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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가옥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전주원씨의 정려. 절부 전주원씨는 효자 박이항(朴以恒)의 처로 성품이 정결하고 사리가 분명하였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丁酉再亂) 때, 남편이 가족들을 데리고 장수 백운산으로 피신하면서 “만약 우리가 한 곳에 가서 있다가 변을 당하면 한꺼번에 변을 당할 우려가 있으니, 각기 다른 곳으로 피하자”라고 하여, 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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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삼공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사당. 백촌(白村) 김문기(金文起)는 조선 세조(世祖) 때 순절(殉節)한 문신으로 초명은 효기(孝起), 자(字)는 여공(汝恭)이다. 1426년(세조 8)에 생원으로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 검열(藝文館檢閱), 사간(司諫), 경상도 아사(慶尙道亞使), 함길도 절제사(咸吉道節制使), 이조 판서(吏曹判書) 등을 역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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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은산리에 있던 조선 후기 학자 박문건을 모신 재각. 박문건(朴文健)은 영조(英祖)~순조(純祖) 대의 학자로, 호는 정관재(靜觀齋)이다. 진주 태생으로 1805년에 한치 마을로 옮겨와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1968년 후손들이 『정관재 문집(靜觀齋文集)』을 간행하였다. 경모재(景慕齋)는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소재지에서 지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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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철목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재각. 고반재(考槃齋)는 김진한의 재각이다. 김진한의 호는 덕암(德庵)이며, 무주군 무풍면 현내리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벼슬길에 나아가 의관(議官)에 이르렀다. 김진한은 성품이 인자하고 봉사 정신이 강해 해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곡식을 나누어 주는 등 선행을 베풀었다. 덕을 많이 베풀어 김진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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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 굴암리에 있는 조선 후기 송계원의 효자각. 송계원(宋桂元)[1731~1792]의 본관은 은진(恩津)이다. 어려서부터 부모에 대한 효심이 극진하였고, 아버지가 병에 걸리자 온갖 정성을 다해서 병간호를 하였다. 추운 겨울, 잉어를 먹고 싶어 하는 아버지를 위해 추위를 잊은 채 강가에 나가 헤맸는데, 얼음이 깨지며 잉어가 튀어나와 공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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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금평리에 있는 성산 이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성산 이씨(星山李氏)는 금녕 김씨 김치묵(金致默)의 처로 시부모 봉양과 제사를 받드는 데 정성을 다하였고, 남편을 받드는 데에도 어김없이 법도와 예절을 지켰다. 남편이 위독하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흘려 넣어 3일을 더 살게 하였으나 끝내 운명하였다. 이에 성산 이씨는 초종(初終)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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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기곡리에 있는 개항기 밀양박씨 가문의 효열 오정려. 기곡리 밀양박씨 효열 오정려(基谷里密陽朴氏孝烈五旌閭)는 밀양박씨 문중의 효열 다섯 명의 정려(旌閭)를 기리기 위하여 세운 정려각이다. 효자 박이겸(朴以謙)[1555~1613]과 박이항(朴以恒), 효열부(孝烈婦) 전주 원씨(全州元氏), 양주 조씨(楊州趙氏), 흥양 이씨(興陽李氏)를 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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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사전리에 있는 개항기 김여석의 신도비. 김여석(金礪石)[1445~1493]은 조선 전기 문신으로 본관이 광산(光山), 자(字)는 은경(殷卿), 호는 심재(心齋)이다. 아버지는 강화 부사를 지낸 증판서(贈判書) 김수(金洙)이며, 어머니는 증정부인(贈貞夫人) 안동 권씨(安東權氏)로 집의 권항(權恒)의 딸이다. 점필재(償畢齋) 김종직(金宗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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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현내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김해 김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김해 김씨(金海金氏)[1856~1922]는 장수 황씨 황호주(黃鎬周)에게 출가하여 부덕(婦德)을 쌓아 정숙하면서도 효성이 극진하였다. 남편이 중병으로 고생하였는데, 온갖 정성으로 약을 구하고 시탕(侍湯)을 하며 병구완을 하였으나 효과가 없어 죽음에 이르렀다. 이에 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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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당산리에 있는 개항기 유경제의 효자각. 유경제(柳景堤)[1802~1856]의 자는 화중(和中), 본관은 문화(文化)로 충경공 유량(柳亮)의 후손이다. 13세 되던 해 작은 집에 양자(養子)로 가게 되었는데, 효심이 극진하여 친가와 양가의 부모를 한결같이 지성으로 섬겼다. 양아버지가 갑자기 병에 걸리자 눈물을 흘리며 밥도 먹지 않고 간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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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당산리에 있는 개항기 창녕성씨의 열녀각. 