를 총칭하는 말이고 갈(碣)은 우뚝 솟은 비나 둥근 비를 일컬었으나, 나중에는 비석이라고 부르면서 지금은 갈(碣)은 거의 쓰지 않는다. 비는 재료에 따라 석비·목비·철비 등으로 분류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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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삼공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박일표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박일표(朴日杓)가 설천 면장으로 근무할 당시 구천동에 큰 흉년이 들자 어려운 사람들에게 식량을 나누어 주고 세금을 대납해 주는 선정을 베풀었다고 한다. 이에 1919년 7월 마을 사람들이 박일표의 선정을 기려 삼공리 박일표 불망비(三公里朴日杓不忘碑)를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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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삼유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문화유씨 가문의 효열 사정각. 문화유씨(文化柳氏) 문중의 효열(孝烈) 네 명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으로 ‘문화사정(文化四旌)’ 또는 ‘사유정(四柳亭)’으로 불린다. 1861년(철종 12) 유한태(柳漢泰)의 처 현풍 곽씨(玄風郭氏)[1755~1821]가 효부(孝婦)로 정려된 이듬해 문중에 의해 마을 입구에 홍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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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북도 무주군에 설치한 행정 구역. 조선 초기 지방의 행정 구역을 재편하는 과정에서 백제와 신라의 접경 지역을 통합하여 무주현(茂朱縣)을 설치하고 면리제(面里制)를 정비하여 국가 통치를 강화하고자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1898년(고종 35)에 편찬된 『적성지(赤城誌)』에는 상곡면(裳谷面)에 초리(初里)·북창(北倉)·포내(浦內)·중리(中里)·괴목정(槐木亭)·치목(致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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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천경(天景), 호는 회계(晦溪). 아들은 죽재(竹齋) 서인주(徐仁周)이다. 서천발(徐天發)[?~?]은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지성리에서 태어났다. 효행이 뛰어났으며 예학(禮學)에 밝아 학문을 연마하고 후진을 양성하는 데 전념하였다. 사후에 가선대부 한성부 좌윤(嘉善大夫漢城府左尹)에 추증되었다. 1777년(정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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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천룡을 시조로 하고, 배치무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무주군의 세거 성씨. 성산배씨는 성주 배씨(星州裵氏)라고도 하며, 배위준(裵位俊)을 시조로 한다. 그러나 무주에 입향한 배치무(裵畤武)에 관한 기록에는 배현경(裵玄慶)의 현손인 배사혁(裵斯革)의 둘째 아들로 고려 때 성산군(星山君)에 봉해진 배천룡(裵天龍)을 시조로 하고 있다. 이는 1764년(영조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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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 지역에서 같은 성과 본으로 여러 세대에 걸쳐 계속 살아오고 있는 성씨. 우리나라의 성씨(姓氏)는 고려 시대부터 자리 잡은 것으로 정리되는데, 이때까지 성씨는 지배층을 중심으로 사용된 성씨, 중국에서 건너온 성씨가 주류였다. 그러나 후삼국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태조 왕건이 하사한 성씨를 근간으로 하여 본관을 삼는 세거 성씨가 형성되었고, 후대로 오면서 성이 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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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대차리에 있던 숙식을 제공하는 편의 시설. 원(院)은 공무 여행자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하여 교통 요지나 험한 영로(嶺路) 등에 설치되는 역의 보조 시설이었다. 대체로 역과 같은 장소에 원이 설치되었기 때문에 역원(驛院)이라고 칭하였다. 30리에 하나씩 설치되었으나, 지형에 따라서 평지에서는 멀고 산악 지대에서는 가까웠다. 이러한 원 제도는 고려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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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소천리에 있는 개항기 밀양박씨의 효열각. 밀양박씨(密陽朴氏) 문중의 효자와 열녀를 연정(聯旌)한 것으로 박권(朴權)[1747~1822]과 박삼(朴森)[1762~1832] 형제의 효행과 박경호(朴景鎬)의 처 김해 김씨(金海金氏)의 열행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하였다. 효자 박권의 본관은 밀양이며, 자는 맹중(孟仲), 호는 운곡(雲谷)이다.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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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소천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백사순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소천리 백사순 유적비(所川里白思舜遺蹟碑)는 백사순이 문중과 마을을 위해 힘쓴 공적을 기려 1942년 수원 백씨 문중에서 건립하였다. 