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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사천리 길왕마을에서 왕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길왕마을 왕바위」는 왕바위와 관련하여 ‘왕바위’ 이름이 부여된 내력을 소개하면서 그 왕바위에 의미 부여를 하고 있는 암석 유래 전설이다. 「길왕마을 왕바위」는 1992년 김경석이 편찬하고 무주군에서 간행한 『내 고장 전설집』의 50쪽에 수록되어 있다. 정확한 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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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문신 임훈이 무주의 덕유산 향적봉을 등반하고 그 내용을 기록한 글. 임훈(林薰)[1500~1584]의 본관은 은진(恩津)이며, 자는 중성(仲成), 호는 갈천(葛川)·고사옹(故査翁)·자이당(自怡堂)이다.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출신으로, 아버지는 진사 임득번(林得蕃)이다. 경명 수행자(經明修行者) 6인에 천거되어 이항(李恒)·한수(韓脩) 등과 같이 사정전(思政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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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학자 허목이 무주의 덕유산을 기행하고 그 내용을 기록한 글. 미수(眉叟) 허목(許穆)[1595~1682] 뿐만 아니라 19세기에 활동했던 회덕의 송병선(宋秉璿)[1836~1905]도 「덕유산기(德裕山記)」를 남겼는데, 송병선은 「덕유산기」의 마지막에 '덕유산은 온산이 순전히 흙으로 되어 있으며 바위가 적어 별로 기이하고 뛰어난 경치가 없다. 다만 후장(厚莊)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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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덕지리에서 도마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도마재와 근심 터」는 1728년(영조 4)에 일어난 이인좌(李麟佐)[?~1728]의 난이라는 역사적 사실이 무주 지역의 도마재라는 장소와 공간에 결합되어 전승되고 있는 지명 유래 전설이다. 「도마재와 근심 터」는 1990년 무주군에서 편찬한 『무주 군지』에, 1992년 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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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방이리와 사천리에서 마적암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마적암과 임 장수」는 ‘마적암(馬蹟巖)[말 발자국 바위]’이라는 암석을 설명하고 있는 지명 유래 전설이다. 이를 「명마를 잃고 굴에 은둔한 임 장수」, 「임 장수와 말무덤」 등이라고도 한다. 「마적암과 임 장수」의 배경은 적상산 안렴대(按廉臺) 일대와 부남 지역으로, 임 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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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현이 무주 도호부로 승격되면서 발급한 문서. 조선은 임진왜란의 와중에서 유일하게 보존되었던 전주 사고본을 토대로 1606년(선조 39)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4본을 새로 만들어, 서울 춘추관을 비롯해 강화도 마니산, 평안북도 영변군 묘향산, 강원도 평창군 오대산, 경상북도 봉화군 태백산에 분장하였다. 조선 전기 4대 사고(史庫)가 모두 평지에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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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학자 윤증이 무주의 덕유산을 기행하고 그 내용을 기록한 글. 덕유산은 남쪽의 명산으로 오래전부터 이름나 있었던 듯하다. 1652년이면 윤증(尹拯)의 나이 24세가 된 때이다. 글 첫부분에 '내 평생 몸이 약해'라고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하고, '티끌 세상 싫어하고 오직 물과 돌밖에 몰랐다'라고 한 것처럼, 실제로 윤증은 36세에 학문이 뛰어나 내시교관(內侍敎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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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의 백산 서원에 제향된 하연의 시문집. 하연(河演)[1376~1453]의 본관은 진주(晉州)이며, 자는 연량(淵亮), 호는 경재(敬齋)·신희(新稀)이다. 두문동(杜門洞) 72현 중 한 사람인 하자종(河自宗)의 아들이며 정몽주(鄭夢周)의 문인으로, 성리학의 절의(節義) 사상을 계승한 대표적 인물이다. 1395년(태조 5) 식년 문과에 급제하여 봉상시 녹사(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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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제작된 『광여도』에 수록되어 있는 무주부 지도. 19세기에 이르러 국가가 기호식 지도를 정책 과정에 활용하기 시작하면서 기존의 회화식 지도는 그 비중이 감소하게 되었다. 더불어 국가의 통제력이 약화되면서 회화식 지도가 민간으로 유출된 것으로 보인다. 『광여도(廣輿圖)』는 이러한 당시 상황을 배경으로 『해동 지도(海東地圖)』와 같은 회화식 지도가 민간으로 흘러들면서 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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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지리학자 김정호가 집대성한 『대동여지도』에 수록된 무주 지도.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는 1861년에 김정호(金正浩)가 초간본을 만들고 1864년에는 재간본이 제작되었다. 무주와 같은 군현 단위의 지리지에 기초하여 풍부하고 상세한 정보를 수록함으로써 조선 시대 사람들의 국토관과 무주 같은 군현 단위의 지역 인식을 분명하게 담고 있는 지도이다. 이를 통해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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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의 덕천 서원에 배향된 김치삼의 시문집. 김치삼(金致三)[1560~1625]의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자는 일지(一之), 호는 도연(道淵)이다.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의 직계 증손으로, 전라북도 남원 월곡(月谷)에서 태어났고 15, 16세에 부친의 명으로 청도에 가서 장가들어 살면서 선조의 묘소를 수호하고 제향을 받드는 일을 맡았다. 한강(寒岡)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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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제작된 『동국여지도』에 수록되어 있는 무주를 비롯한 전라도 지도. 『동국여지도(東國輿地圖)』는 조선 후기의 선비 화가인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1668~1715]의 서화첩에 수록된 조선 전도로, ‘해남 윤씨 가전 고화첩 일괄(海南尹氏家傳古畵帖一括)’에 포함되어 있다. 윤두서가 1712년 해남으로 은거하여 1715년까지 생존했으므로 이 지도는 그 시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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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제작된 『동여도』에 수록되어 있는 무주부 지도. 『동여도(東輿圖)』는 19세기 중엽에 고산자(古山子) 김정호(金正浩)가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 전도(全圖)이다. 김정호는 1834년(순조 34)경에 완성된 『동여도지(東輿圖志)』를 통해 조선 전체를 『청구도(靑邱圖)』에 담아내었고, 두 번째 작업으로 철종 재위 연간[1849~1864]에 편찬된 『여도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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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9년까지의 무주부와 관련된 지리 정보들을 모은 읍지. 『무주부 읍지(茂朱府邑誌)』[1759]는 1759년(영조 35)의 호구 조사를 바탕으로 방리편에서 면별로 인구수를 수록한 것으로 미루어 그 이후에 편찬된 지리지로 볼 수 있다. 무주부에서 편찬한 읍지로, 이후에 완성된 『호남 읍지』[무주부]와 『적성지(赤城誌)』의 중요한 자료로 이용되었을 것으로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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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무주에 거주한 무신 장필무의 사적을 기록한 문집. 장필무(張弼武)[1510~1574]의 본관은 구례(求禮)이며, 자는 무부(武夫), 호는 백야(栢冶)이다. 할아버지는 군수 장사종(張嗣宗)이고 아버지는 충순위(忠順衛) 장근(張謹)이다. 1543년(중종 38) 무과에 급제하고, 종사관으로 연경(燕京)에 다녀왔으며, 온성 판관(穩城判官)을 지내면서 변방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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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에서 활동한 문신 박치화의 시문집. 박치화(朴致和)[1732~1783]의 자는 근보(近甫), 호는 설천(雪川)·설계(雪溪)이다. 초년에는 송명흠(宋明欽)과 송능상(宋能相)에게 수학하였고, 장성해서는 신돈항(愼敦恒)과 함께 『기헌 유고(寄軒遺稿)』의 저자인 김기(金琦)[1722~1794]를 스승으로 모셨다. 『설계수록(雪溪隨錄)』은 박치화가 세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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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제작된 『여지도』에 수록되어 있는 전라도 무주부 지도. 『여지도(輿地圖)』는 제작자와 제작처 및 제작 시기 등이 표기되어 있지 않아 정확한 편찬 경위를 알 수 없다. 