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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 문화원에서 무주의 읍지인 『적성지』를 한글로 번역한 향토 사료집. 『적성지(赤城誌)』는 무주의 산천, 풍토, 인물, 사적 등을 기록한 귀중한 향토사 자료이다. 그러나 한문으로 되어 있어, 현대인이 쉽게 알아보지 못하여 전통문화에 대해 깊이 교감할 수 없었다. 이것을 안타깝게 여긴 무주 문화원에서 국역(國譯)을 통해 조상의 빛나는 문화를 오늘날에 재조명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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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년 조병유가 편찬한 『적성지』에 수록된 무주부의 고지도. 양주 군수이던 조병유(趙秉瑜)가 1896년에 무주 군수로 임명되어 편찬하기 시작하여, 3년 후인 1898년에 민술호(閔述鎬)[1838~1921]와 함께 완성하였다. 「무주관부도(茂朱官府圖)」와 「무주관부폭원총도(茂朱官府幅員總圖)」는 조선 후기에 편찬된 지리지인 『적성지(赤城誌)』의 서문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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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에 편찬된 『전라북도 각군 읍지』에 수록된 무주부 읍지. 전국에 내려진 읍지 상송령(邑誌上送令)에 따라 1896년 『전라북도 각군 읍지(全羅北道各郡邑誌)』를 편찬한 것으로 보인다. 대한 제국기 전라북도 26개 군(郡)의 읍지를 모은 책으로, 무주군의 사정을 개략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1책 152장으로 되어 있으며, 크기는 23.5×33.3㎝이다. 규장각 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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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에 제작된 전라북도 무주 지역의 옛 지도. 조선 시대에 무주부 또는 무주군을 그려 놓은 지도들을 고지도라고 하며, 그림식 또는 회화식(繪畵式) 지도가 대부분이며, 이외에 목판본(木版本) 지도들도 포함되어 있다. 무주부를 그린 고지도들은 무주 읍치를 중심으로 행정 경관[동헌, 내아, 객사, 아사, 창고 및 옥 등을 포함], 제사 경관[향교, 사직단, 성황단, 여단],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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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지역에서 제일 좋은 터라고 하여 '터일'이라 불리다 후에 기산촌(基山村), 기곡리(基谷里)라고 불리게 되었다. 자연 마을인 문암 마을에는 붓과 벼루를 닮은 큰 바위 두 개가 마치 문같이 서 있어 ‘문암(文巖)’이라 불렀다고 한다. 조선 후기까지 장백 마을, 지전 마을, 하엽 마을, 청량 마을과 함께 무주군 신풍면[전에는 신동면(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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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비교적 낮은 산과 들로 이루어진 길(吉)한 땅이라 하여 길산리(吉山里)라고 하였다. 자연 마을인 지전 마을은 옛날부터 지초(芝草)가 많이 나는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 말까지 무주군 신풍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무주군 설천면 길산리로 개설하였다. 1981년 무주군 조례 개정으로 하길산[질번지] 마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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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무주 출신의 무신. 본관은 진례(進禮)[금산(錦山)]. 장인은 낭장을 지낸 왕연(王涓)이다. 김신(金侁)은 진례현(進禮縣)[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에서 출생하였다. 원(元)에서 요양행성 참정(遼陽行省參政)을 지냈다. 1305년(충렬왕 31) 원나라에서 벼슬을 하여 고려에 공을 세웠다고 하여 출신지인 진례현을 금주(錦州)로 승격시켰다. 일찍이 어머니가 왜적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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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무주 지역에서 활동한 유학자. 본관은 광산(光山). 호는 유당(裕堂). 충목공(忠穆公) 김여석(金礪石)의 후손이다. 아들 김영교(金永敎)는 법학을 공부하여 학부(學部)에서 교관을 지내다 세상이 날로 어지러워지자 물러나 거문고를 타며 글 읽는 것을 낙으로 삼았으며, 고을 사람들을 교화하는 데 진력하였다. 김직현(金直鉉)은 심성(心性)과 이기(理氣)에 대한 책을 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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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에 불대(佛垈), 불당골[佛堂谷], 중고개[中峴] 등 불교와 관계가 깊은 지명과 전설이 많아 대불리(大佛里)라고 하였다. 조선 말까지 무주군 풍서면(豊西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대불 1리[외북], 대불 2리[내북, 불대]를 병합하여 무주군 설천면 대불리로 개설하였다. 1972년 행정리 명칭을 바꿀 때 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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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거칠봉의 능선과 백운산의 능선이 곡식을 담는 큰 말[斗]과 같이 생긴 길(吉)한 땅이라고 하여 두길리(斗吉里)라고 하였다. 