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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501349
한자 茂朱-
분야 지리/동식물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전라북도 무주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철배·진명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82년 11월 20일 - 무주 일원 반딧불이와 그 먹이 서식지 천연기념물 제322호로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7년 10월 23일~25일 - 제1회 무주 반딧불 축제 개최·폐회

[정의]

전라북도 무주를 밝히는 빛, 반딧불.

[토끼와 발맞춰 가는 첩첩산중, 무주]

어디에서 향하든 무주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굽이굽이 산길을 만나야 한다. 무주는 첩첩 산자락에 자리해 있으니 말이다. 태백산맥에서 분기한 소백산맥이 지리산으로 향하는 중간에 덕유산 향적봉[1,614m]이 우뚝 솟아 충청북도, 전라북도, 경상남도 삼도(三道)를 굽어보고 있다. 덕유산 능선은 남서쪽으로 이어져 남덕유산[1,507m]을 이루고, 그와 이웃하여 민주지산(珉周之山)[1,242m], 석기봉(石奇峰)[1,299m], 삼도봉(三道峰)[1,176m]이 자리해 있다. 이 산들을 거치고 부항령(釜項嶺)과 대덕치(大德峙), 대덕산(大德山)[1,290m]에 이르면 가야산맥(伽倻山脈)이 갈라지면서 경상북도와 경계를 이룬다. 그리고 소백산맥은 무주 설천면백운산(白雲山), 적상산(赤裳山), 국사봉(國師峯), 옥녀봉(玉女峰), 노루 고개[장령(獐嶺)], 밤고개[율령(栗嶺)] 등의 산줄기를 형성하면서 진안군으로 이어진다.

산이 있으니 내가 있는 법. 덕유산 자락을 타고 흐르는 물줄기는 은구암, 학소대, 와룡담, 구천 폭포, 연화 폭포 등 무주 구천동의 빼어난 33경을 빚어 냈다. 이 냇물은 무풍면남대천, 설천면구천동원당천, 적상면 괴목리상곡천삼가리적상천, 삼유리삼유천을 이루고 남대천에서 만나 금강의 상류로 흐른다. 또 다른 물길인 구량천안성 분지를 지나 금강으로 합류하여 용담댐의 용수가 되고, 부남면안창천은 곧바로 금강과 만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풍속조에는 “민업(民業)이 황량하기 해를 거듭하니, 상수리와 밤을 저장하여 양식을 삼네”라고 하였고, 조선 전기 문신인 유빈(柳濱)은 “산이 포옹하고 물이 둘러 있으매 마을이 깊숙하다”라고 노래하였다.

풍수학자 최창조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오지의 대명사처럼 쓰이던 두 곳이 바로 남한의 무주 구천동과 북한의 삼수갑산(三水甲山)이라고 하였다. ‘토끼와 발맞춰 산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을 정도로 무주는 깊은 산골 마을이다.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무주 구천동 투표함이 도착해야 선거가 끝난다’, ‘이 친구 아직도 무주 구천동이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무주는 궁벽한 산골의 대명사였다. 한편 이는 무주가 무공해 청정 자연 환경을 간직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산업화의 물결 속에서도 무주에 반딧불이가 서식할 수 있었던 까닭은 그나마 개발의 손길이 늦게 미쳤기 때문일 것이다.

[무진장하였던 반딧불이, 설천 일대에서 그 서식지가 발견되다]

1997년 제1회 무주 반딧불 축제에서 ‘반딧골 할머니’로 선정된 최고령자 강성녀 할머니[1881년생]는 “예로부터 무주는 반딧골이라 불려 왔는데, 덕유산의 무분별한 개발로 주서식지인 남대천 주변이 오염되어 반딧불이 보기가 어려워졌다”고 안타까워하였다. 무주가 반딧불이의 고장이었음을 보여 주는 민속 놀이로 ‘반딧불 호롱 놀이’를 들 수 있다. 호롱, 호박꽃, 소지 종이, 갈포망 등으로 주머니 모양 또는 봉지 모양을 만들어 반딧불이를 그 속에 잡아 넣어서 노는 놀이다. 일명 개똥불 놀이라고도 하며, 여름철에 어린이들이 즐겨 하였다. 한여름 밤 흔하게 손에 잡히던 반딧불이였기에 가능한 놀이였다.

무진장(無盡藏), 엄청나게 많아 다함이 없는 상태를 이르는 말이다. 무주, 진안, 장수를 일컫는 말도 ‘무진장’이다. 가도 가도 끝없는 첩첩산중처럼 옛날 무주에는 반딧불이가 무진장 많았다. 그러나 깊은 두메산골 무주에도 개발의 바람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이로써 무주에도 점점 반딧불이가 사라져 갔다.