설천 고등학교에서 무주군 설천면 소천리 평지 마을 쪽으로 가면 오른쪽에 소천교가 나온다. 소천교를 건너 바로 좌측에 숭모재가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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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소천리에 있는 수원백씨 문중의 내력을 기록한 비. 소천리 수원백씨 유적비(所川里水原白氏遺蹟碑)는 1949년 3월 수원백씨 문중에서 건립하였다. 수원백씨가 무주군 설천면 소천리 평지 마을에 자리잡게 된 배경과 문중의 내력에 대하여 기록되어 있다. 설천 고등학교에서 무주군 설천면 소천리 평지 마을 쪽으로 가면 오른쪽에 소천교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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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소천리에 있는 개항기 김병택의 선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소천리 전 오위장 김병택 시혜비는 주민들을 위한 공로를 기려서 1902년 3월 건립되었다. 하지만 김병택(金柄澤)이 어떤 인물인지는 알 수 없으며, 또한 정확히 어떤 공로를 끼쳤는지에 대해서도 비문이 없어서 알 수 없다. 소천리 오위장 김병택 시혜비는 설천면 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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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자미를 시조로 하고, 안호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무주군의 세거 성씨. 순흥안씨 시조 안자미(安子美)는 고려 신종(神宗) 때 흥위위보승별장(興威衛保勝別將)을 역임하였는데, 후에 문성공(文成公) 안향(安珦)[1243~1306]의 귀현(貴顯)으로 신호위상호군(神虎衛上護軍)에 추봉되었다. 후손들이 순흥[현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에 세거하면서 본관으로 삼아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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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기곡리에 있던 숙식을 제공하는 편의 시설. 원(院)은 공무 여행자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하여 교통 요지나 험한 영로(嶺路) 등에 설치되는 역의 보조 시설이었다. 대체로 역과 같은 장소에 원이 설치되었기 때문에 역원(驛院)이라고 칭하였다. 30리에 하나씩 설치되었으나, 지형에 따라서 평지에서는 멀고 산악 지대에서는 가까웠다. 이러한 원 제도는 고려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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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학문 기관. 1846년(헌종 12)에 부사로 부임한 최원은 고을 선비들과 상의하여 1849년(헌종 15)에 관아의 북쪽에 터를 잡아 시술재(時術齋)를 창건하였다. 재사(齋舍)를 건립하기 위해 돈 600여 냥과 약간의 관비를 모으고 3만 치전(治田)에서 세수곡(勢收穀) 20곡(斛)과 2만 치전에서 8,000전을 양사(養士)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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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무주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신명선(申明善)[?~1908]은 대한 제국의 시위대(侍衛隊) 출신으로 본관은 평산(平山), 별명은 신명선(申明先)이다. 1907년(순종 1) 제3차 한일 협약(韓日協約)이 체결되고 강제로 군대가 해산되자 고향 무주로 돌아왔다. 이후 창의(倡義)를 결심하고, 1907년 먼저 거사 준비를 위하여 황이만(黃二萬) 등과 함께 거병에 필요한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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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행을 시조로 하고, 권칭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무주군의 세거 성씨. 안동권씨는 경상북도 안동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이다. 처음 무주에 이거한 인물은 권칭(權稱)으로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철목리에 세거하였고, 무주군 안성면 덕산리로 이거한 권춘(權春)과 권귀열(權龜悅)이 있다. 안동권씨의 시조 권행(權幸)은 안동에서 대대로 세거하던 집안의 인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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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에 있는 법정면. 무주군의 남부에 위치한 면으로 동쪽은 두문산[1,051m], 덕유산[1,614m] 등을 경계로 설천면·경상남도 거창군, 서쪽으로 진안군 동향면, 남쪽은 장수군 계북면, 북쪽은 조두치[590m] 등을 경계로 적상면과 인접한다. 조선 시대에는 금산군 지역으로 안성소(安城所)가 있어 ‘안성(安城)’이라고 하였다는 설과, 덕유산의 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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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의 선사 시대부터 현대까지 역사. 