두길리 남동쪽 계곡 아래에 있는 구산(龜山) 마을은 마을 뒷산이 마치 큰 거북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 후기까지 심곡리, 삼공리, 무풍면 삼거리·덕지리와 함께 횡천소(橫川所) 지역으로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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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의 지형이 마치 미륵(彌勒)이 올 땅이라 하여 ‘미래(彌來)’라 부르다가 아름다운 내[川]가 흐르는 곳이라 하여 미천리(美川里)라고 하였다. 조선 말까지 풍서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무주군 설천면 미천리로 개설하였다. 하미[아랫미래] 마을, 장자동[장자터] 마을, 중미[윗미래] 마을 등 3개의 자연 마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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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지역으로 이거한 학자.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이환(而煥), 호는 관일당(貫一堂)·정관재(靜觀齋). 송은(松隱) 박익(朴翊)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지사(知事) 박중엽(朴重燁)이다. 어머니는 강위경(姜渭擎)의 딸인 진주 강씨(晋州姜氏)이다. 박문건(朴文健)[1770~1805]은 경상남도 진주(晉州)에서 출생하였다. 1805년(순조 5) 지금의 전라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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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무주 도산 서원에 배향된 문신.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천경(天經), 호는 임회당(臨淮堂). 고려수절신(高麗守節臣)[여말 선초 성리학의 대의명분을 지켜 조선조에서 벼슬을 하지 않고 절개를 지킨 고려 말의 학자들] 박힐(朴詰)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초산 군수를 지낸 박인(朴麟)이다. 박힐이 충청남도 금산에 들어와 은거하면서 후손들이 대대로 금산군 남일면에서 세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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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무풍면 삼거리를 지나 흘러오는 원당천과 덕유산 향적봉에서 발원한 구천동천이 이곳에서 만나며 땅이 똑같이 세 등분으로 나누어졌다 하여 삼공리(三公里)라고 하였다. 전설에 따르면 옛날 중국의 순제 임금이 잃어버린 옥새를 찾아 준 고려 사람 이인(異人) 유해에게 큰 벼슬을 내리고 그가 살았던 곳을 구천동이라 하였으며, 삼정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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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무주 지역으로 이거한 유학자. 본관은 달성(達成). 자는 계광(啓光), 호는 취정(翠亭). 달성군(達城君) 서영(徐潁)의 9세손이며, 삼남 균전제처사(三南均田制處使) 귀계(龜溪) 서침(徐沈)의 7세손이다. 대구에서 무주군 무풍면 지성리으로 이주하였으며, 그 후손들이 대대로 세거하였다. 서효재(徐孝載)는 성품이 순하고 말이 적으며, 효심이 극진하고, 문장과 덕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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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에 있는 법정면. 설천면은 무주군의 동부에 위치하는 면이다. 소백 산맥의 산간 지대로 북쪽은 충청북도 영동군 용화면, 동쪽은 경상북도 김천시 부항면과 무주군 무풍면과 접하고, 서쪽은 무주읍과 적상면, 안성면과 경계를 이룬다. 남쪽은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무풍면과 접한다. 1724년(영조 즉위년) 문관 이봉상(李鳳祥)이 이곳에 살면서 설천(雪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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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본래 지명은 삼촌(三村)으로 소천역(所川驛)이 있었던 곳이어서 ‘소천(所川)’이라 불렀으며, 덕유산에서 발원한 원당천과 대덕산에서 발원한 남대천, 민주지산에서 발원한 미대천이 합류하는 큰 내가 있는 고을이라 ‘소천’이라 하였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설천으로도 불렸다. 조선 말까지 불대리, 이남리, 장덕리, 미천리 등과 함께 풍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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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설천면에서 가장 깊은 골짜기에 있는 곳이어서 심곡리(深谷里)라고 하였다. 조선 후기 횡천소(橫川所) 지역으로 금산군(錦山郡)의 속현이었으며, 1674년(현종 15) 무주 도호부(茂朱都護府)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무주군 설천면 심곡리로 개설하였다. 1981년 군 조례 개정으로 심곡 2리[배방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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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문화(文化). 초명은 유병옥(柳炳鈺), 자는 경보(景普), 호는 유산(柳山). 정숙공(貞肅公) 유정현(柳廷顯)의 후손이다. 할아버지 유한태(柳漢泰)가 순창에서 현 무주군 적상면 삼유리로 이주하였다. 아버지는 증호조 참판 후재(后齋) 유최영(柳最榮)이다. 1848(헌종 14) 생원시에 합격한 유휴(柳烋)가 동생이다. 