하지만 선명한 색감과 화려한 화법, 정선된 글씨체는 물론 지도첩에 수록된 지도들이 국내외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것들이라는 점을 감안해 본다면 국가에서 제작하여 사용했던 지도일 가능성이 높다.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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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제작된 『청구도』에 수록되어 있는 무주부 지도. 『청구도(靑邱圖)』는 1834년(순조 34)에 김정호(金正浩)가 제작한 전국 지도로, 건곤(乾坤) 2책으로 되어 있다. 2008년 12월 22일 보물 제1594-1호[국립 중앙 도서관 소장], 보물 제1594-2호[영남 대학교 도서관 소장]로 지정되었고, 2009년 4월 22일에 보물 제1594-3호[고려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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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로 이거한 문신 이유태의 시문집. 이유태(李惟泰)[1607~1684]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태지(泰之), 호는 초려(草廬)이다. 할아버지는 선공감 봉사(繕工監奉事) 이대방(李大邦)이고, 아버지는 증참판(贈參判) 이서(李曙)이다.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에게 나아가 학문을 닦았으며,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을 따라 『상례 비요(喪禮備要)』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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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무주의 덕천 서원에 제향된 김일손의 시문집. 김일손(金馹孫)[1464~1498]의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자는 계운(季雲), 호는 탁영(濯纓)이다. 1486년(성종 17) 생원·진사에 합격하고, 같은 해에 갑과에 올라 문장과 기질로 세상에 이름났다. 권지부정자(權知副正字)로 벼슬길에 올라 승정원 주서(承政院注書), 춘추관 편수관(春秋館編修官), 홍문관 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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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제작된 『해동지도』에 수록되어 있는 전라도 무주부 지도. 『해동지도(海東地圖)』는 1750년대 초에 그린 지도책으로, 후대에 제작된 지도들의 모범이 될 정도로 지리 정보들이 회화식으로 채색되어 있다. 영조 대에 작성된 도별 읍지인 『여지도서(輿地圖書)』의 제작 연대와 비슷한 시기로 추정되며, 도별 읍지를 보완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지도책으로 여겨진다. 『해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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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제작된 『호남지도』에 수록되어 있는 무주부 지도. 『호남지도(湖南地圖)』는 전라도 각 군을 그려 전체를 7첩으로 묶고 비변사인(備邊司印)을 찍은 채색 지도 필사본이다. 0.3~1.5㎝의 방안(方眼)에 그렸으나 방안의 크기가 지도별로 일정하지는 않다. 그중 「무주부」는 7첩 중 진안, 용담, 장수, 운봉, 임실, 곡성, 구례, 광양 등과 함께 제3첩에 속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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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가옥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전주원씨의 정려. 절부 전주원씨는 효자 박이항(朴以恒)의 처로 성품이 정결하고 사리가 분명하였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丁酉再亂) 때, 남편이 가족들을 데리고 장수 백운산으로 피신하면서 “만약 우리가 한 곳에 가서 있다가 변을 당하면 한꺼번에 변을 당할 우려가 있으니, 각기 다른 곳으로 피하자”라고 하여, 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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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덕산리에 있던 조선 후기 정자 터. 강수정(講樹亭)은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덕산리 수락(水落) 마을 입구 쪽에 있었다. 마을의 입구 도로 왼쪽에 자리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자취가 남아 있지 않다. 조선 말 강지형(姜芝馨)이 학문을 연구하기 위해 지어 강학소(講學所)로 사용하였다. 활을 쏘는 ‘사정(射亭)’이라고도 하였으며, 이후 ‘강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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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에 제작된 전라북도 무주 지역의 옛 지도. 조선 시대에 무주부 또는 무주군을 그려 놓은 지도들을 고지도라고 하며, 그림식 또는 회화식(繪畵式) 지도가 대부분이며, 이외에 목판본(木版本) 지도들도 포함되어 있다. 무주부를 그린 고지도들은 무주 읍치를 중심으로 행정 경관[동헌, 내아, 객사, 아사, 창고 및 옥 등을 포함], 제사 경관[향교, 사직단, 성황단, 여단],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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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소천리 관음사에 있는 조선 후기 불패. 불패(佛牌)는 부처나 승려를 모시는 위패(位牌)로, 주로 경서, 불보살의 명호(名號), 승려의 법명이나 발원 내용 등을 적어 놓은 패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구름 모양이나 보주 모양의 패신과 패두, 연꽃 형태의 좌대로 구성되는데 패신에는 꽃·용·구름 등으로 화려하게 조각하는 것이 특징이다. 관음사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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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소천리 관음사 법보전에 있는 조선 후기 관음보살상. 관음사 법보전 목조 관음보살 좌상(觀音寺法寶殿木造觀音菩薩坐像)은 원래 충청남도 금산군 남이면 석동리 보석사(寶石寺)에 있던 것을 옮겨왔다고 전한다. 관음사 법보전 목조 관음보살 좌상은 연화문(蓮花文)과 화염보주(火炎寶珠)로 장식된 화려한 보관을 착용하고 있다. 얼굴은 살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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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광을 시조로 하고, 김경조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무주군의 세거 성씨. 광산김씨의 시조 김흥광(金興光)은 신라 신무왕(神武王)의 셋째 아들로, 신라의 멸망을 예견하고 무진주(武珍州)에 은거하였는데,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 태조가 광산 부원군(光山府院君)에 봉하였다고 한다. 이에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삼고 광산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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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괴목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절터. 1643년(인조 21)에 이조 판서 이식(李植)이 왕명으로 적상산 사고(赤裳山史庫)를 순찰하고 병자호란 이후 적상산 사고의 관리와 적상산성(赤裳山城) 방비의 허술함을 보고하였다. 이에 인조(仁祖)는 적상산 사고의 수호 사찰로서 호국사(護國寺)를 창건하였다. 이러한 내용은 괴목리 호국사 터에 현존하는 적상산성 호국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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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열녀. 구길생(具吉生)의 처 양씨는 집이 너무도 가난하여 남편이 죽었을 때 거적으로 남편을 싸서 장사를 지낼 정도였다. 하지만 그러한 가난 속에서도 병든 남편과 시부모와 시동생들을 지극정성으로 모시고 보살폈다. 남편이 죽은 후에는 아침저녁으로 남편의 제사상에 전(奠)을 올리는 일을 빠뜨리지 않았으며, 그때마다 가슴을 치고 슬피 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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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악을 시조로 하고, 장의현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무주군의 세거 성씨. 시조 장악(張岳)은 인동 장씨 시조 장정필(張貞弼)의 후손으로, 고려 인종 때 문하시중을 지내며 왕의 총애를 받았다. 나이 70세에 이르러 입조(入朝)할 때마다 고향인 봉성(鳳城)[현 전라남도 구례군]을 생각하고 근심이 가득하였다. 이를 알게 된 왕이 봉성을 식읍(食邑)으로 하사(下賜)하고 봉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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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 굴암리에 있는 조선 후기 송계원의 효자각. 송계원(宋桂元)[1731~1792]의 본관은 은진(恩津)이다. 어려서부터 부모에 대한 효심이 극진하였고, 아버지가 병에 걸리자 온갖 정성을 다해서 병간호를 하였다. 추운 겨울, 잉어를 먹고 싶어 하는 아버지를 위해 추위를 잊은 채 강가에 나가 헤맸는데, 얼음이 깨지며 잉어가 튀어나와 공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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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김해(金海).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戊午士禍) 때 희생된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의 13세손이며, 아버지는 가선대부 중추부사(嘉善大夫中樞府事)를 지낸 김재선(金在善)이다. 