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501358
한자 -共同體-傳承-富南-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 대소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상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0년대 중반 - 무주 부남 디딜방아액막이놀이 복원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5년 - 무주 부남 디딜방아액막이놀이 부남면 방앗거리 보존회 결성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0년 - 무주 부남 디딜방아액막이놀이 제41회 전국 민속 경연 대회에서 문화부 장관상 수상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10년 5월 28일연표보기 - 부남 디딜방아액막이놀이 전라북도 무형 문화재 제41호로 지정
위치 부남 디딜방아액막이놀이 보존회 - 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 대소3길 9-1[대소리 142-3]지도보기

[정의]

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 대소리 일원에서 전염병 예방과 풍년을 기원하며 전승되는 전통 민속놀이. 본래 전염병 예방이나 풍년을 기원하기 위한 뱅이였으나 오늘날 방앗거리 놀이로 새롭게 전승되고 있다.

[무주 부남 디딜방아액막이놀이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무주 부남 디딜방아액막이놀이[부남 방앗거리 놀이]라 하면 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 대소리 대소 마을의 주민 유재두[남, 76세]를 빼놓을 수 없다. 현재도 부남 방앗거리 놀이 보존회 회장을 맡고 있는 유재두는 국사 편찬 위원회 사료 조사 위원, 무주 문화원 부원장, 무주 군지 편찬 위원 등을 역임하는 등 무주 지역의 향토 문화를 발굴 보존하기 위해 힘쓴 향토 사학자이다. 부남면 사무소[부남면 주민 자치 센터] 뒤편에 자리한 방앗거리 놀이 소품을 보관하는 창고에는 디딜방아뿐만 아니라 다양한 민속 용품들이 흡사 민속 박물관처럼 말끔하게 정리되어 전시되고 있다. 지역의 민속이 단절되고 사라지고 있는 현실 속에서 농촌 마을의 재생 사업은 이처럼 공동체적인 민속의 복원부터 이루어져야 한다.

부남 방앗거리 놀이는 1990년대 중반 이후 발굴되어 1995년 부남면 방앗거리 보존회가 결성되고, 2000년 제41회 전국 민속 경연 대회에 출전하여 문화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2010년 5월 28일 ‘부남 디딜방아액막이놀이’란 이름으로 전라북도 무형 문화재 제41호로 지정되었다. 그래서 ‘부남 방앗거리 놀이’와 ‘부남 디딜방아액막이놀이’란 명칭으로 혼용되어 사용되고 있다.

[대소 마을 유래와 화재막이 이야기]

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은 청정하고 살기 좋은 이미지로 ‘별빛이 쏟아지는 땅’이라 이름 지었다. 천문대를 설치하여 한여름 밤에 별을 관찰하며 낭만을 즐길 수 있도록 하였다. 맑디맑은 금강 상류가 굽이굽이 흐르는 부남면은 아름답기로 유명한 벼룻길이 펼쳐진다. 대소(大所) 마을무주군 부남면 대소리에 속한 자연 부락이다. 본래 대소리부남면 지역이었는데 1914년에 대소, 유평(柳坪), 도소(島所) 등을 병합하여 대소리라 이름하고, 다시 부남면으로 편입시켰다. 자연 마을로는 대소[대수(大水)], 유평, 도소[섬소], 문암(文巖), 개안(開眼), 안죽동(安竹洞), 질바우[路巖] 등이 있다.

무주군 부남면 대소리 대소 마을은 각성바지로 현재 부남면 주민 자치 센터가 위치한 마을이다. 본래 대소 마을대소리 입구에 형성되었으나 화재가 발생하여 현재의 위치로 이동하게 되었다. 부남 초·중학교 옆에 디딜방아가 재현되어 있다. ‘대소’란 지명은 마을 뒤에 죽담 폭포가 있는데 ‘죽담(竹潭)’은 대나무가 있는 못이란 뜻이며, 대나무의 준말은 대 자로 통하고, 못 담(潭) 자는 못 소(沼) 자와 같은 뜻을 지니고 있다. 큰 못이 있는 마을이라 해서 ‘대소(大沼)’라는 지명으로 불려 왔으나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대소(大所)’로 변화된 것으로 생각된다.