유도(柳燾)[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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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지역에 은거한 유학자. 본관은 완산(完山). 자는 의소(儀韶), 호는 설천(雪川). 할아버지는 영의정을 지낸 충문공(忠文公) 소재(疏齋) 이이명(李蓬命)이고, 아버지는 일암(一庵) 이기지(李器之)이다. 이봉상(李鳳祥)은 1722년(경종 2) 신임사화(辛任士禍)로 할아버지 이이명이 사사(陽死)되자 무주 설천(雪川)으로 몰래 들어와 은거하였다. 총명함이 남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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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무신. 이손(李蓀)은 본관은 경주(慶州), 정순공(靖順公) 이성중(李誠中)의 후손으로,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대차리 서면 마을에서 출생하였다.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훈련원 봉사(訓練院奉事)를 역임하였다.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의주에서 적과 싸우다가 순절(殉節)하였는데, 그가 타던 말이 혼자 집으로 돌아와 슬피 울며 주인의 정충(精忠)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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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무주 주계 지역을 봉지로 받은 종친이자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백연(伯淵), 호는 성광(醒狂)·묵재(默齋)·태평진일(太平眞逸). 증조할아버지는 효령 대군(孝寧大君) 이보(李補)이고, 아버지는 평성군(枰城君) 이위(李偉)이다. 어머니는 부사 채신보(蔡申保)의 딸 인천 채씨(仁川蔡氏)이다. 이심원(李深源)[1454~1504]은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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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지역에 낙향한 문신이자 유학자.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태지(泰之), 호는 초려(草廬). 아버지는 유학(幼學) 이서(李曙)이고, 어머니는 청풍 김씨(淸風金氏)이다. 이유태(李惟泰)[1607~1684]는 충청남도 금산군에서 다섯 아들 가운데 셋째로 태어났다. 금산은 본래 전라도 지역에 속하였으나 1963년 충청남도에 편입되었다. 김집(金集)의 천거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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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 지역에 사당이 있는 고려수절신.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안지(安之), 호는 송우(松愚). 아버지는 고려수절신(高麗守節臣) 경원군(慶原君) 이반계(李攀桂)이다. 이반계는 고려 말 예부 상서(禮部尙書)를 지냈는데 조선 건국 후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1933년 세운 이반계의 신도비가 강원도 횡성군 횡성읍 정암리에 있다. 손자는 이천익(李天翊)이다. 자는 거원(擧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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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무주 출신의 의병. 본관은 흥양(興陽), 호(號)는 척산(尺山). 아버지는 이시발(李時發)이다. 이시발은 1894년(고종 31) 교우하던 유완무(柳完茂)가 나라를 걱정하며 가정을 돌보지 못하고 활동할 때 그와 뜻을 같이하면서 그의 처자식을 친히 돌보았다. 김구(金九)가 무주를 방문하자 상봉하여 구국의 방책 등에 대하여 장시간 토론하였다. 한편, 어버이를 잃고 의탁할 곳이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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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지역에 별장을 짓고 시가를 즐겼던 문신. 본관은 나주(羅州)[회진(會律)]. 자는 재숙(載叔), 호는 청구(淸滾). 아버지는 관찰사를 역임한 임서(林㥠)이다. 임담(林覃)[1596~1652]은 1635년(인조 13)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에 올랐다. 병자호란 때 사헌부 지평으로 남한산성에 들어가 총융사의 종사관이 되어 남격대(南格臺)를 수비하였고, 화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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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장평(長坪) 마을의 '장' 자와 옛 지명이던 덕곡(德谷)의 '덕' 자를 따서 장덕리(長德里)라고 하였다. 조선 말까지 풍서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장평[진들] 마을과 수한[물찬이] 마을을 병합하여 무주군 설천면 장덕리로 개설하였다. 수한 마을과 장평 마을 등 2개의 자연 마을이 있다. 장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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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무주 출신의 무신. 본관은 구례(求禮). 자는 의숙(宜叔), 호는 오류정(五柳亭), 이명은 장응현(張應賢). 아버지는 경상좌도 병마절도사 장필무(張弼武)이고, 동생은 장지현(張智賢)으로 임진왜란 때 창의하여 순절하였다. 장의현(張義賢)은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당산리에서 출생하였다. 1573년(선조 6) 비변사(備邊司)에서 무장으로 천거하여 관직에 나왔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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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 죽계 서원에 배향된 조선 전기 무신. 