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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500719
한자 申明善
영어공식명칭 Sin Myeongseon
이칭/별칭 신명선(申明先)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전라북도 무주군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임혜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907년 - 신명선 소속된 대한 제국 시위대 해산
활동 시기/일시 1907년 - 신명선, 황이만 등과 함께 덕유산에서 창의
활동 시기/일시 1908년 - 신명선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방이리 배골 마을에서 일본군 수비대 격퇴
몰년 시기/일시 1908년연표보기 - 신명선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0년연표보기 - 신명선 건국 훈장 애국장 추서
출생지 무주군 - 전라북도 무주군
묘소 칠연 의총 -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칠연로 608[공정리 산6]지도보기
성격 의병
성별

[정의]

개항기 무주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활동 사항]

신명선(申明善)[?~1908]은 대한 제국의 시위대(侍衛隊) 출신으로 본관은 평산(平山), 별명은 신명선(申明先)이다. 1907년(순종 1) 제3차 한일 협약(韓日協約)이 체결되고 강제로 군대가 해산되자 고향 무주로 돌아왔다. 이후 창의(倡義)를 결심하고, 1907년 먼저 거사 준비를 위하여 황이만(黃二萬) 등과 함께 거병에 필요한 자금을 모은 후 덕유산(德裕山)으로 들어가 약 40명의 의병을 규합하여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미 덕유산을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던 김동신(金東臣)과 함께 전라북도 진안군에 있는 심원사에서 일본군 수비대를 격퇴하고 임실로 가서 이석용 의병장과 함께 임실읍을 습격하였다. 그해 말 다시 덕유산으로 돌아온 신명선은 1908년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방이리 배골 마을에서 일본군 수비대를 격퇴하였다. 이어 정월 대보름에는 문태서(文泰瑞)가 이끄는 호남 의병단과 합세하여 무주군 부남면 고창리 옥녀봉 골짜기에서 일본군 수비대 43명을 사살하고 병기 50자루를 노획하는 등의 전과를 올렸다.

1908년 4월 호남 의병단과 함께 장수 주재소를 기습하였고 추격해 오는 일본군 수비대를 유인하여 사살 15명, 부상 20명, 총기 25자루를 노획하는 등 성과가 있었으나 의병도 7명이 전사하고 25명이 부상당했다. 그 후 신명선과 의병 대원들은 무주군 안성면 사전리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 수비대를 습격하기 위해 출전하다 잠복하고 있던 일본군의 기습을 받고 송정골로 향하였으나 모두 장렬하게 최후를 마쳤다. 송정골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 밑에 소(沼)와 반석으로 되어 있는 험준한 골짜기라 일본군을 피하기 어려웠다고 전한다.

[묘소]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공정리에 있는 칠연 의총(七淵義塚)에 안치되어 있다.

[상훈과 추모]

1977년 건국 포장이 추서되었고, 1990년 건국 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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