부인은 장수 황씨(長水黃氏)이다. 김국희(金國禧)[1773~?]는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대차리에서 태어났으며, 정조[재위 1776~1800] 때 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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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 도산 서원에 배향된 조선 전기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은경(殷卿), 호는 심재(心齋). 증조할아버지는 형조도관 좌랑(刑曹都官佐郞)을 지낸 김열(金閱)이며, 할아버지는 가선대부 병조 참판(嘉善大夫兵曹參判)에 증직(贈職)된 김달손(金達孫)이다. 아버지는 강화 도호부사(江華 都護府使)를 지낸 김수(金洙)이고, 외할아버지는 권항(權恒)이다. 부인은 성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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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지역에서 활동한 무신이자 의병장. 김준민(金俊民)[?~1593]의 본관은 상산(商山)으로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에서 출생하였다. 무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갔으며, 1583년(선조 16) 함경북도 병마절도사 이제신(李濟臣)과 함께 군관으로 출전하여 호족(胡族)을 정벌하는 데 공을 세웠다. 그 뒤 거제 현령(巨濟縣令)을 지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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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을 시조로 하고, 서효재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무주군의 세거 성씨. 달성서씨(達城徐氏)의 시조 서진(徐晉)은 고려 때 봉익대부(奉翊大夫)·판도판서(判圖判書) 등을 역임하였고, 나라에 큰 공을 세워 달성군(達城君)에 봉해지고 달성[현 대구광역시 달성군]을 식읍(食邑)으로 하사받아 대대로 살게 되었다. 시조 서진의 아들 서기준(徐奇俊)과 손자 서영(徐穎)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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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당산리 한풍루 옆에 있는 조선 후기 비석군. 당산리 한풍루 비석군은 한풍루(寒風樓) 옆에 일렬로 배치되어 있는 5기의 비를 말하며, 왼쪽부터 관찰사 김교근(金敎根)[1766~?], 관찰사 서기순(徐箕淳)[1791~1854], 행부사 김용근(金龍根)[1794~?], 부사 홍익철(洪益喆)[1723~?], 부사 김시용(金始容) 순으로 배치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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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 대소리에 있는 조선 후기 백자 가마터. 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 소재지에서 지방도 제635호선을 따라가면 유평교가 나오고, 유평교에서 진안군 용담면 소재지로 이어지는 지방도를 따라 1.5㎞쯤 가면 부남면 대소리 도소 마을에 도착한다. 도소 마을 남쪽 극락사 입구 밭에 대소리 백자 가마터가 자리하고 있다. 금남 호남 정맥 신무산 동북쪽 기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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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작성된 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 대유리 밀양박씨 문중 소장 고문서. 호구 단자(戶口單子)는 개인이 관에 제출하는 호적 단자를 말한다. 호구의 성적(成籍)은 조선 시대에 3년마다 돌아오는 식년(式年)에, 즉 간지가 자·묘·오·유(子卯午酉)로 끝나는 해에 호주가 집안의 호구를 적어서 관에 제출한다. 호적은 상당히 오래 전부터 존속한 것으로 보인다. 신라 시대의 장적은 촌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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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 대유리에 있는 조선 후기 백자 가마터. 전라북도 무주군과 충청남도 금산군 경계에 갈미봉이 있는데, 갈미봉 산봉우리에서 동남쪽으로 뻗어 내린 산줄기 끝자락에 대유리 백자 가마터가 자리한다. 무주군 부남면 소재지에서 대소교를 건너 지방도 제635호선을 따라가면 목사리재를 넘어 금산군 남일면 신정리 방면으로 나아갈 수 있다. 전라북도와 충청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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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진도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사당. 도남사(道南祠)는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진도리 948-3번지[별묘길 28]에 위치해 있다. 도남사 앞쪽으로는 안성천이 흐르고 있다. 1781년(정조 5)에 하남 정씨(河南程氏)의 가묘(家廟)로 창건되었다. 서원 철폐 때 사묘라는 이유로 훼철을 면하였다. 1922년에 강당과 신도비를 세웠고 1924년에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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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사전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도산서원(道山書院)은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사전리 사전 마을 뒤에 위치하고 있다. 국도 제19호선을 따라 무주 방향으로 가다 보면 사전 교차로가 나온다. 사전 교차로에서 좌회전을 한 뒤 안성면 소재지 방향으로 따라가다 보면 우측에 사전 마을이 보인다. 사전 마을 입구에서 사전교를 지나 우측으로 따라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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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8년 정권에서 소외되었던 소론과 남인의 급진 세력이 경종의 죽음에 영조와 노론이 관련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일으킨 사건. 1724년 경종이 갑작스럽게 사망하고 영조가 노론(老論)의 지지를 받으면서 즉위하였다. 노론의 집권으로 정권에서 소외되었던 소론(少論)과 남인(南人)의 급진 세력은 영조와 노론을 제거할 계획을 세웠다. 이들은 세제(世弟) 책봉의 부당성, 경종의 사인(死因)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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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무주군에 설치한 지방 행정 구역. 임진왜란(壬辰倭亂) 이후 적상산(赤裳山)에 사고(史庫)가 건립되면서 적상산 사고(赤裳山史庫)의 실록과 선원보 등 왕실 기록을 관리하기 위해 무주현(茂朱縣)을 무주도호부(茂朱都護府)로 승격하였다. 『태종실록(太宗實錄)』 권28, 태종 14년 12월 25일에 “전라도 무풍현·주계현 두 현을 아울러서 무주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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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효자. 박권(朴權)[1747~1822]은 본관은 밀양(密陽), 호는 운곡(雲谷)으로, 1747년(영조 23)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소천리에서 태어났다. 40세 때인 1786년(정조 10)에 소과(小科)에 합격한 후, 성균관에 입학하여 대과 급제를 위한 공부에 전념하였다. 박권은 성품이 매우 온화하고 효심이 깊은 인물이었다. 어려서부터 형제간의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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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지역으로 이거한 학자.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이환(而煥), 호는 관일당(貫一堂)·정관재(靜觀齋). 송은(松隱) 박익(朴翊)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지사(知事) 박중엽(朴重燁)이다. 어머니는 강위경(姜渭擎)의 딸인 진주 강씨(晋州姜氏)이다. 박문건(朴文健)[1770~1805]은 경상남도 진주(晉州)에서 출생하였다. 1805년(순조 5) 지금의 전라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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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여삼(汝三), 호는 운촌(雲村). 형은 성균 진사(成均進士) 박권(朴權)이다. 박삼(朴森)[1761~1832]은 1761년(영조 37)에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소천리에서 태어났으며, 형 박권과 함께 무주를 대표하는 효자였다. 어려서부터 형제간의 우애와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부모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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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군 설천면 기곡리에 정려각이 세워진 유학자이자 효자. 박이겸(朴以謙)[1553~1613]은 선조(宣祖) 대의 학자로 중봉(重峯) 조헌(趙憲)의 문인이다. 지극한 효성으로 어버이를 섬겼으며, 임진왜란의 와중에 상을 당하자 여묘를 살면서도 나랏일을 걱정하였다. 뒤에 유일(遺逸)로 정릉 참봉(貞陵參奉)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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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근보(近甫), 호는 설계(雪溪). 임진왜란 때 선조(先祖) 가운데 한 사람이 난을 피하여 삼도봉(三道峰)에 들어왔다가 지금의 무주군 설천면에 자리를 잡았다. 