반딧불이는 멸종 위기에 처하였을까? 첫째는 먹이의 감소 때문이다. 반딧불이는 달팽이, 다슬기[방언으로 올갱이라고도 함]를 주식으로 한다. 그러나 산림 개발과 화학 농약의 사용으로 하천이 오염되어 하천 생태계가 변화하면서 반딧불이의 주식인 다슬기도 감소하였다. 올갱잇국은 무주 향토 음식의 하나였다. 이는 무주 남대천에 올갱이가 많이 잡혔기 때문이다. 둘째는 인공 조명의 증가이다. 반딧불이는 루시페린(luciferin)이라는 물질이 산화되어 빛을 만들어 낸다. 목적은 종족 보존을 위한 짝짓기이다. 그런데 자신의 빛보다 더 밝은 빛들이 나는 곳에서는 짝짓기를 할 수 없으니 자연스레 반딧불이도 자취를 감추었다.

1982년 산업화의 진행으로 반딧불이가 사라져 가던 즈음, 서울 대학교와 문화재 관리국이 조사한 끝에 무주군 설천면 청량리소천리 일대에 우리나라 최대의 반딧불이 서식지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농약과 매연 등으로 멸종 위기에 놓인 반딧불이무주군 설천면 일대에 집단 서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설천면 나림 마을에는 7월부터 9월 초순까지 수백 마리 반딧불이가 마을 안까지 날아다녀 장관을 이루었다. 설천면 일대의 반딧불이 서식지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시기도 이때이다.

이제 반딧불이는 깨끗한 곳에서만 사는 환경 지표종의 하나가 되었다. 옛날에는 ‘개똥벌레’라고 불릴 정도로 개똥처럼 흔하였지만, 이제는 신비한 불빛을 내는 환상의 곤충으로 특정 지역을 찾아가야만 볼 수 있게 되었다. 무주에도 개발 바람과 과다한 농약 살포로 오염이 심각해지면서 반딧불이가 멸종될 위기에 처하였다. 이에 무주군과 문화재청은 1982년 11월 20일 무주 설천면 청량리에서 소천리 사이를 흐르는 남대천 구간 4㎞를 천연기념물 제322호 '무주 반딧불이와 그 먹이 서식지'로 지정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2002년 다시 설천면, 무풍면, 무주읍 3개 지역을 '무주 일원 반딧불이와 그 먹이 서식지'로 확대 지정하였다. 도로의 확포장 공사, 덕유산 스키장 건설에 따른 산림의 감소로 하천 생태계가 파괴되면서 반딧불이 생존에도 지장을 주었기 때문이다. 2002년 애반딧불이 서식지인 설천면 장덕리 수한 마을, 운문산반딧불이[파파리반딧불이와 동종] 서식지인 무주읍 가옥리 가림 마을, 무풍면 금평리 대동천 주변 88 올림픽 숲 등 3개 지역을 확대 지정하여 반딧불이 보호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20년의 역사 무주 반딧불 축제, 성공적으로 안착하다]

1995년 지방 자치제 도입으로 지역 문화와 지역 이미지가 경쟁력인 시대가 되었다. 지방 자치 단체는 앞다투어 지역 상징과 지역 브랜드를 만들어 내려 동분서주하였다. 산지가 85%를 차지하는 무주는 구천동 계곡 외에는 별달리 내세울 만한 관광 자원이 없었다. 특히 무주는 사람들의 발길이 쉽게 닿지 않는 첩첩산중 산간 벽지에 자리하고 있다. 그러던 중 무주군은 1997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반딧불이’에서 아이디어를 찾았다. 반딧불이는 근대화 시기를 경험한 이들에게 어릴 적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친근한 곤충이자, 사라져 갈 위기에 처하여 더욱 그 가치가 중요해지는 생물이므로 반딧불이를 축제와 결합한다면 전국적 관심을 모을 것으로 예상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예상은 적중하였다.

제1회 무주 반딧불 축제를 개최한 이듬해 문화 예술 진흥원과 문화 관광부로부터 참신한 기획과 독특한 아이디어를 인정받아 각각 ‘98 우수 기획 문화 축제’, ‘99 문화 관광 축제’로 선정되었다. 무주 반딧불 축제는 해를 거듭할수록 전국적 인지도를 얻으면서 ‘반딧불이’로 지역 이미지를 각인하는 데 성공하였다. 무주군은 환경 지표인 반딧불이를 통해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삶의 공간을 축제의 장으로 만들어 냈으며, 국내에서 척박한 생태 환경 축제의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

2016년 무주 반딧불 축제는 20회의 역사를 맞이하였다. 축제는 '자연의 빛, 생명의 빛, 미래의 빛'이라는 주제로 무주군 일원에서 펼쳐졌다.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반딧불이를 직접 찾아가는 신비 탐사이다. 오후 8시 셔틀버스를 타고 마을 깊숙이 들어가 반딧불이를 직접 보는 것이다. 별이 쏟아지는 까만 밤하늘을 배경으로 수십 만 마리의 반딧불이가 펼치는 화려한 군무는 도시인들에게 진귀한 경험을 안겨 준다. 자연 속으로 들어와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체험을 느끼게 된다.