열녀 창녕성씨(昌寧成氏)는 유풍렬(柳豊烈)의 아내이다. 남편이 산에 올라갔다가 호랑이를 만나 물려 죽게 되자, 마을 장정 수십 명이 몰려갔으나, 성난 호랑이의 울음소리에 놀라 감히 달려들지 못하였다. 창녕 성씨가 큰 소리로 고함을 지르며 앞으로 달려 나가자 호랑이가 감동하여 슬그머니 남편을 놓고 달아나 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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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소천리 덕천 서원 경내에 있는 일제 강점기 사당. 덕천사(德川祠)는 설천면 소재지에서 무설로를 따라 이동하다가 나제통문 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700m 정도 이동하면 이남 마을 회관 옆에 위치해 있다. 덕천사는 1919년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두길리에 처음 세워져 ‘유천사(裕川祠)’라 편액하였다. 1982년에 후손들에 의해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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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소천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교육 기관. 덕천서원(德川書院)은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소천리 450-9번지[라제통문로 50-12]에 있다. 설천면 소재지에서 무풍면 소재지로 이어지는 30번 도로를 따라 나제통문(羅濟通門)을 지나면 바로 이남 마을이 나온다. 이남 마을의 끝 쪽에 마을 주차장이 있고, 주차장과 마을 사이에 있는 작은 길을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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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진도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사당. 도남사(道南祠)는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진도리 948-3번지[별묘길 28]에 위치해 있다. 도남사 앞쪽으로는 안성천이 흐르고 있다. 1781년(정조 5)에 하남 정씨(河南程氏)의 가묘(家廟)로 창건되었다. 서원 철폐 때 사묘라는 이유로 훼철을 면하였다. 1922년에 강당과 신도비를 세웠고 1924년에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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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사전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도산서원(道山書院)은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사전리 사전 마을 뒤에 위치하고 있다. 국도 제19호선을 따라 무주 방향으로 가다 보면 사전 교차로가 나온다. 사전 교차로에서 좌회전을 한 뒤 안성면 소재지 방향으로 따라가다 보면 우측에 사전 마을이 보인다. 사전 마을 입구에서 사전교를 지나 우측으로 따라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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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금평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재각. 덕유산 나들목에서 무주 방면으로 국도 제19호선을 따라가다 사전 교차로에서 좌회전 후 두문 삼거리에서 다시 좌회전을 해서 지방도 제727호선을 따라 가면 두문 마을이 보인다. 두람재(斗籃齋)는 두문 마을 회관에 못 미쳐서 좌측에 위치해 있다. 1872년(고종 9)에 박남수(朴南壽)가 마을의 미풍양속(美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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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전기 향교. 무주향교(茂朱鄕校)는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읍내리 264-6번지[단천로 135]에 있다. 무주 군청에서 주계로를 따라 가다 보면 길 끝 단천로와 합쳐지는 지점 좌측에 위치하고 있다. 1398년(태조 7) 현사(縣舍)의 북쪽에 창건되었다. 처음 건립된 향교에 호랑이가 나타나 해를 입히자, 1692년(숙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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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무주향교의 대성전. 무주향교 대성전(茂朱鄕校大成殿)은 무주군 무주읍을 동서로 가로지는 남대천(南大川)의 다리 중에 무주 대교를 건너 북쪽으로 가서 향교 삼거리에 이르러 군청 방향으로 60여m 가면 오른쪽에 나오는 무주향교 내에 있다. 무주향교(茂朱鄕校)는 1398년(태조 7) 현사(縣舍)의 북쪽에 창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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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사전리에 있는 개항기 박태양 처 대구갈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박태양(朴泰陽) 처 대구 갈씨(大邱葛氏)는 갈득성(葛得成)의 딸로 태어났으며, 가난한 집안에 서모(庶母)와 함께 사는 반남 박씨(潘南朴氏) 집안으로 출가하였다. 남의 집 삯품팔이로 살림을 꾸려가면서도 병환에 시달리는 남편 병구완에 정성을 다하고, 시부모에게 효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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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금평리에 있는 반남박씨 가문 삼세의 충의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삼세 충의 비각에는 여말 선초(麗末鮮初)에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을 지킨 도소재(逃召齋) 박힐(朴詰), 단종 복위를 도모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의율재(擬栗齋) 박인(朴麟)과 그의 아들 박희권(朴希權) 등에 대하여 기록한 비가 있다. 박힐은 반남박씨(潘南朴氏) 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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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현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교육 기관. 