무주군은 비록 산간 지대이지만 선사 시대부터 사람들이 거주하면서 삶을 영위하였음이 나타난다. 구석기 유적은 발견된 바 없지만, 남대천(南大川) 수해 복구 현장에서 신석기 시대 토기가 발견된 바 있고, 설천면 기곡리 일대에서 간 돌도끼[마제 석부], 간 돌살촉[마제 석촉]이 수습되었으며, 적상면 사천리 일대에 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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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을 시조로 하고, 이봉상은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무주군의 세거 성씨. 전주 이씨는 완산 이씨(完山李氏)라고도 하는데, 이는 완산이 전주의 백제 시대 지명이기 때문이다. 파별(派別) 또는 개인의 기호에 따라 ‘전주 이씨’ 또는 ‘완산이씨’를 선택하며, 두음 법칙(頭音法則)을 따르지 않고 본음에 따라 ‘리씨’라 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체로 전주를 본관으로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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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무주 지방에 침입한 일본인 해적 집단과 그들의 침략 행위. 고려 시대 왜구는 고종(高宗) 때부터 고려 멸망까지 빈번하게 침략해 왔는데, 왜구가 집중적으로 출현했던 시기는 충정왕(忠定王) 이후 공양왕(恭讓王) 4년까지 약 40년간이며, 그중에서도 우왕(禑王) 재위 14년간에 가장 극심하였다. 기록상으로 볼 때, 고려 시대 전국적으로 529회 정도 왜구의 침입이 있었고,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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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계(李攀桂)[? - 1392]를 분적 시조로 하고, 이여공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무주군의 세거 성씨. 원주이씨(原州李氏)의 시조 이신우(李申佑)는 고려 문종 대에 병부 상서를 지냈으며, 공을 세워 경흥군(慶興君)에 봉해졌다. 그로 인하여 후손들은 이신우를 시조로 받들고 경주 이씨에서 분적하여 본관을 원주로 삼게 되었다. 후대로 내려오면서 판도공파(版圖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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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죽천리에 있는 조선 후기 원통사 중창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 원통사 중창비(圓通寺重創碑) 비문에 의하면, 신라 창건 당시의 규모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나, 법당 외에 종각·누각 등의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한 탄언(坦彦)·도영(道英)·혜옥(惠玉)·일학(一學) 등에 의해 당(堂)과 종각을 중창하고 불상을 중수하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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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북도 무주군에 설치한 행정 구역. 조선 초기 지방의 행정 구역을 재편하는 과정에서 백제와 신라의 접경 지역을 통합하여 무주현(茂朱縣)을 설치하고 면리제(面里制)를 정비하여 국가 통치를 강화하고자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1898년(고종 35)에 편찬된 『적성지(赤城誌)』에는 유가면에 길왕(吉旺)·내사(內斜)·외사(外斜)·상가(上加)·중가(中加)·하가(下加)·이동(梨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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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문화(文化). 초명은 유병옥(柳炳鈺), 자는 경보(景普), 호는 유산(柳山). 정숙공(貞肅公) 유정현(柳廷顯)의 후손이다. 할아버지 유한태(柳漢泰)가 순창에서 현 무주군 적상면 삼유리로 이주하였다. 아버지는 증호조 참판 후재(后齋) 유최영(柳最榮)이다. 1848(헌종 14) 생원시에 합격한 유휴(柳烋)가 동생이다. 유도(柳燾)[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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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방이리에 있던 숙식을 제공하는 편의 시설. 원(院)은 공무 여행자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하여 교통 요지나 험한 영로(嶺路) 등에 설치되는 역의 보조 시설이었다. 대체로 역과 같은 장소에 원이 설치되었기 때문에 역원(驛院)이라고 칭하였다. 30리에 하나씩 설치되었으나, 지형에 따라서 평지에서는 멀고 산악 지대에서는 가까웠다. 이러한 원 제도는 고려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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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무주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길중(吉中), 호는 화은(華隱). 뒤에 유형(柳瀅)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유인성(柳寅誠)[?~?]은 어려서부터 효행이 지극하여 감영(監營)에 천거되기도 하였다.