무주 반딧불 축제 제전 위원회 발표에 따르면, 제20회 무주 반딧불 축제에 20여 만 명이 방문하고 10억 8000여 만 원의 소득이 창출되었다고 한다. ‘반딧불이 신비 탐사’와 ‘엄마 아빠와 함께하는 1박 2일 생태 탐험’, 14개 마을이 함께한 ‘마을로 가는 축제’ 등이 큰 인기를 끌었다.

무주 반딧불 축제는 1999년 문화 관광 축제로 지정된 이래 2012년까지 정부 지정 우수 축제, 2013년부터 4년 연속 정부 지정 최우수 축제로 선정되었다. 이 외에도 한국 지방 자치 브랜드 대상 축제 부문 대상, 소비자가 뽑은 가장 신뢰하는 브랜드 대상, 대한민국 축제 콘텐츠 대상 축제 관광 부문 대상, 코페스타 선정 대한민국 여름 축제 선호도 1위, 축제 닷컴 선정 가장 가 보고 싶은 축제 2위, 미국 CNN 선정 한국에서 가 봐야 할 아름다운 곳 50선[남대천 섶다리]으로 연속 선정되며 그 차별성과 영향력을 인정받고 있다. 무주 반딧불 축제는 명실공히 대한민국 대표 축제로 자리잡은 것이다.

[무주, 반딧불로 지역 미래를 밝히다]

무주에 들어서면 반딧불이를 특화한 상징 조형물과 시설들을 만날 수 있다. 반딧불 시장, 형설지공 도서관, 반딧불 체육관, 무주 반디랜드, 반디별 천문 과학관, 무주 반딧불 청소년 수련원 등 ‘반딧불이’ 캐릭터를 모티프로 한 시설들이 곳곳에 자리해 있다. 무주군에서 발간하는 군보 역시 「반딧불 소식지」이며, 무주 문화원 소식지도 「반딧골 문화」이다.

무주군 설천면에 위치한 반디랜드반딧불이를 체험하고 학습, 관람할 수 있는 환경 테마 공원이다. 이곳에는 희귀 곤충을 만날 수 있는 무주 곤충 박물관, 반딧불이 연구소, 청소년 야영장, 통나무집, 반딧불이 서식지가 있는 체험 학습 교육 공간이 들어서 있다. 2017년 3월 반디랜드 곤충 박물관이 1종 전문 박물관[전북-2017-1호]으로 등록되면서 다변화된 활동이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무주군은 청정 자연 환경을 가꾸고 보호함으로써 자연과 공존하는 생태 도시로서의 위상을 확립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반딧불이 보호 서식지 주변 40농가의 유기농법 실천, 환경 기초 시설 확충[1998~2002년], 환경 오염 증감 방지사업, 토양 환경 보조 사업, 흙 살리기 운동 등이 그 예이다. 그리고 2006년부터 무주군 농업 기술 센터 내 반딧불이 보전 담당을 설치하고, 반딧불이 보호 구역과 반딧불이 보전 대책을 실천하고 있다. 2010년 무주군 농업 기술 센터 김하곤 곤충학 박사는 반딧불이를 대량으로 사육할 수 있는 기술로 특허를 따냈다. 또 유충에서 성충이 되는 과정을 쉽게 관찰할 수 있는 장치도 개발해 최근 실용 신안 등록까지 마쳤다고 한다. 이러한 성과는 2006년부터 운영되는 ‘반딧불이 자연 학교’에서 적극적인 생태 환경 교육을 진행하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무주에 천연기념물 반딧불이 서식지가 남아 있다는 것은 청정 무주를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반딧불이는 무주군의 청정 이미지를 각인시킨 효과를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지역 브랜드로 확장되면서 지역 경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무주군 반딧불 공동 브랜드는 1999년에 개발·상용화되기 시작하였으며, 무주의 농·특산물 브랜드에도 사용되어 청정 지역에서 생산된 친환경 농·특산물이라는 인식을 심어 주고 있다.

무주군은 ‘반딧불이’ 캐릭터를 특허 등록하여 지역 특산품의 상표, 공공 기관의 업무 표장 등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반딧불이 브랜드의 통일성을 유지하기 위해 포장지 등 브랜드 관련한 작업을 직접 관리하고 지원함으로써 실질적인 이미지 제고와 지역 경제 상승 효과를 꾀하고 있다. 1982년 발견된 국내 유일의 반딧불이 서식지는 무주의 미래를 밝히는 빛이었던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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