할아버지는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증직된 박태만(朴泰萬)이며, 아버지는 박세건(朴世建)이다. 어머니는 남원 양씨(南原梁氏)이며, 부인은 김육(金堉)의 딸인 광산 김씨(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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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응주를 시조로 하고, 박수증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무주군의 세거 성씨. 반남박씨(潘南朴氏)는 도시조 박혁거세(朴赫居世)의 후손인 박응주(朴應珠)를 시조로 한다. 박응주는 고려 고종 때 반남현[현 전라남도 나주시 반남면]의 호장(戶長)을 지냈다. 박응주의 6세손 박은(朴訔)[1370~1422]은 조선 태종 때 반남군(潘南君), 반성군(潘城君)과 좌의정을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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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삼공리 백련사에 있는 조선 후기 승려 도준의 승탑. 승탑(僧塔)은 부도(浮屠)라고도 부르며, 고승(高僧)이 입적한 후 사리(舍利)나 유골(遺骨)을 봉안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승탑은 선종(禪宗)이 유입된 이후인 9세기 중엽부터 본격적으로 만들어졌다. 이 시기 승탑은 실상사 증각 대사 응료탑(實相寺證覺大師凝寥塔)과 같이 팔각 원당형(八角圓堂形)이 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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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삼공리 백련사에 있는 조선 후기 종. 백련사(白蓮寺)는 신라 신문왕(神文王) 때 백련 선사(白蓮禪師)가 숨어 살던 곳에 하얀 연꽃이 솟아 나왔다고 하여 건립한 절로, 당시는 백련암(白蓮庵)이라고 하였다. 이후 830년(흥덕왕 5)에 무렴 국사(無染國師)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기록이 없어 확인하기 어렵다. 1900년(고종 37)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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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삼공리 백련사에 있는 조선 후기 승려 매월당 설흔의 승탑. 승탑(僧塔)은 부도(浮屠)라고도 부르며, 고승(高僧)이 입적한 후 사리(舍利)나 유골(遺骨)을 봉안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승탑은 선종(禪宗)이 유입된 이후인 9세기 중엽부터 본격적으로 만들어졌다. 이 시기 승탑은 실상사 증각 대사 응료탑(實相寺證覺大師凝寥塔)과 같이 팔각 원당형(八角圓堂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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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삼공리 백련사에 있는 조선 후기 정관당 일선의 승탑. 승탑(僧塔)은 부도(浮屠)라고도 부르며, 고승(高僧)이 입적한 후 사리(舍利)나 유골(遺骨)을 봉안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승탑은 선종(禪宗)이 유입된 이후인 9세기 중엽부터 본격적으로 만들어졌다. 이 시기 승탑은 실상사 증각 대사 응료탑(實相寺證覺大師凝寥塔)과 같이 팔각 원당형(八角圓堂形)이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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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현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교육 기관. 백산서원(柏山書院)은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현내리 북리 마을 167번지[무풍면 북리길 40]에 있다. 무풍면 사무소에서 30번 도로인 현내길을 따라 가다가 무풍 우체국을 지나 좌측으로 북리 마을로 들어가면 북리 마을 회관이 있고, 북리 마을 회관을 지나 조금 이동하면 백산서원이 있다. 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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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읍내리 북고사에 있는 조선 후기 아미타불상.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읍내리 북고사 극락전에 봉안되어 있는 북고사목조아미타여래좌상(北固寺木造阿彌陀如來坐像)은 조성 당시인 1657년(효종 8)의 복장 발원문 외에 1736년(영조 12)과 1928년 중수 발원문을 살펴보면, 1657년 4월 조성하기 시작하여 5월에 완성된 후, 덕유산 운수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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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읍내리 북고사 용화전에 있는 신중을 그린 조선 후기 불화. 「북고사 신중 탱화(北固寺神衆幀畵)」는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읍내리에 있는 북고사 용화전에 봉안되어 있으며, 신중(神衆)을 그린 조선 후기의 불화이다. 신중은 본래 인도의 토속신으로, 불교에 수용된 호법신이다. 조선 후기에는 신중을 별도의 그림으로 그려, 신앙의 대상으로 삼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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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대차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정자 터. 분의정(分宜亭)은 조선 인조(仁祖) 때의 명신(名臣) 청구(淸滾) 임담(林墰)이 지은 정자이다. 임담은 파직된 이듬해에 참지(參知) 및 승지(承旨)에 임명되었으나 나가지 않고 지내다가 여름에 판결사(判決事)에 임명되어 조정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분의정에서 머물렀다. 임담은 나주(羅州) 회진(會津) 사람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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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화가 최북의 그림과 일화. 최북(崔北)[1713?~1786?]은 조선 숙종(肅宗), 영조(英祖) 때의 화가이다. 초명은 최식(崔埴), 자는 성기(聖器)·유용(有用), 호는 칠칠(七七)·월성(月城)·성재(星齋)·기암(箕庵)·거기재(居基齋)·삼기재(三奇齋)·호생관(毫生館)이다. 호의 하나인 ‘칠칠(七七)’은 자신의 이름인 북(北) 자를 반으로 쪼개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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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삼유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정자 터. 사유정(四柳亭)은 유산(柳山) 유도(柳燾)가 만년에 퇴휴처로 지은 정자이다. 유도의 자는 경보(景普)이며, 용담현(龍潭縣) 출신으로 생원 유최영(柳最榮)의 아들이다. 동지돈녕부사(同知敦寧府事)를 지냈다. 시문에도 능하였는데 시문집으로는 『유산집(柳山集)』이 있다. 유도의 문집 『정수합별지(呈繡閤別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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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사천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의병장 장지현의 묘. 장지현(張智賢)[1536~1593]은 본관이 구례(求禮), 자는 명숙(明叔), 호는 삼괴(三槐)이다. 임진왜란 때 왜군과 맞서 싸우다 전사하였다. 무주군 무주읍 당산리에서 병마절도사 장필무(張弼武)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1590년(선조 23) 지략(智略)으로 천거 받아 전라도 병마절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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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달성(達城). 귀계(龜溪) 서침(徐沈)의 후손이다. 서침은 고려 말의 충신이었던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로부터 학문을 배우고 전라도 처치사(全羅道處置使)를 지낸 인물로, 조선 세종 조에는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와 전의소감(典醫少監)을 지냈다. 전라도 무주 출신인 서인주(徐仁周)는 효심이 깊은 사람이었다. 부모를 섬기는 데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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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천경(天景), 호는 회계(晦溪). 아들은 죽재(竹齋) 서인주(徐仁周)이다. 서천발(徐天發)[?~?]은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지성리에서 태어났다. 효행이 뛰어났으며 예학(禮學)에 밝아 학문을 연마하고 후진을 양성하는 데 전념하였다. 사후에 가선대부 한성부 좌윤(嘉善大夫漢城府左尹)에 추증되었다. 1777년(정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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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소천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사당. 설호사(雪湖祠)는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소천리 무설로에서 양지길로 진입해 KT 설천 분기국사 옆에 위치하고 있다. 설호사는 1860년(철종 11)에 창건되었다. 1869년(고종 6)에 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다가, 1928년 2월에 문중이 재건하였다. 사당과 관리사로 이루어져 있다. 사당은 정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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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천룡을 시조로 하고, 배치무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무주군의 세거 성씨. 