대소 마을에서는 과거 화재로 마을에 재앙이 잇따랐는데, 그 이유는 ‘화산 바위’가 마을에 비치기 때문이었다. 이를 가리기 위하여 마을 숲을 조성하고 마을 방향을 바꾸면서 이를 극복했다는 「대소 마을과 불」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무주 부남 디딜방아액막이놀이의 유래]

무주 부남 디딜방아액막이놀이는 방앗거리 놀이, 디딜방아 놀이, 액막이 놀이 등으로 혼용하여 사용된다. 지역에 따라 성격과 목적이 다소 차이가 있으나 우리나라 전역에서 행하여지는 풍속이었다. 그중 하나는 가뭄을 극복할 때 비가 내리도록 디딜방아를 훔쳐다가 거꾸로 세워 놓고 기우제의 목적으로 하는 경우가 있었고, 다른 하나는 마을에 돌림병이 돌 때 병의 전염을 막고자 액막이 목적으로 행하여졌다.

무주 부남 디딜방아액막이놀이는 지금으로부터 250여 년 전[1750년 무렵] 마을에 전염병이 돌아 마을 사람들이 많은 피해를 겪었다. 이후 마을 사람들은 한 해의 무병장수와 풍년을 기원하기 위하여 신에게 제사 지내기 시작하여 현재는 민속놀이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본래 부남 디딜방아액막이놀이는 민속놀이라기보다는 세시 풍속에 가까운 뱅이[방아, 사고·질병의 예방 및 이미 발생한 재액(災厄)을 없애려고 하는 일종의 주술적 방법]로 행하여졌다. 즉 호열자(虎列刺)[콜레라] 같은 돌림병이 마을에 돌자 이웃 마을에 가서 방아를 몰래 가져와 자기 마을 방앗간 입구에 거꾸로 세워 놓았다. 방아공이 있는 쪽에 피 묻은 여자 속곳을 둘러씌워 놓으면 마을로 들어오는 재앙이나 질병이 질겁하고 달아난다고 믿었다.

그리고 무주군 부남면 가당리대유리, 무주군 안성면 덕산리 등지에서는 질병을 막기 위한 디딜방아 훔쳐 오는 풍속이 있었다. 이런 신앙적인 요소는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사라졌다가 1990년대에 이후 새롭게 복원되면서 민속놀이 성격으로 변모하여 전승되고 있다. 대소 마을에서는 과거 무주군 부남면 장안리 식암 마을에서 디딜방아를 훔쳐다가 저녁에 제를 모셨다. 훔쳐 온 방아를 방앗거리에서 제를 모시고 난 뒤 마을 입구에 세워 놓았다. 방아를 찾으러 온 식암 마을 사람들은 대소 마을에 술을 사 주거나 아니면 그만한 대가를 치르고 방아를 다시 가져갔다고 한다.

[무주 부남 디딜방아액막이놀이 구성 및 준비물]

무주 부남 디딜방아액막이놀이는 인원 제한이 없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놀이에 가담하며, 한 가구당 최소한 성인 1명 이상은 참여한다. 구성 인원은 제관 7명[당골 2명, 제관 2명, 집사 2명, 축관 1명], 방아꾼 30여 명[디딜방아 운반 및 액막이 놀이], 제수 준비 11명, 화동 4명, 기수 15명, 풍물패 30여 명 등으로 구성된다.

보통 100명 정도 참여하다가 현재는 80명 정도로 규모를 축소시켰다. 처음에는 대소 마을 사람으로 인원을 구성했으나, 현재는 부남면 주민들이 참여하여 행사를 치르고 있는 실정이다. 무주 부남 디딜방아액막이놀이는 음력 정월 보름날, 부남 면민의 날, 무주 반딧불 축제 때 시연되고 있다.

복색을 보면, 제관은 유건을 쓰고, 그 외 제례자는 정자관 갓을 쓰고 두루마기를 입는다. 남자의 옷은 흰 저고리와 흰 바지에 행전을 맨다. 여자의 옷은 흰 저고리와 흰 치마를 입고 머리에는 흰 수건을 두른다. 풍물패는 전통적인 좌도 풍물 굿의 복장을 입는다. 장비는 제상·제물·용당기·농기 등 9개, 키 3개, 절구통 3개, 절굿공이 6대, 체 3개, 축문, 풍물 아기, 디딜방아 및 동아줄, 놀이기 9개 등을 준비한다. 기의 종류로는 ‘소원성취’, ‘우순풍조’, ‘액운소멸’, ‘방앗거리 놀이’, ‘천우신조’, ‘무병장수’, ‘국태민안’, ‘만사대길’ 등이 있다.

제수는 돼지머리, 붉은 팥고물, 시루떡, 팥죽, 메밀묵, 3채, 5실과, 주, 포 등을 준비한다. 그리고 황토 50kg, 초롱[지등] 5개, 동전, 짚자리 15개, 징검다리, 디딜방아 1개, 동아줄 3개, 금줄 100m, 솔가지, 한지 1권, 소지 종이 100장, 향, 초, 숯, 건고추, 소금, 붉은팥 등의 준비물이 필요하다. 이외에도 볏짚 1단, 연 3개, 속곳 5벌[사람 이름 또는 액이라 붉은 글씨를 쓴 한지로 만든 옷], 제웅[짚으로 만든 인형], 화상[부적] 등도 준비해야 한다.