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스승의 사후에는 산장에 은거하면서 학문 연마에 전념하였으며 때때로 향교인 명륜당(明倫堂) 양사재에서 후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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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대원을 시조로 하고, 송봉수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무주군의 세거 성씨. 우리나라 모든 송(宋)씨의 도시조(都始祖)는 당나라의 호부 상서(戶部尙書)였던 송주은(宋柱殷)으로 알려져 있다. 은진 송씨는 송천익(宋天翊)을 시조로 하였으나 송천익 이후 세계(世系)가 실전되는 바람에 고려 때 판원사(判院事)를 지내고 공을 세워 은진군(恩津君)에 봉해진 송대원(宋大原)을 시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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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철목리에 있는 개항기 이만번의 충신각. 이만번(李晩蕃)[1680~1762]의 본관은 흥양(興陽), 자는 군욱(君郁), 호는 두천(斗川)으로 찬성(贊成) 이서원(李舒原)의 후손이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에 동조하여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에서 일어나 서울로 진격하려던 정희량(鄭希亮)을 치기 위해 동생 이만경(李晩景)[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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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지역에 은거한 유학자. 본관은 완산(完山). 자는 의소(儀韶), 호는 설천(雪川). 할아버지는 영의정을 지낸 충문공(忠文公) 소재(疏齋) 이이명(李蓬命)이고, 아버지는 일암(一庵) 이기지(李器之)이다. 이봉상(李鳳祥)은 1722년(경종 2) 신임사화(辛任士禍)로 할아버지 이이명이 사사(陽死)되자 무주 설천(雪川)으로 몰래 들어와 은거하였다. 총명함이 남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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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무주 주계 지역을 봉지로 받은 종친이자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백연(伯淵), 호는 성광(醒狂)·묵재(默齋)·태평진일(太平眞逸). 증조할아버지는 효령 대군(孝寧大君) 이보(李補)이고, 아버지는 평성군(枰城君) 이위(李偉)이다. 어머니는 부사 채신보(蔡申保)의 딸 인천 채씨(仁川蔡氏)이다. 이심원(李深源)[1454~1504]은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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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무주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몽필(夢弼), 호는 경산(耕山). 동림(東林) 이이순(李以恂)의 후손이다. 할아버지 향사(香沙) 이규탁(李圭鐸)은 학행(學行)이 있었으며, 아버지 운촌(雲村) 이종익(李鍾翊)은 효행(孝行)으로 이름이 났다. 어머니는 정극순(丁克舜)의 딸 창원 정씨(昌原丁氏)이고, 부인은 박희양(朴熙陽)의 딸 반남 박씨(潘南朴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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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장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이유길의 충신문. 이유길(李有吉)은 본관이 연안(延安)이며 자는 유지(有之)로 문정공(文靖公) 청련(靑蓮) 이후백(李後白)의 손자이다. 아버지 이선경(李善慶)이 왜구(倭寇)에게 살해되어 원수를 갚고자 하였다. 이유길은 정유재란(丁酉再亂)이 일어나자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을 따라 명량(鳴梁) 해전에 출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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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지역에 낙향한 문신이자 유학자.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태지(泰之), 호는 초려(草廬). 아버지는 유학(幼學) 이서(李曙)이고, 어머니는 청풍 김씨(淸風金氏)이다. 이유태(李惟泰)[1607~1684]는 충청남도 금산군에서 다섯 아들 가운데 셋째로 태어났다. 금산은 본래 전라도 지역에 속하였으나 1963년 충청남도에 편입되었다. 김집(金集)의 천거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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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 지역에 사당이 있는 고려수절신.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안지(安之), 호는 송우(松愚). 아버지는 고려수절신(高麗守節臣) 경원군(慶原君) 이반계(李攀桂)이다. 이반계는 고려 말 예부 상서(禮部尙書)를 지냈는데 조선 건국 후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1933년 세운 이반계의 신도비가 강원도 횡성군 횡성읍 정암리에 있다. 손자는 이천익(李天翊)이다. 자는 거원(擧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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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지역에 별장을 짓고 시가를 즐겼던 문신. 본관은 나주(羅州)[회진(會律)]. 자는 재숙(載叔), 호는 청구(淸滾). 아버지는 관찰사를 역임한 임서(林㥠)이다. 임담(林覃)[1596~1652]은 1635년(인조 13)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에 올랐다. 