백산서원(柏山書院)은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현내리 북리 마을 167번지[무풍면 북리길 40]에 있다. 무풍면 사무소에서 30번 도로인 현내길을 따라 가다가 무풍 우체국을 지나 좌측으로 북리 마을로 들어가면 북리 마을 회관이 있고, 북리 마을 회관을 지나 조금 이동하면 백산서원이 있다. 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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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에 있는 현대 사당. 충의공 백촌 김문기(金文起)는 조선 세조(世祖) 때 순절(殉節)한 문신으로 초명은 효기(孝起), 자(字)는 여공(汝恭)이다. 1426년(세조 8)에 생원으로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 검열(藝文館檢閱), 사간(司諫), 경상도 아사(慶尙道亞使), 함길도 절제사(咸吉道節制使), 이조 판서(吏曹判書) 등을 역임하였고, 자헌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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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심곡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보성오씨의 효열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권영유(權永裕) 처(妻) 보성오씨(寶城吳氏)는 홀로 계신 시어머니를 모시면서 몸과 마음을 길렀고, 남편을 섬길 때는 반드시 공경하고 마음과 몸을 깨끗이 하였다. 1877년(고종 14) 봄에 온 집안이 모두 돌림병에 걸려 불행히도 남편이 죽고 말았으나, 집안이 가난하여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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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지성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교육 기관.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지성리 733-1번지[지성길 119]에 있다. 무풍면 소재지에서 종산리 방향으로 이어지는 지방도 제1089호선로 가다 보면 좌측으로 지성길로 들어가는 도로가 있다. 이 도로를 따라 들어가면 부등이라는 마을이 나오고, 부등 마을의 끝 쪽에 있다. 본래는 달성 서씨(達城徐氏)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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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에 있는 비. 비(碑)는 여러 사실이나 업적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나무나 돌 또는 쇠붙이 등에 내용을 새긴 것을 말한다. 이를 비갈(碑碣)이라고 하였다. 비는 주로 네모난 형태를 총칭하는 말이고 갈(碣)은 우뚝 솟은 비나 둥근 비를 일컬었으나, 나중에는 비석이라고 부르면서 지금은 갈(碣)은 거의 쓰지 않는다. 비는 재료에 따라 석비·목비·철비 등으로 분류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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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삼유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문화유씨 가문의 효열 사정각. 문화유씨(文化柳氏) 문중의 효열(孝烈) 네 명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으로 ‘문화사정(文化四旌)’ 또는 ‘사유정(四柳亭)’으로 불린다. 1861년(철종 12) 유한태(柳漢泰)의 처 현풍 곽씨(玄風郭氏)[1755~1821]가 효부(孝婦)로 정려된 이듬해 문중에 의해 마을 입구에 홍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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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전라북도 무주군에서 교육과 제향을 목적으로 건립한 사설 교육 기관. 서원(書院)은 조선 중기 이후 설립된 사설 교육 기관이면서 향촌 자치 기구이다. 서원은 교육 시설과 제향 시설로 구성되며, 전면에 교육 시설이, 후면에 제향 시설이 위치하고 있다. 서원은 사우(祠宇)와 혼용되어 사용되기도 하나 목적과 기능에 있어 차이가 있다. 서원은 인재의 양성과 교육에 목적이 있는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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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소천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사당. 설호사(雪湖祠)는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소천리 무설로에서 양지길로 진입해 KT 설천 분기국사 옆에 위치하고 있다. 설호사는 1860년(철종 11)에 창건되었다. 1869년(고종 6)에 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다가, 1928년 2월에 문중이 재건하였다. 사당과 관리사로 이루어져 있다. 사당은 정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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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철목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사당. 세덕사(世德祠)는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철목리 849-2번지[철목길 120-2] 원철목 마을에 위치해 있다. 무풍면 철목리 관광 안내소인 휴 무풍 승지를 지나 철목길을 따라 새터 마을로 비탈길을 오르다 보면 우측에 위치해 있다. 세덕사는 1632년(인조 10)에 건립되었다. 1995년 1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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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소천리에 있는 개항기 밀양박씨의 효열각. 밀양박씨(密陽朴氏) 문중의 효자와 열녀를 연정(聯旌)한 것으로 박권(朴權)[1747~1822]과 박삼(朴森)[1762~1832] 형제의 효행과 박경호(朴景鎬)의 처 김해 김씨(金海金氏)의 열행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하였다. 효자 박권의 본관은 밀양이며, 자는 맹중(孟仲), 호는 운곡(雲谷)이다.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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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기곡리에 있는 현대 사당. 