이렇게 많은 준비물이 필요하기 때문에 무주군의 지원이 없으면 마을 자체적으로 민속놀이가 전승되기 어려우며, 특히 많은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에 더더욱 어려움에 직면해 있는 상황이다.

[무주 부남 디딜방아액막이놀이 진행 과정]

무주 부남 디딜방아액막이놀이는 다섯 마당으로 이루어진다. 놀이 장면마다 음악적 이름을 붙여 놓아 첫째 놀이마당은 길거리 굿, 둘째 놀이마당은 창거리 굿, 셋째 놀이마당은 짓거리 굿, 넷째 놀이마당은 합거리 굿, 다섯째 놀이마당은 뒤풀이 굿으로 구분되어 불린다.

1. 거리굿[길거리 굿]

마을에서 주민이 모여 방앗거리로 나뉘어 나오며 놀이판을 펼치기 위하여 풍물 굿을 앞세우고 13명 정도의 풍물패가 이동한다. 뒤를 따라 15명의 기수, 7명의 제관, 30여 명의 디딜방아꾼, 11명의 제수 준비자, 4명의 화동 순으로 풍물패의 소리에 맞춰 방앗거리로 나온다. 방앗거리에 도착하면 원을 그리며 한바탕 놀이판을 벌인다. 놀이판이 마무리되면 풍물패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판에서 빠져나오고 풍물패만 방앗거리를 원을 그리며 돈다. 판에서 빠져나온 방아꾼들은 이웃 마을로 방아를 떼러 간다. 방아를 떼러 가면서 흥겨운 춤을 추며 이동한다. 제수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며 놀이판을 벌이고 제수를 거두어 온다.

2. 창거리 굿

창거리 굿은 30여 명의 여인들이 디딜방아를 이웃 마을에서 몰래 떼어 오며 노는 놀이이다. 디딜방아를 가져오면서 앞소리꾼[선소리꾼]이 소리를 메기면 뒤를 따르는 유대꾼들이 소리를 받는다. 이렇게 소리를 메기고 받으며 돌아오는 동안 사람들은 짓궂은 장난을 치며 마을로 들어온다. 후렴은 다음과 같다.

“방아야 방아야 방아야 에헤야~디야/ 쿵덕쿵덕 방아야/ 마을액운 소멸되고/ 엊그제는 쿵덕 쿵덕/ 우순풍조 풍년되어/ 잘도 찧던 이 방아가/ 복된 나날 되옵소서/ 오늘은 우리 손에/ 가세 가세 어서 가세/ 제물로 훔져간다/ 서둘러서 어서가세/ 이 방아 세워 놓고/ 이거리 저거리 깍거리/ 정성모아 드릴고사/ 방앗거리 축제거리/ 소원성취 하옵소서/ 우리를 기다리네/ 질병악귀 속거천리/ 서둘러서 어서가세.”

3. 짓거리 굿

11명의 젊은 아낙네들이 제수를 장만하기 위하여 바가지 자루를 가지고 집집마다 방문하여 제사에 사용할 음식을 거두어 온다. 그리고 거두어 온 곡식을 절구통에 넣고 찧는다. 절구질은 두 명이 하고, 다른 한 명은 손질을 한다.

4. 합거리 굿[방앗거리제]

방앗거리에서 제수를 준비하고, 사람들과 풍물패는 마을 어귀까지 마중을 나가 방아를 데리고 온다. 이때 제수를 준비하던 아낙네들은 준비한 제수를 머리에 이고 풍물패 뒤를 따라가며 논다. 방아꾼들이 방아 찧기 적당한 곳에 방아를 내려놓고 물러나면 준비한 제수를 방아 앞에 내려놓는다. 이렇게 방아 운반이 끝나면 풍물패, 방아꾼, 제수 준비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방아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흥겨운 판을 한 번 벌인다. 방아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판이 벌어지는 동안 제관들은 디딜방아 공이 부분을 바닥에 놓고 발로 디디는 부분을 위로 향하게 한다. 위로 향한 부분에 여인들의 고장중우[고쟁이]를 입히고 3색 드림으로 방아를 묶어 움직이지 않도록 땅에 고정시킨다. 방아를 고정시키고 나면 방아 앞에 모두 모여 경건한 마음으로 절차에 따라 제를 올린다. 제례는 유교식 제례로 행한다.