병자호란 때 사헌부 지평으로 남한산성에 들어가 총융사의 종사관이 되어 남격대(南格臺)를 수비하였고, 화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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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에서 자연적으로 형성된 마을. 현재까지 나타난 고고학(考古學)의 성과로 보아 무주 지역에서는 청동기 시대부터 사람들이 거주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인근의 전라북도 진안군, 대전광역시 또는 충청남도 공주시 등을 보면 구석기 시대로 소급될 여지도 높지만 사람들이 무주 지역에 모여 마을을 이루고 마을 공동체를 형성한 시기와 그 형태를 정확히 추정하기에는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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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장덕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제갈근환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제갈근환(諸葛根煥)[1851~1915]은 본관이 남양(南陽)이다. 제갈경홍(諸葛敬洪)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일찍이 아버지를 잃고 편모슬하에서 성장하였다. 평소에 어머니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는데, 어머니가 병들어 생명이 위급할 때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내어 먹게 하여 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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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 장안리에 있는 강릉유씨의 효열각. 강릉유씨는 유원순(劉元順)의 딸로 1804년(순조 4)에 태어나 17세 때 이연우(李連雨)에게 출가하여 아들 하나를 두고 있다가 21세에 남편과 사별하였다. 집안이 너무 가난하여 남의 집 삯품을 팔아 생계를 꾸렸음에도, 평생 다른 마음을 품지 않고 수절하면서 시부모를 극진히 섬기고 어린 자식을 양육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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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무주 출신의 무신. 본관은 구례(求禮). 자는 의숙(宜叔), 호는 오류정(五柳亭), 이명은 장응현(張應賢). 아버지는 경상좌도 병마절도사 장필무(張弼武)이고, 동생은 장지현(張智賢)으로 임진왜란 때 창의하여 순절하였다. 장의현(張義賢)은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당산리에서 출생하였다. 1573년(선조 6) 비변사(備邊司)에서 무장으로 천거하여 관직에 나왔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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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문신이자 의병장. 본관은 구례(求禮). 자는 명숙(明叔), 호는 삼괴(三槐)·백야(柏冶). 아버지는 청백리로 알려진 백야(栢冶) 장필무(張弼武)[1510~1574]로, 장지현은 둘째 아들이다. 장지현(張知賢)[1536~1592]은 어린 시절 아버지 밑에서 엄한 교육을 받았다. 당쟁이 심하여 관직에 나아갈 뜻을 접고 고향인 무주 지역에서 문무에 힘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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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괴목리에 있는 조선 후기 장지현의 충신각. 장지현(張智賢)[1536~1593]의 자는 명숙(明叔), 호는 삼괴당(三槐堂)이며, 본관은 구례(求禮)이다. 고려 문하시중(門下侍中) 봉성 부원군(鳳城府院君) 악(岳)의 후손으로, 임진왜란 때 왜군과 맞서 싸우다 전사한 의병장이다. 장지현은 병마절도사 필무(弼武)의 둘째 아들로 충청도 영동군 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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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 죽계 서원에 배향된 조선 전기 무신. 본관은 구례(求禮). 자는 무부(武夫), 호는 백야(栢冶). 할아버지는 군수 장사종(張嗣宗)이며, 아버지는 장근(張謹)이다. 어머니는 심씨(沈氏)로 1510년(중종 5) 태어났다. 충청북도 영동군 출신으로 아들은 장의현(張義賢), 장지현(張知賢)이다. 장의현이 무주 지역에 들어와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장지현은 임진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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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괴목리에 있는 조선 후기 호국사의 창건 내력을 기록한 비. 적상산성 호국사비(赤裳山城護國寺碑)는 적상산성 안에 설치되었던 적상산 사고(赤裳山史庫)의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과 『선원록(璿源錄)』을 지키던 수호 사찰(守護寺刹) 호국사(護國寺)의 창건 역사를 기록하여 세운 비이다. 비에는 1643년(인조 21) 이식(李植)이 왕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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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을 시조로 하고, 이총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무주군의 세거 성씨. 