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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낙철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500733
한자 崔洛哲
영어공식명칭 Choe Nakcheol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전라북도 무주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임혜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21년연표보기 - 최낙철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44년 - 최낙철 대구 지방 법원에서 징역 5년형 선고 받음
추모 시기/일시 1963년연표보기 - 최낙철 건국 훈장 국민장 추서
활동 시기/일시 1986년 - 최낙철 경기도 파주 삼광 중학교 교장 부임
몰년 시기/일시 2005년연표보기 - 최낙철 사망
출생지 무주군 -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은산리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무주군 -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은산리
학교|수학지 대구 사범 학교 - 대구광역시 남구 중앙대로 219[대명2동 1797-6]
활동지 약초 공립 국민학교 - 함경북도 나진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삼광 중학교 교장

[정의]

일제 강점기 무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최낙철(崔洛哲)[1921~2005]은 1921년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은산리에서 출생하였다. 무풍 공립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대구 사범 학교 심상과에 재학 중이던 1941년 1월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과 모여 민족의 장래에 대해 협의하고 조선 독립을 위한 실력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결사체인 ‘연구회(硏究會)’를 조직하였다. 이들은 학술 연구를 표방하면서 항일 의식을 고취하였으며, 회의 운영을 위해 매월 연구 발표·하급생 지도 및 동지 획득 등의 운영 방침을 정하고 또한 각 부서를 정하였는데, 최낙철은 지리부 책임의 일을 맡았다. 회원들이 졸업할 즈음 최낙철을 포함한 연구회 회원들은 졸업 후 학교 교단에서 민족의식을 고취하여 학생들로 하여금 민족적 자각을 갖게 하고, 학부모와 청년들 중에서 동지를 규합하여 민족의식을 고취하라는 장기적인 사업 계획을 세웠다.

1941년 3월 대구 사범 학교를 졸업한 최낙철은 함경북도 나진의 약초 공립 국민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연구회의 지도에 따라 학생과 학부형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하며 문화를 통한 민족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던 중 그해 7월 대구 사범 학교 윤독회의 간행물인 「반딧불」이 일본 경찰 손에 들어가면서 대구 사범 학교 학생들의 항일 결사 모임의 전모가 드러나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최낙철은 대전에서 일본 경찰에게 검거되었고, 1944년 대구 지방 법원에서 징역 5년을 선고 받고 대구 형무소에서 복역하다 광복을 맞아 출옥하였다. 1986년 경기도 파주에 있는 삼광 중학교 교장으로 부임하였다.

[묘소]

최낙철은 국립 서울 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되어 있다.

[상훈과 추모]

1963년 건국 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 『무주 군지』 (무주군, 1990)
  • 『무주 군지』 상(무주 군지 편찬 위원회, 2003)
  • 국가 보훈처(http://www.mpva.go.kr)
  • 한국 역대 인물 종합 정보 시스템(http://people.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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