성산배씨는 성주 배씨(星州裵氏)라고도 하며, 배위준(裵位俊)을 시조로 한다. 그러나 무주에 입향한 배치무(裵畤武)에 관한 기록에는 배현경(裵玄慶)의 현손인 배사혁(裵斯革)의 둘째 아들로 고려 때 성산군(星山君)에 봉해진 배천룡(裵天龍)을 시조로 하고 있다. 이는 1764년(영조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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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철목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사당. 세덕사(世德祠)는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철목리 849-2번지[철목길 120-2] 원철목 마을에 위치해 있다. 무풍면 철목리 관광 안내소인 휴 무풍 승지를 지나 철목길을 따라 새터 마을로 비탈길을 오르다 보면 우측에 위치해 있다. 세덕사는 1632년(인조 10)에 건립되었다. 1995년 1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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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효자. 송계원(宋桂元)[1731~1792]은 1731년(영조 7)에 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 굴암리에서 태어났으며, 무주를 대표하는 효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를 지극정성으로 섬겨, 주변 사람으로부터 진정한 효자라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특히 아버지가 노환(老患)으로 병중에 있을 때에 온갖 정성을 다해 아버지를 보살핀 일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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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학문 기관. 1846년(헌종 12)에 부사로 부임한 최원은 고을 선비들과 상의하여 1849년(헌종 15)에 관아의 북쪽에 터를 잡아 시술재(時術齋)를 창건하였다. 재사(齋舍)를 건립하기 위해 돈 600여 냥과 약간의 관비를 모으고 3만 치전(治田)에서 세수곡(勢收穀) 20곡(斛)과 2만 치전에서 8,000전을 양사(養士)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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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지역에서 활동한 화원승. 신민(信敏)은 숙종 때 활동한 화원승(畫員僧)이다. 젊어서는 무뢰배(無賴輩)로 일반 대중과 어울리지 못하였다. 하루는 절 안의 승려들이 그림 공부하는 것을 보고, 자기도 배우고 싶어 배우기를 청하였으나 화승이 업신여기고 거절하였다. 그러자 혼자 방 안에 들어앉아 밤낮으로 1년 동안 쉬지 않고 여러 불상을 그리는 방법을 연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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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괴목리 안국사에 있는 조선 후기 괘불대. 괘불대(掛佛臺)는 영산재(靈山齋)나 수륙재(水陸齋) 등 불교 법회나 의식을 거행할 때 예배의 대상인 괘불을 걸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 석조물이다. 그 형태는 당간 지주(幢竿支柱)와 유사하지만 건립 목적이나 의의는 전혀 다르다. 괘불대는 당, 당간, 당간 지주가 하나의 일체로서 갖는 상징성이나 의의는 거의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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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괴목리 안국사에 있는 조선 후기 승려 보운당 혜정의 승탑. 승탑(僧塔)은 부도(浮屠)라고도 부르며, 고승(高僧)이 입적한 후 사리(舍利)나 유골(遺骨)을 봉안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승탑은 선종(禪宗)이 유입된 이후인 9세기 중엽부터 본격적으로 만들어졌다. 이 시기 승탑은 실상사 증각 대사 응료탑(實相寺證覺大師凝寥塔)과 같이 팔각 원당형(八角圓堂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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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괴목리 안국사에 있는 조선 후기 범종. 안국사 소장 범종(安國寺所藏梵鍾)은 1788년(정조 12)에 조성된 조선 후기의 범종으로, 현재 안국사(安國寺) 범종각 내 후면에 안치되어 있다. 2007년 5월 4일에 전라북도 문화재 자료 제188호로 지정되었다. 전체 높이는 83㎝, 너비는 78㎝이다. 천판(天板) 위에 3개의 구멍이 뚫려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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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괴목리 안국사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 후기 불화. 「안국사 영산회 괘불탱(安國寺靈山會掛佛幀)」은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아미타불(阿彌陀佛)과 다보여래(多寶如來), 문수보살, 보현보살, 관음보살, 대세지보살 등을 배치한 7존도 형식의 영산회상 괘불도로서, 18세기에 고성 운흥사를 중심으로 영남·호남 지역에서 활동하던 화승 의겸(義謙)이 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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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괴목리 안국사에 있는 조선 후기 승려 월인당의 승탑. 승탑(僧塔)은 부도(浮屠)라고도 부르며, 고승(高僧)이 입적한 후 사리(舍利)나 유골(遺骨)을 봉안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승탑은 선종(禪宗)이 유입된 이후인 9세기 중엽부터 본격적으로 만들어졌다. 이 시기 승탑은 실상사 증각 대사 응료탑(實相寺證覺大師凝寥塔)과 같이 팔각 원당형(八角圓堂形)이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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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괴목리 안국사에 있는 조선 후기 승려 청운당의 승탑. 승탑(僧塔)은 부도(浮屠)라고도 부르며, 고승(高僧)이 입적한 후 사리(舍利)나 유골(遺骨)을 봉안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승탑은 선종(禪宗)이 유입된 이후인 9세기 중엽부터 본격적으로 만들어졌다. 이 시기 승탑은 실상사 증각 대사 응료탑(實相寺證覺大師凝寥塔)과 같이 팔각 원당형(八角圓堂形)이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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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괴목리 안국사에 있는 조선 후기 승려 청운당의 사리탑과 봉골탑. 승탑(僧塔)은 부도(浮屠)라고도 부르며, 고승(高僧)이 입적(入寂)한 후 사리(舍利)나 유골(遺骨)을 봉안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승탑은 선종(禪宗)이 유입된 이후인 9세기 중엽부터 본격적으로 만들어졌다. 이 시기 승탑은 실상사 증각 대사 응료탑(實相寺證覺大師凝寥塔)과 같이 팔각 원당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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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괴목리 안국사에 있는 조선 후기 승려 청운당의 승탑. 승탑(僧塔)은 부도(浮屠)라고도 부르며, 고승(高僧)이 입적한 후 사리(舍利)나 유골(遺骨)을 봉안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승탑은 선종(禪宗)이 유입된 이후인 9세기 중엽부터 본격적으로 만들어졌다. 이 시기 승탑은 실상사 증각 대사 응료탑(實相寺證覺大師凝寥塔)과 같이 팔각 원당형(八角圓堂形)이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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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괴목리 안국사에 있는 조선 후기 불교 전각. 안국사극락전(安國寺極樂殿)은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괴목리 1602번지[산성로 1050]에 있다. 적상산(赤裳山) 분지에 있는 안국사(安國寺)는 고려 1277년(충렬왕 3)에 월인 화상이 지었다고 전한다. 본래 보경사 또는 산성사 등으로도 불렸다. 안국사극락전은 임진왜란(壬辰倭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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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괴목리 안국사 극락전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 후기 아미타 삼존불상. 안국사목조아미타삼존불상(安國寺木造阿彌陀三尊佛像)은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괴목리에 있는 안국사 극락전(安國寺極樂殿)에 봉안되어 있는 목조 아미타 삼존불이다. 불상의 조성기가 발견되지 않아 정확한 조성 연대는 알 수 없으나, 구부정한 자세, 굵고 짧은 목, 납작한 턱과 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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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삼가리에 있는 조선 후기 백자 가마터.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소재지에서 국도 제30호선을 따라 진안군 안천면 소재지 방면으로 4㎞쯤 가면 여원교가 나온다. 여원교에서 북쪽으로 갈라진 농로를 따라 1㎞가량 올라가면 여원리 가마터1이 자리하고 있다. 무주군 적상면 소재지 서쪽에 우뚝 솟은 구리골산[657.0m]의 남쪽 골짜기로, 달리 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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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삼가리에 있는 조선 후기 백자 가마터. 