전주이씨(全州李氏)는 전주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성씨의 하나로, 시조는 신라 문성왕(文聖王) 때 사공(司空)을 역임한 이한(李翰)이며, 이한의 21세손이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李成桂)[1335~1408]이다. 전주를 본관으로 하게 된 것은 이성계의 고조할아버지인 이안사(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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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아를 시조로 하고, 최영보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무주군의 세거 성씨. 전주최씨(全州崔氏)는 크게 네 개의 파로 나뉘는데, 완산부 개국백(完山府開國伯)에 봉해진 최순작(崔純爵)을 시조로 하는 문열공파(文烈公派), 완산군(完山君)에 추봉된 최균(崔均)을 시조로 하는 사도공파(司徒公派), 완산 부원군(完山府院君)에 봉해진 최군옥(崔群玉)을 시조로 하는 문충공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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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에 있는 충신, 효자, 열녀 등에게 국가에서 정문을 세워 표창한 것. 정려(旌閭)는 국가에서 효자·충신·열녀로 모범이 되는 사람의 집 문앞 또는 마을 입구에 붉은 문을 세워 주는 행위나 그 문을 뜻하는 말이다. 정(旌)은 깃발의 의미로 ‘드러낸다’는 뜻이고, 려(閭)는 마을 또는 마을 어귀에 세운 문이라는 뜻으로 왕이 효자·충신·열녀에게 정려를 내려줌으로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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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전라북도 무주 지역 역사. 조선을 건국한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는 고려의 제도를 그대로 사용하였는데, 1414년(태종 14)에 전국을 8도제로 바꾸는 행정 구역 개편을 실시하였다. 주계(朱溪)와 무풍(茂豊)이 통합되어 무풍의 '무(茂)'와 주계의 '주(朱)'를 따서 '무주(茂朱)'라는 새로운 지명이 만들어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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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진을 시조로 하고, 하위국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무주군의 세거 성씨. 백산 서원(栢山書院)을 진양 하씨(晉陽河氏) 문중으로 소개하는 글들이 있으나, 진양 하씨 종사 연구회(晉陽河氏宗史硏究會)에서 문효공(文孝公) 하연(河演)과 그 후손들에 대해서 진주하씨(晉州河氏)로 정리하고 있으므로, 백산 서원을 중심으로 무주에 세거하는 하씨들을 중심으로 진주하씨를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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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 지역에서 동일 본관의 성씨를 가진 사람들이 일정 구역에 마을을 형성하여 모여 사는 촌락. 집성촌은 성(姓)과 본(本)이 같은 부계의 혈족들이 모듬살이를 하고 있는 마을이다. 따라서 집성촌은 동일 조상에 관한 강한 결속력과 함께 제향(祭享), 대동계(大同契), 문중의 대소사를 공동으로 주관하는 경제 공동체 성격 등을 특징으로 한다. 전국적인 현상과 마찬가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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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충준을 시조로 하고, 황힐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무주군의 세거 성씨. 창원황씨(昌原黃氏)의 시조는 고려 성종 때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낸 황충준(黃忠俊)이다. 창원황씨는 황충준을 시조로 하는 시중공파(侍中公派) 외에 고려 충정왕 때 문하평장사를 지낸 황석기(黃石奇)를 시조로 하는 공희공파(恭僖公派), 고려 시대에 호장을 지낸 황양충(黃亮沖)을 시조로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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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철목리에 있는 개항기 옥산장씨의 열녀각. 옥산장씨(玉山張氏)는 흥양인 이철구(李喆龜)에게 시집온 뒤 시할아버지와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어느 날 남편이 병에 걸려 해가 갈수록 깊어 가자 시할아버지가 염려할 것을 걱정하여 차도가 있다고 위로하였고, 홀로인 시어머니가 식음을 전폐하고 있음을 민망하게 여기고 지성으로 모시면서 공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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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철목리에 있는 개항기 이만경의 효자각. 이만경(李晩景)[1691~1776]의 자는 군진(君珍), 호는 두촌(斗村), 본관은 흥양(興陽)이다. 어렸을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는데, 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져 여러 해를 지나자 병이 더욱 깊어져 옆으로 돌아누울 때도 다른 사람의 부축을 받아야 하고, 말마저 어눌하게 되어 말끝을 맺지 못하게 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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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철목리에 있는 최흥림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최흥림(崔興林)[1878~1931]은 본관이 전주(全州), 자는 기선(箕善), 호는 도은(島隱)이다. 