신안사(新安祠)는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기곡리 300번지[기곡1길 11-5]에 위치해 있다. 호롱볼 마을 정보 센터에서 무설로를 이용하여 300m 정도 이동하다가 기곡 마을 방면으로 우회전하면 기곡1길 기곡 마을 회관 옆에 있다. 신안사는 1978년에 밀양 박씨(密陽朴氏)의 가묘(家廟)로 창건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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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에서 이루어지는 공자의 사상과 관련된 학문과 의례 및 활동 일반. 유교(儒敎)는 공자(孔子)와 맹자(孟子), 주희(朱熹) 등 유학 선구자들의 정치사상과 학문 수양, 생활 의례 등의 가르침을 실천하려는 현세적 사상이다. 우리나라에 유교가 전래된 것은 한자(漢字)의 도입 시기와 일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교는 「임신서기석(壬申誓記石)」이 말해 주는 것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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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읍내리에 있는 성균관 유도회 산하 무주 지역 지부 . 성균관 유도회 총본부는 1945년 한국의 유림 대표들이 성균관에 모여 결성한 유림 단체이다. 성균관 유도회에서는 성균관 대학교 설립, 성균관 직제 개편, 지방 조직 강화 등을 결의하였고, 성균관 대학교의 설립 유지, 지방 향교의 육성 발전, 경전 번역 및 학술 연구 발표, 정치·경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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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현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재각. 육영재(育英齋)는 무풍면 사무소에서 무주 방향으로 가다 원평 삼거리에서 우회전해서 첫 번째 작은 골목길로 좌회전 한 후 50m 가량 가다 보면 우측에 있다. 원촌 마을과 문평 마을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육영재는 1849년(헌종 15)에 흥양 이씨(興陽李氏) 문중에서 자제들의 교육과 인재를 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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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철목리에 있는 개항기 이만번의 충신각. 이만번(李晩蕃)[1680~1762]의 본관은 흥양(興陽), 자는 군욱(君郁), 호는 두천(斗川)으로 찬성(贊成) 이서원(李舒原)의 후손이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에 동조하여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에서 일어나 서울로 진격하려던 정희량(鄭希亮)을 치기 위해 동생 이만경(李晩景)[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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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장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이유길의 충신문. 이유길(李有吉)은 본관이 연안(延安)이며 자는 유지(有之)로 문정공(文靖公) 청련(靑蓮) 이후백(李後白)의 손자이다. 아버지 이선경(李善慶)이 왜구(倭寇)에게 살해되어 원수를 갚고자 하였다. 이유길은 정유재란(丁酉再亂)이 일어나자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을 따라 명량(鳴梁) 해전에 출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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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장덕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제갈근환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제갈근환(諸葛根煥)[1851~1915]은 본관이 남양(南陽)이다. 제갈경홍(諸葛敬洪)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일찍이 아버지를 잃고 편모슬하에서 성장하였다. 평소에 어머니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는데, 어머니가 병들어 생명이 위급할 때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내어 먹게 하여 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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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 장안리에 있는 강릉유씨의 효열각. 강릉유씨는 유원순(劉元順)의 딸로 1804년(순조 4)에 태어나 17세 때 이연우(李連雨)에게 출가하여 아들 하나를 두고 있다가 21세에 남편과 사별하였다. 집안이 너무 가난하여 남의 집 삯품을 팔아 생계를 꾸렸음에도, 평생 다른 마음을 품지 않고 수절하면서 시부모를 극진히 섬기고 어린 자식을 양육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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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괴목리에 있는 조선 후기 장지현의 충신각. 장지현(張智賢)[1536~1593]의 자는 명숙(明叔), 호는 삼괴당(三槐堂)이며, 본관은 구례(求禮)이다. 고려 문하시중(門下侍中) 봉성 부원군(鳳城府院君) 악(岳)의 후손으로, 임진왜란 때 왜군과 맞서 싸우다 전사한 의병장이다. 장지현은 병마절도사 필무(弼武)의 둘째 아들로 충청도 영동군 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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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에 있는 충신, 효자, 열녀 등에게 국가에서 정문을 세워 표창한 것. 정려(旌閭)는 국가에서 효자·충신·열녀로 모범이 되는 사람의 집 문앞 또는 마을 입구에 붉은 문을 세워 주는 행위나 그 문을 뜻하는 말이다. 정(旌)은 깃발의 의미로 ‘드러낸다’는 뜻이고, 려(閭)는 마을 또는 마을 어귀에 세운 문이라는 뜻으로 왕이 효자·충신·열녀에게 정려를 내려줌으로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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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읍내리에 있던 조선 후기 교육 기관. 