구리산골 남쪽에 위치한 사기점골은 여원리 가마터 부근에서 두 갈래의 골짜기로 나뉘는데, 여원리 가마터1이 동쪽 골짜기에, 여원리 가마터2가 서쪽 골짜기에 자리하고 있다. 2개소의 가마터는 서로 인접되어 있으며, 가마의 운영 시기도 큰 차이가 없을 것으로 추정된다. 2007년에 전북 문화재 연구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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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작성된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장기리 연안이씨 문중 소장 고문서. 연안이씨 이유길 가전 고문서(延安李氏李有吉家傳古文書)는 조선 후기의 의사(義士) 이유길(李有吉)을 비롯한 그의 가문 5대에 걸쳐 내린 3종 25점의 고문서로, 교지(敎旨) 등 관문서와 조선 후기 개인들이 일상적인 사회 경제 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문서를 주고받기 위해 작성하였다. 1989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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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오희문이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무주 일대 상황을 적은 일기. 오희문(吳希文)[1539~1613]의 본관은 해주(海州)이며, 호는 비연(斐然)이다. 장성 현감을 지낸 오경민(吳景閔)과 남인(南寅)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 연안 이씨(延安李氏)와의 사이에 인조 때 영의정을 역임한 오윤겸(吳允謙)이 있다. 『쇄미록』에 의하면 아버지 오경민이 처가살이를 하면서 어린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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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을 시조로 하고, 이봉상은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무주군의 세거 성씨. 전주 이씨는 완산 이씨(完山李氏)라고도 하는데, 이는 완산이 전주의 백제 시대 지명이기 때문이다. 파별(派別) 또는 개인의 기호에 따라 ‘전주 이씨’ 또는 ‘완산이씨’를 선택하며, 두음 법칙(頭音法則)을 따르지 않고 본음에 따라 ‘리씨’라 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체로 전주를 본관으로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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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죽천리 원통사에 있는 조선 후기 승려 남봉당의 승탑. 승탑(僧塔)은 부도(浮屠)라고도 부르며, 고승(高僧)이 입적한 후 사리(舍利)나 유골(遺骨)을 봉안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승탑은 선종(禪宗)이 유입된 이후인 9세기 중엽부터 본격적으로 만들어졌다. 이 시기 승탑은 실상사 증각 대사 응료탑(實相寺證覺大師凝寥塔)과 같이 팔각 원당형(八角圓堂形)이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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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죽천리 원통사에 있는 조선 후기 승려 사당 선혜의 승탑. 승탑(僧塔)은 부도(浮屠)라고도 부르며, 고승(高僧)이 입적한 후 사리(舍利)나 유골(遺骨)을 봉안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승탑은 선종(禪宗)이 유입된 이후인 9세기 중엽부터 본격적으로 만들어졌다. 이 시기 승탑은 실상사 증각 대사 응료탑(實相寺證覺大師凝寥塔)과 같이 팔각 원당형(八角圓堂形)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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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죽천리에 있는 조선 후기 원통사 중창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 원통사 중창비(圓通寺重創碑) 비문에 의하면, 신라 창건 당시의 규모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나, 법당 외에 종각·누각 등의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한 탄언(坦彦)·도영(道英)·혜옥(惠玉)·일학(一學) 등에 의해 당(堂)과 종각을 중창하고 불상을 중수하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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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화중(和中)이다. 유경제(柳景堤)[1802~1856]는 열세 살이 되던 해에 친부모의 품을 떠나 작은아버지의 양자(養子)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양가(養家)의 부모를 모시는 데 있어서나 친가(親家)의 부모를 모시는 데 있어서나 언제나 지극정성을 다하였다. 특히 양아버지가 노환(老患)으로 위급한 지경에 이르자, 유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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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문화(文化). 초명은 유병옥(柳炳鈺), 자는 경보(景普), 호는 유산(柳山). 정숙공(貞肅公) 유정현(柳廷顯)의 후손이다. 할아버지 유한태(柳漢泰)가 순창에서 현 무주군 적상면 삼유리로 이주하였다. 아버지는 증호조 참판 후재(后齋) 유최영(柳最榮)이다. 1848(헌종 14) 생원시에 합격한 유휴(柳烋)가 동생이다. 유도(柳燾)[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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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방이리에 있던 숙식을 제공하는 편의 시설. 원(院)은 공무 여행자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하여 교통 요지나 험한 영로(嶺路) 등에 설치되는 역의 보조 시설이었다. 대체로 역과 같은 장소에 원이 설치되었기 때문에 역원(驛院)이라고 칭하였다. 30리에 하나씩 설치되었으나, 지형에 따라서 평지에서는 멀고 산악 지대에서는 가까웠다. 이러한 원 제도는 고려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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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명국(鳴國)이다. 아버지는 돈녕부 동지사(敦寧府同知事)를 지낸 유도(柳燾)이다. 유봉증(柳鳳增)[1830~1856]은 1830년(순조 30)에 태어나, 1848년(현종 14)에 소과(小科)에 합격하였다. 그리고 1856년(철종 7)에 향년(享年) 27세로 사망하였다. 유봉증은 그의 동생인 유홍증(柳鴻增)과 함께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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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익녀(翼汝)이다. 아버지는 돈녕부 동지사(敦寧府 同知事)를 지낸 유도(柳燾)이고, 큰형은 유봉증(柳鳳增), 작은형은 유학증(柳鶴增)이다. 유홍증(柳鴻增)[1850~1879]은 1850년(철종 1)에 태어났으며, 어렸을 때 형들을 존경하여, 형들을 대할 때 언제나 부모를 대하듯 하였다. 그리고 모든 일을 처리하는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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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현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재각. 육영재(育英齋)는 무풍면 사무소에서 무주 방향으로 가다 원평 삼거리에서 우회전해서 첫 번째 작은 골목길로 좌회전 한 후 50m 가량 가다 보면 우측에 있다. 원촌 마을과 문평 마을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육영재는 1849년(헌종 15)에 흥양 이씨(興陽李氏) 문중에서 자제들의 교육과 인재를 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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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대원을 시조로 하고, 송봉수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무주군의 세거 성씨. 우리나라 모든 송(宋)씨의 도시조(都始祖)는 당나라의 호부 상서(戶部尙書)였던 송주은(宋柱殷)으로 알려져 있다. 은진 송씨는 송천익(宋天翊)을 시조로 하였으나 송천익 이후 세계(世系)가 실전되는 바람에 고려 때 판원사(判院事)를 지내고 공을 세워 은진군(恩津君)에 봉해진 송대원(宋大原)을 시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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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효자이자 충신. 본관은 흥양(興陽). 자는 군진(君珍), 호(號)는 두촌(斗村). 형은 이만번(李晩蕃)이다. 이만경(李晩景)[1691~1776]은 1691년(숙종 17)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철목리에서 태어났다. 이만경은 성품이 올바르고 학문도 뛰어나 수많은 제자들이 그를 따랐다. 뿐만 아니라 청렴하여 사사로운 물욕이 없었다. 그래서 집안은 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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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 무인. 이만번(李晩蕃)[1680~?]의 본관은 흥양(興陽), 호는 두천(斗川)이다.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철목리에서 출생하였다. 무술 실력이 뛰어나 정희량(鄭希亮)이 살고 있는 경상남도 안의까지 그 소문이 들릴 정도였다고 한다. 정희량이 가끔 이만번에게 금품과 사람을 보내 가까이 지내려고 하였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가 난을 일으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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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지역에 은거한 유학자. 