가세가 어려운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어릴 적부터 천성이 착하고 효심이 지극하였다. 병환 중인 부친이 먹고 싶어하는 것은 어떻게든 구해서 드렸다고 한다. 하루는 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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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지역에서 의병을 일으킨 유학자.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성서(聖瑞), 호는 채포(蔡圃). 죽헌(竹軒) 최활(崔活)의 6세손이다. 최봉래(崔鳳來)는 어려서부터 몸집이 좋은 거인(巨人)이었다. “살아서 세상에 유익함이 없고, 죽어서 후세에 남김이 없으면 누가 대장부라 하랴.” 하면서 경사(經史)를 두루 탐구하고 무예를 열심히 닦았다. 1728년(영조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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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죽림사에 제향된 유학자.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청원(淸源), 호는 죽헌(竹軒). 아버지는 현감을 지낸 최영보(崔永甫)이다. 최활(崔活)[?~?]은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부모의 상(喪)을 당하여 여묘살이를 하였다. 성품이 청렴하고 검소하였다. 평생 정주학(程朱學)을 연마하는 데 전념하였는데, 특히 『소학(小學)』의 실천을 역설하면서 많은 후학을 양성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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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숭겸을 시조로 하고, 신세령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무주군의 세거 성씨. 평산신씨의 시조는 왕건을 도와 고려를 건국하는 데 공을 세운 신숭겸(申崇謙)[?~927]이다. 신숭겸은 본래 전라도 곡성(谷城) 출신으로 뒤에 춘천(春川)으로 이거하여 살았던 인물로 추정된다. 황해도 평산에서 사냥을 하던 중 신숭겸의 궁술(弓術)에 감탄한 태조 왕건이 식읍(食邑)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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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북도 무주군에 설치한 행정 구역. 조선 초기 지방의 행정 구역을 재편하는 과정에서 백제와 신라의 접경 지역을 통합하여 무주현(茂朱縣)을 설치하고 면리제(面里制)를 정비하여 국가 통치를 강화하고자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1898년(고종 35)에 편찬된 『적성지(赤城誌)』에는 풍서면에 설천(雪川)·나니(羅泥)·불대(佛垈)·북동(北洞)·이남(伊南)·덕곡(德谷)·미천(美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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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무주 출신의 유학자이자 자선가. 본관은 진주. 자는 자범(子範), 호는 운파(雲波). 조선 초에 영의정을 지낸 문효공 하연(河演)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하진규(河鎭圭)이다. 하재만(河在萬)[1832~1909]은 1832년(순조 32)에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현내리에서 태어났다. 기상이 높고 엄숙하였으며, 강직하고 씩씩하면서도 재능과 도량이 있었다. 부모에게 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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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경서(景瑞), 호는 서악(瑞岳). 조선 전기 영의정을 지낸 문효공(文孝公) 하연(河演)의 10세손이다. 아버지 사양재(四養齋) 하위국(河衛國)이 임진왜란 때 무주 백운산(白雲山)으로 들어와 난을 피한 후 무풍면 현내리에 정착하였다. 어머니는 안동 김씨(安東金氏) 김일(金鎰)의 딸이다. 부인은 이경국(李慶國)의 딸이다.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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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처사.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문서(文瑞), 호는 수용(睡慵). 조선 전기 영의정을 지낸 문효공(文孝公) 하연(河演)의 10세손이다. 아버지 사양재(四養齋) 하위국(河衛國)이 임진왜란 때 무주 백운산(白雲山)으로 들어와 난을 피한 후 무풍면 현내리에 정착하였다. 어머니는 안동 김씨(安東金氏) 김일(金鎰)의 딸이다. 하징도(河徵道)는 하위국의 첫째 아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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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무주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군범(君範), 호는 백고(栢皐). 조선 전기 영의정을 지낸 하연(河演)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하재황(河在璜)이고, 아버지는 하대호(河大鎬)이다. 