축문은 다음과 같다.

“유 세차 정월 모월 을해 삭 초이레 신사 무주군민 일동 감소고우 질병수마 속고천리 관내액운 일체소멸 우순풍조 풍년도래 복된나날 소원성취 근이청작 서수지천 고사 상 향.”

방아 앞에서 거리제를 지내고 나서 모든 사람들이 액막이 고사 노래를 부른다.

“에루 액이야 에루 액이야/ 어기영차 액이로구나// 정월 보름에 드는 액은/ 이월 영등으로 막아내고// 이렇게 영등에 드는 액은/ 삼월 삼진에 사월 초파일로 막아내고// 사월 초파일에 드는 액은/ 오월 단오로 막아 내고// 오월 단오 드는 액은/ 유월 유두로 막아 내고// 유월 유두에 드는 액은/ 칠월 칠석으로 막아 내고// 칠월 칠석 드는 액은/ 팔월 한가위로 막아 내고// 팔월 한가위 드는 액은/ 구월 시월 동지섣달로 막아 내고 // 에루 액이야 에루 액이야/ 어기영차 액이로구나.”

5. 뒤풀이 굿

제례가 끝나면 마을 대표[지금의 이장]가 “오늘 방앗거리를 무사히 마쳤으니 우리 한 번 신명 나게 놀아 봅시다.”라고 큰소리로 외치면 온 마을 사람들은 환호하며 원을 그리면서 흥겨운 놀이판을 벌인다. 이때 사람들은 돌아가면서 방아 2개를 가지고 서로 어르고, 선소리꾼의 메기는 소리에 맞추어 소리를 하며, 함께 어울려 짜릿한 감동으로 신명 나게 한바탕 어울리고 나면 무주 부남 디딜방아액막이놀이는 끝이 난다. 방아를 어루만지면서 부르는 소리는 다음과 같다.

“아헤~방아헤~[아헤~방아헤~]/ 이방아가 웬방아냐[아헤~방아헤~]// 강태공의 조작인가[아헤~방아헤~]/ 아헤~방아헤~[아헤~방아헤~]// 기산영수 별긴곤세[아헤~방아헤~]/ 효자 효부 놀아 있고[아헤~방아헤~]// 아헤~방아헤~[아헤~방아헤~]/ 보은 속리 문장대에[아헤~방아헤~]// 세조 대왕 놀아 있고[아헤~방아헤~]/아헤~방아헤~[아헤~방아헤~]// 우리들은 놀데 없어[아헤~방아헤~]/ 이 방아로 놀아보자.”

[무주 부남 디딜방아액막이놀이의 특징과 그 미래]

보통 방앗거리 놀이는 일반적으로 마을의 아주머니들이 이웃 마을 방아를 훔쳐와 마을 입구에 세우고, 월경한 속옷을 방아에 씌워 마을로 들어오는 질병을 막고자 하는 액막이였다. 때로는 기우제로 지냈다. 그런데 무주 부남 디딜방아액막이놀이는 여기에 춤, 풍악, 제례 의식이 함께하는 종합적인 민속놀이로 행하여지고 있다. 특히 다섯 마당으로 구성되어 놀이마당마다 음악적 이름을 붙여 놓았다.

보통 우리나라에서는 전국적으로 기우제와 마을의 질병을 막기 위하여 디딜방아 훔쳐 오기 풍속이 있었다. 그런데 무주군 부남면 대소리에서는 디딜방아 거리제로서 신앙과 놀이 의식이 결합된 독특한 민속놀이로 전해 내려오고 있으므로 ‘무주 부남 디딜방아액막이놀이[부남 방앗거리 놀이]’로 불리고 있다. 무주 부남 디딜방아액막이놀이는 특히 마을공동체 의식 속에서 전승되고 있으나 농촌 지역의 노령화로 인하여 마을 단위로 전승이 쉽지 않은 상황에 놓여 있다. 그래서 무주군 부남면 대소리 대소 마을뿐만 아니라 부남면 대유리 대티 마을, 부남면 대소리 가정 마을 사람들까지 함께 구성하여 시연하고 있다. 향토 사학자 유재두의 염려도 이 지점에 있다. 젊은 사람들이 참여하여 마을의 공동체적인 의식을 함께한다면 좋겠지만 현재로는 쉽지 않은 실정이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던 무주 부남 디딜방아액막이놀이를 1990년대 중반에 복원하여 마을공동체 의식을 일깨우는데 큰 역할을 했는데, 민속놀이의 전통이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는 보다 근본적인 해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