본관은 완산(完山). 자는 의소(儀韶), 호는 설천(雪川). 할아버지는 영의정을 지낸 충문공(忠文公) 소재(疏齋) 이이명(李蓬命)이고, 아버지는 일암(一庵) 이기지(李器之)이다. 이봉상(李鳳祥)은 1722년(경종 2) 신임사화(辛任士禍)로 할아버지 이이명이 사사(陽死)되자 무주 설천(雪川)으로 몰래 들어와 은거하였다. 총명함이 남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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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무신. 이손(李蓀)은 본관은 경주(慶州), 정순공(靖順公) 이성중(李誠中)의 후손으로,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대차리 서면 마을에서 출생하였다.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훈련원 봉사(訓練院奉事)를 역임하였다.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의주에서 적과 싸우다가 순절(殉節)하였는데, 그가 타던 말이 혼자 집으로 돌아와 슬피 울며 주인의 정충(精忠)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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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 지역에서 관련한 고문서가 전해 내려오는 조선 후기 무신. 이유길(李有吉)[?~1619]은 전라남도 해남 사람이었지만 뒤에 경기도 파주로 이사하였으며, 그가 전사한 뒤 가족이 파주에서 초혼장(招魂葬)으로 장례를 치렀다. 이유길의 종손이 무주군 일안면, 곧 현재의 안성면(安城面)에 살았기 때문에 무주와 인연을 갖게 되었다. 1989년 1월 연안 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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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장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이유길의 충신문. 이유길(李有吉)은 본관이 연안(延安)이며 자는 유지(有之)로 문정공(文靖公) 청련(靑蓮) 이후백(李後白)의 손자이다. 아버지 이선경(李善慶)이 왜구(倭寇)에게 살해되어 원수를 갚고자 하였다. 이유길은 정유재란(丁酉再亂)이 일어나자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을 따라 명량(鳴梁) 해전에 출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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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지역에 낙향한 문신이자 유학자.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태지(泰之), 호는 초려(草廬). 아버지는 유학(幼學) 이서(李曙)이고, 어머니는 청풍 김씨(淸風金氏)이다. 이유태(李惟泰)[1607~1684]는 충청남도 금산군에서 다섯 아들 가운데 셋째로 태어났다. 금산은 본래 전라도 지역에 속하였으나 1963년 충청남도에 편입되었다. 김집(金集)의 천거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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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효부. 이철구(李喆龜)의 처 옥산 장씨는 이철구와 결혼한 후 홀로 된 시할아버지와 역시 홀로 된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는데, 여기에 또 남편마저 병에 걸려 몸이 편치 못하였다. 게다가 남편의 병은 해가 갈수록 깊어만 갔다. 그렇지만 시할아버지가 남편의 병에 대해 묻거든 언제나 "차도가 있다. 곧 나을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시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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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지역에 별장을 짓고 시가를 즐겼던 문신. 본관은 나주(羅州)[회진(會律)]. 자는 재숙(載叔), 호는 청구(淸滾). 아버지는 관찰사를 역임한 임서(林㥠)이다. 임담(林覃)[1596~1652]은 1635년(인조 13)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에 올랐다. 병자호란 때 사헌부 지평으로 남한산성에 들어가 총융사의 종사관이 되어 남격대(南格臺)를 수비하였고, 화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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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부터 1598년까지 2차에 걸쳐 조선을 침략한 일본에 의해 무주 지역을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1592년(선조 25) 4월 13일 일본은 경상도 동래부의 부산진 공격을 시작으로 조선에 대한 침략 전쟁을 일으켰다. 그 후 7년 동안 조선은 일본과 전쟁을 하였으며, 명나라가 참전하면서 동아시아 삼국이 참전하는 전쟁으로 이어졌는데, 이 전쟁을 우리나라에서는 대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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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 장안리에 있는 조선 후기 백자 가마터. 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 장안리 교동 마을에서 지방도 제635호선을 따라 부남면 소재지 방면으로 1.5㎞쯤 가면 식암 마을이 나오는데, 식암 마을 남쪽 구릉지에 장안리 백자 가마터가 위치한다. 무주군 부남면과 진안군 안천면 경계에 위치한 쌍교봉[633m] 동쪽 기슭 말단부에 해당하며, 고창천이 북쪽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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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문신이자 의병장. 본관은 구례(求禮). 자는 명숙(明叔), 호는 삼괴(三槐)·백야(柏冶). 아버지는 청백리로 알려진 백야(栢冶) 장필무(張弼武)[1510~1574]로, 장지현은 둘째 아들이다. 장지현(張知賢)[1536~1592]은 어린 시절 아버지 밑에서 엄한 교육을 받았다. 당쟁이 심하여 관직에 나아갈 뜻을 접고 고향인 무주 지역에서 문무에 힘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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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괴목리에 있는 조선 후기 장지현의 충신각. 장지현(張智賢)[1536~1593]의 자는 명숙(明叔), 호는 삼괴당(三槐堂)이며, 본관은 구례(求禮)이다. 고려 문하시중(門下侍中) 봉성 부원군(鳳城府院君) 악(岳)의 후손으로, 임진왜란 때 왜군과 맞서 싸우다 전사한 의병장이다. 장지현은 병마절도사 필무(弼武)의 둘째 아들로 충청도 영동군 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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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북창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사고지. 사고(史庫)란 고려 말기부터 조선 시대까지 실록 등을 비롯하여 나라의 중요한 서적을 보관하였던 곳이다. 임진왜란 이전에는 내사고인 춘추관(春秋館)을 비롯하여 충주 지역과 전주 지역, 성주 지역 등 네 곳의 사고가 운영되었는데, 임진왜란으로 인해 전주 지역을 제외한 모든 사고가 소실되었다. 이에 1603년(선조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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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괴목리에 있는 조선 후기 호국사의 창건 내력을 기록한 비. 적상산성 호국사비(赤裳山城護國寺碑)는 적상산성 안에 설치되었던 적상산 사고(赤裳山史庫)의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과 『선원록(璿源錄)』을 지키던 수호 사찰(守護寺刹) 호국사(護國寺)의 창건 역사를 기록하여 세운 비이다. 비에는 1643년(인조 21) 이식(李植)이 왕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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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읍내리에 있던 조선 후기 교육 기관. 주계서원(朱溪書院)은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읍내리에 있었다. 1725년(영조 1)에 성리학(性理學)의 창시자 주희(朱熹)와 조선 후기 유학자 송시열(宋時烈)을 배향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었다. 뒤에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毁撤)되었고, 복설(復設)되지 못하였다. 주계서원은 현존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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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죽천리에 있는 조선 후기 교육 기관. 죽계서원(竹溪書院)은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죽천리 1716-3번지[평장길 79]에 있다. 안성면 소재지에서 안성로를 따라 남쪽으로 이동하다 보면 좌측으로 평장 마을로 들어서는 갈림길이 나온다. 평장 마을로 들어서면 평장 마을 회관이 있으며, 길을 따라 마을을 통과하여 평장길 끝에 있다. 통영 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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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철목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사당. 조선 태종(太宗) 때 무풍현의 마지막 현감(縣監)을 지낸 최영보(崔永甫)의 가족이 머물러 살게 되면서 무주군 무풍면 철목 마을이 번창하게 되었다. 최영보의 후손인 죽헌(竹軒) 최활(崔活)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 죽림사(竹林祠)이다. 최활은 조선 후기의 유학자로 형제들을 잃고 세상이 명리(名利)만을 따르는 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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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진을 시조로 하고, 하위국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무주군의 세거 성씨. 