하재황은 백록동 서원(白鹿洞書院) 규약과 남전 향약(藍田鄕約)을 강구하여 고을을 교화하였고, 사창(社倉) 운영 책임을 맡아 흉년이 들자 농민들을 위해 환곡(還穀) 대신 쭉정이를 받아들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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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무주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진주(晋州). 호는 백남(柏南). 조선 전기 영의정을 지낸 하연(河演)의 후손이며, 취은공(醉隱公) 하형도(河亨道)[1606~1678]의 8세손이다. 생몰년이 미상이나 8대조 하형도가 17세기 사람이니 개항기 정도에 살았던 인물로 추정된다. 이 집안이 무주에 들어온 것은 하형도의 아버지 하위국 때이다. 하현(河鉉)은 과거에 뜻을 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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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처사.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휘서(輝瑞), 호는 모정(茅亭). 조선 전기 영의정을 지낸 문효공(文孝公) 하연(河演)의 10세손이다. 아버지 사양재(四養齋) 하위국(河衛國)이 임진왜란 때 무주 백운산(白雲山)으로 들어와 난을 피한 후 무풍면 현내리에 정착하였다. 어머니는 안동 김씨(安東金氏) 김일(金鎰)의 딸이다. 형제로 하징도(河徵道), 하정도(河呈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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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처사.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명서(明瑞), 호는 취은(醉隱). 조선 전기 영의정을 지낸 문효공(文孝公) 하연(河演)의 10세손이다. 아버지 사양재(四養齋) 하위국(河衛國)이 임진왜란 때 무주 백운산(白雲山)으로 들어와 난을 피한 후 무풍면 현내리에 정착하였다. 어머니는 안동 김씨(安東金氏) 김일(金鎰)의 딸이다. 형제로 하징도(河徵道), 하정도(河呈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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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순우를 시조로 하고, 기우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무주군의 세거 성씨. 행주(幸州)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 중 하나이며, 단일 본관으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성씨의 하나이다. 기자(箕子)의 후예라고도 하나, 고려 인종 때 문하평장사(門下平章事)를 지낸 기순우(奇純祐)를 1세조로 한다. 그 이유는 한때 선대의 세계(世系)를 분실한 때문이라고 한다. 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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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현내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황의영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황의영(黃義永)[1876~1926]은 자는 영도(永道), 본관은 장수(長水)이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는데, 13세 되던 해에 아버지가 병으로 드러눕자 어린 나이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아버지의 곁을 떠나지 않으며 병간호에 정성을 다하였다. 임종 때에는 어머니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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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당산리에 있는 유인성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화은 선생의 본명은 유인성(柳寅誠)으로 본관이 문화(文化), 자는 길중(吉中), 호는 화은(華隱)이다. 충경공(忠景公) 유량(柳亮)의 후손이며 유기찬(柳基燦)의 아들이다. 무주군 무주읍 당산리에서 태어나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의 문하에 들어가 수학하였다. 산골에 은거하면서 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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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사전리에 있는 밀양박씨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밀양박씨(密陽朴氏)는 박이겸(朴以謙)의 아들 박흥생(朴興生)의 딸이며 전주 최낙규(崔洛奎)의 처이다. 남편이 23세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뜨자 남편을 따라 죽기로 결심하였는데, 성치 않은 몸으로 홀로 계신 시어머니를 생각하여 마음을 바꾸었다. 그리하여 남편의 장례를 치른 후 시어머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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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림을 시조로 하고, 이맹훤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무주군의 세거 성씨. 흥양이씨(興陽李氏)의 시조인 이언림(李彦林)은 고려 의종 때 상서우복야(尙書右僕射) 등 요직을 역임한 후 흥양(興陽)[현 전라남도 고흥군]으로 낙향하여 살았다. 이에 후손들이 흥양을 본관으로 하였다. 한편 7세손 이길(李吉)은 문과에 올라 봉상대부(奉常大夫) 통례문 부사(通禮門副使)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