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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고사 석탑」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501199
한자 北固寺石塔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읍내리
집필자 이정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2년 - 「북고사 석탑」, 『내 고장 전설집』에 수록
관련 지명 북고사 -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읍내리 520 지도보기
관련 지명 경월사 -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읍내리 520
성격 설화|사찰 연기담|풍수담
주요 등장 인물 이성계|무학 대사|주계 현감
모티프 유형 사찰 연기|풍수지리

[정의]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읍내리의 향로산에 있는 북고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북고사 석탑」은 한양 천도를 주도한 무학 대사(無學大師)의 의견에 따라 ‘경월사(慶月寺)’를 ‘북고사(北固寺)’로 명칭을 변경하고, 오층 석탑을 세워 북쪽의 기세가 허술한 것을 보완해서 무주의 안녕을 기원하였다는 사찰 연기담이자 풍수담이다. 이후 북고사는 오층 석탑 및 적상산 안국사와 함께 오늘날까지 무주의 안녕과 번성을 지켜 주는 중요한 사찰로 자리를 잡고 있다.

[채록/수집 상황]

「북고사 석탑」은 1992년 김경석이 편찬하고 무주군에서 간행한 『내 고장 전설집』의 82쪽에 수록되어 있다. 채록 상황은 실려 있지 않다.

[내용]

무주군 무주읍 향로산에는 경월사가 있었다.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한 후 한양 천도의 길지를 찾기 위해 무학 대사를 대동하고 전국을 돌아다녔다. 이 무렵, 무학 대사주계현[무주]에 이르러 북쪽의 기세가 허술한 것을 보완해야 한다며 ‘경월사’를 ‘북고사’로 고쳐 훗날을 도모하라고 했다. 무주의 남쪽에 위치한 적상산 안국사최영이 인정할 정도로 천혜의 요새이자 명산임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무학 대사의 말을 듣고 주계 현감이 북고사로 이름을 바꾸고 오층 석탑을 세웠다. 이후 1414년(태종 14)에 주계현무풍현을 합쳐 ‘무주현’이 되었다. 1614년(광해군 6)에는 적상산 사고를 설치하였고, 1849년(헌종 15)에는 무주 도호부로 승격되어 7개 군의 병사를 다스리는 큰 고을로 번창하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무학 대사의 말대로 북쪽을 견고히 한다는 북고사와 오층 석탑을 세운 결과이다.

[모티프 분석]

「북고사 석탑」의 주요 모티프는 ‘사찰 연기’, ‘풍수지리’ 등이다. 「북고사 석탑」은 사찰 연기 설화로서, 풍수의 보완을 언어의 주술로 보완한다는 발상이 담겨 있다. 남쪽의 적상산과 북쪽의 북고사가 힘의 균형을 이루어야 무주가 온전해질 수 있다는 믿음을 주고 있는 「북고사 석탑」은 풍수지리담의 명당 발복을 믿는 민간 신앙이 반영된 설화이다. 무주는 역사적으로 삼한(三韓)과 마한(馬韓), 백제와 신라의 접경지대였고, 지리적으로는 덕유산 국립 공원에 속하고 있으면서 진안, 장수, 경상남도 지역과 경계를 이룬다. 이러한 이유로 무주는 서로 다른 문화가 공존하는 특징이 있다. 「북고사 석탑」은 서로 다른 이질적 요소가 공존하는 무주 지역의 특성을 보완하여 ‘온전’한 지역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 이야기다. 특히 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무주현’의 위상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 ‘북고사 석탑’의 영험함 때문이라는 믿음은 현재의 무주의 정체성을 유지하게 해 주는 요소가 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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