본관은 구례(求禮). 자는 무부(武夫), 호는 백야(栢冶). 할아버지는 군수 장사종(張嗣宗)이며, 아버지는 장근(張謹)이다. 어머니는 심씨(沈氏)로 1510년(중종 5) 태어났다. 충청북도 영동군 출신으로 아들은 장의현(張義賢), 장지현(張知賢)이다. 장의현이 무주 지역에 들어와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장지현은 임진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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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무주 지역의 인문 환경 및 자연 환경을 비롯하여 지역 정보에 대한 내용을 체계적으로 기술한 책. 무주와 관련된 지리지로는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와 16세기 전반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18세기 중엽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 수록본, 1871년에 제작된 『호남 읍지(湖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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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에 청량사(靑凉寺)가 있었고, 마을 앞을 흐르는 남대천이 마음까지 깨끗하게 한다 하여 청량리(靑凉里)라고 하였다. 조선 말까지 신풍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청량 1리[진평]와 청량 2리[무주목[무항], 청량리, 하엽, 비례]를 병합하여 무주군 설천면 청량리로 개설하였다. 1981년 군 조례 개정으로 남청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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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지역에서 의병을 일으킨 유학자.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성서(聖瑞), 호는 채포(蔡圃). 죽헌(竹軒) 최활(崔活)의 6세손이다. 최봉래(崔鳳來)는 어려서부터 몸집이 좋은 거인(巨人)이었다. “살아서 세상에 유익함이 없고, 죽어서 후세에 남김이 없으면 누가 대장부라 하랴.” 하면서 경사(經史)를 두루 탐구하고 무예를 열심히 닦았다. 1728년(영조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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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무주 출신의 유학자이자 자선가. 본관은 진주. 자는 자범(子範), 호는 운파(雲波). 조선 초에 영의정을 지낸 문효공 하연(河演)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하진규(河鎭圭)이다. 하재만(河在萬)[1832~1909]은 1832년(순조 32)에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현내리에서 태어났다. 기상이 높고 엄숙하였으며, 강직하고 씩씩하면서도 재능과 도량이 있었다. 부모에게 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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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경서(景瑞), 호는 서악(瑞岳). 조선 전기 영의정을 지낸 문효공(文孝公) 하연(河演)의 10세손이다. 아버지 사양재(四養齋) 하위국(河衛國)이 임진왜란 때 무주 백운산(白雲山)으로 들어와 난을 피한 후 무풍면 현내리에 정착하였다. 어머니는 안동 김씨(安東金氏) 김일(金鎰)의 딸이다. 부인은 이경국(李慶國)의 딸이다.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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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무주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군범(君範), 호는 백고(栢皐). 조선 전기 영의정을 지낸 하연(河演)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하재황(河在璜)이고, 아버지는 하대호(河大鎬)이다. 하재황은 백록동 서원(白鹿洞書院) 규약과 남전 향약(藍田鄕約)을 강구하여 고을을 교화하였고, 사창(社倉) 운영 책임을 맡아 흉년이 들자 농민들을 위해 환곡(還穀) 대신 쭉정이를 받아들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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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처사.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휘서(輝瑞), 호는 모정(茅亭). 조선 전기 영의정을 지낸 문효공(文孝公) 하연(河演)의 10세손이다. 아버지 사양재(四養齋) 하위국(河衛國)이 임진왜란 때 무주 백운산(白雲山)으로 들어와 난을 피한 후 무풍면 현내리에 정착하였다. 어머니는 안동 김씨(安東金氏) 김일(金鎰)의 딸이다. 형제로 하징도(河徵道), 하정도(河呈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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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처사.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명서(明瑞), 호는 취은(醉隱). 조선 전기 영의정을 지낸 문효공(文孝公) 하연(河演)의 10세손이다. 아버지 사양재(四養齋) 하위국(河衛國)이 임진왜란 때 무주 백운산(白雲山)으로 들어와 난을 피한 후 무풍면 현내리에 정착하였다. 어머니는 안동 김씨(安東金氏) 김일(金鎰)의 딸이다. 형제로 하징도(河徵道), 하정도(河呈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