주계서원(朱溪書院)은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읍내리에 있었다. 1725년(영조 1)에 성리학(性理學)의 창시자 주희(朱熹)와 조선 후기 유학자 송시열(宋時烈)을 배향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었다. 뒤에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毁撤)되었고, 복설(復設)되지 못하였다. 주계서원은 현존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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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죽천리에 있는 조선 후기 교육 기관. 죽계서원(竹溪書院)은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죽천리 1716-3번지[평장길 79]에 있다. 안성면 소재지에서 안성로를 따라 남쪽으로 이동하다 보면 좌측으로 평장 마을로 들어서는 갈림길이 나온다. 평장 마을로 들어서면 평장 마을 회관이 있으며, 길을 따라 마을을 통과하여 평장길 끝에 있다. 통영 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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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철목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사당. 조선 태종(太宗) 때 무풍현의 마지막 현감(縣監)을 지낸 최영보(崔永甫)의 가족이 머물러 살게 되면서 무주군 무풍면 철목 마을이 번창하게 되었다. 최영보의 후손인 죽헌(竹軒) 최활(崔活)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 죽림사(竹林祠)이다. 최활은 조선 후기의 유학자로 형제들을 잃고 세상이 명리(名利)만을 따르는 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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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철목리에 있는 개항기 옥산장씨의 열녀각. 옥산장씨(玉山張氏)는 흥양인 이철구(李喆龜)에게 시집온 뒤 시할아버지와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어느 날 남편이 병에 걸려 해가 갈수록 깊어 가자 시할아버지가 염려할 것을 걱정하여 차도가 있다고 위로하였고, 홀로인 시어머니가 식음을 전폐하고 있음을 민망하게 여기고 지성으로 모시면서 공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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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철목리에 있는 개항기 이만경의 효자각. 이만경(李晩景)[1691~1776]의 자는 군진(君珍), 호는 두촌(斗村), 본관은 흥양(興陽)이다. 어렸을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는데, 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져 여러 해를 지나자 병이 더욱 깊어져 옆으로 돌아누울 때도 다른 사람의 부축을 받아야 하고, 말마저 어눌하게 되어 말끝을 맺지 못하게 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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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철목리에 있는 최흥림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최흥림(崔興林)[1878~1931]은 본관이 전주(全州), 자는 기선(箕善), 호는 도은(島隱)이다. 가세가 어려운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어릴 적부터 천성이 착하고 효심이 지극하였다. 병환 중인 부친이 먹고 싶어하는 것은 어떻게든 구해서 드렸다고 한다. 하루는 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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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은산리에 있는 현대 사당. 한천사(寒天祠)는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은산리 1166번지[한재길 4-8]에 위치해 있다. 한치 마을 한치 버스 정류장 맞은편에 있으며 좌측에 은산 교회가 있다. 한천사의 창건 시기는 알 수 없다. 밀양 박씨(密陽朴氏)의 가묘로 창건하였다. 6·25 전쟁 때 전투 경찰의 파견대 본부로 사용해 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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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현내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황의영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황의영(黃義永)[1876~1926]은 자는 영도(永道), 본관은 장수(長水)이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는데, 13세 되던 해에 아버지가 병으로 드러눕자 어린 나이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아버지의 곁을 떠나지 않으며 병간호에 정성을 다하였다. 임종 때에는 어머니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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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당산리에 있는 유인성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화은 선생의 본명은 유인성(柳寅誠)으로 본관이 문화(文化), 자는 길중(吉中), 호는 화은(華隱)이다. 충경공(忠景公) 유량(柳亮)의 후손이며 유기찬(柳基燦)의 아들이다. 무주군 무주읍 당산리에서 태어나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의 문하에 들어가 수학하였다. 산골에 은거하면서 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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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사전리에 있는 밀양박씨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밀양박씨(密陽朴氏)는 박이겸(朴以謙)의 아들 박흥생(朴興生)의 딸이며 전주 최낙규(崔洛奎)의 처이다. 남편이 23세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뜨자 남편을 따라 죽기로 결심하였는데, 성치 않은 몸으로 홀로 계신 시어머니를 생각하여 마음을 바꾸었다. 그리하여 남편의 장례를 치른 후 시어머니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