백산 서원(栢山書院)을 진양 하씨(晉陽河氏) 문중으로 소개하는 글들이 있으나, 진양 하씨 종사 연구회(晉陽河氏宗史硏究會)에서 문효공(文孝公) 하연(河演)과 그 후손들에 대해서 진주하씨(晉州河氏)로 정리하고 있으므로, 백산 서원을 중심으로 무주에 세거하는 하씨들을 중심으로 진주하씨를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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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청량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절터. 청량사(淸凉寺)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기록이 전하지 않아 정확한 운영 시기는 알 수 없다. 다만 『여지도서(輿地圖書)』와 『무주부 읍지(茂朱府邑誌)』, 『적성지(赤城誌)』 등의 기록에는 18세기~19세기경에 운영된 것으로 전한다.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청량리 진평 마을에서 남쪽의 백운산(白雲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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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장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정자 터. 초려(草廬) 이유태(李惟泰)는 처음에는 지금의 상산(上山)인 산미촌(山味村)에서 살았는데, 이 터에 서재(書齋)를 짓고 자신의 호를 따서 ‘초려정(草廬亭)’이라 하였다. 초려정에서 매일 학자들과 학문을 연구하며 수련하였다고 한다. 이유태는 스승 김집(金集)의 천거로 1634년(인조 12)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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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지역에서 의병을 일으킨 유학자.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성서(聖瑞), 호는 채포(蔡圃). 죽헌(竹軒) 최활(崔活)의 6세손이다. 최봉래(崔鳳來)는 어려서부터 몸집이 좋은 거인(巨人)이었다. “살아서 세상에 유익함이 없고, 죽어서 후세에 남김이 없으면 누가 대장부라 하랴.” 하면서 경사(經史)를 두루 탐구하고 무예를 열심히 닦았다. 1728년(영조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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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화가. 가계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이가환(李家煥)[1742~1801]은 본관을 경주라고 하였다. 한편, 조병유(趙秉瑜)의 『적성지』, 장지연(張志淵)[1864~1921]의 『진휘속고(震彙續考)』·『일사유사(逸士遺事)』, 오세창(吳世昌)[1864~1953]의 『근역서화징』 등에는 무주 최씨로 나온다. 그런데 무주 최씨는 주계 최씨로도 불렸으며,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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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전주(全州). 아명은 승대(承垈), 호는 송포(松圃). 아버지는 효행과 학문으로 이름이 높고, 무주 죽림사(竹林祠)에 위패가 봉안된 최활(崔活)이다. 최익붕(崔翼鵬)[1810~1872]은 1810년(순조 10)에 태어났다. 풍채도 좋고 재주도 뛰어난 인물이었으며, 무엇보다도 효심이 깊었다. 최익붕은 아버지가 병환으로 누워 있자, 병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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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죽림사에 제향된 유학자.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청원(淸源), 호는 죽헌(竹軒). 아버지는 현감을 지낸 최영보(崔永甫)이다. 최활(崔活)[?~?]은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부모의 상(喪)을 당하여 여묘살이를 하였다. 성품이 청렴하고 검소하였다. 평생 정주학(程朱學)을 연마하는 데 전념하였는데, 특히 『소학(小學)』의 실천을 역설하면서 많은 후학을 양성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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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철목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정자 터. 풍호정(風乎亭)은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철목리 철목 마을 입구에 있는 철목교를 지나 마을로 약 100m 들어오면 오른쪽의 느티나무 숲에 있었다고 한다. 오래 전에 마을의 선비들이 모여 미풍양속(美風良俗)을 지키기 위해 향약(鄕約)을 만들고 이를 제대로 행하기 위해 지었던 정자로, 마을 사람들은 이곳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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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경서(景瑞), 호는 서악(瑞岳). 조선 전기 영의정을 지낸 문효공(文孝公) 하연(河演)의 10세손이다. 아버지 사양재(四養齋) 하위국(河衛國)이 임진왜란 때 무주 백운산(白雲山)으로 들어와 난을 피한 후 무풍면 현내리에 정착하였다. 어머니는 안동 김씨(安東金氏) 김일(金鎰)의 딸이다. 부인은 이경국(李慶國)의 딸이다.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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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처사.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문서(文瑞), 호는 수용(睡慵). 조선 전기 영의정을 지낸 문효공(文孝公) 하연(河演)의 10세손이다. 아버지 사양재(四養齋) 하위국(河衛國)이 임진왜란 때 무주 백운산(白雲山)으로 들어와 난을 피한 후 무풍면 현내리에 정착하였다. 어머니는 안동 김씨(安東金氏) 김일(金鎰)의 딸이다. 하징도(河徵道)는 하위국의 첫째 아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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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처사.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휘서(輝瑞), 호는 모정(茅亭). 조선 전기 영의정을 지낸 문효공(文孝公) 하연(河演)의 10세손이다. 아버지 사양재(四養齋) 하위국(河衛國)이 임진왜란 때 무주 백운산(白雲山)으로 들어와 난을 피한 후 무풍면 현내리에 정착하였다. 어머니는 안동 김씨(安東金氏) 김일(金鎰)의 딸이다. 형제로 하징도(河徵道), 하정도(河呈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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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처사.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명서(明瑞), 호는 취은(醉隱). 조선 전기 영의정을 지낸 문효공(文孝公) 하연(河演)의 10세손이다. 아버지 사양재(四養齋) 하위국(河衛國)이 임진왜란 때 무주 백운산(白雲山)으로 들어와 난을 피한 후 무풍면 현내리에 정착하였다. 어머니는 안동 김씨(安東金氏) 김일(金鎰)의 딸이다. 형제로 하징도(河徵道), 하정도(河呈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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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순우를 시조로 하고, 기우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무주군의 세거 성씨. 행주(幸州)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 중 하나이며, 단일 본관으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성씨의 하나이다. 기자(箕子)의 후예라고도 하나, 고려 인종 때 문하평장사(門下平章事)를 지낸 기순우(奇純祐)를 1세조로 한다. 그 이유는 한때 선대의 세계(世系)를 분실한 때문이라고 한다. 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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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읍내리 향산사 나한전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 후기 나한상. 나한(羅漢)은 부처를 믿고 따르는 제자들을 의미한다. 본래 나한이란 인도의 옛말 아르하트에서 온 단어인데, 한역하여 아라한(阿羅漢)[Arhan]이라 하며, 줄여서 나한이라고도 한다. 나한상에는 10대 제자상, 16나한상, 500나한상 등이 있다. 이 중 16나한은 석가모니 부처의 직제자 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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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정자 터. 환수정(喚睡亭)은 1707년(숙종 33)에 무주 부사(茂朱府使) 조구상(趙龜祥)이 지은 관아의 누정이다. 1872년(고종 9)에 부사 정익영(鄭翼永)이 남루(南樓) 2칸을 증축하면서 문의 이름을 ‘천일(天日)’이라 하였다고 한다. 환수정은 무주군 무주읍의 시가지가 확장되면서 사라졌으나, 규장각(奎章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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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예술가. 황종혁(黃鐘赫)[1813~1865]은 전라북도 무주군 부내면[현 무주군 무주읍 읍내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창원(昌原). 호는 신석(臣錫)이다. 벼슬은 감찰(監察)까지 올랐으며, 무주 출신의 예술인으로 조정의 현관(顯官)들과 벗하였다. 또한 황종혁은 글과 그림, 그리고 가야금과 거문고에 이르기까지 다재다능한 기교로 명성이 높아 조정의 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